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20)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20화(20/150)
들었던 대로 카에드가 지내는 본성 중앙은 가장 넓은 연회장을 갖고 있었다.
홀에서 봤던 것과 같은 재질의 기둥이 곳곳에 세워져 있었고, 양각된 석조 패널이 온 벽에 자리하여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천장엔 먹빛의 금속으로 만들어진 샹들리에가 몇 개나 걸려 있어 운치를 더했다.
공간의 한가운데 놓인 마호가니 식탁은 무척이나 크고 길쭉하여, 눈대중으로만 봐도 서른이 훌쩍 넘는 인원을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상석에는 유독 육중한 철 의자가 있었는데, 그것을 차지한 남자는 당연히 카에드였다.
빳빳한 셔츠 차림이라 넓게 벌어진 그의 몸에 자리한 근육이 탄탄한 굴곡을 드러냈다.
번듯한 이마 뒤로 넘겨진 흑발은 흐트러짐 없이 깔끔하여 그러잖아도 근사한 외모가 더욱 빛을 발하고 있었다.
‘와아….’
예비 신랑의 가슴 떨리는 용모에 순간 전의를 잊은 세라엘이 감탄했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드레스 양 끝자락을 잡아 예를 갖추었다.
“정말 오랜만이에요, 대공님. 그간 격조하였어요.”
뒤늦게 불만을 담아 인사했더니 카에드가 까딱 묵례해 보였다.
“환영합니다. 자리에 앉으시지요.”
하인이 카에드 옆에 있는 의자를 빼 주었다.
자리를 잡는 동안 이번엔 그가 집요하게 세라엘을 훑었다.
먼젓번과 같은 눈빛이었다. 마치 통통한 꼬리를 흔들며 풀을 뜯어 먹는 꽃사슴을 풀숲 너머에서 몸을 낮춘 채 호시탐탐 지켜보는 포식자의 눈빛.
번득이는 이채 때문에 정상의 범위에서 벗어난 듯한 눈을 마주할 때마다 기가 눌리면서 마른침이 넘어갔다.
어색할 정도로 오래 바라보는 게 아닌가 싶을 찰나, 그가 슬쩍 눈을 돌렸다.
그제야 세라엘은 목구멍에 고여 있던 숨을 내뱉었다.
하인이 포도주를 따라 주자 두 사람은 동시에 술을 들이켰다.
누가 먼저랄 것 없는 행동에 카에드는 미간을 좁히며 다시 눈을 맞췄다.
“목이 타서요.”
세라엘이 변명처럼 중얼거리자 그가 혀를 찼다.
“빈속에 마시면 속 버립니다.”
“그건 대공님도 마찬가지 아니에요?”
그는 짧게 코웃음을 치며 술잔을 비워 냈다.
세라엘 못지않게 목이 타는 듯했다.
테이블 위에 올린 손을 까딱거리던 카에드가 입을 열었다.
“성에서 지내는 동안 불편함은 없었길 바랍니다. 건조한 기후도 그렇고 중부와 다른 점이 많았을 텐데, 적응하기에 어렵진 않았습니까?”
“어렵긴요. 덕분에 잘 지냈답니다. 산책도 못 하는 칩거 생활이 이리도 즐거운지 몰랐어요.”
상냥하기 그지없는 그녀의 목소리가 은근한 가시가 돋친 말을 내놓았다.
카에드는 잠자코 그녀를 보며 술잔을 매만졌다.
“…아무쪼록 세라엘 양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구성된 만찬이니 즐겨 주셨으면 좋겠군요.”
“신경 써 주셔서 고마워요.”
의례적인 인사를 건네자 곧 전채 요리가 테이블 위를 장식했다.
날을 세웠던 마음이 무색하게도 눈앞에 놓인 음식을 보자 군침이 넘어갔다.
레몬 소스가 뿌려진 갑각류 요리는 애피타이저라는 게 아쉬울 정도로 맛있었다.
세라엘은 절인 토마토와 새콤한 자두가 들어간 샐러드도 남기지 않고 다 먹어 치웠다.
곁들여 먹는 밀가루빵도 어찌나 부드럽고 고소한지 자꾸만 손이 갔다.
주요리가 나오기도 전에 조금씩 배가 부르기 시작했다.
만족스럽게 배가 차면서 몸에 열이 조금 올랐다.
세라엘은 꽁꽁 여몄던 케이프의 단추를 풀어 내렸다.
그러자 빗장뼈의 앞부분과 굴곡진 가슴 언저리, 연녹색의 드레스를 입은 상체가 열린 케이프의 틈으로 살짝 드러났다.
카에드는 말없이 세라엘을 지켜보다가 반대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
의아할 정도로 재빠른 동작에 그녀는 턱을 갸웃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앞엔 접시가 아예 없었고 붉은 술이 담긴 잔만 놓여 있었다.
식사를 또 하지 않는 건가?
식욕도, 좋아하는 음식도 없다는 카에드와 반대로 세라엘은 정찬에 나온 모든 음식을 즐기고 있었다.
성에 도착하자마자 선호하는 음식 목록을 적어 달라던 요청을 하녀로부터 받았던 기억이 난다.
게다가 차례로 나오는 풀 코스 요리를 발켄의 남자들이 선호할 리는 없었으니, 오늘 만찬은 귀족인 세라엘을 배려해서 준비된 식사였다.
탑에 갇혀 있는 동안 카에드가 원망스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신경 써 준 그에게 내심 고맙기도 했다.
“저어.”
세라엘이 감사를 표현하려 식기를 잠시 내려놨다.
그런데 카에드는 이쪽에 눈길도 주지 않고, 집사로 추정되는 남자와 대화 중이었다.
분명 케이프의 단추를 풀 때만 해도 그녀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었는데…?
“저기, 대공님…?”
넌지시 불러 봐도 그는 일말의 관심도 주지 않았다.
‘내 목소리도 못 들을 만큼 너무너무 바쁘시다니, 그냥 식사나 하자.’
세라엘은 상앗빛이 감도는 구스베리 와인을 소량 따른 후 한 모금 들이켰다.
달콤했지만 혀끝에서 떫은맛이 맴돌았다. 술이 원래 그런 맛인지, 기분 탓인 건지 아리송했다.
“세라엘 님, 제가 따라 드릴까요?”
잔을 비워 내자 익숙한 목소리가 귓전에 들려왔다.
렉터가 씩 웃으면서 와인병을 들고 있었다. 줄곧 카에드에게만 신경 쓰고 있던 탓에 렉터가 곁에 앉아 있다는 것도 몰랐다.
세라엘은 냅킨으로 입가를 닦은 후 빙긋 미소 지었다.
“그래 주면 고맙지.”
“무엇을 마시겠어요? 이거? 전 술을 잘 몰라서요.”
그가 병 서너 개를 내보이며 물었다. 무난한 적포도주를 가리키자 렉터가 빈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고마워. 느낌 탓인지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 그동안 잘 지냈니?”
“복귀하고 나서 처리할 일이 있긴 했는데 나름대로 잘 지냈어요. 북부는 좀 어때요?”
“나쁘지 않아. 조금 춥긴 해도, 곳곳에 겨울 분위기가 녹아 있는 게 운치 있고 참 괜찮더라.”
“다행이네요. 혹시 북부 체질 아니에요?”
“호호. 그냥 적응이 빠른 거야.”
렉터를 포함한 남자들은 일찌감치 접시를 비우고 다음 요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개중 한 명은 테이블에 턱을 괸 채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렇게 조금씩 나오는 거 정말 짜증 나.”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남자는 투덜대기 시작했다.
“어차피 다 배로 들어갈 건데 말이야. 남부 귀족들이 차리는 예의란 체면뿐인 데다 번거롭기 짝이 없어.”
“조용히 해! 남부에 왔으면 어쨌든 남부 예절을 따라야지.”
렉터가 흘깃 세라엘을 의식하며 그에게 핀잔을 주었다.
야인들은 국경 아래 인간을 무조건 남부인 취급한다더니 정말이었다.
블카노프 영지도 세라엘에게는 까마득한 북부나 다름없는데, 보는 관점이 달라 흥미로웠다.
“이쪽은 악셀이에요. 형아도 어서 인사해.”
투덜거리던 남자가 성의 없게 고개를 끄덕였다.
“반갑습니다. 두목의 여자니까 제게 존대하실 필요는 없어요.”
두목의 여자….
낯부끄러운 단어였다.
“나도 반가워, 악셀. 네가 어떤 사람인지 늘 궁금했었어.”
친근하게 말을 건네자 그의 뚱한 표정이 다소 옅어졌다.
“좋은 얘기를 많이 들으셨나 보네요?”
“장난꾸러기라 렉터와 자주 부딪힌다던 얘기였지.”
“부딪히기는요. 다 제가 아끼니까 그런 거 아니겠어요.”
“그럴 거면 아끼지 마!”
대화 중에 렉터가 냅다 소리를 지르자 놀란 악셀이 눈을 치떴다.
그는 렉터를 향해 주먹을 쥐어 보였다.
“이 자식이 어디서 형한테 큰소리를 내고 있어. 혼날래?”
“혼은 누가 나야 하는데. 형이 나야지. 맨날 장난만 치고 형 때문에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장난이 아니라 애정인 거야. 그것도 모르겠냐?”
“알고 싶겠냐? 그딴 애정 필요 없어.”
옥신각신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소년들이라 세라엘은 소리 내어 웃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들의 흉흉한 기세가 두려워 벌벌 떨었던 게 믿기지 않았다.
그때 앞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가 스윽 일어나더니 술병을 집어 들었다. ‘밀로즈’인 세라엘의 성을 제대로 불러 본 적이 없던 콜이었다.
“누님. 이번엔 제가 따라 드릴 영광을 주십시오.”
“어머, 물론이지. 고마워, 콜.”
“제 이름을 기억하시는군요.”
그가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오른손을 가슴에 얹었다.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어.”
“일전에 음식도 챙겨 주시더니 제 이름까지 기억해 주실 줄이야. 누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따로 없군요.”
음절 하나뿐인 이름을 외우는 것과 바구니 가득 음식을 정성껏 챙겨 주는 게 같은 선상에 놓이고 있었다.
콜이라서 그런 걸까. 그래도 듣기 좋은 칭찬에 세라엘은 해사하게 웃어 보였다.
그렇게 입꼬리에 미소가 걸린 상태로 돌연 카에드와 시선이 부딪혔다. 표정 없는 남자가 드물게 날을 세운 채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번엔 왜 노려보는 건데.’
도무지 심중을 헤아릴 수 없는 남자였다.
공연히 알코올이 당긴 세라엘은 샐러드를 먹다 말고 악셀을 응시했다.
“그나저나 코스 요리가 번거로워서 싫다고 했지? 나도 네 마음 이해해.”
그녀는 포도주 잔의 둥근 몸체를 잡고 들어 보였다.
가느다란 스템을 잡는 것보다 더 편했지만, 귀족들이 보았다면 떨떠름한 미소를 지었을 행위였다.
“실은 나도 겉치레를 중시하는 식사 예절은 별로 안 좋아하거든.”
“의외네요. 남부 귀족이라고 다 같은 게 아니구나.”
“포도주를 글라스 한 잔 가득 채워서 마시고 싶을 때도 있고, 디저트가 당기면 그릇째 담아 먹고 싶을 때도 있어. 단 한 번도 못 해 봤지만.”
“엥? 그게 잘못된 거예요?”
“귀족의 예법에선 완전히 어긋난 짓이야.”
남은 술을 한 모금에 비워낸 세라엘이 손짓으로 하인을 불렀다. 그리고 커다란 맥주잔을 하나 달라고 부탁했다.
하인이 가져온 잔은 성인 남자의 주먹 3개 정도 되는 크기였다.
“너희들이 곁에 있으니 주변 시선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지.”
세라엘은 손수 포도주병을 따서 잔에 쫄쫄 따르기 시작했다.
금방 딴 술병이 순식간에 비워지고, 그녀는 망설임 없이 술을 들이켰다.
“우와! 멋있어요, 누님!”
렉터와 악셀이 눈을 빛내며 감탄했다.
겉모습은 여린 봄꽃처럼 청초한 여자가 시원하게 술을 마시는 걸 보니 너무나 신기했다.
자극받은 두 남자도 당장 거대한 맥주잔을 주문했다.
그러나 시프에게 곧바로 제지당했다.
“너희 둘. 미성년이니 음주는 금지다.”
“아, 왜! 발켄은 그런 거 없잖아!”
“국경 너머는 추우니까 술로 몸을 데웠던 거고. 여긴 이제 제국의 영역이다. 우리는 카에드 님이 속하신 사회의 법에 순응해야지.”
그러면서 시프는 세라엘에게 공손히 인사해 보였다.
이후 줄지어 나온 음식은 맛있었고 향긋한 와인도 부담스럽지 않아 물처럼 들이마실 수 있었다. 곁에 앉은 남자들도 오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허물없이 대할 수 있었다.
한참을 먹고 마시며 떠들자, 주량이 강한 편이었음에도 세라엘의 시야가 점점 흐려져 갔다.
정신머리도 마찬가지였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