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38)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38화(38/150)
“루.시.라.는.예.쁜.이.름? 이야….”
음절 하나하나를 강조한 악셀이 느리게 손뼉을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주 그냥 고백을 해라, 고백을. 이거 잘하면 두목이랑 누님보다 너희가 먼저 결혼할 수도 있겠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렉터와 루시의 얼굴에 열이 확 올라왔다.
“형, 그 주둥이 닥쳐!”
“인부들이 애써 공사 중인 대정원 결혼식장을 너희가 먼저 쓰는 거 아니냐? 상도덕이 있는데 그러면 안 되지. 급한 건 알겠는데 조금만 참았다가 두목이랑 누님 먼저 보내 줘라.”
“혹시 미치셨나요…!”
참지 못한 루시가 가냘픈 목소리로 소리쳤다. 계속 보고 싶은 귀여운 모습이었지만 세라엘은 서둘러 악셀을 만류했다.
“아이들을 너무 놀리지 마. 이렇게나 부끄러워하잖아. 언젠가 악셀 너도 여자 친구가 생길 텐데, 렉터가 축복해 주기는커녕 널 마음껏 놀렸으면 좋겠어?”
편을 들어준 것뿐인데 렉터와 루시는 펄쩍 뛰었다.
“아, 아니! 여자 친구라니요!”
“아가씨! 우린 그런 사이가…!”
다행히 악셀은 일리가 있다는 듯 주억거리며 동의했다.
“흠, 옳은 말이네요. 내가 누굴 놀릴 수는 있어도 누가 날 놀리는 건 절대 못 참지. 뭐, 아무튼.”
악셀은 시건방지게 늘어놓았던 자세를 고쳐 잡고 만면에 기대감을 드러냈다.
“누님. 그럼 축제에 가면 술도 마셔도 돼요?”
“그건 안 돼.”
세라엘이 딱 잘라 거절했다.
“너랑 렉터는 아직 미성년이잖아.”
“제발요, 누님. 시프 형이 밖에서 술 마시다 걸리면 무기한으로 근신시킨다고 해서 여태 꿈도 못 꿨어요. 우리는 개코라서 마시면 무조건 걸려요. 알죠? 축축한 풀밭에 온몸을 문대고 온갖 냄새를 덧씌워도 알아차릴 거라고요.”
악셀이 제 두 손을 맞잡으며 간절한 어조로 말했다.
“누님이랑 축제에 가면 대놓고 마셔도 봐줄 것 같단 말이에요.”
그는 대뜸 루시에게 화살을 돌렸다.
“야, 솔직히 너도 마시고 싶지?”
“네…?”
악셀이 제법 살벌한 태도로 루시를 압박했다.
“당장 그렇다고 말해. 네가 마신다고 하면 누님이 허락해 줄 거야.”
“아… 저는 한 방울도 마시기 싫은데요.”
루시는 머뭇거리는 말투로 똑 부러지게 대답했다.
그리 당돌하게 반응할 줄은 몰랐던 듯, 악셀은 어벙한 낯을 했다.
그가 심술을 부리기 전에 렉터는 냉큼 루시 편을 들었다.
“루시를 나쁜 길로 끌어들이지 마. 미성년이 어떻게 음주를 할 수가 있지? 남부의 법도를 어기는 못된 짓은 하면 안 돼.”
몹시도 기계적인 어투로 렉터가 뇌까렸다. 성에서 가졌던 첫 만찬에서, 악셀과 몰래 술을 마시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모습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꼼수나 쓰는 불행한 놈. 이제 난 어떤 술이든 허락 없이 마실 수 있으니 남 얘기처럼 들리는군.”
얼마 전 무사히 성인식을 통과한 콜이 호탕하게 껄껄 웃었다. 짜증이 난 악셀은 단박에 눈을 부라렸다.
“성인식도 갓 치른 주제에 뻐기지 마라, 이 배신자야. 얼마 전까지 다른 형들 와인 마시는 동안 우리랑 같이 포도주스나 마셨으면서.”
“어쨌든 술 마실 생각은 하지 말라고, 자식아. 누님이 곤란해질 수도 있잖아.”
“젠장! 그깟 술이 뭐라고 다들 난리야.”
악셀은 오렌지주스가 담긴 병을 틀어쥐고 한입에 털어 넣었다.
덩치만 컸지, 쓰린 속을 달콤한 주스로 달래는 모습이 여지없이 미성숙한 소년이었다.
샌드위치가 담긴 상자를 루시에게 밀어 주던 렉터가 퍼뜩 어떤 생각이 스친 듯 입을 열었다.
“근데 두목이 허락해 주려나?”
“응?”
“요즘 성 밖으로 나가는 외출은 까다롭게 관리하거든요. 어지간해선 허락 안 해 줄 수도 있어요.”
“엥? 듣고 보니 그렇네. 역시 순순히 나가게 해 줄 리가 없지. 제기랄, 좋다 말았잖아.”
악셀이 투덜거리며 다시 의자에 몸을 느슨히 기댔다. 그대로 루시 앞에 놓인 샌드위치를 집어 먹으려다, 벼락같이 날아온 렉터의 손찌검에 화들짝 손을 뗐다.
세라엘은 홍차를 마시다 말고 생각에 잠겼다.
로페른 제국과 북방 미지의 영역을 가로지르는 경계에는 기나긴 석조 장벽이 세워져 있었다. 그 벽은 남부 문명인과 북부 야인의 거주지를 구분하는 국경선이었다.
최근 국경 근처의 치안 강화 건으로 카에드가 바쁘다는 말은 들었지만, 세라엘이 축제에 가는 것을 승낙하지 않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는 이전에 카에드와 나눴던 대화를 짚어 보았다.
“대공님께서 외출하려면 나가기 전에 알려만 달라고 하셨거든. 그래서 흔쾌히 허락하실 줄 알았어.”
호위도 붙여 주겠다 했고, 사고 싶은 게 있으면 망설이지 말라며 한도 없는 증표까지 건네주면서 그리 말했었다.
악셀이 심드렁하게 맞받아쳤다.
“상황이 좀 바뀌었어요. 얼마 전에 있었던 일 때문에 장벽 보수 공사를 시작했거든요. 두목이 원래도 집요한 사람이었는데 국경 문제에 특히… 강박적인 면이 있어서요. 우린 둘째 치고 누님을 나가게 해 주려는지 모르겠네요.”
“형.”
렉터가 나지막이 그를 부르며 눈치를 줬다.
심상치 않은 함의를 감지한 세라엘이 눈매를 좁히자 악셀은 얼른 변명했다.
“그러니까 꼭 누님 때문이 아니더라도 우리 셋한테는 기준이 엄한 편이에요. 바이퍼 형이랑 호크 형은 허락 없이 잘만 나가는데 우린 외출할 때마다 보고해야 하거든요.”
렉터가 테이블에 주먹을 쾅 내려쳤다.
“우리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다 형 때문이잖아. 마을에 나가기만 하면 양아치들이랑 시비를 터니까 그러는 거 아냐.”
“넌 안 털었던 것처럼 말하지 말아라. 아무튼 두목이랑 대화 나눠 보세요. 우리끼리 떠든다고 해서 나갈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우린 두목 말에는 무조건 복종해야 돼서요.”
반항적인 면모가 강했던 악셀이 그리 순순히 인정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말을 아끼려는 기류가 다소 미심쩍었지만, 세라엘은 별말 없이 침묵을 유지했다.
치안 문제 때문에 카에드가 외출을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으로 알아들으면 될 것 같았다.
갑자기 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 이리 와.”
그는 어딘가를 보며 두 손을 입가에 모아 외쳤다. 멀찍이 송아지만 한 검은 늑대 한 마리가 일행을 발견하고서 폴짝폴짝 달려오고 있었다.
세라엘이 ‘모’라고 이름 지어 준 수컷 늑대였다.
금세 가까워진 늑대가 콜의 품 안으로 공격하듯 달려들었다. 악셀은 늑대를 쓰다듬는 콜을 보며 넌더리를 냈다.
“이쯤 되면 일부러 틀리는 것 같지 않냐?”
모는 이 자리에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뿐이라 너무나 흥분했는지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두 발로 선 늑대는 키가 180을 웃도는 콜보다도 커서 신난 모습조차 위협적이었다.
짐승의 거대한 뒷발에 얻어맞은 콜이 컥, 소리를 내며 비틀거렸다.
악셀이 그를 올려다보며 코웃음을 쳤다.
“머리가 나빠도 유분수지, 음절 하나뿐인데 이름을 못 외우는 게 말이 돼? 무가 뭐냐, 무가. 채소냐?”
차라리 당근이라 부르는 건 어떻겠냐고 악셀이 비꼬았다.
“형 진짜 못됐다. 콜 형도 저 정도면 많이 좋아진 거야. 예전엔 더 심했잖아.”
렉터가 빵을 베어 문 루시에게 살뜰히 우유병을 건네주며 말했다.
“기억 안 나? 항상 우리를 이름 대신 야, 너, 인마라고 불렀었잖아. 참 불친절한 인간이라고 속단했는데 단지 이름을 못 외워서 그런 거였지.”
“어머. 좋지 못한 기억력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이름을 불러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거구나.”
세라엘이 한마디 보태자 렉터가 씩 웃어 보였다.
“제 말이 그 말이에요.”
악셀은 동의하지 않는 듯 턱을 휘휘 내저었다.
“포장하지 않으셔도 돼요, 누님. 누님이 사랑스러운 늑대에게 지어 주신 이름인데 무는 좀 심했잖아요. 콜 형은 성의를 더 보일 필요가 있어요. 허구한 날 검술 훈련만 할 게 아니라 책을 읽어서 소양을 길러야 해요.”
귀여워 죽겠다는 듯 늑대의 털을 헝클어뜨리던 콜이 악셀을 흘겨보았다.
“이 하이에나 같은 게 지금 내가 옆에 없는 것처럼 욕을 하고 있네. 또 맞고 싶어서 그러지.”
“책 읽으라는 게 왜 욕이냐? 찔리냐?”
“아무렴 내가 음절 하나짜리 이름을 못 외울 것 같아? 무라고 부른 건 당연히 장난이지. 두 번 다시 책 읽으라는 악담은 하지 마라.”
“나 참, 진짜 악담은 못 들어 봤나 보네. 아흐… 힘만 더럽게 세 가지고. 아까 형한테 얻어맞은 데가 지금도 아프다고.”
악셀이 어깻죽지를 매만지며 일부러 앓는 소리를 냈다. 세라엘은 그의 목소리에 은근히 가시가 돋쳐 있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오전부터 연무장에서 훈련이 있었는데 그때 콜과 겨루다가 호되게 당한 모양이었다.
콜은 주먹을 들어 악셀의 머리를 꽁 쥐어박았다.
“술도 못 마시는 어린놈이 버릇없이 형한테 무식하다니. 까불지 마라.”
“내가 성인식 치르는 날에 각오 단단히 해라. 이 수모를 고이 간직했다가 그날부터 렉터한테 그대로 갚아 준다.”
“아니, 왜 애꿎은 나한테…!”
그들의 공방을 지켜보던 렉터가 버럭 화를 냈다. 하지만 얼른 표정을 풀고 슬그머니 루시의 눈치를 봤다.
“오해하지 마. 언성 높은 대화가 오가긴 해도 우리는 정말 친한 사이야.”
“아, 응…. 오해하지 않아. 남자아이들은 서로에게 상냥하게 대하는 것보다 씨부렁거리면서 친밀감을 표현하는 경향이 있잖아….”
“남자‘아이들’? 씨부렁?”
들으란 듯이 루시의 말을 되풀이한 악셀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렉터가 호감을 느끼는 저 여자는 콩알만치 작은 주제에 자꾸 머뭇대면서도 거침없이 말을 내놓았다.
누가 세라엘 누님의 직속 하녀 아니랄까 봐. 그리 생각하며 악셀은 일부러 루시를 쏘아보았다. 험악한 표정에 루시가 겁을 집어먹자 렉터가 주먹을 들어 악셀을 응징했다.
“으악!”
“겁먹지 마, 루시. 악셀 형은 장난을 좋아하고 툭하면 빈정거리는 쓰레기지만 나쁜 사람은 아냐.”
“욕이냐, 칭찬이냐?”
“칭찬이겠어? 어쨌든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루시. 형도 여차하면 목숨을 바쳐서 너를 지킬 듬직한 사람이야.”
“쳇. 그건 틀린 말은 아니군.”
투덜거리는 악셀 뒤로 늑대가 콜의 바짓가랑이를 물고 장난치는 모습이 보였다.
터그 놀이를 하는 것처럼 고개를 미친 듯이 흔들자 돌연 옷감이 부욱, 하고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안 돼!”
아찔해진 콜이 소리를 지르며 무서운 힘으로 늑대를 떼어 냈다.
밀쳐진 늑대는 뚱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다가, 이번에는 세라엘에게 총총 다가왔다.
“히익…!”
그녀가 같은 꼴을 당하리라 예상한 루시가 기겁하여 손톱을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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