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32)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32화(32/150)
“……!”
루시가 뻔히 보고 있는데…!
스스럼없는 접촉에 당황한 세라엘이 황망히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
조금 전까지 이것보다 더한 행위를 하다가 오긴 했지만 보는 눈이 있다면 얘기가 또 달랐다.
난데없는 애정 행각을 목격한 루시가 눈을 크게 떴다.
‘내가 북부에 도착하자마자 뽀뽀하는 장면을 보여 주다니!’
마지막으로 봤을 때 분명 두 사람 사이에는 서먹하고 어색한 공기가 감돌았다.
시간이 좀 흘렀다지만 지금은 마치 갓 연애를 시작한 연인처럼 풋풋하기 그지없었다.
특히 날붙이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던 남자가 귀여운 애정 표현을 하는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내 착각이 아니라면….’
세라엘이 목 끝까지 오는 망토를 여밀 때 얼핏 루시의 시야에 걸린 건 낯부끄러운 울혈 자국이었다.
어떠한 행위가 오갔는지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흔적이었다.
‘두 분, 사이가 정말 좋으신가 봐.’
루시는 세라엘이 외간 남자와 낯선 곳으로 떠나는 일을 두고 얼마나 크게 번민했는지 알고 있었다.
호색한 늙은이를 피하고자 내린 결정이었으나, 절벽 끝에 몰려 어쩔 수 없이 고르게 된 선택지나 다름없었다.
‘메마른 땅에서 잘 지내실 수 있을지 걱정했었는데.’
지금 세라엘은 깡말랐던 몸에 보기 좋게 살이 약간 올랐고 얼굴색도 더욱 좋아 보였다.
그토록 바라던 아가씨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루시는 남몰래 감동의 눈물을 훌쩍였다.
그때, 안뜰 으슥한 곳에서 남자 여러 명이 존재를 드러냈다.
성인식 행사에 갔다가 돌아온 발켄족 남자들이었다.
“저기 봐. 두목이랑 누님이 또 입을 맞추고 있어.”
콜이 우렁찬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제 딴에는 성량을 낮춘 것 같은데 불행히도 세라엘이 있는 곳까지 다 들렸다.
“아까도 성인식 내내 붙어 있더니만 여기서도 뽀뽀하고 있네.”
“조용히 말해. 누님이 부끄러워하잖아.”
“볼 때마다 뽀뽀하고 있으니까 좀 괴롭다. 애인 없는 사람은 진짜 서러워서 살겠냐.”
“야야. 두목이 여기 본다. 죽기 싫으면 아까처럼 눈 깔고 못 본 척해.”
측근 6인은 하나 마나인 귓속말을 주고받으며 그들을 눈짓했다.
별안간 열 끄트머리에서 걷던 남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
악셀에게 호되게 얻어맞았는지 사방에 시퍼런 멍이 든 렉터였다.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연신 이쪽을 쳐다보았다.
정확히는 마차 앞에 선 루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숙소로 향하는 나머지 5명과 달리 렉터는 방향을 바꿔 세라엘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렉터, 어디 가냐.”
“아는 얼굴이 있어서. 형들 먼저 들어가.”
금세 가까워진 렉터는 상체를 슬쩍 숙이며 루시의 얼굴을 관찰했다.
“너 루시 아닌가? 맞지?”
뜬금없이 제 이름이 언급되자 루시 또한 놀란 눈치였다.
맞닥뜨린 두 사람을 세라엘은 몹시 흥미로운 눈으로 관망했다. 장난스럽게 미소 지으면서 카에드를 돌아보기도 했다.
“네, 맞는데요….”
“우와. 진짜 루시야? 네가 북부엔 무슨 일이야? 너무 반가워. 잠깐 세라엘 님을 보러 온 거야?”
“아니… 앞으로 계속 여기서 지낼 거예요.”
“정말? 잘됐다. 네가 보고 싶, 흠흠. 어떻게 지내는지 늘 궁금했었거든.”
“근데 누구세요…?”
“응?”
루시는 약간 경계하는 눈빛으로 렉터를 올려다보았다. 격한 결투 때문에 눈탱이 밤탱이가 된 그를 쉽사리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꼴이 이래서 기억을 못 하는구나. 나야. 네가 그날 밤 음식 바구니도 전해 줬었잖아.”
그러고 보니 렉터와 루시는 둘만의 시간을 가진 적이 있었다.
바로 세라엘이 루시를 통해 그에게 음식 바구니를 전해 주었을 때였다.
그때 두 사람은 짤막하게나마 대화를 나누면서 말까지 놓기로 약속했었다.
“기억 안 나? 앉아서 같이 빵도 나눠 먹었는데.”
“헉. 너 렉터구나.”
“이제 알아보는 거야?”
“너 몰골이… 아니, 얼굴이 왜 그러니?”
“악셀 형이랑 결투해서 얻어맞았어. 내가 이겼으니까 오해하지 마. 그래도 네가 여기 있는 줄 알았으면 몸을 좀 사렸을 거야.”
“으응…. 결투에서 이겼다니 축하해.”
“이겼어도 그저 그랬는데 너한테 축하받으니까 기분 좋네.”
렉터가 씩 웃어 보였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는 루시에게 세라엘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루시, 짐도 있을 텐데 렉터한테 들어 달라고 하는 게 어떻겠니?”
“아, 짐은 별로 무겁진 않….”
“어머, 엄청나게 무거운가 보구나. 그럼 렉터, 네가 루시를 사용인의 숙소로 안내해 줄래?”
“물론이죠.”
“루시는 북부가 처음이라 궁금한 게 많을 거야. 앞으로 잘 부탁해.”
“그럼요. 목숨을 바쳐서 지킬게요.”
발켄족 남자들은 살벌하게 걸핏하면 목숨을 바친단다.
예상 밖의 선물을 받은 사람처럼 렉터 역시 즐거워 보였다.
“루시, 이쪽으로 와. 본성에서 사용인 숙소로 통하는 입구를 알려 줄게.”
그를 보며 잠깐 망설이던 루시가 세라엘의 손을 꼭 붙잡았다.
“아가씨를 만나게 돼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제가 하루빨리 이곳에 적응해서 아가씨를 보살펴 드릴게요.”
“무슨 소리야. 그런 건 걱정하지 마. 너는 이제 우리 식구잖아. 내가 잘 보살펴 줄게.”
“아가씨….”
“대공성이 마음에 들면 좋겠다. 외부는 귀신 나올 것처럼 생겼지만 여기엔 좋은 사람밖에 없거든.”
세라엘은 루시의 등을 떠밀었다.
“어서 가 봐.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나한테 와. 시녀장님께도 네 얘기를 해 놓을게.”
“감사해요, 아가씨. 그럼 짐도 풀 겸 먼저 들어가 볼게요.”
말을 끝마친 루시는 카에드를 향해 꾸벅 인사했다.
그러고는 벌써 짐까지 들고 기다리는 중인 렉터를 향해 총총 걸어갔다.
사용인 거처로 향해 걷는 둘의 뒷모습을 보며 세라엘이 두 손으로 제 뺨을 감쌌다.
“와아…. 루시가 대공성에 오다니 꿈만 같아요.”
“선물 얘길 했을 때 어느 정도 감 잡은 것 같던데. 아닌가요?”
“렉터도 좋아할 선물이라길래 혹시 루시는 아닌가 짐작했었어요. 저 둘, 첫 만남부터 서로에게 관심이 있어 보였거든요.”
세라엘은 푸른 눈을 반짝이며 카에드를 응시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정말 고마워요. 어떻게 보답해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별것 아니라는 듯 그는 한쪽 눈썹을 슬쩍 들어 올리며 미소 지었다.
보답이라는 단어에 그의 하복부가 바짝 당겨지는 느낌이었다.
“고맙긴.”
세라엘은 새삼 감명 깊은 눈으로 대공성 외부를 둘러보았다.
오늘 하루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콜이 성인식을 치르고, 영영 못 볼 줄 알았던 루시가 북부에 오고, 카에드와 대화를 나누다 그렇고 그런… 애정 행위도 하고.
“하루가 유독 길었네요. 어서 들어가서 쉬고 싶어요.”
첨탑으로 돌아가려면 마차를 타야 하나? 귀찮은데. 마침 본성의 침실이 마련되었으니 그곳에서 잘까?
“세라엘.”
뇌리에 떠오르는 대로 생각을 이어 가는데 돌연 길쭉한 인영이 세라엘의 뒤통수에 드리웠다.
뒤돌아 카에드를 보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는 더딘 속도로 팔을 뻗어 세라엘의 등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녀는 제 배 위에서 느릿하게 깍지 끼워지는 남자의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귓가에 고른 숨소리가 흩어졌다.
“그럼 자고 가요.”
“…네?”
장소를 가리키지 않는 문장은 오해를 살 수 있었다. 세라엘은 헛숨을 내쉬며 입술을 달싹였다.
“어디… 어디서요?”
“어디긴요.”
등 뒤에서 세라엘을 틈 없이 꼭 껴안은 카에드가 낮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속삭였다.
“오늘 내 침실에서 자고 갔으면 좋겠는데.”
방금 막 부하들이 낯부끄러운 소리를 하고 갔는데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제 한쪽 팔로도 충분히 감길 세라엘의 몸을 욕심껏 두 팔로 감싸며 품 안에 가뒀다.
그러곤 그녀의 목덜미에 녹녹한 열기가 스민 숨을 내쉬었다.
침실에서 나누다 만 행위가 못내 아쉬운 듯했다.
하지만 세라엘은 등허리를 감싸 안는 접촉보다 귀를 의심케 하는 제안이 더욱 당황스러웠다.
“대공님의 침실에서 자고 가라는 말씀이세요?”
“무리한 부탁입니까?”
이어진 반문이 답을 독촉했다.
“그건 아니지만… 저랑 뭘 하고 싶으신 건지 궁금해서요.”
세라엘은 머뭇대면서도 알고 싶은 바를 당돌하게 물었으나, 목소리에 밴 동요를 감출 수는 없었다.
재미있는 농담이라도 들은 양 카에드는 숨죽여 웃었다.
“몰라서 묻는 건가요?”
“아는데 에둘러서 물어보는 거예요.”
“흐음.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요구했다간 세라엘 양이 도망갈 것 같고.”
아리송한 말에 세라엘이 동그랗게 뜬 눈을 깜박였다.
‘하고 싶은 게 많다고?’
물론 그녀도 무지몽매한 바보가 아닌지라 남녀가 침대에서 나누는 행위쯤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손을 잡고, 입을 맞추는 애정 표현의 매듭은 결국 단 하나로 귀결되기 마련이었다.
그러니 침대 위에서 하고 싶은 행위도 단 하나뿐이어야 하는 거 아닌가?
어떻게 많을 수가 있지.
카에드의 머릿속에 들어찬 가지각색의 생각을 그녀가 알 턱이 없었다.
“왜 긴장을 하고 그래요. 오늘은 그저 같은 침대에서 잠들고 싶을 뿐입니다.”
“아….”
그는 세라엘의 배를 감싼 두 손에 슬쩍 힘을 주었다.
“내가 잠도 제대로 못 잔다고 걱정하지 않았어요? 당신이 옆에 있으면 불면증도 나아질 겁니다.”
조금은 뻔한 말장난에 세라엘이 옅은 웃음을 터뜨렸다.
“말도 안 돼. 장난치지 마세요.”
“못 믿겠으면 오늘 밤에 확인해 보든가요.”
원래 이렇게 집요한 남자였나 싶을 만큼 그는 포기할 마음이 없어 보였다.
실은 세라엘도 그와 한 침대에서 눈을 감는 일이 마냥 꺼려지지는 않았다.
그의 침실은 주인이 뻔히 있는데도 이상하게 공허하고 으스스한 기운이 감돌았다. 구김 하나 없는 시트가 펼쳐진 침대에선 연한 향기를 제외하고는 사람의 자취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카에드가 지독한 불면증이 있을 거라는 추측은 했지만, 사용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 침실을 보자 어쩐지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그가 어느 정도 선을 지킬 거란 믿음도 있었기에 세라엘은 재촉하듯 뺨에 입술을 대는 카에드에게 결국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일단 이 손 좀 놓아줘요.”
주먹을 그러쥔 세라엘이 꿈쩍도 하지 않는 그의 팔을 장난스럽게 콩콩 내려쳤다.
두 사람이 볼 때마다 입을 맞추고 있다는 수군거림과 탄식을 들은 직후라 주변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성인식에서도 다들 신경 안 쓰고 있는 줄 알았는데 모른 척하고 있었을 줄이야.’
지금은 자정이 넘은 시간, 볼 사람도 딱히 없을 테지만 어둠이 내려앉은 야외에서 진득하게 껴안고 있는 모습을 누가 목격한다면 너무 부끄러울 것 같았다.
“대공님, 빨리 이거 놔요. 누가 볼까 봐 신경 쓰여요.”
“세라엘 양의 냄새가 좋아서 계속 껴안고 싶습니다.”
“이따 침대에서 마음껏 안으면 되잖아요.”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 한 말이었지만 다른 방향으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 미묘한 어조였다.
카에드는 품에 가둔 여자를 스르르 놓아주었다.
세라엘이 반걸음 정도 물러서자 그가 저지하듯 손을 맞잡았다.
침대에서 마음껏 안아 달라니. 그녀가 무슨 뜻으로 뱉은 말인지 알면서도 듣기 참 좋은 소리였다.
카에드는 최고의 식재료를 선사 받은 요리사가 이걸 어떤 식으로 요리하면 좋을지 궁리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어떻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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