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145)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145화(145/150)
“그냥, 집에 오니까 사소한 게 다 좋아요. 책 읽다가 올려다본 칼스비크 하늘도 좋고, 사용인들이 쓰는 북부 억양도 듣기 좋고.”
카에드는 그녀의 목덜미에도 입술을 박고 낮은 웃음을 흘렸다.
“오후에는 뭐 했어요?”
“유리 온실에서 루시, 릴리랑 차를 마셨어요. 중간에 렉터가 와서 아기 늑대 밥 주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냐며 루시를 데려갔어요.”
세라엘은 약간 헝클어진 카에드의 머리칼을 손으로 정돈해 주었다. 조금 전 그가 자신을 들쳐 안는 바람에 놀라서 잡아당긴 탓이었다.
부드러운 흑발이 손의 움직임을 따라 흔들렸다. 카에드는 턱을 비스듬히 기울여 그녀의 손길을 음미했다.
“다튼 부인은 만나고 왔어요?”
“만났어요.”
“별말 안 하던가요?”
“건강에는 아무 문제도 없다고 했어요. 근데 있잖아요….”
세라엘은 침중한 표정을 꾸미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연이어 그녀의 뺨에 입술을 붙이던 카에드가 고개를 들어 그녀와 시선을 맞대었다.
“말해 봐요.”
“사실은 문제가 하나 생겼어요.”
세라엘이 말꼬리를 길게 늘였다.
“어엄청 심각한 문제거든요….”
우물쭈물 부자연스럽게 시선을 옮기는 모습을 보며 카에드는 그녀가 연기력이 썩 좋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속이 훤히 보이는 장난을 치려나 본데, 귀여워서 대강 넘어가 주기로 했다.
“어지간히 심각한 일인가 봐요.”
“네….”
“무슨 일인데 그래요?”
“정말 미안해요.”
갑작스럽게 사과를 건넨 세라엘이 입매를 늘어뜨렸다.
“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요.”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고 있던 카에드가 웃음기를 싹 거두었다. 이어 충격에 빠진 눈동자가 그녀를 망연히 바라보았다. 세라엘은 연한 눈썹을 일그러뜨리며 한 손으로 그의 뺨을 감쌌다.
“카에드 말고 또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누가….”
격분을 억누른 목소리가 말을 제대로 잊지 못했다. 세라엘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삼켰다.
“심지어 당신보다도 더 사랑하게 되었어요. 아이, 이걸 어쩌면 좋지?”
목각 인형처럼 어색한 말투가 더는 연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카에드는 반듯한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고 억센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저 어여쁜 입술은 오직 자신을 위해서만 사랑을 속삭여야만 했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제 감시 아래에 있었을 텐데 대체 언제 한눈을 팔았는지 알 수 없었다. 감히 어떤 정신 나간 후레자식이 비좁은 감시망을 뚫고 들어와 그녀의 마음을 틀어잡았단 말인가.
“…카에드?”
“제법 괜찮은 상판이었나 보죠.”
짓씹듯 음산하게 중얼거린 카에드가 안고 있던 그녀를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놈의 행방을 아는 즉시 찾아가서 두 번 다시 사내구실도 못 하게 두 동강을 내어놓을 것이다. 카에드는 당장 뛰쳐나갈 것처럼 너른 가슴을 들썩이고 거친 숨을 내쉬었다.
“어디 처박혀 있는 놈인지 당장 말해요.”
“네?”
“감히 어떤 겁대가리 없는 자식이 수작을 부렸는지 얼굴 좀 봐야겠으니까, 말해 봐요.”
“어, 아니… 잠깐만요.”
광기에 사로잡힌 눈을 보자 세라엘은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그의 손을 잡아, 자신의 배 위로 잡아끌었다.
“여기에….”
“…….”
“여기에 있어요.”
카에드는 한동안 그녀가 뜻하는 바를 알아듣지 못했다. 흔들리던 눈동자가 천천히 아래로 향했다.
그는 납작한 아랫배를 더듬더듬 어루만졌다. 큼지막한 손이 그녀의 복부 전체를 부드럽게 감쌌다. 제 손으로 다 가려질 만큼 이 작은 배 속에….
“우리 아이가 있는 건가요?”
그답지 않게 떨리는 음성이었다. 세라엘은 가벼운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 가지 검사를 했는데 태맥이 잡힌대요. 지금은 엄지손가락보다도 자그맣지만, 곧 있으면 발가락이랑 손가락도 생길 거래요.”
들뜬 표정으로 말한 그녀가 두꺼운 핏대가 선 그의 손등을 쓰다듬었다.
“저를 닮아서 과일을 좋아하나 봐요. 어젯밤에 포도가 먹고 싶었던 이유도 아기 때문이었어요.”
아기가…. 언감생심 욕심을 내 본 적도 없는 두 사람의 아이가 언제 그녀의 몸 안에 자리 잡았단 말인가.
무언가에 홀린 듯 세라엘의 아랫배를 매만지며 응시하던 카에드가 시선을 바짝 들어 올렸다.
“당신 건강에 문제없는 것도 확실한 겁니까?”
초점이 또렷하게 잡힌 그의 눈에 짙은 염려가 묻어 있었다. 세라엘은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그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확실해요.”
카에드는 그 말이 썩 믿음직스럽게 와닿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조금 전까지 멀쩡했던 그녀가 살랑바람에 날아갈 만큼 비쩍 말라 보였기 때문이다.
임신 소식에 사로잡혀 망연했던 카에드의 낯에 묘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세라엘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웠다.
“기쁘지 않아요?”
그녀는 지금이 아이를 가지기에 적기가 아니란 건 알고 있었다. 카에드가 마음 놓으라고는 했지만 황태자와의 갈등은 아직 해갈되지 않았고, 불안한 정세에 후계를 갖는 일은 시대를 막론하고 그리 현명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뜻하지 않은 순간에 찾아온 이 생명을 어찌 기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마른침을 삼키며 카에드를 올려다보는데, 그가 세라엘의 두 손을 깍지 끼워 잡았다. 빈틈없이 맞닿은 손에서 빠른 맥박이 엇갈렸다.
“세라엘을 닮은 아이를 보는 일은 내가 살아가면서 가질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큰 욕심입니다. 어떻게 기쁘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그럼 기뻐해 주면 안 돼요?”
세라엘은 조심스레 그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회임한 여성의 몸에 어떤 부담이 생기는지 아는 그로서는 마냥 달가워할 수 없었다.
계획에 없는 임신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하필이면 이 시기에…. 그러나 그녀 앞에서는 절대로 소리 내어 전할 수 없는 진심이다. 불안정한 임신 초기에 그 끔찍한 일까지 겪었다니, 필립을 향한 적개심이 이루 말할 수 없이 거대해지는 기분이었다.
만약 유산으로 그녀의 마음과 몸에 상처가 생겼다면 카에드는 완벽하게 신중하지 못했던 스스로를 평생 용서하지 못했을 것이다.
답이 늦어지자 세라엘이 불안한 기색을 보였다. 카에드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안아 다시 침대로 데려가서 앉혔다. 그러고는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세라엘은 어떤가요?”
“저는 당연히… 행복해요. 기대했던 건 아니지만 우리 아이잖아요.”
“당신이 행복하다면 나도 같은 마음이에요.”
말은 그리했어도 카에드의 얼굴에 드리운 음영은 가시지 않았다. 세라엘은 그가 무얼 걱정하는지 눈치채고 그의 결 좋은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아이를 기다리며 옷이나 모자를 만드는 것도 태교에 좋다던데, 그전에 그에게 걱정 인형을 만들어 줘야 하는 건 아닐까.
“저는 괜찮을 거예요. 불안해하지 않아도 돼요.”
카에드는 말없이 그녀의 마른 몸을 쓸어 만졌다. 도드라진 갈비뼈와 살집 하나 없는 배를 더듬던 손이 미약하게 떨렸다.
칼스비크로 데려오자마자 전채 요리부터 후식까지 끼니마다 다양한 음식을 먹여 가며 살찌워 놓았건만, 제 눈엔 너무나 여리고 가느다란 신체였다. 몸에 비해 그나마 통통하게 살이 올랐던 두 뺨조차 갑자기 아사하기 직전처럼 홀쭉해 보이는 것 같았다.
“이렇게나 약한 몸인데….”
카에드는 차마 말을 끝맺지 못했다. 출산이 다가왔을 때 비명을 내지를 세라엘을 떠올리자 참지 못하고 제 얼굴을 거칠게 쓸어 만졌다. 그와 달리 세라엘은 뚱한 표정이었다.
“저는 연약하지 않은데요.”
“나와 비교하면 한없이 약하지 않습니까.”
“카에드랑 비교하면 온 세상 사람이 연약해요.”
부루퉁하게 받아친 세라엘은 다시 그의 손을 제 복부 위로 가져갔다.
“우리를 절반씩 빼닮은 아이를 상상해 봐요. 머리카락이랑 동그란 눈동자가 금색으로 반짝이는 아이를요. 그래도 기쁘지 않아요?”
그녀가 짚어 주고 나서야 햇살처럼 빛나는 아이를 상상할 수 있었다. 다만 그의 상상 속 아이는 그가 아닌 세라엘을 쏙 빼닮은 상태였다. 오밀조밀 섬세한 이목구비에 바닷물처럼 푸른 눈과 눈부신 백금발을 지닌 어여쁜 아이였다.
아장아장 걷는 아이를 안아 든 자신과 옆에 선 세라엘을 그리자 눈물겹도록 감격스러웠다. 카에드는 그녀의 허벅지에 한쪽 뺨을 묻었다.
“당신 말이 맞네요. 내게 그보다 더 큰 행복이 있을지 모르겠군요.”
“그거 봐요. 초롱초롱한 금색 눈을 가진 아이면 정말 귀여울 거예요.”
“이왕이면 하나부터 열까지 세라엘을 닮은 아이가 좋겠습니다.”
카에드는 두 사람의 아이가 언제나 마음속에 반짝이는 것을 위한 공간을 남겨 두는 긍정적이고 상냥한 사람을 닮기를 원했다. 보복심과 적대감에 물든 집착적인 자신의 어디도 물려받지 않기를 바랐다.
그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라엘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 표정으로 그의 판판한 뺨을 쓰다듬었다.
“그럼 딸이었으면 좋겠어요? 아니면 아들을 원하나요?”
“세라엘은 어떤가요?”
“음…. 저는 역시 딸을 가지고 싶어요.”
“그렇다면 나도 딸이 좋습니다.”
“아이, 제 의견만 묻지 말고 곰곰이 생각해 봐요.”
“당신 의견이 곧 내 의견인데요, 뭘.”
카에드는 자신을 어루만지는 그녀의 손을 입가로 가져가 몇 번이고 입을 맞추었다. 장난스레 깨물고 손가락 사이의 연한 살을 핥아도 세라엘은 그를 밀어내지 않았다. 대신 흥분을 감추지 못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조만간 멜리 호수에 가요. 건강한 아기가 태어나게 해 달라고 빌면 호수가 소원을 들어줄지도 몰라요.”
“그래요. 그렇게 해요.”
카에드는 피실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신비로운 물결 앞에서 그는 세라엘이 탈 없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몇 번이고 염원할 것이다.
“그리고….”
부드러운 향기를 품은 몸에서 얼굴을 비비던 카에드가 나지막이 말했다.
“아이가 생겨도 내가 당신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평생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조금 전 그녀가 장난을 친답시고 했던 말이 적잖이 서운했던 모양이다. 세라엘은 제 배를 감싸며 미소 지었다.
“그렇게 말하면 아이가 섭섭할 거예요.”
“아직 귀가 형성되지 않았으니 못 들을 텐데요.”
“평범한 아기라면 그렇겠지만 카에드처럼 청력이 남다를 수도 있잖아요. 아이가 좋아할 만한 말을 해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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