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141)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141화(141/150)
본래 카에드가 소유했어야 할 칼스비크와 블카노프 가문은 그의 뜻대로 반파되었고 몰락했다.
대다수의 영지민이 피난을 떠났고, 동토의 어디에서도 삶의 온기를 찾을 수 없었다.
북부 측의 개가가 높이 울리던 날, 카에드는 그녀가 가 보고 싶었다던 요정 호수를 찾았다.
그곳은 소년일 적에 보았던 모습 그대로였다. 물결치는 수면 위로 무수히 많은 반딧불이가 비행하며 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전설을 지닌 멜리 호수. 이곳에서 그녀가 빌고 싶었던 소원은 무엇이었을까. 수천 개의 빛을 눈에 담았다면 기대만큼 아름다운 곳이라고 생각했을까?
듣는 이가 없는 질문을 되뇌며 무의미한 숨을 내뱉었다. 더는 존재하지 않는 이의 마음을 헤아리고 싶지 않았다. 그 순간, 너저분하게 조각난 머릿속에서 밀어낼 수 없는 강한 의지가 일었다.
그제서야 죽지 말고 살아달라던 여자의 마지막 전언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살아가는 의미를 잃은 그에게는 이제 부질없는 일이었다.
카에드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호수에서 스스로 제 삶에 종지부를 찍었다. 생기가 사라지는 눈동자에 느린 속도로 점멸하는 수천 개의 빛이 담겼다.
그녀는 그토록 비참한 상황에서도 가슴 한편에 아름다운 것을 위한 공간을 내어준 사람이었다. 호수가 얼마나 찬란할지 궁금해하던 그녀에게 어설프게나마 묘사라도 해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돌이킬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
“으….”
그와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연기처럼 흐려지던 머릿속이 일순 또렷해졌다. 왼쪽 어깨에 날카로운 격통이 파고들며 선혈이 울컥 흘러나왔다.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아니면 아직도 지긋지긋한 혈투를 반복 중인 걸까. 전쟁이 끝나고 나서 제 목숨을 끊은 일련의 사건은 망가진 머리가 만들어 낸 착각일 수도 있었다.
희뿌연 시야가 차츰 선명해지면서 초점이 잡혔다. 눈앞에 하늘 끝까지 솟아오른 검은 성채가 서 있었다. 그 성을 배경으로 필립과 공자가 히죽대며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어깻죽지에 틀어박힌 통증은 거짓이 아니었다. 천치처럼 주변을 훑다가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화살을 맞고 단박에 공자의 목을 비틀어 죽였던 그 시점으로, 시간을 거슬러 돌아왔다는 사실을.
카에드는 양 입매를 길게 찢어 웃었다. 어깨를 틀어잡은 손가락 사이로 뜨거운 선혈이 흘러내렸다. 그 감각이 너무나 황홀했다. 격정적인 환희가 치밀어 올랐다.
“고마워요. 전부 다.”
그녀가 제게 안겨 여린 음성으로 전했던 속삭임이 머릿속에서 미친 듯이 공명했다. 카에드는 참지 못하고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런 그를 멍하니 쳐다보던 황태자와 공자의 낯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카에드는 화살대를 잡아 어깨에 깊숙이 박힌 쇠촉을 뽑았다. 살갗을 짓이기는 고통이 그저 경이로웠다. 그는 자신을 정신병자처럼 관망하는 두 사람을 지나쳐 저벅저벅 성으로 돌아갔다.
먼저 자신을 믿고 따라 주었던 발켄족의 수하들을 찾아가야 했다. 형제와도 같은 그들을 두 번 다시 잃지 않을 것이다. 이 광활한 영지는 그들의 보금자리이기도 했다.
기생충 같은 가문원도 없애 버려야 했다. 이왕이면 모두가 모여 공작성에서 거나한 연회를 치르고 있을 때 깡그리 정리하는 거다. 하나도 빠짐없이 모조리.
본래 자신의 것이었어야 했던 칼스비크와 성 그리고 지위를 거머쥔 그다음에는….
***
해바라기.공금
자신의 뇌리에만 존재하는 기나긴 과거를 토로한 카에드는 다소 곤혹스러웠다.
그의 무릎 위에 다소곳이 앉아 경청하던 세라엘이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오열했기 때문이다.
항상 울려 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울리고 싶지는 않았다. 카에드는 훌쩍이는 세라엘을 토닥이며 달랬다.
“그만 울고 진정해요.”
“소원을 들어주는 요정 호수라면 당신이 예전에 저를 데려갔던 곳이잖아요.”
세라엘은 그의 어깨에 이마를 기대고 눈물을 짜냈다.
결혼식을 코앞에 둔 어느 날, 카에드와 함께 말을 타고 대공성 근처에 있는 숲으로 가서 반딧불이가 반짝이는 호수를 보았다. 평생 잊지 못할 황홀한 기억이었다. 그가 그녀에게 꼭 보여 주고 싶었다고 말하던 목소리가 지금도 선명했다.
“그런 아픈 과거가 있는 곳인 줄도 모르고 저는 어린애처럼 좋아하기만 했어요. 당신이 옆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아픈 과거 같은 건 없어요. 그때 세라엘이 태어나서 그렇게 눈부신 장소는 처음이라고 했잖아요. 당신에게 행복한 기억으로 남은 곳이라면 내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하는 거예요.”
세라엘은 그의 옷감을 축축하게 적시며 가슴을 들썩였다.
“너무 가엾어요…. 혼자서 너무 힘들었을 거 같아요.”
카에드는 실소를 뱉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왜 가엾어요. 지금은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인데.”
“그래도….”
세라엘은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그의 어깻죽지에 파묻으며 그를 힘껏 끌어안았다. 어차피 오래전 일이라 감정적인 소모는 없다만, 그녀가 이리도 슬퍼해 주는 모습을 보니 새삼 격세지감이 들었다.
그토록 사랑하고 싶었던 여자가 오늘 그에게 사랑을 고했다.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 족쇄를 일평생 걸어 놓는 것과 다름없는 각인까지 하고서. 어떻게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있단 말인가.
“작위를 얻자마자 밀로즈 저택에 쳐들어가 당신을 데려오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어요.”
카에드는 두 주먹으로 눈가를 문지르는 세라엘을 꽉 껴안았다.
“당신이 성년이 되는 해에 맥슨 백작과 정혼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 조급했거든요.”
“저를 곧바로 찾아오지는 않았잖아요.”
“생각해 봐요. 당신은 미성년이었고, 이 세계에서 우리는 완벽한 초면이었어요. 생면부지의 남자가 일언반구도 없이 당신을 데려간다면 그건 납치입니다.”
잠시 뜸을 들이던 카에드가 말을 계속했다.
“사실 납치를 계획한 적이 없다고는 말 못 하겠습니다. 하지만 세라엘이 내게 마음을 열기 위해선 내 첫인상을 개만도 못한 쓰레기로 남겨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 아버지에게 접근한 거였군요.”
조금 전 가슴이 미어지는 얘길 듣고서 슬픔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한 세라엘이 구슬 같은 눈물을 또륵 흘렸다. 카에드는 봉긋한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핥았다.
“마침 공작위를 승계하자마자 사업가들로부터 클럽 초대장을 받았어요. 더없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세라엘은 우연히 나타난 카에드 덕분에 노백작과의 결혼을 피할 수 있는 선택지가 생겨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우연이 아니었다니.
카에드는 무언가를 회상하는 것처럼 눈을 내리떴다.
“밀로즈 후작이 힌델에 세운 건물을 언급하더군요. 그걸 사면 여식과 가교를 놓아줄 수 있다는 말을 덧붙이면서요. 그 간사한 인간의 목을 비틀어 버리고 싶었습니다.”
힌델에서 개최되었던 여름 연회에서였다.
후작이 그녀를 짐짝에 가져온 상품 다루듯 천박한 어조로 거론하는데도, 카에드는 관심을 표해야만 했다. 적법한 나이가 되면 그녀와 연을 맺고 싶다는 의사도 전달했다.
하지만 후작을 향한 살기를 억누를 수가 없었다. 표정 관리를 잘 못 했는지, 분명한 의사를 보였음에도 밀로즈 후작은 그가 세라엘에게 일말의 관심도 없다는 착각을 할 정도였다.
그러다 넌지시 그녀의 이름을 물었다. 친모가 지어 주었다는 그 이름을 듣고 어찌나 황홀했는지 모른다. 이름을 알지 못해 허상을 그리워하는 듯한 느낌을 몇 번이고 받았던 그였다.
문제는 작위를 얻었다고 해서 모든 일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당신을 칼스비크로 데려오는 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지만, 황폐한 동토로 데려오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황실 지원금이 아니었다면 블카노프 가문과 칼스비크는 일찌감치 파산했을 것이다. 카에드는 빠른 기간 내에 메마른 영지에 숨기를 불어넣고 번성시켜야만 했다.
“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않으셨다는 말은 들었어요. 게다가 북부로 원정까지 다녀오셔야 했잖아요.”
“칼스비크가 안전하다는 보장이 없었어요. 당시 국경 너머의 정세는 너무나 불안정했고 위험했습니다. 그들과 부대끼며 살아 보았으니 절감할 수 있었어요. 당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그쪽을 확실하게 바로잡아야 했습니다.”
토벌 원정을 떠나기 직전에 급하게 수도로 내려왔던 이유도 따로 있었다. 이전 생에서 세라엘이 백작과 결혼했던 시기라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미래를 확실하게 비틀어야만 했다. 다시 밀로즈 후작을 만나서, 원정이 끝나면 그가 건물 매입을 구실로 제시한 터무니없는 금액을 전액 현찰로 지불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서라도.
그렇게 세라엘이 성인이 되고 나서 2년이 더 흘렀다.
카에드는 개에 물린 흔적은커녕 작은 생채기 하나 없는 그녀의 손등에 입술을 내리눌렀다.
“원정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는 황제가 내게 대공작이라는 작위를 봉했죠. 애가 탄 밀로즈 후작은 영지에서 축제까지 열어 가며 나를 은밀히 초대했습니다. 머지않아 당신과 나를 정식으로 인사시켜 주겠다더군요.”
세라엘은 오래전 루시가 전해 주었던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보름달이 뜨는 두 번째 밤에 다시 방문하겠다고… 하신 거군요.”
“그토록 고대하던 날을 약조하고 저택을 나서는데 먼발치에서 당신을 보았습니다. 마을 축제를 즐기면서 하녀와 밝게 웃던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아요.”
그뿐이었겠는가. 그녀와 정찬이 약속된 그날 밤 또한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창밖으로 자신을 훔쳐보다 반지를 떨어뜨린 세라엘을 똑똑히 기억한다. 반지가 얼굴 위로 떨어지는 걸 목도하면서도, 돌고 돌아 재회한 여자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카에드는 그녀의 뺨에 몇 번이고 입을 맞추었다. 문득 세라엘은 어떠한 사실을 떠올렸다.
“황궁에서 아버지를 만났을 때 제게 말씀해 주셨어요. 맥슨 백작이 얼마 전에 갑작스러운 변사를 당해 죽었다고요.”
“내가 죽였습니다.”
산뜻하게 인정한 카에드가 쉴 새 없이 입술을 내리눌렀다. 저녁 식사로 무얼 먹었는지 대답하는 어조와 다름없어 황당할 정도였다.
“그 쓰레기는 다른 어린 여자를 신부로 맞았더군요. 바이퍼를 보내 백작을 죽이고 여자를 구출했습니다.”
카에드는 보기 좋게 부풀어 오른 세라엘의 입술에 입맞춤했다.
“이제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아요. 걱정할 일은 없을 거라고 약속했죠. 누구도 당신을 아프게 할 수 없도록 곁에서 지켜 줄게요.”
얽힌 숨결에 차츰 열기가 고였다. 아직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세라엘은 그의 어깨를 밀어냈다. 어찌나 힘이 센지 도무지 밀려나지를 않았다.
“저를 구해 줘서 정말 고마워요. 당신이 아니었다면, 아이… 입 좀 그만….”
새가 부리로 쪼듯 연거푸 입술이 부딪치느라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날 구원한 사람은 세라엘이에요.”
카에드는 그녀와 코끝을 비비며 눈을 맞추었다.
“지금 몸 상태는 어떤 거 같아요. 아픈 덴 없어요?”
그녀의 등허리를 쓸어내리며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