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28)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28화(28/150)
성인식이 개최되는 야외 연무장은 흡사 시커먼 콜로세움을 연상시키는 특이한 장소였다.
곳곳에 핏자국이 들러붙어 있어 어떤 강도의 수련이 오갔는지 예상할 수 있었다.
널따란 내부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계단식 단상이 놓여 있었다.
그곳엔 이미 서른 명이 넘는 발켄족 남자들이 앉아 술을 마시며 왁자지껄 떠드는 중이었다.
카에드와 세라엘이 모습을 드러내자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서 오십시오!”
“안녕하십니까, 밀로즈 영애!”
남자들은 정수리가 보일 정도로 깊이 머리를 숙였다.
느닷없이 귀청을 와장창 강타하는 우렁참에 깜짝 놀랐으나 세라엘은 내색하지 않고 예를 갖춰 화답했다.
“반갑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인사를 받아들이자 그들은 자리에 앉긴 했지만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세라엘을 관찰했다.
모두 오래전부터 제국의 정벌 대상이었던 이종족 야인들이었지만 결코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일찍이 만나 봤던 렉터나 악셀 등을 생각해 보면 그들도 별다른 바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세라엘은 귀족 사회에서 불거진 차별이나 편견에 물들고 싶지 않았다.
카에드와 함께 맨 앞줄에 착석하자 곧 남자들이 콜의 이름을 목청 높여 부르기 시작했다.
어서 그가 등장하기를 바라는 분위기였다.
곧 결연한 표정의 콜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거친 겉모습과는 달리 기억력이 그리 좋진 않고 어벙한 구석이 있는 남자였다.
“저걸 다 마셔야 성인식이 시작되는 겁니다.”
카에드가 단상 아래 테이블에 놓인 무언가를 눈짓했다.
자세히 보니 사람 머리통보다도 큰 술통이었다.
“어머…. 콜이 다 마실 수 있을까요?”
“마셔야죠. 성인식을 못 치르면 한 해를 더 미뤄야 해서 그사이에 악셀의 차례가 먼저 올 수도 있습니다.”
사람 놀리기 좋아하는 악셀이 더 어린데도 먼저 성인식을 마치면 콜이 어떤 수치를 당할지 눈에 그려졌다.
‘나 같아도 기를 쓰고 마시겠어.’
콜이 진지한 표정으로 단상 아래에 섰다.
“성인식 치르는 날을 손꼽아 기다려 왔습니다.”
그는 나란히 앉아 있는 카에드와 세라엘을 보며 오른손을 가슴에 갖다 댔다.
“이 자리에 서게 된 영광을 나의 주인 카에드 블카노프와 그의 신부 세라엘 밀… 밀로즈 님께 돌립니다.”
어느 틈에 세라엘 옆에 앉은 악셀이 키득거리며 소곤댔다.
“실수하지 말라고 렉터가 일주일 동안 암기 연습시켰대요.”
“저 대사 한 줄을?”
“아뇨, ‘밀로즈’라는 성을요.”
그래서 안 틀렸구나.
납득한 세라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6명의 형제인 바이퍼, 호크, 로이, 시프, 악셀과 렉터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 주겠습니다. 내가 성인식을 치를 수 있을지 없을지를 두고 돈내기한 것 다 압니다, 이 자식들아. 전부 없다는 데 걸었다면서?”
카에드의 측근 이름을 하나하나 나열하기에 감동적인 말이 나오나 했더니 정반대였다.
콜은 엄숙하게 선언하다가 마지막엔 존대를 집어치우고 이를 부득 갈며 앞줄을 노려보았다.
성인식의 서두를 떼는 엉뚱한 인사에 우레와 같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콜은 무거운 술통을 들더니 망설임 없이 입에 쏟아 넣기 시작했다.
분위기를 고조시키려 남자들은 간헐적으로 큰소리를 질렀다. 누군가 북까지 가져왔는지 둥당거리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독한 술을 왈칵왈칵 들이붓는 모습에 세라엘이 입술을 살짝 가렸다.
“우와, 나도 저렇게 마셔 본 적 없는데….”
“장난하십니까? 저리 마시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죠.”
줄곧 그녀의 손을 만지작거리던 카에드가 덜컥 핀잔을 줬다. 세라엘은 묘기 부리듯 술을 마시는 콜에게서 눈길을 뗐다.
“대공님은요? 대공님도 성인식을 치르셨나요?”
“내가 했겠습니까.”
“음. 대장이니까 그런 건 안 해도 되겠구나.”
신고식처럼 느껴지는 행사인데 우두머리가 그런 걸 할 리는 없지. 아직도 술을 들이마시고 있는 콜을 보며 세라엘이 무심코 생각했다.
콜의 목이 점점 뒤로 기울어지자 남자들이 크게 부르짖으며 응원해 주었다.
한참 시끄럽고 정신없는 와중에 낮은 목소리가 그녀의 귓전에 울렸다.
“세라엘 양은 의아하게 생각해 본 적 없습니까?”
“네?”
“세간에 떠돌고 있는 내 더러운 소문 말입니다.”
주의를 확 잡아끄는 주제에 세라엘은 다시 카에드와 눈을 맞췄다.
그녀 쪽으로 어깨를 비스듬히 기울인 그는 시선을 여전히 콜에게 박은 상태였다.
“블카노프 멸족 사건은 작위를 차지한 양자가 범인일 것이고, 공공연한 박멸 대상인 야만인과 어울리는 걸 보면 그 역시 지저분한 천출일 것이다. 다들 이렇게 생각하던데 세라엘 양은 어떤가요?”
어느새 술 한 통을 다 비워 낸 콜이 풀린 눈으로 비틀거렸다.
악셀이 내 돈을 위해 빨리 쓰러져 달라고 비아냥대자 주변의 모두가 깔깔거리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갑자기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거지?’
눈을 동그랗게 뜬 세라엘이 속눈썹을 깜빡이자, 카에드는 그제야 시선을 맞춰 주었다.
눈에 띄게 당황한 그녀를 내려다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뭘 굳어 있고 그래요. 그냥 물어보는 건데.”
“그런… 그런 건 왜 물어보시는 거예요?”
“두렵지도 않나 궁금해서. 찝찝하지 않겠어요? 추문이 도는 남자와 결혼했으니 이제 몸도 섞을 텐데. 각오는 되어 있는 겁니까?”
“……!”
입꼬리를 비틀어 올린 카에드는 팔을 뻗어 세라엘의 어깨에 둘렀다. 제 가슴팍으로 잡아당기는 완력에 그녀는 살짝 안긴 상태가 되었다.
어깨를 두른 손으로 세라엘의 연한 머리카락을 쓰다듬은 그가 뺨에도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날 밤 나를 밀어낸 이유도 확신이 없어서였잖아요. 안 그래요?”
집무실에서 있었던 접촉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
“의문점이 있으면 다 물어봐요. 숨김없이 알려 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나지막한 저음은 귓구멍에 더욱 깊숙이 들어왔다.
“내가 어쩌다 이 작위와 성을 차지하게 됐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멀찍이 송아지만큼 거대한 늑대 다섯 마리가 달려와 콜을 에워쌌다.
가운데에는 세라엘이 이름을 지어 준 검은 늑대 모가 황금 목줄을 찬 채 늠름하게 서 있었다.
알고 보니 공격하는 늑대들을 피해 모의 목줄을 빼앗아야만 성인식을 무사히 통과하는 모양이었다.
대신 늑대를 밀치는 것 외엔 절대 공격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이 있어 쉽지 않아 보였다.
모두 함성을 지르며 이리저리 뛰는 콜을 보는데, 오직 두 사람만이 서로에게서 눈을 뗄 줄 몰랐다.
세라엘의 푸르른 눈동자가 희미하게 일렁였다.
얼핏 보이는 시야에선 늑대들에게 팔을 물어뜯긴 콜이 피를 흘리면서도 마구 내달리고 있었다.
곧 떨리는 숨을 내뱉으며 그녀가 입술을 움직이려던 참이었다.
객석에서 헙, 하고 놀라 호흡을 멈추는 소리가 났다. 시선은 반사적으로 단상 아래의 콜을 향했다.
세라엘 또한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최대치로 벌어진 모의 주둥이 안에 머리통이 낀 콜이 아등바등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사람 손가락만큼이나 굵은 모의 이빨이 날카롭게 번득거렸다.
“죽, 죽이면 안 돼!”
목청 높여 외친 세라엘이 벌떡 일어나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자 카에드는 안심시키듯 그녀의 팔목을 부드럽게 그러쥐어 잡아당겼다.
도로 그의 품 가까이 앉으면서도 세라엘의 눈은 머리통이 반쯤 잡아먹히고 있는 콜에게서 떠나갈 줄 몰랐다.
“모가 콜을 먹고 있어요! 저러다 죽을 수도 있는데…!”
“잡아먹는 게 아닙니다. 자세히 보십시오.”
그러고 보니 높이 쳐든 콜의 오른손 안에 무언가 반짝이고 있었다.
성인식을 성공적으로 끝마치려면 빼앗아야 한다던 늑대의 황금 목줄이었다. 시커먼 빗자루 같은 모의 꼬리도 기쁨을 표현하듯 사방팔방 흔들렸다.
콜의 손에 들린 목줄을 확인하자, 단상에 앉은 남자들이 벌떡 일어나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다시 거대한 주둥이를 벌린 모는 이번엔 콜의 목을 콱 깨물었다.
위협적인 광경에 세라엘은 반사적으로 어깨를 떨었다. 주변 반응을 보니 그를 해치려는 뜻은 없어 보였다.
“늑대의 애정 표현입니다. 공격하는 게 아니라 콜을 축하해 주고 있는 거예요.”
“목덜미를 깨무는 게 애정 표현이라니… 어쩜 그리 괴상할 수가 있죠.”
“내 눈엔 인간과 다를 것도 없어 보입니다.”
“대공님은 애정 표현을 그렇게 하세요?”
“그렇게 합니다. 세라엘 양도 받아 봤을 텐데요. 기억나지 않는 겁니까?”
진한 신체 접촉이 오갔던 집무실에서의 기억이 불쑥 피어올랐다.
정사를 목전에 앞두었다는 생각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분명 열락에 들뜬 입술이 그녀의 귓전과 목덜미를 거침없이 지분거렸었다.
예민한 살결에 닿는 생소한 감각이 간지러우면서도 애틋했고, 금세라도 세라엘을 먹어 삼킬 수 있는 파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멀리서 콜이 제 코를 쥐어 잡은 채 양옆으로 비틀거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아까 전 술통을 싹 비웠을 때보다 정신이 더욱 혼미해 보였다.
“제기랄! 입 냄새…. 입 냄새가 너무 심해…!”
콜의 괴로운 외침에 박장대소가 축포처럼 터져 나왔다.
아무래도 늑대 입 냄새가 굉장히 지독했나 보다.
목구멍까지 코를 쑤셔 박았으니 가엾은 콜은 본의 아니게 짐승의 입 냄새를 만끽했을 것이다.
‘그래도 무사히 끝나서 다행이야.’
한숨 놓은 그녀가 의자에 몸을 푹 파묻었다.
‘카에드가 그 소문을 언급해서 깜짝 놀랐어.’
당연히 세라엘도 인지하고 있었다.
블카노프 공작과 계승권을 가진 후계자가 하루아침에 죽임을 당하고, 표면상으로는 양자인 남자가 모든 걸 거머쥐었다는 추문.
다른 사람들은 등 뒤에서 카에드를 손가락질할지 몰라도 사실 세라엘의 의견은 조금 달랐다.
모든 블카노프 가문원은 오래전 황실이 세운 꼭두각시의 핏줄이었다.
세라엘은 살해당한 가문원이 카에드를 어찌나 심하게 괴롭혔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성정이 가장 악독했던 공자는 궁술 연습을 구실로 카에드의 눈을 겨냥하여 화살을 쏘았다.
‘카에드가 피한 덕에 어깨로 빗나갔으니 망정이지.’
원래대로라면 카에드는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공자를 살해했을 것이고, 이후 공작과 끝없는 전쟁을 지속하다 자살했을 남자였다.
지금의 그는 본래 소유해야 했을 작위와 영지를 되찾은 것뿐이다. 죽어 마땅한 인간들이 죽었고 그로 인해 카에드는 비극을 피해 갔다.
어쩌다 그런 전개로 진행되었는지 늘 의문이었으나, 이젠 그를 무서워하거나 피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세라엘 양.”
귓전에 울리는 목소리가 뇌리 가득 들어찬 상념에 흐려졌다.
그와 관계 직전까지 갔던 날 밤, 세라엘이 그를 밀어냈던 이유는 정작 다른 것에서 기인했었다.
바로 이 모든 게 너무 빠른 속도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
서로를 알아 가면서 친분을 쌓고 평생을 함께하고자 하는 확신이 들었을 때 혼인하는 게 이상적인 순서일 텐데.
다짜고짜 결혼부터 약속하고 서로를 알아 가는 과정은 처음이라 어떠한 일에 부닥칠 때마다 쉽게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날 밤 또한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들었으니까.
‘나도 나를 모르겠는걸.’
카에드와 입을 맞추는 건 또 싫지 않은데….
흐리멍덩해진 시야에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두 손을 들어 올려 세라엘의 뺨을 붙잡고, 좀 더 가까워지는 모습.
그와 동시에 부드럽고 축축한 무언가가 세라엘의 목에 닿았다.
상상이 아니라 현실감이 느껴지는 감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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