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34)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34화(34/150)
이 순간 세라엘이 눈을 뜬다면 영락없이 구제 불가능한 쓰레기로 보일 터이니 조심스럽고도 신속하게 행동해야 했다.
카에드는 그녀의 턱을 덮은 옷자락을 슬며시 쥐었다.
그러고는 아래로 천천히 끌어 내렸다.
그녀가 잠에서 깨어나지 않게 매우 신중하게 움직였다.
흰 침의가 가슴과 허리, 허벅지를 지나 종아리까지 덮고 나서야 카에드는 한숨을 내리 쉬었다.
“하아….”
그는 한 손으로 제 얼굴을 거칠게 문질렀다.
욕심대로라면 그녀와 매일 밤 같은 침대에서 잠들고 싶었지만, 이렇게 참을성을 시험하는 일이 자주 발생하는 건 원치 않았다.
세라엘을 만난 뒤로 자신을 제어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한 카에드는 성에 돌아오자마자 흥분도를 억제하는 효력이 있는 약을 구했다.
술에 타서 수시로 섭취하고는 있었으나 갈수록 효과가 미미한 느낌에 복용량을 늘렸고, 그 탓에 재고마저 조금씩 동이 나고 있었다.
약의 원재료는 국경 근처 가파른 설산에서만 자라는 희귀한 약초였다.
빠른 시일 내에 재고를 확보해서 복용에 차질이 없도록 해야 했다.
카에드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세라엘을 내려다보았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약을 코앞에 둔 그녀는 세상모르고 잠이 든 상태였다.
살짝 벌어진 입술과 규칙적으로 새어 나오는 숨소리, 나붓이 내리깐 속눈썹 하나하나가 사랑스러운 그녀는 무척이나 평온해 보였다.
그러나 조각조각 깨트려 버리고 싶은 평온함이기도 했다.
“빌어먹을.”
욕지거리를 내뱉은 카에드가 손을 뻗어 사이드 테이블을 뒤적였다.
보관해 두었던 약을 닥치는 대로 잡아 크리스털 잔에 털어 넣었다.
남은 분량을 고려하여 섭취하는 것이 현명했으나 당장이라도 터져 나올 욕구를 가라앉히는 게 우선이었다.
알코올이 함유된 액체와 함께 흡수해야 더욱 효력이 있었지만 급한 대로 물을 따랐다.
그는 약이 완전히 용해되기도 전에 잔을 비워 내고 세라엘을 등진 채 침대에 걸터앉았다.
아릿할 정도로 피가 쏠리는 느낌이 언제라도 한계치를 넘어 폭발할 듯 위태로웠으나 다행히 그 선에서 그쳤다.
약은 시도 때도 없이 반응하는 그의 몸을 완벽하게 통제할 순 없었지만, 한 줌의 이성이나마 잡아 주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보름달이 뜨는 밤이 또 문제였다.
발켄의 남자들은 작은 일에도 흥분하여 고삐 풀린 말처럼 날뛰고 피가 들끓기 일쑤였다.
외양은 변하지 않아도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피부 위에 아른거리고, 사람의 것일 수가 없는 안광이 어둠 속에서도 더욱 형형하게 번쩍였다.
이러한 변화를 그들은 늑대화라고 칭했다.
만월의 밤에 늑대화가 발동되면 평소 지니고 있던 감정이 몇 배로 부풀어 올랐다.
가령 사이가 좋지 않았던 상대와 눈이 마주친 것만으로도 격분하여 혈흔이 난무하는 다툼으로 번지기도 했고, 좋아하는 상대가 있다면 부푼 감정만큼이나 신체 어딘가도 크게 팽창하여 무슨 짓을 해도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늑대의 혈족에게 보름달이 뜨는 밤은 불가항력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쉽사리 진정시키지 못하는 그날에 세라엘의 벌거벗은 몸을 마주한다면….
그러잖아도 밑바닥에서 맴도는 인내가 이성을 잃은 카에드를 붙들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카에드와 측근들은 늑대화의 강도를 조절하는 데 숙련이 되어 있었으나, 최근 들어 그의 조절 능력은 이상하리만큼 바닥을 치고 있었다.
카에드는 굵은 핏줄이 돋은 제 팔뚝을 가만 내려다봤다.
‘쇠사슬로 묶어 놓아야 할까.’
본격적인 늑대화가 시작되면 억센 사슬도 장난감처럼 부서뜨릴 것 같았다.
결혼식이 끝나면 세라엘과 침실까지 합쳐 버릴 계획이었다. 같은 침대에서 평온하게 잠드는 꿈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확실한 대책을 세워 놓아야 하는데….
그가 이런저런 고뇌에 빠져 있는 동안 세라엘이 끄응 신음을 흘리며 뒤척였다.
카에드는 이 모든 번민의 원인인 여자를 향해 착잡한 시선을 던졌다.
무방비 상태로 꾸물거리는 그녀를 보자 잘 알지도 못하는 주기도문을 읊조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많은 사람이 성스러운 교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을 외다 보면 이 뿌리 깊은 욕망을 조금이나마 잠재울 수 있을까.
“대공님…?”
어느 틈에 잠에서 깨어난 세라엘이 느릿느릿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막 시야에 들어온 것은 묘한 표정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카에드였다.
“앉아서 뭐 하세요? 밤새웠어요?”
“방금 일어났습니다.”
“방금요?”
세라엘은 손등으로 눈을 비볐다.
“근데 왜 잠을 못 잔 사람처럼 안색이 창백하지. 내가 잘 못 봤나….”
반쯤 잠에 취한 그녀의 목소리가 몽롱하게 중얼거렸다.
지난밤 세라엘은 잔뜩 긴장했던 것이 우습게도 기절하듯 잠이 들어 버렸다.
가뜩이나 피로한 상태에서 향기롭고 따뜻한 그의 품에 안겨 쓰다듬을 당하고 있자니 도저히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저 이상한 꿈을 꿨어요.”
간밤을 복기한 세라엘이 멍한 눈으로 카에드를 올려다봤다.
“어떤 꿈이었습니까?”
“갑자기 늑대가 나타나서 제 어깨를 막 물어뜯고 핥는 꿈이었어요. 기분이 아주 이상했어요.”
“…아.”
“제가 도망치니까 짖으면서 쫓아오는 거예요. 뒤돌아봤더니 신이 나서 꼬리를 흔들고 있지 뭐예요. 동물과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지만, 정말 변태 같았어요.”
세라엘의 어깨가 축축해질 정도로 날름거리고 날카로운 이빨로 잘근잘근 물어뜯기까지 했던 검은 늑대.
번쩍이던 금색 눈동자가 카에드의 것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았다는 점이 인상 깊었으나 세라엘은 굳이 그 부분을 말하지는 않았다.
카에드는 피실 웃으면서 눈을 내리깔았다.
“많이 무서웠겠군요.”
“그냥 개꿈인걸요. 아니, 늑대 꿈이야.”
세라엘은 꼬인 혀로 더듬더듬 헛소리를 늘어놓으면서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러다 이불의 묵직함이 몸 위에서 느껴지지 않는 걸 깨닫고 짙푸른 눈을 크게 떴다.
그녀는 허둥지둥 윗몸을 일으켜 앉았다.
‘몸이 허전해…! 내가 이불을 또 발로 차 버렸나 봐.’
잠버릇이 얌전하지 않은 그녀는 이따금 침구를 차서 발치로 밀거나 침대 밖으로 떨어뜨렸다.
그때마다 어김없이 어수선한 옷차림으로 눈을 뜨곤 했으니, 카에드 앞에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였을까 봐 걱정되었던 거다.
세라엘은 제 옷자락을 훑었다.
예상대로 이불은 발치에 팽개쳐져 있었으나, 걱정했던 옷매무새는 손댈 필요도 없이 멀쩡했다.
‘다행이야. 하마터면 못 볼 꼴을 보여 줄 뻔했어.’
안심한 세라엘은 숨을 내리 쉬며 침대 헤드에 머리를 기댔다.
말없이 허둥대는 그녀를 지켜보던 카에드는 이불을 끌어다 그녀의 몸 위에 덮어 주었다.
“더 자요. 조금 있다가 깨워 드리겠습니다.”
“…아니에요. 지금 일어날래요.”
세라엘은 졸린 목소리로 고집스럽게 말하며 보드라운 침구를 밀어냈다.
아무리 졸려도 그를 눈앞에 두고 미적거리다 다시 잠들 수는 없었다.
지난번 열네 시간을 잤다는 이유로 환자 취급을 받은 기억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세라엘은 찌뿌둥한 어깻죽지를 주물렀다.
“대공님은 잘 잤어요?”
“세라엘 양이 잠결에 날 때리고 이불을 빼앗는 바람에 도저히 잠을 청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뜸 머리 위에 냉수를 맞은 것처럼 그녀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 정말요? 제가 잠결에 대공님을 팼다고요? 이불까지 빼앗아 갔어요?”
멀쩡한 옷차림으로 일어나 다행이다 싶었더니 정작 문제는 한밤중에 생긴 모양이었다.
그녀의 평상시 잠버릇을 고려해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세라엘이 아연실색하여 이마를 짚었다.
이렇게까지 큰 실수를 저지르다니 그를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농담입니다.”
카에드가 대수롭지 않게 말을 바꿨다.
볼을 발그스레하게 물들인 채 어떻게 사과해야 할지 고민하던 세라엘이 어리벙벙한 낯으로 입술을 벌렸다.
곧 원망 어린 눈초리로 카에드를 째려보았다.
이 남자가 아침부터 정말…!
“왜 그런 농담을 하시는 거예요? 진짜인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요.”
카에드는 입매를 슬쩍 추켜올렸다.
그는 입 밖으로 내놓을 말을 고르듯 잠시 뜸을 들였다.
“지난밤은 꿈만 같았습니다. 세라엘 양 덕분에 밤새 깨지 않고 편안히 잤어요. 이렇게까지 안온한 밤을 가져 본 적은 어제가 처음이었습니다.”
비록 오늘 그의 아침은 전쟁터나 다름없었지만….
얄궂은 장난에 투정을 부리려던 세라엘이 우뚝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머뭇머뭇 말문을 열었다.
“제가 특별히 한 것도 없는걸요. 그래도 편안하게 주무셨다니 다행이에요.”
“세라엘 양은 잘 잤습니까?”
“이상한 꿈을 꾸긴 했지만 저도 잘 잤어요. 이렇게 다소곳한 차림으로 기상한 것도 오랜만인걸요.”
온점을 찍자 어색하고도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
“……?”
세라엘은 그 출처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조금 긴장한 것 같은데?’
농담을 건넨 사람치고 카에드는 미묘하게 굳어 있었다.
그를 둘러싼 공기 또한 경계하듯 바짝 세워진 느낌이었다.
지금까지의 행동을 되짚어 보면 아침 인사와 함께 세라엘을 껴안거나, 아니면 본인이 안기거나, 세라엘의 얼굴이며 목덜미에 자잘한 키스를 선사할 만도 한데 그러지 않았다.
그녀 덕분에 푹 잤으니 앞으로 계속 동침하자는 음흉한 말을 능청스레 건넬 것도 같은데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세라엘과 은근히 거리까지 두고 있었다.
‘기분 탓인가.’
턱을 갸웃거리던 세라엘은 잠긴 목을 풀기 위해 약한 기침을 했다.
그러자 카에드는 깨끗한 유리컵에 물을 따라 내밀었다.
“고마워요.”
물컵을 받아 들고 막 들이켜려던 세라엘은 문득 그의 셔츠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목깃 끝에 기다랗고 구불구불한 머리칼 한 올이 붙어 있었다.
은빛을 머금은 영롱한 금발이었으니 세라엘의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머리카락을 떼 주기 위해 자연스럽게 손을 뻗었다.
“대공님, 여기에….”
별것 아닌 행동이었다.
카에드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옷에 붙었더라도 아무렇지 않게 떼어 줬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제 목 근처로 다가오는 세라엘의 손을 보자마자 못 볼 것이라도 본 양 눈썹을 찌푸리며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어머!”
급작스러운 움직임에 놀란 세라엘이 들고 있던 컵을 놓치고 말았다.
물을 담은 잔이 그녀의 가슴을 치면서 가랑이 사이로 툭 떨어졌다.
삽시에 젖어 드는 얇은 천이 이윽고 몸의 곡선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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