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148)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148화(148/150)
다행히 근처에서 대기하는 하인은 보이지 않았다. 세라엘은 끼익 문을 열고 전서구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 넓지 않은 내부에는 여러 개의 새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비둘기는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대공성에서 기르는 모든 새를 보냈다더니 사실인 듯했다.
“이게 대체….”
그 비열한 독사가 그녀를 납치하려고 했던 것도 모자라 이리도 큰일을 꾸미고 있었다니. 카에드가 놈의 계획을 일찌감치 알아차리고서 군대를 소집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불안해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이번 생에서만큼은 그가 끔찍한 전쟁을 겪지 않기를 바랐는데. 게다가 하필 지금 같은 시기에….
초조함에 떨리는 손이 배를 감쌌다. 어찌할 바를 몰라 서성거리는데, 바깥으로 난 창문을 통해 하얀 새 한 마리가 푸드덕 날아들었다. 누가 보냈는지 모를 비둘기는 발목에 돌돌 말린 작은 종이를 두르고 있었다.
비둘기가 부리로 벨을 쳐서 사람을 호출하려 하자 세라엘은 얼른 그것을 저지했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새가 가져온 쪽지를 펼쳤다.
세라엘에게 긴히 할 이야기가 있어요. 아주 중요한 일이에요.
편지를 받은 날을 기점으로 닷새가 되면 칼스비크에 도착할 예정이에요. 가서 모두 설명할게요.
그리고 저와 황궁으로 떠날 채비를 미리 해 두었으면 좋겠어요. 부탁해요.
– 로잘린
어디서 급히 찢어 낸 모양의 종이 위에 활자가 휘갈겨 쓰여 있었다. 먼젓번 로잘린에게서 받은 편지와 달리 엉망으로 쓰인 글씨체였다.
짤막한 쪽지였는데도 세라엘은 한동안 글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황궁으로 떠날 채비를 미리 해 두라고…?’
황당한 심경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 일을 겪고도 다시 힌델로 오라는 제안에 꺼림칙한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었다.
미간을 찌푸린 채 편지를 내려보던 세라엘이 턱을 도리도리 내저었다.
‘아냐. 로잘린이 괜히 이런 말을 한 것 같지는 않아.’
편지대로라면 황녀가 몸소 이쪽으로 올라오고 있는 모양이다. 어쩌면 일어날지도 모를 전쟁이나 힌델에서 벌어졌던 끔찍한 일과 관련이 있는지도 몰랐다.
언젠가는 직시해야 할 사건이었다. 배 속에서 부피를 키우고 있을 생명을 생각하면 몸을 사리고 안정을 취하는 게 맞지만, 그녀의 보금자리와 사랑하는 사람이 위태로울 수 있는 마당에 혼자만 눈과 귀를 꼭 막고 아무것도 모른 채로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다만 황녀와 함께 있다가 생긴 변고로 미루어 보건대 황궁으로 가는 일을 카에드가 선뜻 허락해 줄는지 의문이었다. 가뜩이나 세라엘을 과보호해 온 그는 그녀가 본성을 나와 앞뜰에서 산책만 해도 안절부절못했다.
‘그렇지만 전쟁이라니….’
필립이 저지른 사태를 두고 아무 일도 없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으나, 전쟁은 예상했던 게 아니었다.
쪽지를 전달한 비둘기는 다시 하늘로 푸드덕 날아가 버렸다. 그것을 지켜보던 세라엘은 주섬주섬 쪽지를 챙겨서 전서구실 밖으로 나갔다. 루시가 창백한 얼굴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 말이 맞았어. 전서구실에 비둘기가 단 한 마리도 없어.”
“걱정할 만한 일은 아닐 거예요.”
루시가 애써 의연한 낯을 가장하며 그녀의 손을 꼭 감쌌다. 원래 성격대로라면 발을 동동 굴리며 수선을 떨었겠지만, 홑몸이 아닌 세라엘 앞에서 어떻게든 감내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대공 전하께서는 만에 하나 있을 갈등에 대비하시는 것뿐일 거예요.”
“나도 같은 생각이지만….”
“제국에서 발발한 마지막 전쟁은 200년도 더 전에 일어난 일이었어요. 내전은 훨씬 오래되었고요. 전쟁은 그리 쉽게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그러나 북진이라는 걸 보면 전쟁을 일으키려는 쪽은 카에드가 아닌 황태자인데 막을 길이 있을까? 돌연 어떠한 생각이 스친 세라엘이 미간을 좁혔다.
“황제가 버젓이 살아 있는데 황태자가 어떻게 독단적인 결정을 내리는 거지?”
혹시 병상에 있다던 황제가 별세한 건 아닐까? 의아한 점은 황제의 부고 소식이나 장례식, 필립이 대관식을 치를 거라는 소식은 전혀 듣지 못했다.
필립은 그 모든 번거로운 절차를 뒤로 한 채 칼스비크를 공격할 계획을 세울 정도로 조급한 걸까?
“일단 침실로 돌아가요. 다튼 부인이 벌써 도착했겠어요.”
“…….”
“마음을 편히 가져야 할 시기잖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루시의 격려에 침울한 얼굴로 걸음을 옮기던 세라엘은 멀리 복도 끝에 자리한 마호가니 문짝을 응시했다. 거대한 아치형 창문으로 투영되는 햇빛을 내리받은 문은 카에드가 있을 집무실로 통하는 입구였다.
그러잖아도 필립을 없애고 싶어 했던 그는 그쪽에서 진격해 온다면 절대 물러서지 않을 터였다.
“아가씨, 어서요.”
루시가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세라엘은 집무실에서 눈길을 떼고 침실을 향해 걸어갔다.
***
땅거미가 내려앉은 그날 밤, 층층이 쌓인 결재 보고서에 서명을 하던 카에드는 문득 시선을 들어 굳게 닫힌 문을 응시했다.
청력을 기민하게 세우자 멀찍이 복도에서부터 작은 발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무게가 무겁지 않고 사뿐사뿐 걷는 소리였다. 그는 발걸음의 주인이 세라엘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챘다.
서류를 밀어 놓고 의자에서 일어난 그가 성큼성큼 걸어 문을 열었다.
복도에 서 있던 세라엘은 막 노크를 하려던 손을 공중에 띄운 채로 눈을 둥그렇게 떴다. 마른침을 한번 삼킨 그녀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바빠요?”
“전혀요. 들어와요.”
카에드는 문을 더 열어 그녀가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그의 업무를 방해하기 싫어서 좀처럼 집무실을 찾아오는 법이 없는 그녀가 사소한 일로 왔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분주한 와중에 본 얼굴이 반갑기는 매한가지였다.
카에드는 이리저리 서성이는 그녀를 접객용 소파에 앉힌 뒤 품에 푹신한 쿠션을 안겨 주었다. 그러고는 벽난로에 장작을 더 던져넣고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방해할 생각은 없었는데….”
그가 두어 번 짧은 입맞춤을 내리자 말을 잇던 그녀의 목소리가 끊겼다. 그러잖아도 스킨십이 잦았던 카에드는 최근 들어 그녀가 지척에 있으면 가만 내버려 두지를 못했다.
“안 그래도 잠깐 세라엘을 살펴보러 갈 생각이었어요.”
“그랬어요?”
“바람 안 피우고 잘 있나 보려고.”
장난스레 중얼거린 카에드가 그녀의 귓불을 아프지 않게 깨물었다.
세라엘은 슬쩍 그의 표정을 살폈다. 전쟁의 여지를 두고 군대를 소집했다는 사람이 세상 태평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세라엘이 먼저 묻지 않는 이상, 카에드는 그녀에게 불안감을 심을 수 있는 주제는 절대로 꺼내지 않을 것이다.
“몸은 좀 어때요. 이전보다 입덧이 더 심해졌다고 들었는데 견딜 만해요?”
큼직한 손이 그녀의 아랫배를 느리게 문질렀다. 벌써 다튼 부인에게서 진료에 대한 보고를 전해 들은 모양이었다.
“괜찮아요. 조금 메스껍고 소화가 느린 정도라서요.”
“불편한 데는 없어요?”
세라엘은 고개를 내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여기도 약간 부풀었는데.”
걱정스레 말하는 목소리와 달리 어딘가를 만지작대는 손은 다소 음험한 속내를 품은 것도 같았다. 세라엘은 서둘러 그의 손을 떼어 냈다. 그러자 카에드는 상체를 숙여 아직 나오지도 않은 배에 입술을 묻었다.
“아프지는 않아요?”
“네에…. 아직은요.”
“가능하다면 당신이 겪을 모든 고통을 내가 받고 싶은 심정이에요.”
옷감을 사이에 두었는데도 연속적으로 입술이 붙는 느낌이 간지러웠다. 그의 새까만 머리통을 내려다보는 세라엘은 제 얼굴에 미약한 열기가 번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카에드.”
다시 고개를 들어 올린 그가 그녀와 시선을 맞대었다. 세라엘은 챙겨 두었던 로잘린의 쪽지를 꺼내 들었다.
“실은 보여 주고 싶은 게 있어서요.”
그녀는 꼬깃꼬깃해진 종이를 건넸다.
“오늘 로잘린한테서 전서구가 도착했어요.”
시선을 내린 카에드는 구겨진 종이를 펼쳐서 읽었다. 짤막한 활자를 읽는 얼굴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세라엘은 불안한 눈으로 그의 눈치를 살폈다.
“로잘린이 몸소 북부로 올라오고 있어요. 무척 중요한 일인가 봐요. 황태자가 벌인 일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도 몰라요.”
“황궁으로 떠날 채비?”
서찰을 내려다보는 카에드는 그녀의 말이 귀에 들리지 않는 듯 조용히 뇌까렸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성큼 일어나 벽난로를 향해 다가갔다. 찰나에 스친 표정이 서늘하게 굳어 있었다.
카에드는 타오르는 불꽃으로 종이를 툭 던져 넣었다. 세라엘은 꺼멓게 타들어 가는 그것을 황망히 응시하다 다시 그를 올려다보았다. 뒤틀린 심기를 감추지 못한 얼굴이 소리 없는 욕설을 뱉는 것도 같았다.
“분명 섣부른 행동은 자제하고 일신을 보전하라 했을 텐데 충고를 무시한 것도 모자라 또다시 당신을 끌어들이려 하다니, 황녀가 단단히 정신이 나갔군요.”
“이유가 있을 거예요.”
“내가 검을 빼 들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여야 할 겁니다. 무엇이든 간에 나는 당신을 힌델 근처에도 가게 할 생각은 없어요.”
사실 카에드는 그녀를 침실 밖으로 한 발짝도 내보내기 싫었다. 그러나 안정을 취해야 할 산모에게 자유를 구속하는 듯한 말투를 사용하고 싶지도 않았다.
소파에서 일어난 세라엘이 카에드에게 다가왔다. 온기를 지닌 작은 두 손이 그의 손을 꼭 붙잡았다.
“당신 마음은 잘 알아요. 일단 로잘린이 칼스비크에 오면 저도 대화를 나누어 보고 싶어요. 저는….”
세라엘은 카에드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
“너무 늦기 전에 황태자가 벌인 일을 공론화하고 싶어요. 그 인간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온 제국에 공공연히 알리고 재판에 세우면, 사형은 어렵더라도 계승권을 박탈당할지도 몰라요. 그리고 로잘린이 황위를 이을 수 있도록 지지해 주는 거예요.”
말없이 세라엘을 지켜보던 카에드는 책상에 놓인 두꺼운 서류 뭉텅이를 한 손에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마치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처럼 다른 손으로 그녀를 잡아끌었다.
“침실로 가요. 오늘 밤은 당신 곁에서 업무를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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