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147)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147화(147/150)
“서기관 말씀이시지요. 말씀하신 대로 부재중이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소문을 해 보니 무단결근이 아니라 휴가계를 냈다고 하더군요.”
“요직에 있는 자가 갑작스러운 휴가라….”
필립은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부황을 살해하고 그 길로 서기관을 찾았더니만, 그의 집무실은 물론 궁내 침실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서기관의 실록 또한 마찬가지였다.
“누가 그러던가?”
“본궁의 시종장입니다.”
“시종장이란 말이지….”
이맛살을 구긴 필립이 중얼거렸다. 시종장이라면 로잘린과 가까이 지내는 이들 중 하나인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로잘린과 달리 아랫것에게 큰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그로서는 선뜻 감이 잡히는 바가 없었다. 일단 중요한 사실은 당장 태워 없애야 할 제국의 실록이 황궁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휴가를 갔다는 작자가 몸뚱이만 챙겨 가면 될 것을, 어찌 실록을 가져갔단 말인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서기관과 폐하만이 확인할 수 있는 극비 정보가 적혀 있으니 언제나 지니고 다니는 게 아닐는지요.”
“자네에게 물은 게 아닐세.”
“…결례했습니다.”
필립은 매끈한 턱을 문지르며 눈매를 좁혔다.
‘서기관이 목숨의 위협을 느끼고 실록을 챙겨 도주했을 리는 없겠지.’
황제가 서거하던 날, 그의 침소에서 오간 대화와 필립이 행한 행위를 보고 들은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랬다면 필립은 지금 황제의 집무실이 아닌 감옥에 틀어박혀 형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내 누이는 어떠한가? 황녀궁에서 생긴 불상사로 인해 부상을 입었다고 들었는데.”
“황녀 전하의 기사를 만나 물었더니, 부상이 심상치 않아 당분간 요양을 하실 예정이라 들었습니다. 외출도 자제하고 계신다고요.”
“예상했던 그대로군.”
필립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용케 목숨은 구한 모양이지만 애초 로잘린은 필립의 앞길을 가로막을 수 있는 장애물이 아니었다.
공석인 황위를 두고 정세가 불안정한 것도 사실이지만 누구도 필립이 황제의 집무실을 차지한 것에 대해 말을 얹지 않았다.
모든 것이 그의 계획대로 풀리고 있었다. 머지않아 필립은 몸소 군대를 끌고 칼스비크를 쳐서 카에드가 차지한 모든 것을 빼앗을 심산이었다.
필립의 선조가 카에드의 선조에게 했던 짓을 그대로 반복하여, 마지막에 명예를 영위할 자가 누구인지 온 제국에 똑똑히 보여 줄 것이다.
***
harbaragi_syk
카에드에게 회임 사실을 전한 뒤로 성내의 모든 사용인에게도 소식이 전해졌다.
앞으로 세라엘이 먹고 입고 보고 들을 사소한 것 하나까지 세심하게 살피라는 명령과 함께였다. 덕분에 그녀는 무얼 하든 과하다 싶을 정도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다.
하녀들은 직접 수를 놓은 이불과 아기 옷을 선물했고, 발켄족 소년들은 솜씨 좋게 손수 나무를 깎아 만든 흔들 목마와 오르골 상자를 안겨 주었다. 보좌관 티론이나 사서 알버트도 하녀를 통해 선물을 보내왔다.
쌓여가는 선물을 보며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힌델에서 있었던 끔찍한 사건은 마치 거짓말처럼 기억 속에서 흐려지고 있었다. 다만 황궁에 남아 있을 로잘린과 그 모든 음모를 꾸민 황태자가 버젓이 활동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뇌리 한구석에서 불안감을 지워낼 수 없었다.
참지 못하고 카에드에게 몇 번 물은 바에 의하면 로잘린은 무사할 거라는 한결같은 답이 돌아왔다. 안정을 위해 그 일을 복기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덧붙이는 당부에 더 캐물을 수도 없었다. 그답지 않게 짓는 간절한 표정이 마음을 약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모자람 없는 시간을 보내면서도 머릿속에선 초조함을 완전히 지울 순 없었고, 배 속의 태아는 점점 자라나고 있었다.
“아무래도 가마를 대령하는 편이 좋겠어요.”
본성의 1층 조찬실에서 다과를 즐기고 계단을 올라가던 길에 루시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보니 침실로 가는 계단이 너무 많아 보여요. 거동이 불편하지는 않으신가요?”
세라엘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너까지 그러지 마.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카에드 님께서 같은 말을 하셨거든.”
“대공 전하께서도 그리 말씀하셨어요?”
“응. 앞으로 성안에서 이동할 때는 가마를 타는 게 어떻냐고 하시더라고….”
세라엘이 이마를 짚자 루시가 까르르 웃었다.
원래도 그녀의 안녕에 강박적으로 집착했던 카에드는 그녀가 홑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세상 모든 고난과 근심에서 그녀를 떼어 놓으려 작정한 사람 같았다.
막 2층으로 올라온 세라엘은 복도 모퉁이에서 걸어 나오던 렉터와 콜을 발견했다. 그 앞에는 호크가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두런두런 울리는 목소리가 자연스레 귀에 들어왔다.
“전서구는 다 보냈냐?”
“네. 열 마리를 몽땅 날려 보내는 일도 이번이 처음이네요.”
“국경 너머에 산산이 흩어진 전력을 모으려면 어쩔 수 없겠지.”
아는 척을 하려던 순간 호크의 걸걸한 목소리가 발목을 붙들었다.
‘전력을 모아…?’
세라엘은 자신도 모르게 벽 뒤에 몸을 숨기고 루시를 잡아끌었다. 루시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도 잠자코 숨을 죽였다.
“블카노프에 충성을 맹세한 신하 가문들의 군대까지 동원했다면 더 좋았을 거 같아요.”
“감히 두목의 결정에 의문을 가지지 마라, 꼬맹아. 제국 내에서 병력이 움직이면 황태자 놈이 눈치를 채고 북진을 앞당길 수 있다고 하잖냐.”
“불안해서 그래요. 두목이 어떻게 얻어 낸 평화인데….”
북진하는 황태자와 카에드의 군대.
그게 무엇으로 귀결되는지 모를 리 없는 세라엘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들은 세라엘이 있는 곳을 향해 다가왔다.
“국경에 있는 형제들도 제때 도착할 테니 걱정하지 마라. 두목 일행이 수도에 가 있는 동안 나와 바이퍼, 시프가 국경으로 넘어가서 형제들과 같이 위험한 이종족을 깔끔하게 정리했거든. 분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놈들을 일찌감치 알았던 두목의 선견 덕분이었지만.”
“다행히 이제 그쪽에서 크게 걱정할 일은 없겠네요.”
“그래. 남은 일은 혹시 모를 전쟁에 대비하는 것뿐이다.”
자신이 지나친 비약을 한 건 아닐까 싶었던 자그마한 희망마저 호크의 마지막 말에 의해 모습을 감추었다.
가까워지는 발소리를 듣던 세라엘이 자연스럽게 루시의 손을 끌고 침실로 걸어갔다. 돌벽에 가려져 있던 그녀가 존재를 드러내자 대화가 칼에 잘린 것처럼 뚝 끊겼다.
“세라엘 님? 루시?”
“누님?”
당황한 소년들이 눈을 크게 뜨고 세라엘을 응시했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척 뒤를 돌았다.
“안녕. 여기서 뭐 해?”
“저희는 그냥, 숨 쉬면서 걷고 있었는데요?”
콜이 버벅거리며 거짓말했다. 동시에 렉터와 호크의 매서운 째림을 받았다.
“그랬구나. 나도 걷고 있었어.”
세라엘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호크에게도 눈인사를 해 보였다. 호크는 제 목덜미를 문지르며 떨떠름한 음성으로 물었다.
“어딜 가고 계셨습니까?”
“침실로 돌아가고 있었어요. 슬슬 검진 시간이 되었거든요.”
세라엘은 자신이 걷던 방향에 있는 부부 침실을 가리켰다. 그러자 콜이 깜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한 발짝 다가왔다.
“왜 검진을 하죠? 어디 아프신 건가요?”
얼굴이 약간 붉어져 있던 렉터가 인상을 쓰고 콜을 째려보았다.
“바보야. 원래 몸 안에 아가가 있으면 정기적으로 의사를 봐야 하는 거야.”
“난 또 어디 크게 아프신 줄 알고…. 우리는 죽을병에 걸렸을 때만 의사를 찾아가거든요.”
콜이 한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자 호크는 팔짱을 끼고 턱을 한번 끄덕였다.
“우리는 다리가 부러져도 기합으로 이겨 내야지.”
“그래야죠.”
두 사람 모두 장난기는 한 터럭도 없는 표정이라 농담인지 진심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때 렉터가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며칠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정말 축하드려요.”
“고마워. 선물도 잘 받았어. 밤마다 오르골을 듣는데 마음이 정말 편안해져.”
“좋아하시니 다행이에요. 악셀 형이 목검도 만들어서 선물 상자에 넣어 두었는데 두목이 압수한 거 아세요?”
“정말?”
세라엘이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콜이 흐뭇한 표정으로 냉큼 끼어들었다.
“2세가 누굴 더 닮았을지 우리끼리 내기를 했으니까 꼭 누님을 닮은 녀석으로 낳아 주세요!”
아무래도 그는 세라엘을 닮은 쪽에다 동전을 건 모양이었다. 세라엘은 가벼운 미소를 짓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필요한 게 있으시다면 언제든 말해 주시고요. 가마가 필요하거나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언제든지요.”
“그래, 참 사려 깊구나.”
미소 지으며 대답하자, 보고만 있던 호크가 까딱 고개를 숙였다.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몸조리 잘하시고요.”
그러고는 저벅저벅 앞장서 걸어갔다. 다소 매정하게 느껴지는 뒷모습을 응시하던 콜이 손으로 입을 가리고 우렁차게 속삭였다.
“호크 형이 말은 저렇게 해도 누님한테 줄 선물을 준비했더라고요. 용기가 부족해서 아직 건네지 못한 것뿐이에요.”
“용기가 부족하다니 말조심해라!”
호크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짜증스레 외쳤다. 세라엘은 속눈썹을 내리깔고 조용히 웃었다.
콜은 천진한 얼굴로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또 봐요, 누님. 날씨가 풀리면 다 같이 들판으로 말 타러 가요. 태교에 좋을지도 몰라요.”
“이 바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렉터가 낮춘 목소리로 짜증을 내며 콜을 타박했다. 그들은 티격태격 말싸움을 하면서 호크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나중에 봐.”
세라엘은 손바닥을 내보이며 인사해 주었다. 뒷걸음치며 루시에게도 양손을 휘젓던 렉터는 빨리 오라는 호크의 일갈에 후다닥 걸음을 재촉했다. 조금 전까지 군대니 전쟁이니 하던 대화와 동떨어진 밝은 모습이었다.
그들이 완전히 사라진 모습을 보고 나서야 세라엘은 침실로 향하던 발걸음을 홱 돌렸다. 연신 침만 삼키던 루시가 후다닥 뒤따랐다. 복도 모퉁이를 돌자 역시나 전서구실이 나왔다.
“여기서 기다려. 잠깐 확인해 볼 게 있어.”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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