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146)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146화(146/150)
글쎄, 아이가 좋아할 만한 말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그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라면 몰라도.
상처 하나 없이 하얀 손에 연신 입술을 묻던 카에드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 모든 것이 내게 과분한 행복이라 언젠가는 잘게 깨어질지도 모를 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요.”
그가 독백하듯 담담한 목소리로 말하자 세라엘은 그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고달픈 시간을 오래도록 감내해 왔을 그를 떠올리면 여지없이 가슴이 조여들었다.
“하지만 세라엘이 날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살아갈 의지를 얻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어요.”
“…….”
“당신은 가진 것 하나 없는 내게 염원을 심어 주고, 쓰레기 같은 내 인생에도 아름다운 것이 존재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어요.”
그녀의 눈높이 아래에 자리한 카에드가 둥근 눈망울을 내보였다.
“사랑합니다. 이 순간이 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주었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유순한 눈으로 사랑을 고백할 줄 아는 남자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사랑해요, 카에드.”
세라엘은 두 손으로 그의 얼굴을 감싸고 입을 맞추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가슴 벅찬 마음을, 몸속의 작은 존재 또한 가감 없이 느꼈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
어둡고 습한 대공성의 지하 감옥.
빛나는 것이라고는 벽에 걸린 횃불이 전부인 이곳에서 며칠 내내 쓰러져 있던 사내가 앓는 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자신이 의자에 밧줄로 묶인 채 앉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카에드가 칼스비크까지 데리고 온 자객단의 대장이었다.
“깼네.”
사위가 막힌 공간에서 나지막한 저음이 내는 울림은 묘하게 섬뜩했다. 팔에 소름이 우둘투둘 돋는 것을 느끼며 사내는 목소리가 울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장신의 남자 두 명이 사내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벽에 걸린 횃불보다도 선명하게 번득이는 기이한 금안을 지닌 남자였다.
“바이퍼, 각성제를 놓아 줘라.”
벽에 기대 서 있던 남자가 부하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부하가 성큼성큼 다가와 사내의 소매를 걷고 주사기를 찔러 넣었다. 묶여 있던 탓에 반항도 할 수 없었다.
“뭐… 뭐 하는 거야!”
“이곳에 내 손님이 온 건 처음이라 모자람 없이 대접해 주고 싶거든.”
평이한 어조로 중얼거린 남자가 느긋하게 걸어왔다. 그는 가택에서 자객의 목을 한 손으로 잡아 들어 올릴 정도로 괴력을 가진 남자였다.
자객은 이를 악물며 카에드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곁에 선 바이퍼가 자객의 옆구리를 냅다 걷어찼다. 그는 의자째로 허공을 날아 벽면에 쾅 부딪혔다.
“눈 똑바로 떠.”
조용히 일갈한 바이퍼가 쓰러진 자객을 일으켜 다시 앉혀 세웠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일어난 일이라 그는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다. 그러고는 한층 고분고분해진 눈으로 카에드를 올려다보았다.
자객은 황녀궁에서 금발의 여자를 붙잡았을 때, 소년 중 하나가 고문 운운하며 무시무시한 말을 늘어놓았던 사실을 상기했다. 코끼리도 쓰러뜨리는 마취 독을 맞고도 쓰러지지 않았던 그들의 두목이 바로 이 남자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지금 자신은 지하 감옥에 갇혀 사지를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다. 눈앞에 선 괴물 같은 남자를 보니 소년의 말에 한 치의 거짓도 없으리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카에드를 응시하는 자객의 눈에 짙은 두려움이 어렸다.
“나, 나는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야.”
말을 끝맺자마자 바이퍼가 그를 향해 재차 발길질을 했다. 다시 의자와 함께 날아간 자객이 돌바닥에 철퍼덕 쓰러졌다. 온몸의 뼈가 바스러지는 것처럼 격통이 밀려왔다.
“말이 짧네.”
바이퍼가 그를 일으키며 차분히 말했다. 반항할 의지를 완전히 잃은 사내는 눈을 내리깔고 부들부들 떨었다.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카에드는 무감한 눈으로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무언의 종용으로 받아들인 자객이 냅다 외쳤다.
“아시겠지만 모두 황태자의 명령이었습니다…!”
목숨이 걸린 마당에 그 재수 없는 흰머리와의 비밀을 지킬 의리 따위 없었다.
“그자가 황녀궁에 들어가서 금발 여자를 데려오라며 저희 모두를 고용했습니다.”
“내 여자를 타국으로 가는 상선에 태워 보낼 계획이었다던데.”
더없이 낮은 울림을 지닌 음성에 겁을 먹은 자객은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아는 대로 자백하는 것만큼 현명한 일은 없었다.
“그것까진 우리와 관련이 없어서 자세히 모릅니다. 하지만 황태자가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다는 건 압니다.”
그를 빤히 응시하던 카에드가 조용히 물었다.
“어떤 계획?”
“아마도 전쟁을 일으키려는 심산이었을 겁니다. 짐작뿐이지만 틀림없습니다.”
전쟁이라는 말에 카에드의 낯에 미미한 균열이 일었다. 자객은 그가 원하는 정보가 이것이었구나 싶어 서둘러 말을 이었다.
“애초에 금발 여자는 황태자의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그날 밤 황태자가 기사와 하는 대화를 들었지요. 여자를 멀리 떠나보내면 분명 그 지독한 놈이 쫓아갈 거라면서, 그 틈을 타 계획을 추진할 거라고 했…!”
자객은 아차 싶어 부자연스럽게 말을 끝맺었다. ‘그 지독한 놈’이 눈앞에 선 남자를 가리키고 있다는 걸 깨달아서였다. 또다시 발질이 날아들까 두려웠던 자객은 식은땀을 흘리며 그의 부하를 힐끔거렸다.
카에드는 여전히 표정 하나 내비치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감정의 동요를 보이듯 너른 가슴이 크게 들썩였다.
“난 가진 게 별로 없는 사람이거든.”
카에드가 단조로운 목소리로 혼잣말하듯 말했다. 곁에 서서 자객을 뚫어져라 주시하던 바이퍼가 그에게 힐긋 시선을 보냈다. 광활한 영지와 드높은 작위를 가진 남자가 할 소리는 아니었다.
“그중 내 목숨보다 아끼는 게 하나 있어. 세상에 존재하는 좋은 건 모조리 가져다 바치면서 애지중지 떠받들어도 모자라지. 남들이 보면 닳을까 봐 침실에 숨겨 놓고 내 눈에만 담고 싶을 정도로 소중해. 난 그 사람이 없으면 안 되거든.”
느릿느릿 상체를 기울인 카에드가 그의 어깨를 손으로 짚었다. 그를 마주한 카에드의 눈이 괴이한 이채를 띠고 있었다.
“그런데 네가 그 사람에게 상흔을 남겼더군.”
사내는 침을 꿀꺽 삼켰다. 마치 아가리를 벌린 거대 짐승의 앞에 선 기분이었다.
“그, 그러니까 명령 때문에….”
“필립이나 너나 감히 내 것에 손을 댄 버러지라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지.”
어깨를 틀어쥔 큼직한 손에 악력이 들어갔다. 사내는 눈을 부릅뜨고서 얼굴을 양옆으로 마구 흔들었다.
“제발 자비를….”
“눈이 마음에 안 드네.”
카에드가 툭 내뱉듯 중얼거렸다. 명령을 기다리던 바이퍼가 허리춤에서 단도를 꺼내 들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사내는 당혹감에 휩싸여 의자에 묶인 몸을 마구 흔들었다.
“잠깐! 설명할 수 있… 으아아!”
감옥 안에서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카에드는 제 얼굴에 튄 핏방울을 닦을 생각도 않고 담담한 낯으로 말을 이었다.
“주제 모르고 놀렸을 손가락도 거슬리는군.”
“흐아악!”
“내 여자를 겁박했을 더러운 혓바닥도, 울먹이는 목소리를 들었을 네 두 귀도, 너를 멀쩡히 서 있게 만드는 발목까지 전부 다 거슬려.”
단조로운 음성으로 하나하나 늘어놓을 때마다 바이퍼가 손을 놀렸다. 사내는 외마디소리를 내지르며 경련했으나 투여한 각성제 때문에 기절할 수도 없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잘 봐. 금화 몇 개에 눈이 멀어 저지른 네 실수가 무엇을 초래했는지.”
카에드는 셔츠 소매에 자리한 커프 링크를 끌렀다. 오래전 세라엘이 선물해 준 장식이었다. 작은 흠이라도 날세라 그것을 소중히 바지 주머니에 넣고 천천히 팔을 걷어 올렸다.
***
크리스털 샹들리에 아래 자리한 너른 집무실.
번쩍번쩍 광이 나는 책상에 발을 올려놓은 필립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내부를 훑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황제가 사용하는 장소였던 이곳은 이제 온전히 그의 것이었다.
“내친김에 대관식까지 치러 버리면 좋으련만.”
쯧, 혓소리를 낸 필립이 붉은 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었다.
그러나 필립이 왕관을 쓰기 위해서는 부황의 장례식과 복잡한 서류 작업, 의례적인 행사와 귀족 간의 회합 등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만 했다.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 일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나서 느긋하게 황위에 올라앉고 싶었다.
똑똑.
“들어오거라.”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황태자가 입실을 허락했다. 거대한 문이 열리고 은 갑옷을 입은 기사가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그게 아니지.”
허리를 굽혀 예를 표하던 기사는 필립의 신경질적인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는 무언가 깨달은 게 있는지 호칭을 정정했다.
“황제… 폐하를 뵙겠습니다.”
“하하! 듣기 좋군그래. 여기 앉거라.”
필립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책상 맞은편에 놓인 의자를 가리켰다. 기사단장은 약간 긴장한 얼굴로 의자에 앉았다.
“황제 폐하의… 그러니까, 선대 황제 폐하의 서거에 유감을 표합니다.”
“병환으로 오래도록 괴로워하시다 눈을 감으셨으니 이제 편히 쉬실 테지. 그나저나 내가 보낸 전언은 받았는가?”
기사가 머뭇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명령하신 대로 수도에 있는 모든 병역 의무자들을 징집하여 황실 상비군의 지휘 아래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좋아. 내달 내로 전투에 투입 가능할 수준으로 훈련 강도를 높여. 나는 밭이나 갈다 온 어중이떠중이 집단이 아니라 싸울 줄 아는 군사를 원해.”
필립은 의자에 기댔던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책상에 두 팔을 기대었다. 불쑥 붉은 눈을 마주한 기사가 마른침을 삼켰다.
“또 다른 명령이 있었을 텐데.”
필립의 말에 기사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아, 하고 짧게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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