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29)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29화(29/150)
“……!”
소스라치게 놀란 세라엘이 목덜미에 손을 짚고 카에드를 돌아봤다.
그가 기울였던 상체를 물리며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대공님…. 혹시 방금 제 목에 뽀뽀하신 거예요?”
“애정 표현입니다.”
뻔뻔한 대답에 세라엘의 잇새로 헛웃음이 삐져나왔다.
“예고 좀 하고 다가오시면 안 될까요? 아까도 그렇고 정말 깜짝 놀란단 말이에요.”
“세라엘 양이 나를 봐주지 않으니까 그런 겁니다.”
“사람이 생각하느라 못 들을 수도 있지, 그럼 그때마다 저한테 뽀뽀할 거예요?”
“하면 안 됩니까? 머지않아 결혼도 할 사인데.”
결혼식 전에도 이러면 그 후에는 예고 없이 뭘 하려나.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잃은 세라엘의 어깨 위로 카에드가 제 뺨을 살짝 기댔다. 멋대로 사람을 들쑤셔 놓고도 천연덕스러운 기색이었다.
황당함도 잠시, 그녀는 체격이 배로 큰 남자가 은근히 치대는 모습을 보자 뱃속에서 간지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살갗에 스치는 그의 매끄러운 머리칼을 한번 만져 보고 싶다는 이상야릇한 충동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세라엘 양에게 줄 선물이 있습니다.”
기분이 좋은 듯 카에드의 목소리가 나른하게 풀어져 있었다.
선물을 주겠다는 말에 세라엘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한테요? 정말요?”
“받아 줬으면 좋겠는데. 이따 내 침실로 올래요?”
“…제 선물이 대공님 침실에 있는 거예요?”
귀를 잘 기울여야만 알아챌 수 있는 희미한 긴장감이 세라엘의 음성에 묻어 있었다.
굳이 청각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그 떨림을 모조리 알아챈 카에드가 남몰래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녀가 해사하게 웃는 모습도 보기 좋지만, 흠칫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이 미묘하게 중독적이라 자꾸만 허를 찌르고 싶었다.
카에드는 자신에게 이런 악취미적인 면모가 있었다는 것이 이상하리만큼 즐거웠다.
“그건 아닙니다. 선물은 밤늦게 도착할 예정인데, 세라엘 양과 그때까지 같이 있고 싶어서요.”
“아….”
“마저 할 대화도 있고. 안 되겠습니까?”
회유하는 그의 말투가 어쩐지 내밀한 뜻을 머금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눈을 깜박이던 세라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성인식이 끝나면 함께 돌아가면 되겠네요.”
“한시라도 빨리 단둘이 있고 싶습니다.”
“아, 그, 좀…. 다들 보고 있는데 너무 붙지 마세요.”
“둘만 있을 땐 이래도 괜찮습니까?”
세라엘을 품으로 끌어당긴 그는 그녀의 동그란 머리통에 짧게 입맞춤했다.
둘만 있을 땐 이렇게 해도 되냐고 물으면서 남들 다 있을 때 하는 건 웬 모순일까.
당황한 세라엘이 팔꿈치로 슬쩍 그를 밀어내며 화제를 돌렸다.
“선물이라는 건 어떤 거예요? 뭔지 궁금해요.”
“이따가 직접 보십시오. 분명 마음에 들 겁니다.”
“힌트라도 좀 주세요.”
“글쎄, 렉터도 좋아할 만한 선물 정도가 되겠네요.”
그게 뭐지? 감 잡을 수 없는 힌트에 세라엘이 턱을 갸웃거렸다.
막연히 꽃이나 여인이 착용할 물품을 생각했는데, 렉터가 껴 있는 이상 그건 절대 아닐 터였다.
‘어, 설마. 혹시…?’
언뜻 스치는 예감에 세라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카에드를 올려다봤다.
선물을 받을 사람이 카에드라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그의 얼굴엔 기대감이 어려 있었다.
별안간 렉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성큼성큼 층계를 내려간 렉터는 단상 앞에 떡하니 서서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콜 형의 성인식을 이렇게 지루한 마무리로 끝낼 수는 없어요. 역시 성인식의 묘미는 치고받는 격투가 아닐까요?”
“그렇지. 다치는 인간이 여럿이어야 제대로 된 성인식이지.”
어느 틈에 렉터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콜이 신이 나서 주먹을 쳐들었다.
다른 남자들도 크게 동조하며 발을 쿵쿵 굴렀다.
“누구랑 싸우고 싶은데?”
육포를 뜯어 먹던 악셀이 성의 없이 물었다.
그를 본 렉터가 송곳니를 드러냈다.
“너, 이 새끼야.”
느닷없는 반말과 욕설, 결투 신청에 악셀이 동작을 멈췄다. 항상 장난스럽게 휘어 있던 그의 눈썹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렉터는 싸늘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놀리고 장난치는 너를 마음껏 패 보고 싶어.”
악셀이 짓씹던 육포를 내던지고 몸을 일으켰다.
“이 자식이. 형 소리는 어디다 갖다 치웠냐?”
“너 같으면 쓰고 싶겠냐? 어제도 내 침대에 방울뱀을 풀어놓은 사람이 너지? 내려와. 손가락을 분질러 줄 테니까.”
“이게 진짜.”
가라앉았던 공기가 고조되며 악셀이 성큼성큼 계단을 내려갔다.
‘말려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만 오가는 눈빛이 흥미로워서 세라엘은 다음 일어날 일을 기대하며 앉아 있었다.
가장 막내인 두 사람은 나이 차가 크지 않아 자주 부딪혔다고 들었다.
쌍방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유달리 장난꾸러기인 악셀 때문에 렉터가 고역을 치른 수준에 가까웠다.
뜻밖의 흥미진진한 볼거리에 주변이 금세 시끄러워졌다.
“이날만을 기다려 왔지.”
격투는 악셀이 단상 아래로 내려오자마자 시작되었다.
“명분 없이 형아를 두들겨 팰 수 있는 날을!”
렉터가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로 악셀의 얼굴을 향해 발차기를 시도했다.
기겁한 악셀이 다급히 몸을 측면으로 돌려 회피했다.
“미친 자식이!”
날랜 맹수처럼 자세를 되잡은 악셀이 주먹을 날렸다.
“이다음은 생각 안 해 봤냐? 너 나 오래 안 보고 싶어?”
“헛소리하지 마! 그러는 형은 날 오래 보고 싶어서 이불 속에다 뱀을 처넣어 놓냐?”
렉터가 박치기하자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가 왈칵 터져 나왔다.
그에 굴하지 않고 악셀은 주먹을 쳐들어 렉터의 관자놀이를 가격했다.
묵직한 파열음이 터지면서 세라엘은 한쪽 눈을 질끈 감았다.
“얼굴에 흉은 내지 않는 게 좋을 텐데.”
점점 늘어나는 그들의 상처를 보며 카에드가 뇌까렸다.
“누구를 말하는 거예요?”
“렉터 말입니다. 그나저나 저 두 사람, 끝을 보려면 몇 시간은 걸릴 텐데 괜찮겠어요?”
시선이 엎치락뒤치락 싸우고 있는 렉터와 악셀에게 향했다.
지치지도 않는지 주먹과 다리를 이용해 서로를 살벌하게 때리고 있었다.
도저히 우세를 알 수 없어 카에드 말마따나 언제 끝날지도 의문이었다.
“끝까지 보지 않고 성으로 돌아가도 되는 거예요?”
“세라엘 양이 원한다면요.”
“이대로 가 버리면 아이들이 서운해할까 봐서요. 제가 행사에 참여하길 다들 고대했잖아요.”
“정식 결투는 아니니까 중간에 빠져도 이해해 줄 겁니다.”
세라엘은 눈을 막 얻어맞은 렉터를 안쓰러운 눈으로 보았다.
‘렉터가 꼭 이겼으면.’
들리지 않을 응원을 보내며 그녀가 카에드와 눈을 맞췄다.
“그럼 지금 돌아가요.”
카에드는 기다렸다는 것처럼 손을 내뻗더니 세라엘을 일으켰다.
시끌벅적한 공기를 뚫고 두 사람은 걸음을 옮겼다.
성을 막 떠났을 때만 해도 어스레하던 빛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어느덧 사위에 어둠이 깃든 밤이 되었다.
그와 함께 마차에 올라 대공성으로, 그의 침실로 돌아가는 길.
세라엘의 마음속은 쉽사리 진정하지 못하고 물 밖에 나온 물고기처럼 쉴 새 없이 퍼떡였다.
***
“앗. 세라엘 아가씨.”
세라엘이 본성 내부로 들어오자마자 하녀 한 명이 들뜬 표정으로 다가왔다.
“본성으로 돌아오셨군요. 잘 다녀오셨어요? 때마침….”
종알거리며 말을 잇던 하녀는 뒤따라 들어온 카에드를 보고 얼른 허리를 숙였다.
“다녀오셨어요, 영주님.”
세라엘을 위해 문을 열어 주었다가 뒤늦게 들어온 그를 바로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계속 얘기해 보렴. 무슨 일이니?”
“다름이 아니고, 저어…. 아가씨께서 입주하기로 하셨던 3층 침실이 마침 준비되어서요.”
“벌써?”
그의 제안에 따라 조만간 세라엘도 본성으로 합가할 예정이었다.
지낼 예정인 침실은 공사 중이라 했으니 이사도 며칠 남았을 줄 알았다.
“입주 준비까지 끝났단 말이니?”
“네. 짐이 아직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오늘부터 당장 사용하셔도 무리 없을 정도예요.”
카에드 앞에선 쉽게 긴장하던 하녀가 지금은 어찌나 흥분했는지 생글생글 웃는 낯빛을 감추지 못했다.
“아가씨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어여쁜 침실이에요. 베일리 부인께서 직접 인테리어를 손보셨거든요.”
“그래? 어떻게 꾸며졌을지 어서 보고 싶은걸.”
“아마 대공성에서 가장 밝고 사랑스러운 방일 거예요. 오신 김에 구경해 보시겠어요?”
“음…. 구경하고 싶기는 한데.”
세라엘이 기대하는 눈으로 카에드를 올려다보았다.
이제부터 그녀만의 개인적인 공간이 될 침실이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했다.
목 아래 크라바트를 아래로 잡아 빼던 카에드가 흔쾌히 끄덕여 보였다.
“다녀와요. 먼저 씻고 있겠습니다.”
“네에. 그럼 이따 봐요.”
위층으로 올라가는 층계는 두 갈래로 나누어져 있었다.
카에드는 오른쪽 계단을 통해 2층의 제 침실로 향했고, 세라엘은 하녀를 따라 3층으로 올라갔다.
하녀는 세라엘이 보지 못하는 각도로 고개를 튼 채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두 분이 또…!’
요즘 하녀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구절이었다.
두 분이 또 하셨대, 두 분이 또 하실 거래, 두 분이 또!
하녀는 흥분한 안색을 걷어치우고 상냥하게 웃어 보였다.
“콜의 성인식은 즐거우셨어요? 저도 초대받았지만 가지 못했어요.”
“재미있더라. 너는 왜 안 왔니?”
“피가 많이 튈 거라고 렉터가 충고해 주더라고요. 그 얘길 듣고 저는 물론 선뜻 나서는 사용인은 없었어요.”
“그랬구나. 그래도 왔으면 좋았을 텐데.”
“렉터의 성인식에는 꼭 가려고요. 그 애는 참 상냥해요. 배려심도 있고, 착하고.”
“렉터를 좋아하니?”
툭 던진 물음에 하녀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아니에요, 아가씨. 그래도 여자 사용인 중에 렉터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렉터는 이미 마음속에 품은 여자가 있는 눈치지만요.”
“정말? 그게 누군데?”
“음, 이름이 뭐랬더라…. 록사였던 것 같아요.”
“처음 듣는 이름인걸.”
3층에 다다른 그들은 침실을 향해 걸었다.
“아무튼, 영주님께서 주최하신 행사에 저 같은 사용인도 거리낌 없이 초대받을 수 있다니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래요. 영주님이 자리를 잡으신 후에 여기서 일하게 되어 저도 영광이에요.”
“말조심해.”
“…앗, 주제넘게 죄송합니다.”
“그게 아니라, 선대 공작을 흉보는 듯한 말을 입 밖에 함부로 내어선 안 되잖아. 나쁜 사람의 귀에 들어가면 대공님이 곤란해질 수도 있어. 나도 네 말에 동의하는 바야.”
“네, 아가씨….”
이런저런 대화를 하는 사이에 세라엘의 새 침실 앞에 도착했다.
“벽에 단열 처리를 하는 공사였는데 예정보다 빨리 끝났다고 해요. 아가씨께 일찍 보여 드릴 수 있어 다행이에요.”
아가씨도 하루라도 일찍 대공님 곁에 있고 싶으실 테니까….
하녀가 못다 한 수줍은 말을 삼켜 냈다.
호두나무로 만들어진 진갈색 문을 열어젖히자 노란 조명이 은은하게 빛나는 깔끔한 침실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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