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24)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24화(24/150)
열린 창문을 통해 불어온 바람이 세라엘의 밝은 머리칼을 흩날렸다. 그녀는 굽이치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꽂아 넘기며 살며시 미소 지었다.
“나지 않을 리가요.”
카에드와 처음으로 입을 맞춘 순간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어.
그뿐이었을까.
손도 잡고, 뺨에 뽀뽀도 하고, 까딱하면 야릇한 행위까지 할 뻔했는데.
세라엘은 다시금 책상으로 눈길을 내려뜨렸다. 몹시 독해 보이는 양주병이 시야에 들어왔다.
“여기 술이 또 있네요.”
지난밤을 의식한 세라엘이 싱겁게 웃어 보였다.
어느 틈에 가까이 붙어선 카에드가 짐짓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마실 생각은 아니겠죠.”
“설마요. 당분간 음주는 하고 싶지 않은걸요.”
“당분간? 이참에 아예 끊는 게 어떨는지.”
“그건 싫어요. 술은 대공님이나 끊으시는 게 좋겠어요. 항상 식사 대신 술을 마시잖아요.”
“누구처럼 술주정은 안 부리잖습니까.”
“그건 술주정이 아니라…!”
“발끈하면 인정하는 겁니다.”
한마디도 지지 않고 되받아친 그는 책상을 돌아 의자에 앉았다. 그러곤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주변 서류를 뒤적였다.
인제 보니 자상하게 굴다가도 불시에 저돌적으로 몰아붙이는 경향이 있는 사내였다.
“보여드릴 게 또 있습니다.”
카에드는 한 뭉텅이의 봉투를 들어 보였다.
“우리의 화합을 축하하는 서신이 많이 왔거든요. 회신을 보낼 참이었는데, 한번 보시겠습니까?”
“…네. 봐두는 게 좋겠네요.”
두 사람의 혼례는 개국 공신 영웅의 혈통이자, 800년이 넘도록 칼스비크를 다스려온 명문 블카노프의 공사였다.
표면상으로는 양자가 가주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가문원이 깡그리 몰살된 지금 블카노프 가문 내의 유일무이한 권력자는 카에드였다.
제국에서 내로라하는 귀족들이 어떠한 편지를 보냈는지 읽어 본다면 돌아가는 정치를 파악하기에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세라엘은 주춤했다. 일단 대답은 했지만 앉을 자리가 없었다. 책상의 옆에도, 맞은편에도.
널찍한 마호가니 책상 앞 앉을 곳이라곤 카에드가 자리 잡은 의자뿐이었다.
“어디에 앉아야….”
세라엘이 머뭇거리자 그가 제 허벅지 위를 두드렸다.
“여기.”
“……?”
“여기 앉으면 되잖아요.”
그의 손동작을 따라 세라엘은 무척이나 탄탄해 보이는 허벅지 위로 시선을 던졌다.
그녀는 제 눈과 귀를 의심하며 딸꾹질하듯 일순 호흡을 멈췄다.
서슴없이 제안하는 그의 표정엔 부끄러움 같은 건 묻어 있지 않았다.
“계속 서 있을 겁니까? 다리 아플 텐데.”
카에드는 능청스럽게 편지 뭉텅이를 눈짓해 보였다.
“서신이 이렇게나 많습니다. 빠짐없이 확인하려면 시간이 제법 걸리거든요.”
“아….”
“뭐, 몇 시간 동안 서 있는 게 편하시면 어쩔 수 없군요.”
그건 남자의 허벅지에 몇 시간 동안 앉아 있어야 하는 말과 다름없었다.
당장 앉을지 말지 고민하느라 세라엘은 차마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망설이던 그녀가 가까이 다가섰다.
카에드는 기다렸다는 듯 손을 내뻗었다. 은근하지만 결코 이겨 낼 수 없는 힘에 이끌린 세라엘은 그의 단단한 허벅지 위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러자 근육이 두툼하게 잡힌 팔이 자연스럽게 등허리를 감싸 안았다.
몸이 뒤로 넘어지지 않게 지탱해 주는 듯했다.
카에드는 제 허벅지에 앉은 그녀에게 편지를 하나씩 보여 주었다.
“이건 켈리 백작가에서 온 서신입니다. 혹시 그와 구면입니까?”
“…아뇨. 다만 아버지의 오랜 사업 상대였는데, 지병이 악화하여 재계에서 물러난 거로 알고 있어요.”
“여전히 투병 중이라 후계자가 대리로 직무를 보는 중입니다. 예식에도 그가 참석하리라 통지하더군요. 그리고 이건….”
이어지는 나지막한 목소리가 점점 흐려졌다.
멀리서 봐도 깜짝 놀랄 만큼 준수한 얼굴이 말 그대로 코앞에 있었다.
반듯한 눈썹을 살짝 덮은 결 좋은 흑발과 긴 속눈썹 아래 자리한 황금빛 눈망울. 높은 콧대와 곧게 미끄러지는 턱선의 각도.
남성의 전유물인 너른 어깨와 탄탄한 가슴, 근육으로 균형 잡힌 체구가 모두 여실하게 와닿았다.
그뿐만 아니라 뜨뜻한 체취와 오묘한 향기까지 가감 없이 느껴졌다.
그렇게 여러 감각이 한꺼번에 자극받자 세라엘의 호흡은 절로 빨라졌다.
이러다간 들킬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심장 박동이 착실하게 간격을 좁혀 오고 있었다.
‘너무 떨려….’
책상 위를 향한 세라엘의 초점은 물안개처럼 어렴풋하기만 했다.
“몰딘 후작가에서도 서신이 왔습니다.”
카에드가 끝에 놓인 편지를 집으려 팔을 길게 뻗자,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더욱 가까워졌다.
긴장한 세라엘이 저도 모르게 숨을 멈추었다.
오후 햇빛을 역광으로 내리받은 그의 옆얼굴은 한 치의 모난 곳 없이 날렵한 각으로 다듬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사람처럼, 카에드의 뺨에 입술을 붙였다.
“…….”
“…….”
쪽, 하고 말캉한 입술이 짧게 붙었다 떨어지는 소리가 앙증맞았다.
석상처럼 굳은 카에드는 우뚝 동작을 멈추었다.
세라엘은 자신이 방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인지하지 못했다. 그 순간 동안 머릿속이 하얗게 표백되어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카에드는 이내 천천히 턱을 돌려 세라엘을 바라보았다.
그의 금안이 옅게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 왜 그랬지.’
왜 그랬을까.
너무나 출중한 외모와 성적 매력이 다분히 묻어나는 남자의 몸에 현혹되어 입을 맞추고 말았다.
아니, 정말 그것뿐이었을까? 비슷한 접촉이 오간 어젯밤과 달리 지금은 맨정신이었다.
심지어 이번엔 세라엘이 먼저 다가갔다.
‘이 남자 무릎 위에 앉는 게 아니었어.’
어떤 방향으로든 진전될 수 있는 밀착이었다.
목전에 있는 잘생긴 얼굴에 입을 맞춘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들리지도 않을 변명을 뇌리에 늘어놓으며 그와 눈을 맞추었다.
그의 눈동자 안에 스며든 어떠한 감정이 착실하게 열을 올리면서 이글거리고 있었다.
보송한 솜털이 돋은 세라엘의 흰 볼에 살굿빛 홍조가 스며들었다.
지난밤과 다를 것 없는 거리에서 카에드를 마주하고 있다.
그런데 온몸의 감각은 전에 없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 곳곳을 훑는 시선도, 등허리에 닿은 손도 모두 뜨거워지는 것만 같았다.
기나긴 정적이 흐르면서 서로를 응시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세라엘은 초조해졌다.
“카에드….”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입술에 머금었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가 손을 들어 올려 세라엘의 뒤통수를 틀어잡았다는 것에 당황할 겨를도 없었다.
움직이지 못하게 그녀를 꽁꽁 옭아맨 카에드가 일순 턱을 비틀고 조급하게 입술을 부닥쳐 왔다.
그제야 놀라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가 침범하듯 파고들었다.
“……!”
부드럽기만 했던 어제의 입맞춤과는 차원이 달랐다.
깊숙이 들어와 연약한 점막을 거침없이 문지르고 멋대로 헤집어 놓았다. 혀를 아찔하게 휘감는 감촉에 절로 비음이 새어 나왔다.
세라엘은 어찌할 바를 몰라 두 손을 카에드의 가슴 위에 올렸다.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행위나 다름없었다.
“잠깐….”
빈틈없이 맞물린 입술 틈으로 찰나 공간이 생기자 세라엘이 뭐라 뇌까렸지만 금세 저지되었다.
코가 한번 스쳤고 각도가 비틀리며 그가 더욱 격렬하게 입을 맞춰 왔다. 넓은 공간에 젖은 혀가 뒤얽히는 소리는 지나치게 외설적이었다.
혼이 빠질 듯 타액이 오가는데 갑자기 그가 입술을 떼고 몸을 일으켰다.
“대공, 님…?”
그는 성급한 팔짓으로 책상 위를 쓸었다.
유리잔이 깨지고 육중한 책이 떨어지면서 서류가 사방으로 휘날렸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세라엘을 가뿐히 안아 책상에 앉힌 카에드가 다시금 입술을 맞붙였다.
일순 마주친 눈동자에는 무언가를 강하게 갈구하는 욕망이 그득 들어차 있었다.
이젠 입술뿐 아니라 전신이 바짝 접촉한 상태였다.
‘이, 이래도 되는 거야…?’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어딘가도 간질간질한데.
이 쾌감에 모든 걸 내맡기기엔 정의할 수 없는 무언가가 세라엘의 마음에 걸렸다.
지난밤처럼 마냥 즐길 수도 없었다.
정신 안 차리면 잡아 먹힐 듯 버거운 키스 다음으로 이어질 행위가 어떠할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으니까.
세라엘의 허리께에 있던 손이 미묘하게 위치를 바꾸는 순간이었다.
“영주님, 방금 서신이 하나 도착했습니다.”
문 두드림과 함께 집사의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소스라치게 놀란 세라엘이 버둥거렸으나 그는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당장 나가.”
어지간히도 급했는지 아직 들어오지도 않은 집사에게 싸늘히 명령했다.
집무실 밖의 기척이 멈칫하더니 점점 멀어져 갔다.
다시금 입술을 포갠 카에드는 세라엘을 단단히 껴안고서 책상에 눕혀 버릴 것처럼 밀어붙였다.
파도처럼 몰아치는 버거움에 그녀가 앓는 소리를 내자, 그제야 몸을 살짝 떼 주었다.
하지만 세라엘의 귓바퀴와 목덜미에 쉴 새 없이 입을 맞추며 열기 어린 숨결을 불어 넣었다.
카에드는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눌러내는 듯한 목소리로 그녀의 귓전에 속삭였다.
“저 문을 지나면 내 침실입니다.”
세라엘은 집무실 한쪽 벽에 있던 짙은 다갈색 문을 기억해 냈다.
“해도 괜찮겠어요?”
낮은 음성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를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퍽 배려 있는 물음이었지만, 그녀를 꽉 붙든 손과 금안에 깃든 정욕은 뭐든 거절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어떡하지.’
관계에 앞서 그가 허락을 구하고 있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단칼에 거절할 만큼 싫은 건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망설임 없이 침대 위로 뛰어들고 싶은 마음도 아니었다.
‘지금은 몸도 마음도 준비가 안 됐는데.’
아니, 몸은 됐다고 할 수 있나…?
“안 될 것 같습니까?”
세라엘이 고민하는 와중에도 짧게 입을 맞추던 카에드는 성긴 숨이 깃든 음성으로 재차 물었다.
어쩐지 설득하는 어감이었다.
“뭐든 대답해 봐요.”
“그….”
“얼른.”
민감한 부분에 쉴 새 없이 입술을 문지르고 코를 비비적거리고 있으면서 어떻게 대답을 하라는 건지.
반드러운 검은 머리칼도 세라엘의 턱과 목을 계속해서 간지럽혔다.
그녀는 제 몸을 더 들이대지 못해 안달이 난 남자의 가슴팍에 두 손을 올렸다.
카에드가 세라엘의 손목을 틀어잡고 더 만져 달라는 것처럼 비벼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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