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25)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25화(25/150)
세라엘은 그의 가슴에 올린 손바닥을 좀 더 힘주어 밀어냈다.
“대공님. 저 사실 준비가 아직….”
“어떤 준비?”
“몸이, 아니,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어요.”
귓바퀴를 간지럽히는 입술 때문에 어깨를 잔뜩 움츠린 그녀가 간신히 답을 내놓았다.
본심에 따르자면 눈앞의 남자와 체온을 공유하고 싶은 축에 가까웠다.
그러나 경험해 본 적 없는 영역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마음 한편에 자리한 머뭇거림을 밟고 넘어설 정도는 아니었다.
세라엘의 목덜미 가까이 열 오른 숨을 흘려보내던 카에드가 느릿느릿 상체를 일으켰다.
선이 날렵한 얼굴에는 해소되지 못한 갈증이 어려 있었다.
충동적으로 그를 자극해 놓고 직전에 발 뺀 듯하여 세라엘은 마음이 편치 못했다.
종국엔 낯뜨거운 기류를 이기지 못해 사과를 건넸다.
“미안해요.”
“미안할 게 뭐가 있어요.”
“아뇨, 제가 먼저….”
“됐습니다. 이런 일로 머리 숙이지 말아요.”
말허리를 자르면서 카에드가 그녀의 다리 위로 손을 뻗었다.
숨결이 뒤섞이는 동안엔 몰랐는데 드레스가 엉망으로 흐트러져선 허벅지 위까지 말려 올라가 있었다.
아쉬움이 밴 손가락으로 세라엘의 연한 피부를 쓸어내리던 카에드는 이내 옷자락을 갈무리해 주었다.
그는 실소를 터뜨렸다.
“사과는 내가 해야 하겠는데.”
“이번엔 제가 입을 맞췄으니 대공님은 잘못 없어요.”
“내가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알면 그런 소리 안 나올걸요.”
그는 세라엘을 다시 안아 들어 바닥에 발을 딛게 해 주었다.
키스하는 동안 뒤통수가 잡혀 있던 탓에 헝클어진 머리칼을 정돈해 주기도 했다.
욕망을 완전히 거둬 내지 못한 안색과 다르게 손길은 몹시도 다정했다.
옷매무새를 다 만져 주고도 카에드는 그녀의 손을 놓아주지 못했다.
“안아 봐도 됩니까?”
갑작스러운 질문에 세라엘의 잇새로 웃음소리가 삐져나왔다.
조금 전까지 포옹보다 더욱 진한 행위를 나누었던 남자가 물을 만한 것은 아니었다.
세라엘은 대답 대신 그의 목에 두 손을 둘러 껴안아 주었다. 신장 차이 때문에 그녀의 고개가 가파르게 꺾이자 카에드가 상체를 굽히고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간신히 가라앉았던 공기에 다시 열기가 묻던 순간, 문밖에서 동물이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의 눈이 동시에 문으로 향했다.
발톱으로 문을 긁고 틈으로 코를 킁킁대는 거로 보아 아까 전 검은 늑대인 모양이었다.
그들이 얽히고설켰던 공간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카에드가 문을 열자, 회색 털 뭉치를 입에 문 늑대가 위풍당당하게 들어섰다.
자세히 보니 털 뭉치가 아니라 조그마한 새끼 늑대였다.
“어머나!”
그 뒤로 두 마리의 앙증맞은 새끼 늑대들이 또 아장아장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너무 귀엽다.”
세라엘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환히 웃으며 새끼를 어루만졌다.
집무실에 들어오고자 울었던 늑대 덕분에 어색한 분위기가 깨진 것도 다행이었지만, 눈앞의 새끼들은 정말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아빠 늑대는 일부러 세라엘 앞에 제 새끼를 내려놓고, 나머지 두 마리도 길쭉한 주둥이로 밀어 앞에 내세웠다.
“으응? 네 아기를 자랑하는 거야?”
세라엘이 장난스레 묻자 늑대는 늠름하게 앉아 보였다.
“이 늑대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는 건 어떨까요?”
낑낑대는 새끼 늑대를 쓰다듬으며 세라엘이 제안했다. 어느새 잔에 술을 따르고 있던 카에드가 픽 웃었다.
“세라엘 양이 원하는 이름으로 지어 줘요.”
“흐음…. 뭐가 좋을까.”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귀여운 이름을 생각해 냈다.
세 마리의 새끼 늑대는 딩, 동, 댕으로 이름 지었고 아빠 늑대는 ‘모’라고 부르기로 했다.
짧은 어감이라 부르기도 편할 것 같았다.
“모야. 네 이름은 모야?”
스스로 말장난한 세라엘이 까르르 웃었다.
장난을 치고 괜히 머쓱해진 그녀가 카에드를 슬쩍 보았으나, 그는 별로 재미있진 않았는지 웃지 않았다. 책상에 몸을 느슨히 기댄 채 술을 들이켜며 그녀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흠흠.”
세라엘은 민망함을 감추기 위해 헛기침했다. 다행히 모는 새 이름이 마음에 든 눈치였다.
“멍!”
한번 크게 짖더니 검은 빗자루 같은 꼬리를 흔들며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았다.
“모야. 네 이름이 마음에 들어?”
“멍멍!”
힘차게 대답한 모는 세라엘의 손을 핥아주었다. 이내 새끼들을 대동하여 신난 걸음으로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그럼 이제….”
몸을 일으킨 세라엘이 말꼬리를 흐렸다. 확인하지 못한 편지는 아직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서신은 마저 정리해야죠.”
대수롭지 않게 말한 카에드는 책상에서 종이 뭉치를 집어 들었다.
“업무를 분담할 의도는 없었으니 세라엘 양은 거처로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저도 여기 있을게요. 함께 확인하기로 했잖아요.”
침대에서의 관계로 이어질 수 있는 농후한 입맞춤을 했다고 해서 도망칠 생각은 없었다.
귀족들이 어떤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세라엘의 의중을 파악하려 말없이 얼굴을 훑던 카에드가 곧 걸음을 옮겼다.
“힘들면 중간에 그만해도 됩니다.”
그는 접객 테이블에 놓인 책들을 치워 공간을 만들었다. 테이블 앞 2인용 소파에 착석한 카에드는 옆자리를 슬쩍 눈짓했다.
“앉으십시오.”
세라엘은 그와 나란히 앉아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편지에 대한 감상도 나누고, 펜을 들어 회신을 써 내려가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은 건.
‘처음부터 여기 앉았으면 됐지 않나?’
굳이 제 무릎 위에 그녀를 앉히지 않아도 얼마든지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니.
생각해 보면 이렇게나 넓은 방이니까 무리도 아니었는데!
남자의 계략에 속절없이 휘말린 기분이었다.
아까 전 가감 없이 내비쳤던 욕망을 말끔히 지워 낸 카에드는 중요 업무를 보듯 몰두한 상태였다.
세라엘은 남몰래 고개를 내저었다.
‘일하자, 일….’
두 사람은 밤늦게까지 함께 서신을 확인하며 의견을 나눴다.
어두워지는 줄 모르고 집중하다가 뒤늦게 촛불을 켰고, 집사가 가져다준 다과도 먹으며 지속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창 너머 풀벌레 울음소리가 귓전을 맴돌 때쯤 세라엘이 기지개를 켰다. 지친 기색도 없이 집중하던 카에드가 그녀를 의식하고 서류를 내려놓았다.
“피곤한가요?”
“눈이 계속 감겨요. 대공님은 안 피곤하세요? 편지가 아직도 쌓여 있어요.”
“늘 보는 직무와 다를 바 없어서 괜찮습니다. 처소로 슬슬 바래다 드려야겠네요.”
“아뇨. 일은 다 끝내고 싶은걸요. 잠깐만 쉬면 나아질 거예요.”
끙 소리를 낸 세라엘이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반쯤 감긴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언제 또 마차를 타고 거처까지 돌아가겠어.’
번거로운 이동도 싫었지만, 그의 업무를 돕겠다고 나섰으니 당장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종이를 매만지며 한참 동안 그녀를 지켜보던 카에드가 입을 열었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그가 서류를 내려놓았다.
“내 침실에서 쉬는 건 어떻습니까.”
제 침실에서 쉬라 제안한 그의 목소리는 어떤 감정도 묻어 있지 않았다.
아까 전 나누었던 신체 접촉을 기억 못 하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바로 문 건너인데.”
당황한 세라엘이 기댔던 상체를 바로 세웠다.
‘분명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다고 했을 텐데…?’
그녀의 생각을 훤히 읽은 것처럼 카에드가 낮은 웃음을 흘렸다.
“표정이 왜 그래요. 내가 마음대로 안을까 봐서?”
“아뇨, 그게….”
그는 웃음기를 머금은 표정으로 세라엘의 한 손을 잡아 자리에서 일으켰다.
그렇게 침실 문까지 친히 열어 주면서 그녀의 등을 안으로 밀어 넣었다.
“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한 발자국도 안 들어갈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쉬어요.”
“…그럼 눈만 좀 붙일게요.”
지금 상태가 최선은 아닌지라 자꾸만 눈이 감겼다.
세라엘은 정말 조금만 자고 일어날 요량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침실은 무척이나 넓고도 휑했다.
카에드가 지내는 공간답게 어두컴컴하고 장식품 하나 없이 싸늘했다.
세 사람이 누워도 넉넉할 넓은 침대와 사이드 테이블 두 개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늘 여기서 자는 건가?’
창문 하나 열리지 않았는데 어디선가 칼바람이 불어온 것처럼 스산한 느낌이 들어 세라엘은 제 팔뚝을 쓸어 만졌다.
사람의 자취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침대에 그녀는 몸을 눕혔다.
차가운 침구에서 남자 특유의 향기가 엷게 감도는 거로 보아 여기서 생활하긴 하는 모양이었다.
세라엘이 받아들였다면 바로 이곳에서 끈적한 접촉이 이어졌겠지.
피어오른 상상에 이불을 차며 부끄러워하기엔 너무나 피곤했다.
베개를 베고 모로 누운 그녀는 어둑한 허공을 바라보다 시나브로 잠에 빠져들었다.
***
약속대로 카에드는 아직 침실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대신 열린 문가에 한쪽 어깨를 기대고 서서, 잠든 그녀를 물끄러미 주시했다.
“흐음.”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피가 몰리는데.
누구의 것인지 모를 타액과 숨이 뒤섞이는 키스를 했을 땐 그야말로 미친 짐승처럼 본능이 날뛰었다.
준비되지 않았다는 세라엘의 말에 그걸 기어코 억누른 자신도 새삼 인내심이 대단했다.
아니, 사실 매번 시험을 받는 기분이었다.
음욕뿐 아니라 속세의 갖은 고행과 맞서 싸우는 성직자도 이런 고난은 안 겪을 것 같았다.
완연한 성인이 된 후에 남자로 살기 괴로운 순간이 이렇게도 자주 부닥쳐 올 줄은 몰랐다.
한창 혈기 왕성한 제 부하들이 좋아하는 여성 앞에서 뜻대로 제어가 안 되어, 곤욕을 치렀다는 푸념을 들을 때마다 웃어넘겼던 카에드였다.
그게 자신의 이야기가 될 줄이야.
시도 때도 없이 피가 들끓는 시기가 뒤늦게 찾아온 격이었다.
아무리 한창때라지만 이럴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신체 변화도 자주 찾아왔다.
세라엘은 뭐든 그를 안달 나게 하지 않는 점이 없었다.
바람결에 흩어지는 향기와 푸른 바닷물처럼 맑은 눈동자, 이따금 짓는 고집 있어 보이는 표정까지.
조급해해선 안 된다고 수백 번 결연했던 다짐이 그녀를 마주할 때마다 뙤약볕 아래 놓인 눈사람처럼 속절없이 녹아내렸다.
“이러면 안 되는데.”
손가락으로 제 입술을 훑던 그가 독백했다.
체온을 나누는 일은 남자인 자신보다 그녀가 더욱 큰 각오가 필요할 테니까.
이왕이면 세라엘이 그가 품은 감정과 같은 크기의 감정을 갖게 될 때 하는 게 좋겠다.
…아니지.
그랬다간 평생 못 할 수도 있었다.
카에드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거대한 부피의 연정을, 무엇이든 불태울 수 있는 높은 온도의 갈망을 그녀가 품을 수 있을까?
“하….”
여자와 자고 싶어서 안달복달하는 쓰레기가 된 것 같아 헛웃음이 나왔다.
머릿속 가득 들어찬 음험한 생각을 그녀에게 한 조각이라도 들킨다면 평탄한 결혼 생활은 불가능할 것이다.
인내를 가다듬으며 카에드는 세라엘이 깨지 않도록 천천히 다가갔다.
그녀를 곁에 두기 위해 수백의 사람을 죽인 손을 뻗었다.
길게 굽이친 백금발을 느린 속도로 귓바퀴에 쓸어넘겨 주었다. 잠결에도 기분 좋은 듯 세라엘의 입술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어차피 손바닥 안에 들어온 여자인데 언제든 연기처럼 홀연히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치솟았다.
“너무 좋아서 그래, 좋아서….”
눈에 띄게 부풀어 오른 연정은 한밤이 지나도 사그라들 줄 모르고 부피를 키워 갔다.
설령 셀 수 없이 많은 인간의 피를 또다시 손에 묻히게 되더라도 이 마음을 포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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