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19)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19화(19/150)
둥근 달이 완연히 모습을 드러낸 한밤중.
1구역 전략실의 상석에 앉은 카에드는 붉은 술로 목을 축였다.
갈증이 쉬이 잡히질 않았다. 발켄의 본능을 일깨우는 만월 때문에 심박 또한 평소보다 거칠었다.
그의 측근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쓰레기 같은 것들!”
다소 격앙된 어조로 시프가 서신을 구기며 으르렁댔다.
“두목. 눈의 숲에 사는 오닉스 종족의 동태가 심상치 않아요. 정찰병에 따르면 서른 명 정도가 본진을 떠나 국경으로 향하고 있답니다.”
“오닉스라 하면 머릿수만 많은 조무래기 집단 아닌가?”
콜이 의아한 듯 묻자, 렉터는 턱을 내저었다.
“최근 우두머리가 바뀌면서 여자나 어린아이에게 손댄다는 소문이 있어요. 원래는 날도적질만 하던 자식들이었잖아요.”
“제기랄! 우리가 거처를 옮긴 후로 별 거지 같은 것들이 날뛰는군.”
“역시 국경을 넘어 블카노프 영지로 내려올 우려가 있어요. 두목, 어떻게 할까요?”
“찾아서 죽여.”
눈을 내리깐 채 술잔을 매만지던 카에드가 무감히 명령했다.
“우두머리는 눈을 파내서 모두가 볼 수 있게 숲 입구에 매달아라. 간부급은 팔다리를 잘라 늑대 밥으로 주고.”
참혹한 명을 내린 목소리는 권태롭기 그지없었다.
“필요한 병력을 대동해서 두 번 다시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밟아. 여차하면 씨도 못 뿌리게 몰살시켜라.”
“물론입니다, 두목.”
밤이 더욱 깊어지자 부하들은 하나둘 전략실을 빠져나갔다.
촛대 위 불빛만 일렁이는 공간에 홀로 앉은 카에드는 눈썹을 덮은 머리칼을 느리게 쓸어올렸다.
공작위와 재산을 얻고도 제 욕심대로 그녀를 이곳에 데려오기 위해 셀 수 없이 많은 야인을 죽였다.
위험 요소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황제로부터 더욱 높은 작위를 받아 북방의 자치권까지 소유하게 되었다만.
가장 신뢰할 수 없는 존재가 황실이란 걸 카에드는 알고 있었다.
‘위협은 끝이 없다. 얼마나 더 손에 피를 묻혀야 하는지 모르겠군.’
목숨 걸고 지켜야 할 상대가 생긴 이상 묵묵히 감내해야 할 부분이었다.
어둠 속에서 가느다랗게 좁혀진 그의 검은 동공이 기민하게 창밖 맞은편을 향했다.
세라엘이 있는 4구역의 첨탑.
칼스비크의 추위에 적응하지 못할 그녀를 위해 그나마 햇빛이 잘 들어 가장 따뜻한 곳을 거처로 정했다.
사실 속뜻은 따로 있었다. 카에드는 도저히 통제하기 힘든 자신의 갈급한 욕정으로부터 세라엘을 지켜야만 했다.
보름달이 떴던 첫 정찬 때만 해도 나름대로 다스릴 수 있었던 음욕은 그녀와 시간을 보낼수록 미친개처럼 날뛰었다.
이제는 달빛 하나 비치지 않은 밤에도 엄청난 인내심이 필요했다.
영지로 돌아오는 마차 안에서는 평생 쓸 인내를 다 쓴 것 같았다. 당분간 그녀와 떨어져 지내면서 바닥을 친 참을성을 끌어올리고, 자신을 제어할 방법도 강구할 필요가 있었다.
설산 어딘가에 흥분을 가라앉히는 약초가 자란다고 하였으니 하루빨리 물색하여 복용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마음 같아선….’
카에드는 상상으로도 머금어선 안 될 저속한 갈망을 술과 함께 삼켜냈다.
오늘 밤 제 존재를 뚜렷이 나타내며 몰아치는 새빨간 감정은 내리쏟아지는 달빛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그리 탓하고 싶었다.
***
해바라기.공금
세라엘은 적응이 빠른 편이었다. 덕분에 칼스비크에서 지낸 시간이 길지는 않았어도 주변 환경에 금세 적응해 가고 있었다.
도저히 못 견딜 것 같던 추위도 제법 익숙해졌고, 침실만 스무 개가 넘는다는 4구역 내부도 이젠 헤매지 않게 되었다.
베일리 부인과 몇 안 되지만 친절한 하녀들이 살뜰히 보살펴 준 덕이었다. 그래서인지 세라엘의 호기심은 차츰 특정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대공님은 지금 뭘 하시려나?”
침실에서 홍차를 마시던 그녀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첫날 이후 코빼기도 안 보이는 남자가 뭘 하고 있을지 궁금해 죽을 지경이었다.
‘딱히 보고 싶다거나, 걱정되어서 그런 건 아니야.’
사랑 없이 급히 맺은 연이라지만 명색이 예비부부인데, 이리도 먼 거리에서 떨어져 지내야 한다니.
‘설마 평생 이렇게 지내야 하는 건 아니겠지.’
하다못해 같이 식사라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식욕이 없는 남자라 그런 것도 불가능하려나.’
세라엘은 멍하니 창밖을 응시했다.
“아가씨, 목욕물을 받아 놓았어요.”
때마침 베일리 부인이 앞치마에 젖은 손을 문대며 들어왔다.
“주문했던 향유도 오늘 도착했거든요. 향기가 달콤해서 목욕 후에 바르시면 기분이 좋아지실 거예요.”
“신경 써 주어서 고마워요, 부인.”
“천만에요. 몇 년 전부터 대공성에선 지체 높은 여성분을 모시는 일이 없어서 여인들의 소모품을 쓰는 일도 없었거든요.”
베일리 부인이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귀부인을 위해 예산을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자, 이쪽으로 드시지요.”
“아직 식도 올리지 않았는데 귀부인이라니 부끄럽네요.”
그러고 보니 결혼식은 언제 올릴까?
신랑 될 남자랑 뭐라도 이야기를 나눠 봐야 알 텐데 말이다.
욕실로 걸음을 옮기던 세라엘이 문득 멈춰 섰다.
“저기, 베일리 부인.”
“말씀하세요, 아가씨.”
“혹시 대공성 근처에 마을이 있나요? 번화하지 않아도 좋으니 상가가 있는 마을이요.”
쇼핑을 염두에 두고 물은 건 아니었다.
세라엘은 쇼핑을 그다지 즐기는 편은 아니었으나 번화가나 축제를 둘러보는 일만큼은 아주 좋아했다.
게다가 성에 온 이후부터 묘하게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들던 참이었다.
사용인의 깍듯한 대접을 받으며 잘 먹고 잘 지내는 중이었으니 감금이라 표현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래도 가까운 어딘가로 가서 바깥공기라도 좀 맡고 싶어.’
후작저에서도 상황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땐 몰래 외출이라도 할 수 있었다.
베일리 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마차를 1시간 정도 타고 나가면 근방에 큰 도시가 있어요. 가끔 겨울 축제도 열리는 곳이고요.”
“어머, 겨울 축제라니 듣기만 해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삭막한 칼스비크에도 그런 축제는 있답니다. 규모가 꽤 커서 관광객도 있는 편이에요. 지금은 축제 기간은 아니지만요.”
베일리 부인의 말에 세라엘은 반색하며 두 손을 맞잡았다.
“딱 좋네요. 혹시 목욕 후에 마차를 준비해 주실 수 있을까요?”
“예?”
“제가 외출을 하고 싶어서요.”
“아….”
부인의 미소가 말꼬리와 함께 흐려졌다.
줄곧 자애로운 웃음만 보여 주던 얼굴이 난처하다는 듯 굳어 답을 망설이고 있었다.
세라엘은 턱을 갸웃 기울며 되물었다.
“안 될까요? 탑 안에만 있으니 지루하기도 하고, 명색이 예비 대공비인데 영지 시찰도 할 겸 가까운 마을을 둘러보는 일도 좋을 것 같아서요.”
“으음. 글쎄요, 아가씨….”
난감한 표정을 짓던 베일리 부인이 뜸을 들였다.
“출타하실 땐 반드시 영주님의 허락을 받으셔야 해서요.”
“흠. 그럼 2구역에 있다는 대정원에 가 보고 싶은데 그건 괜찮나요?”
“죄송하오나, 그것 또한 영주님께 여쭤보아야 해요.”
“그럼 허락받으러 대공님이 있는 1구역으로 가는 건요?”
“정말 죄송합니다. 당분간 첨탑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영주님의 명령이 있어서요.”
그냥 갇혀 있으라는 뜻이었다.
세라엘은 카에드가 있을 본성을 향해 원망의 눈길을 던졌다.
“역시. 성 밖으로 나가는 것뿐만 아니라, 성안에서의 이동도 금지되어 있나 보네요.”
그녀는 한숨을 쉬며 팔짱을 꼈다.
국경과 가까운 블카노프 영지의 동향쯤은 알고 있다.
까마득한 과거부터 야인의 습격도 잦았고 안심할 수 없는 곳이었으니까.
과보호 받는 듯한 느낌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날 이렇게 가둬놓고 혼자 내버려 두는 이유가 궁금해.’
도망치듯 친정에서 나왔으니 카에드에게 많은 걸 바라진 않는다.
그래도 세라엘을 모셔가기 위해 최고급 마차까지 준비하며 오래전부터 계획한 것처럼 행동해 놓고서, 막상 북부에 왔더니 기다렸다는 듯 모습을 감추고 세라엘만 탑에 감금해 놓는 건 너무하지 않냐 이 말이다.
똑똑.
베일리 부인이 뭐라 말하려던 차에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누구지?”
“본성 중앙에서 서신이 왔습니다.”
하녀의 목소리가 소식을 전했다.
“들어오거라.”
베일리 부인이 답하자, 금테가 둘린 트레이를 든 하녀가 침실로 들어왔다.
트레이 위에는 붉은 왁스 실링으로 봉해진 빳빳한 흰 봉투가 놓여 있었다.
“영주님께서 밀로즈 영애께 송부하신 초대장입니다.”
“대공님이 내게 초대장을?”
아무리 거리가 좀 있다지만, 같은 성내에 있는 사람에게 예를 갖춘 서신이나 보내고 있다니 조금 어이가 없었다.
세라엘은 실링을 뜯고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자로 잰 듯 칼 같은 간격으로 나열된 글씨체는 카에드의 것임이 분명했다. 다소 딱딱하면서 오탈자 하나 없는 그것은 짧디짧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내일 1구역 연회장에서 만찬이 있을 예정이니 참석하십시오.
“…….”
뭐지.
이 정 없는 초대장은.
허무하게 편지만 내려다보고 있자 베일리 부인이 조심스레 입을 뗐다.
“아마 아가씨의 환영회를 여실 계획인가 봐요. 영주님께서 만찬 파티를 여시는 일은 드문데 잘되었어요.”
“초대장이라기보다 통보장 같기도 하고….”
“예?”
“아, 아니에요, 부인.”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 세라엘이 도리질을 쳤다.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는 버릇 좀 어떻게 해야겠어.’
갇혀만 있던 일상에서 벗어날 일이 생긴 것 같다. 다른 발켄족 남자들도 참석할 테니 얼굴도장을 다시 찍고 인사도 나눌 수 있을 기회였다.
무엇보다….
‘카에드를 만날 수 있겠네.’
첨탑에 가둬져 있는 동안 차곡히 쌓였던 언짢음이 조금씩 녹아내리…기는커녕 알 수 없는 투지가 가슴속에서 불타올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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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오후.
세라엘을 태운 마차는 광활한 뜰을 가로질러 1구역으로 향했다.
당장 마련된 겨울용 드레스가 없어 일단 친정에서 가져온 실크 드레스를 입었는데, 옷감이 얇아서 그런지 몹시 쌀쌀했다.
지금 입은 연녹색의 드레스는 하늘하늘하면서도 가슴 언저리와 팔 전체를 가감 없이 드러낸 디자인이었다.
백금발에 뽀얀 피부를 지닌 세라엘과 잘 어울렸지만, 추위 때문에 흰 털이 보송한 케이프를 입어 절반을 가려야만 했다.
마차는 하늘 끝까지 치솟은 시커먼 본성 앞에 섰다.
곧 내부로 들어서자 온통 검회색의 돌로 덮인 광활한 홀이 나왔다. 화려한 장식은 없었지만 고고하고 위엄 있는 성이었다.
거대한 석조 기둥이 드높은 천장을 받치고 있었고, 검은 늑대가 포효하는 듯한 문양이 그려진 휘장이 중앙에 걸려 있었다.
오래전부터 변하지 않고 블카노프 가문을 나타내온 상징이었다.
2층 난간 너머에 자리한 끝 모르게 이어지는 층계들만 봐도 본성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있었다.
세라엘은 하인을 따라 1층 응접실 옆에 있는 연회장으로 걸어갔다.
“밀로즈 영애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먼저 들어선 하인이 내부의 누군가에게 허리를 숙이더니 곧 문을 열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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