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3)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3화(3/150)
일곱의 거한이 뿜어내는 살기보다 더욱 큰 존재감을 가진 남자였다. 누가 보아도 도적단의 수장이 틀림없었다.
부하들이 고기를 마구 뜯어 먹고 있는데 남자는 음식에 손도 대지 않은 상태였다.
널찍한 어깨를 비스듬히 세운 채, 그저 느긋하게 앉아 와인만 홀짝일 뿐이었다. 마치 마음에 드는 먹이를 차분히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홀로 마음껏 포식할 수 있는….
도무지 무시할 수 없는 분위기를 보자 세라엘의 머릿속에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초면인데 초면이 아닌 것 같은 이 느낌은 뭘까.’
심지어 원작에서 벌레 죽이듯 살인을 일삼으며 끝없이 파멸하던 남자 주인공인 것 같은 느낌.
‘아닐 거야. 수틀리면 살인하는 남자가 내 눈앞에 앉아 있을 리가 없어.’
원작에서, 포로가 자신을 노려봤다는 이유로 눈을 도려내고 온몸을 도륙하여 수용소 앞에 매달아 놓은 건 독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일화였다.
남자는 새빨간 포도주로 조용히 목을 축이면서 세라엘을 주시했다.
쉽사리 감정을 읽어 낼 수 없는 금안이었다.
‘…맞나? 나 저 남자 이마에 반지까지 떨어뜨렸는데.’
벌써 손목 두 짝을 잃은 듯한 느낌에 아찔해진 세라엘이 몸을 휘청였다.
“왔느냐? 어서 앉아라.”
그녀를 본 밀로즈 후작이 반색하며 남자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요즘 들어 자주 보는 부친의 미소에 어색해할 겨를도 없었다. 테이블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자 하인이 의자를 빼 주었다.
점점 가까워지는 먹이를 지켜보듯 남자의 금색 눈동자가 세라엘을 따라왔다.
착석하고 그와 눈높이가 비슷해지자 세라엘의 심장이 세차게 뛰어댔다.
가까이서 보니 시선을 강제로 콱 잡아끄는 외모를 가진 남자였다.
막 사냥을 다녀온 듯 조금 흐트러진 흑발과 최정상에서 군림하는 포식자의 것처럼 반짝이는 금안. 그 아래로 곧게 뻗은 콧날과 선홍빛을 띠는 입술.
날렵하게 다듬어진 턱선은 귀밑에서 뚜렷한 직각으로 마무리되어 무척이나 남자다웠다.
오차 없이 완벽한 비율로 배치된 이목구비 또한 기막히게 매혹적이었다.
세라엘은 현대 의학이 판치는 전생에서도 이런 용모는 본 적 없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건장한 몸이었다. 남자는 의자가 하찮아 보일 만큼 넓게 벌어진 어깨와 근육으로 균형 잡힌 체격을 갖고 있었다.
보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 남자의 두툼한 옆통이 눈에 띄었다.
기분이 막 이상해지는… 그런 몸이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가슴속이 괜히 간지러워지자 세라엘은 남자를 관찰하던 눈을 얼른 허공 어딘가로 돌렸다.
“제 하나뿐인 여식, 세라엘입니다. 어미를 쏙 빼닮아 아름답기로 유명하지요.”
이어 후작은 과하게 꾸며 낸 손동작으로 남자를 추앙했다.
“이분은 블카노프 대공 전하시다. 멀리 북부 지역에서부터 방문해 주신 귀한 분이니 깍듯하게 대접하여라.”
…블카노프?
삐질 진땀을 흘린 세라엘이 다시 동글동글한 눈동자를 굴려 남자를 보았다.
거칠고 위태로운 기운이 눈 튀어나오게 잘생긴 그의 외면을 둘러싸고 있었다.
‘어쩐지 묘한 기시감이 들더라니.’
노파심이길 바랐건만 원작의 주인공, 카에드 블카노프가 틀림없었다.
‘북부에 계실 분이 어쩐 일로 이런 외딴 중부 지방에 오게 됐을까? 그것도 한 무리의 도적단까지 이끌고.’
내뱉지 못한 의혹이 혀끝에서 방황했다. 이리저리 뒤엉킨 잡념을 멀리 밀어 놓고 세라엘은 예를 표하며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밀로즈 후작가의 세라엘, 대공 전하를 알현하게 되어 영광이에요.”
남자의 짙은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음? 잠깐만.’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블카노프 ‘대공’이라니. 그런 설정이 있었나? 내가 알던 내용이랑 좀 다른데…?’
자신이 말해 놓고도 어색한 어감이었다.
세라엘이 어여쁜 벽안을 동그랗게 뜨고 남자를 유심히 살펴봤다. 그러자 남자는 피식 웃으며 포도주 잔을 내려놓았다.
“의아한 표정이군요.”
그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주의를 잡아끄는 저음이었다. 높낮이의 변화가 적고 발음이 분명하여 어쩐지 정 없게 들리는 서늘한 음성이기도 했다.
세라엘은 모든 신경을 곤두세운 채 남자에게 집중했다.
“대공 같은 고상한 작위보다 도적 따위가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까?”
남자가 한쪽 입가를 끌어 올리며 조소를 흘렸다. 일순 육식 동물 앞에 선 토끼처럼 하찮아진 세라엘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러나 좀 더 솔직한 반응이 수면 위로 둥실 올라왔다.
‘대공보다 도적이 더 어울리냐고?’
거울을 하나 구해다 남자 앞에 놓아주고 싶었다.
얼굴이 너무 잘나서 그렇지 누가 봐도 도적단의 수장인데, 제국에서 황제만큼이나 드높은 위치에 있을 거라 예상했겠는가.
‘심지어 원작에서는 엄청난 규모의 도적단을 호령하던 남자였잖아.’
그래서 세라엘은 자기도 모르게 대답했다.
“네.”
한숨처럼 작은 음성이었으나 얼음장 같은 정적이 찾아왔다. 세라엘은 모든 이목이 자신에게 쏟아짐을 느꼈다.
고기를 뜯어 먹던 부하들까지 동작을 멈추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우두머리에게 실수하는 자의 목덜미를 저 사슴 고기처럼 물어뜯어 버릴 수도 있는 짐승들. 아니, 남자들.
세라엘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래서 기지를 발휘했다.
“네. …에?”
대답을 끝내지 않은 척, 목소리를 이으면서 말꼬리를 올렸다.
‘자연스러웠어. 마치 되묻는 것처럼 들렸을 거야.’
자신을 위로하며 세라엘이 눈을 질끈 감았다.
블카노프 대공은 낮은 바람을 흩뜨리며 웃었다. 그가 웃자 바늘 끝 같던 공기가 조금 풀어지면서 모두 멋쩍게 따라 웃었다.
그것도 잠시였다.
“도적 맞습니다.”
남자가 딱 잘라 말했다.
“네에…?”
세라엘은 의도치 않게 조금 전과 같은 목소리를 반복했다. 맹수가 으르렁거리듯 남자가 느릿하게 말을 내뱉었다.
“타인의 사재를 강탈하고, 내키면 죽이고, 부녀자도 납치하고.”
무자비한 행위를 나열하는 저음에서 섬뜩함이 느껴졌다.
“황폐한 북부 변경에서 생존하다 보니 불가피한 일이더군요.”
남자가 산뜻하게 내어놓은 말을 끝으로 숨이 멎을 듯한 적막이 흘렀다.
그것 또한 잠시뿐이었다.
“농담입니다.”
“…….”
“그런 너저분한 도적질에는 흥미 없으니 표정 푸십시오.”
남자가 적색의 포도주를 여유 있게 들이켜자 툭 튀어나온 목울대가 울렁였다.
분위기를 멋대로 들쑤셔 놓고 몹시도 태연하고 느긋한 태도였다.
카에드의 부하들은 눈빛을 주고받으며 낄낄거렸지만, 세라엘은 조금도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 표정으로 농담하면 아무도 안 믿어.’
세라엘은 조급히 와인을 마셨다.
줄곧 남자의 눈치만 살피던 밀로즈 후작이 세라엘을 보며 꾸짖었다.
“이 무지한 것. 수 세기 전에 개국 공신의 영웅으로 칭송되었던 초대 블카노프 공작님을 모르느냐?”
대단하신 가문의 내력을 읊은 후작은 당장에 혀를 찰 기세를 띠었다.
“제국인이라면 그분의 명맥을 이은 블카노프 가문을 몰라서는 안 된다.”
“아, 네….”
“여기 앉아 계신 카에드 님께서는 현재 유일한 블카노프로서, 그 존엄하신 가문을 홀로 이끌게 되셨지.”
카에드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애쓰면서도 후작은 넌지시 말을 이었다.
“몇 년 전 가문에 생긴 변고로… 흠흠. 공작위를 승계받으셨기 때문이다.”
“……?”
“대공님께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양자였으니 작위를 받기가 다소 어려웠지. 그러니 변고라기보다 되레 잘된 일이라 할 수 있겠군. 어이쿠, 이거 선대 가주에게 실례인 발언이구먼.”
후작은 인위적으로 입을 가리며 남자의 안색을 살폈다. 비위를 맞추려고 일부러 흘린 실언이 분명했다.
“골치였던 국경 야만인을 성공적으로 박멸하신 공까지 세우신 분이다. 황제께서 북부의 실권을 맡기시며 대공 작위로 승격하신 게지.”
쏟아지는 정보는 세라엘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원작의 카에드는 블카노프 가문에 입양된 양자로서 어떠한 작위도 세습 받지 못했다.
공작이 되었다는 건 금시초문이었다.
‘가능한 일인가? 그럼 양아버지였던 공작과 줄줄이 딸린 아들들은 어떻게 됐지?’
나아가 대공 작위로 승격된 사실은 더더욱 놀라웠다. 분명 뒤틀린 설정이었다.
침묵이 더 길어지기 전에 세라엘은 카에드를 향해 겸손하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대공님, 제 무지를 용서해 주세요. 아카데미에 가지 못함은 물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가정 교사도 없었답니다.”
카에드는 글라스를 부드럽게 흔들며 말없이 세라엘을 응시했다.
모두 사실이었다. 밀로즈 후작은 여자가 무슨 학문이냐며 일찌감치 서재의 책까지 팔아 치운 인간이다.
어린 세라엘에게 살아생전 글을 가르쳐 주고 아카데미에서 배웠던 지식도 알려 준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일자무식한 까막눈으로 자랐을 거다.
“역사나 정치사를 속속들이 알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에요.”
세라엘이 아버지를 보며 싱긋 미소 지었다. 예리한 사람이라면 원망이 담겨 있는 걸 알아차릴 만큼 날을 세운 미소였다.
그녀는 가만히 자신을 지켜보는 카에드에게 다시 눈을 돌렸다.
“대공님께서 가문을 이끌고 계시다니 참으로 인상적이네요. 그것도 하나뿐인 가문원이시라니요.”
유일무이하다는 형용사가 이질적이었다.
그녀는 원작을 되짚어 보았다. 출신이 불명확한 양자라는 이유로 카에드를 핍박했던 블카노프 구성원들. 그들은 다 어디로 가고 카에드만 남았다는 걸까?
“하지만 하다못해 같은 가문의 친척이라도 있어야….”
세라엘이 우뚝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생각을 읽어 낸 카에드는 천천히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위험한 생김새와 달리 의외로 웃음이 많은 남자였다. 그저 섬뜩하게 느껴진다는 것이 문제였다.
“모두 죽었습니다.”
카에드는 웃음만큼이나 소름 끼치는 답을 내놓았다.
‘었’이 틀림없이 ‘였’으로 들렸다.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었’이었을 거야.’
세라엘은 잘못 들은 척 자기 뇌를 조작하며 와인을 꼴깍꼴깍 마셨다. 알코올의 힘을 빌려야만 이 숨 막히는 상황을 감내할 수 있었다.
“대공님. 혹 후사 관련하여 걱정은 없으십니까? 아직 미혼이시니 노파심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밀로즈 후작이 음침하게 웃으며 카에드를 떠보았다.
“역시 대공님의 역사를 계승할 2세가 있어야 할 텐데요. 최근 들어 황실의 간섭도 있으니 말이죠….”
주저하면서도 후작은 쉬지 않고 나불댔다.
“이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저희 집안이라면 평판이 높고 나름대로 넉넉합니다. 그러므로 바라는 것도 많지 않고….”
그윽하게 자신을 향하는 아버지의 눈길에 세라엘이 경악하여 눈에 쌍심지를 켰다.
‘이 아저씨가 미쳤나 봐. 정말로 날 팔아넘기려는 속셈이야?’
카에드는 검붉은 포도주를 들이켰다.
그대로 후작의 헛소리를 무시할 줄 알았더니만 고저 없는 저음이 말문을 열었다.
“후사 걱정 따위는 안 합니다만.”
무표정임에도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남자의 입에서 귀를 의심하는 말이 흘러나왔다.
“결혼이라면 계획에 있습니다.”
그 뜬금없는 대답에, 후작을 노려보던 세라엘이 흠칫 당황하여 경직했다.
‘결혼 계획…? 카에드가?’
머리 위로 물음표가 솟아올랐다.
‘누구랑?’
황금을 녹인 듯한 남자의 눈동자가 어떠한 반응을 기대하는 것처럼 미묘한 빛을 띠었다.
세라엘은 동요하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 후들대는 손으로 와인 잔을 집었다.
포도주를 모조리 들이마신 후 기나긴 숨을 몰아쉬었다. 그런데도 진정이 되지 않아 텅 빈 글라스를 놓지 않고 만지작거렸다.
별것 아닌 행동인데 예사롭지 않은 시선들이 꽂히는 게 느껴졌다.
‘다들 왜 쳐다보는 거지?’
카에드는 팔을 상 위에 기댄 채 기다란 손가락으로 제 입술을 쓸며, 재미있다는 듯 픽 웃었다.
“영애께서 적잖이 당황하셨나 보네요. 나 같은 남자는 결혼과 거리가 멀어 보입니까?”
“그, 그렇지 않아요. 제가 어찌 그런 무례를….”
“그저 본인 술잔도 구분 못 할 만큼 황망히 행동하시기에.”
나지막한 목소리가 세라엘이 손에 꼭 쥔 잔을 가리켰다.
그녀의 고운 손안에는 카에드가 끊임없이 입술을 댔던 술잔이 야무지게 자리하고 있었다.
입구가 립스틱으로 붉게 물든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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