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33)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33화(33/150)
세라엘이 의도치 않게 뱉은 말에 감추고 있던 카에드의 시커먼 속내가 자극되면서 불쑥 수면 위로 올라왔다.
“듣고 계시는 거예요?”
세라엘은 말없이 자신을 내려다보고만 있는 그의 심중을 파악하려 눈매를 갸름하게 좁혔다.
“…듣고 있습니다.”
그녀가 마음을 바꿀까 봐 조바심이 든 카에드가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아프지는 않았으나 세라엘을 절대 놓지 않겠다는 일념이 비치는 악력이었다.
“날도 추우니 안으로 들어가는 게 좋겠군요.”
불건전한 소유욕이 그의 번듯한 얼굴 위로 드러나는 순간 그는 몸을 휙 돌려 앞장섰다.
곧 본성 내부로 들어선 두 사람은 말없이 너른 홀을 걸으며 2층으로 향했다.
길게 이어진 벽 조명에선 엷은 빛이 나와 어둑한 회랑을 비추었다.
두 사람을 위해 층을 비워 주겠다던 하녀의 말이 농담은 아니었던 듯, 2층에는 개미 새끼 하나 보이지 않았다.
주변이 어찌나 고요한지, 세라엘은 거세게 맥동하는 제 심장의 움직임이 곁에 선 그에게 들킬 것만 같았다.
뚜벅뚜벅 걸음 소리만이 울려 퍼지는 복도를 지나 카에드는 그의 침실로 통하는 목제 문을 끼익 열어젖혔다.
어두운 방 안에 보란 듯이 놓인 거대한 침대가 세라엘의 주의를 사로잡았다.
카에드는 입혀 주었던 망토를 세라엘의 몸에서 벗겨 냈다. 얇은 원피스 차림이 드러나자 그녀는 슬쩍 눈을 피했다.
아까부터 입고 있던 편한 옷인데도, 동침 아닌 동침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벌거벗은 듯한 착각이 일었다.
그는 미세하게 떨리는 세라엘의 손을 보더니 다시 시선을 올려 눈을 맞췄다.
“추우신 겁니까?”
“대공님 침실이 좀 서늘하긴 하지만… 추워서 떠는 건 아니에요.”
“긴장하고 있군요. 진정할 수 있게 따뜻한 차를 가져오라 명하겠습니다.”
“아뇨, 괜찮아요. 피곤하니 어서 자고 싶어요.”
어딘가 간질간질하면서도 애가 타는 느낌을 떨쳐 내려면 차라리 어서 침대에 누워 눈을 감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세라엘은 카에드를 내버려 둔 채 침대맡으로 다가가서 이불을 들쳤다.
얌전히 이불 속으로 들어가 베개에 머리를 대고 누운 그녀는 아직도 멀뚱히 서 있는 그를 올려다봤다. 그녀의 작은 손이 텅 빈 옆자리를 팡팡 두드렸다.
“누우세요.”
떨림이 그득 묻어나는 박력에 카에드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저벅저벅 다가온 그가 곧 세라엘 곁에 자리를 잡았다. 그새 익숙해진 그의 체취가 잔뜩 곤두세워진 감각을 통해 느껴졌다.
세라엘은 턱 밑까지 이불을 끌어당긴 채 눈동자만 굴려 천장을 바라보았다.
‘오늘이 꼭 첫날밤처럼 느껴져.’
아까 목욕을 마친 후 그의 침실로 향할 때였나.
첫날밤을 보내러 가는 듯한 기분에 괜히 호흡이 불안정해지고 가슴속이 멋대로 퍼떡였었다.
정작 초야에 의례 행해져야 할 행위는 하지 않을 예정이긴 해도 오늘은 두 사람이 처음으로 보내는 밤이었다.
카에드에게 호기롭게 이리 와서 누우라고 하긴 했지만, 함께 눕고 보니 더더욱 진정되지 않았다.
나란히 천장을 보고 누운 모양새가 어색할 것 같아서 세라엘은 반대쪽으로 돌아누워 상체를 둥글게 굽혔다.
헛된 예상이었다. 곧장 몸을 겹쳐 온 카에드는 단단한 팔로 세라엘의 등을 끌어안아 제 가슴팍 가까이 맞붙였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조금씩 손을 움직이면서 그녀의 배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원피스의 얄팍한 옷감 위로 느껴지는 끈적한 손길은 금세라도 어딘가를 침범할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느껴졌다.
참다못한 세라엘이 입을 열었다.
“대공님.”
“…….”
“대공님?”
“말하지 말고 얼른 자요.”
“그게 아니라, 자꾸 만지면 제가 어떻게 잠들 수 있겠어요….”
볼멘소리로 칭얼거렸는데도 카에드는 피식 웃더니 쉬지 않고 손을 놀렸다.
침대 위에서 그가 가만 내버려 둘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세라엘은 반쯤 포기하고서 그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실은 상체의 절반 가까이 차지한 큼직한 손이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는 감촉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어서 자라는 듯 간간이 도닥여 주는 움직임도 제법 괜찮았다. 그녀의 등을 안정감 있게 감싼 품도, 따뜻하고 포근한 체온도 마찬가지였다.
불평을 건넸던 게 무색하게도 그녀의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졌다.
등 뒤에서 카에드가 음미했을 상상을 조금도 알아채지 못한 세라엘은 오묘한 무기력감에 서서히 잠식되어갔다.
‘…기분 좋아. 계속 만져 줬으면 좋겠어.’
문득 그런 감상이 돋아났을 때쯤 세라엘의 눈이 감겼다.
줄곧 긴장감을 드러내며 펄떡거리던 그녀의 맥박이 고르게 변하고 숨소리에도 깊이감이 묻어났다.
그 무렵 카에드는 몸을 살짝 일으키고 잠든 세라엘의 옆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녀의 뒷덜미에 입술을 문질렀다.
잔머리가 보송보송 일어난 부분에 코를 파묻어 향긋한 체취를 들이마시고 입술에 닿는 살갗을 가볍게 빨았다.
경계하며 핀잔을 줄 때는 언제고 몇 번 만져 줬더니 금세 잠든 그녀가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흔들어 깨워서 지독하게 굴어 보고 싶기도 했다.
곤히 잠든 여자를 보고 이렇게까지 흥분하는 게 정상일 수가 있나?
그녀가 잠들기만을 기다린 답 없는 파렴치한이 된 것 같아 스스로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나 떠오른 생각과는 반대로 카에드는 세라엘의 어깨를 덮은 얄팍한 천을 팔뚝 아래로 슬며시 밀어 내렸다.
달빛을 내리받은 새하얀 살결을 손가락으로 조심스레 쓸었다. 목숨을 빼앗기만 해 봤던 억센 손으로 연모하는 여자의 말랑한 살을 만지려니 이상야릇한 기분이었다.
동시에 마음대로 헤집어 보고 싶은 가학적인 충동이 번졌다. 시시각각 변하는 제 이중적인 마음을 카에드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다.
언젠가 두 눈에 빠짐없이 담을 그녀의 몸은 얼마나 부드럽고 아름다울지.
도화지 같은 몸에 제 흔적을 실컷 그려 넣는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아릿했다.
며칠을 내리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다가 급작스레 오아시스를 발견한 사람처럼 갈증이 일고 이성이 회까닥 뒤집히는 기분이었다.
카에드는 드러난 세라엘의 어깨에 슬그머니 울혈을 아로새겼다.
자신이 잠든 와중에 그가 제 몸을 개처럼 할짝대고 있다는 걸 알 턱이 없는 세라엘이 살짝 꿈틀거렸다.
“으음….”
앓는 듯한 신음을 흘리며 몸을 움츠리는 그녀를 보자 카에드는 돌연 기시감이 일었다.
흑백뿐이던 지난 삶에서 유일하게 색채를 띤 순간이 있었다. 그때 두 사람은 지금과 같은 자세로 누워 체온을 공유하며 서로의 몸을 데워 주었다.
푹신한 침대 위가 아닌 버려진 낡은 헛간이었고, 감정의 싹을 틔우기도 어려웠던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피어난 감정과 붉게 물들여진 기억. 반복된 삶에서 카에드가 자신을 잃지 않게 붙잡아 준 유일한 원동력이었다.
“지나간 일은 되새기지 않고 그냥 묻어 놓고 싶어요.”
그러나 이미 흘러가 버린 일은 덮어 두자던 세라엘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공명했다.
‘묻어 둘 수 있을까.’
정황을 모를 테니 할 수 있는 말이었을 것이다.
카에드의 지난 삶에서 두 사람은 운명처럼 마주쳐 짧게나마 함께 시간을 공유했고, 기적처럼 이어진 지금의 인생에선 그녀를 곁에 두기 위해 수백의 사람을 베었노라고 모조리 털어놓고 싶었다.
그들을 끈끈하게 이어 주는 매개체나 다름없는 기억을 그가 어떻게 되새기지 않을 수가 있을까.
소용없는 고민을 끝으로 카에드는 그녀의 어깨에 짧게 키스했다.
세라엘이 해 달라는 건 뭐든 해 주고 싶었다. 고분고분 말을 잘 들어야 그에게도 마음을 열어 줄 테니까.
불쑥 피어오른 애틋한 마음이 그의 이성을 간신히 붙잡았다. 카에드는 뒤척이는 그녀를 달래듯 토닥이며 옷자락을 올려 주었다.
두꺼운 이불까지 덮어 주고서 사랑스럽기 짝이 없는 작은 몸을 다시금 끌어안는데 신기하게도 졸음이 몰려왔다.
정신이 나른하게 풀리면서 시야가 흐려지는 감각이 얼마 만이던가. 이렇게 기분 좋은 졸음은 두 번이나 거듭된 일생에서도 거의 느껴 본 적 없었다.
귓전에 새근새근 들려오는 소중한 숨소리를 자장가 삼으며 카에드 역시 천천히 눈을 감았다.
***
오전 햇빛이 눈가를 스쳤을 때 즈음 카에드는 잠에서 깨어났다.
느릿하게 상체를 일으킨 그는 익숙지 않은 몽롱한 감각에서 쉽사리 헤어나오지 못했다.
기나긴 밤 동안 단 한 번도 깨지 않고 수면을 취했다.
불규칙한 제 생체 리듬을 운운하며 세라엘에게 합가를 제안했을 땐 그저 핑계뿐이었는데, 그녀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마음 편히 잠들었을 줄은 그 자신도 몰랐다.
머리칼을 한번 쓸어올리며 카에드는 아직도 일어나지 않는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석상처럼 동작 그대로 굳고 말았다.
“……!”
언제였던가.
세라엘이 자신은 잠버릇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라는 투로 불평하던 모습이 섬광처럼 스쳤다.
특히 원피스 잠옷을 입고 자면 아침에 옷자락이 턱밑까지 올라가 있어 곤란하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녀의 말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간밤에 카에드가 덮어 주었던 이불은 몽땅 걷어차여 발치에서 뒹굴었고, 세라엘의 기다란 침의가 빗장뼈까지 말려 올라간 바람에 속옷 차림의 나신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다짜고짜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인내력 시험에 부닥친 카에드는 숨 쉬는 법도 잊은 채 세라엘의 눈부신 자태를 눈에 담았다.
“…….”
카에드의 심장이 빠르게 두근대며 박동의 간격을 좁혀 왔고 어떻게 손쓸 새도 없이 묘한 곳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의 벗은 몸이 얼마나 매력적일지 불순한 상상을 했던 게 고작 어젯밤 일이었다.
까마득한 미래에, 그것도 세라엘이 원할 때나 느지막이 볼 수 있겠다 싶었는데 오늘 아침 댓바람부터 감상하게 될 줄은 몰랐다.
호흡에 맞춰 오르내리는 늘씬한 배, 하얀 허벅지와 가느다란 발목까지 훑은 카에드의 눈이 거세게 요동쳤다.
어디에든 당장 입술을 문대고 싶은 충동이 봇물 터지듯 밀려들면서 잇새로 성긴 숨이 흘러나왔다.
‘안아 버릴까.’
본능이 악마처럼 달콤하게 속삭였다.
온몸의 피가 뒤끓으면서 원하는 바를 취하라며 미친 듯이 그를 부추겼다.
카에드는 지금 일생일대의 번민에 빠져 있었다.
한참 동안 미동이 없던 그가 마침내 세라엘의 몸 가까이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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