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39)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39화(39/150)
세라엘이 손을 내밀자 늑대는 얌전히 앉아 혀로 할짝할짝 핥아 주었다.
위협적인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애교스러운 행동이었다. 콜은 걸레짝이 된 제 바지와 온순해진 늑대를 황망히 번갈아 보았다.
“그 녀석, 누님이 마음에 드나 봐요. 심한 장난도 치지 않고 아주 예의 있어 보이네요.”
“영리한 동물이라서 그런가 봐. 사람에 따라 애정 표현을 다르게 하는 거 아닐까? 내 드레스를 갈기갈기 찢을 수는 없잖아.”
늑대는 세라엘의 손과 팔뚝에 까슬까슬한 이마를 열심히 문댔다. 그러고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그녀의 작은 품 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제 커다란 몸집도 인지하지 못한 채 마구 비비적거리는 모양새를 보니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대공님 같아.’
세라엘은 남몰래 미소 지으며 늑대의 주둥이를 쓰다듬었다.
카에드의 머리칼처럼 칠흑 같은 털에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눈, 저를 더 비비적거리지 못해 안달이 난 몸짓까지 영락없이 그와 같았다.
늑대가 신명 나게 흔드는 꼬리에서 생겨난 바람이 그녀의 머리칼을 엉망으로 휘날렸다.
“아가씨, 괜찮으시겠어요? 혹시 그 늑대가 아가씨를 물지는 않겠지요?”
루시는 세라엘보다 두어 배는 클 법한 늑대를 보며 덜덜 떨었다. 거대한 야생 동물이 애완견처럼 행동하는 모습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
“아마 물지 않을 거야. 처음 만났을 땐 오해가 있었지만, 지금은 말을 잘 듣거든.”
늑대가 우렁차게 한번 짖었다.
“이 아이도 위기 상황에선 목숨을 바쳐 너를 지켜 줄 거야.”
세라엘이 미소 지으며 확신하자 루시는 멋쩍은 표정으로 목을 매만졌다. 그녀의 말투가 여기 남자들의 것과 무척이나 비슷하게 들렸던 거다.
별안간 후원 입구에서 우당탕 요란한 소음이 울려 퍼졌다. 모두의 시선이 향한 곳에서는 세 마리의 새끼 늑대가 후다닥 달려 나오고 있었다.
먼젓번 세라엘이 딩, 동, 댕이라 이름 붙여 준 모의 아기들이었다. 이제 아기라고 부르기도 모호한 것이, 처음 봤을 때만 해도 배내털이 보송했던 작은 몸뚱이가 벌써 중형견 정도의 크기로 성장해 있었다.
걸음마가 익숙지 않아 아장아장 걸었던 늑대들은 이제 미친 듯이 달음박질을 칠 수도 있었다.
늑대들은 혀를 빼물고 이쪽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오면서 근처에 있던 목제 테이블을 지지대 삼아 크게 도약했다.
그 바람에 탁자가 와르르 부서지면서 나무 조각이 폭죽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꼬마 악마가 날뛰는 듯한 난폭한 광경에 루시는 아연실색하여 몸을 움츠렸다.
“히익!”
렉터는 기겁하는 그녀에게 안심하라는 듯 웃었다.
“괜찮아. 공격하러 오는 게 아니니까. 게다가 쟤네는 완전 쪼끄만 아기들이야. 가까이서 보면 무섭다기보다 귀여울 거야.”
“그렇긴 하지. 뾰족한 이빨에 물려도 하나도 안 아프고 귀엽기만 할걸.”
악셀이 심드렁히 도움 안 되는 말을 건넸다. 루시를 진정시키던 렉터가 그를 냅다 쏘아보았다.
“인성이 왜 그래? 무서워하는 사람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고 싶어?”
“쟤 건들 때마다 너 발끈하는 꼴이 재미있어서 그런다.”
점점 가까워지는 새끼 늑대들을 보며 루시가 놀란 숨을 들이켰다.
“물, 물 수도 있어?”
“물지 않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렉터가 다정히 말하는 동안 악셀은 루시에게 달려드는 새끼 늑대 한 마리를 낚아챘다.
재빠른 손짓과는 다르게 그는 품 안의 늑대를 소중히 안아 들고 쓰다듬었다.
“이놈, 벌써 묵직한 거 봐라. 못 본 사이에 많이 컸구나. 누님이 얘네 이름도 지어 주지 않았어요?”
“그랬지. 네가 안고 있는 늑대가 딩이고, 얘는 동이, 막내는 댕이로 지었어.”
“푸합! 너무 귀엽잖아.”
가벼운 폭소를 터뜨리는 악셀 뒤로 콜은 남몰래 이름을 외듯 입술을 달싹거렸다.
세라엘이 쭈그려 앉아 늑대를 어루만지자, 루시도 용기를 내어 무릎을 꿇었다. 발랄하게 뛰노는 새끼 늑대가 멀리서 봤던 것만큼 무섭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댕이를 만져 봐. 막내라 가장 조그맣고 순한 편이거든.”
세라엘은 복슬복슬한 회색 털을 가진 늑대 한 마리를 가리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루시는 제 손을 마구 핥고 뒹구는 새끼를 조심스레 끌어안았다. 똥강아지를 떠올리게 하는 까불거림이 귀여워 두려움도 차츰 흐려지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에 매우 감격한 렉터가 제 가슴 위에 한 손을 지그시 올렸다.
“루시 너… 늑대를 정말 좋아하는구나.”
루시는 멋쩍은 얼굴로 턱을 갸웃거렸다.
“글쎄.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 늑대를 본 건 이번이 처음이라 조금 무서운걸. 하지만 강아지는 아주 좋아해.”
“늑대는 갯과잖아. 그러니 늑대도 좋아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말이 그렇게 되나? 뭐… 그럴 수도 있겠네.”
발켄족은 겉모습은 인간이어도 늑대의 피를 이어받은 혈족이라, 아무래도 늑대를 싫어하는 사람과는 가까운 사이가 되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런 까닭에 렉터는 새끼 늑대를 귀여워하는 루시를 보고 적잖이 감동한 눈치였다. 사적인 감정이 다분히 이입된 사고방식이었다.
“가지가지 한다.”
별것 아닌 접점에도 기뻐하는 렉터를 보며 악셀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혀를 찼다.
수컷 늑대는 귀염받는 제 새끼들을 관찰하다가 다시 세라엘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어깨에 머리를 비비다가, 충성심이 어린 샛노란 눈으로 올려다보기도 했다.
선홍색 혀를 늘어뜨려 그녀의 목 언저리와 뺨을 날름대는 늑대는 정말 카에드를 똑 닮아 있었다. 세라엘은 품으로 파고드는 거대한 늑대를 부둥켜안았다.
***
햇살이 따사롭게 들이치는 새 침실 안.
이른 아침에 눈을 뜬 세라엘은 화장대 앞에 앉아 무거운 눈꺼풀을 깜박였다.
“아가씨, 피곤하시면 좀 더 주무시는 게 좋겠어요.”
길게 늘어진 머리칼을 빗겨 주던 릴리가 반쯤 조는 그녀를 보고 조심스레 제안했다.
세라엘은 카페인이 다량 함유된 홍차를 마시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냐. 나도 이젠 일찍 일어나는 버릇을 들이고 싶어.”
4구역 첨탑에서 거주할 적엔 정오 느지막이 일어나 침실에서 브런치를 먹고, 산책 삼아 내부를 거닐다가 시녀와 다과를 즐긴 후 씻고 잠자리에 드는 일이 일과의 전부였다.
본성으로 거처를 옮긴 후로는 좀 더 부지런한 생활을 하고 싶었다.
그래 봤자 세라엘이 요즘 하는 일이라곤 본성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눈에 익히는 일이 전부였지만, 밤잠 없이 직무만 보는 남자의 생활 반경 안으로 들어왔으니 나태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어디로 가 보실 생각이세요?”
릴리는 세라엘의 머리카락 절반을 한데 묶어 뒤통수 중앙에서 맵시 있게 교차시켰다.
“글쎄, 저층에 있는 장소는 거의 다 방문해 봤는데 오늘은 어디를 갈까. 혹시 가 볼 만한 곳을 추천해 줄 수 있니?”
릴리는 잠시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럼 도서관은 어떠신가요?”
“꼭대기 층에 있는 도서관 말이니?”
“아가씨도 들어 보셨군요. 여기 본성의 도서관은 황궁에 있는 대도서관만큼이나 규모가 방대하답니다. 사유지가 아니었다면 저어기 남부 지방에서부터 수많은 관광객이 방문했을 거예요.”
1구역 본성에는 5층 규모의 층을 통째로 터서 건설된 도서관이 있었다. 카에드가 양자로 핍박받던 시절 유일하게 흥미를 느꼈던 장소였다.
‘너무나 빛바랜 기억이라 잊고 있었어. 지옥 같았던 블카노프성에서 카에드가 조금이나마 마음을 붙였던 곳이었는데.’
누군가에서 전해 들은 게 아닌, 오래전 활자를 통해 얻은 정보이자 아무도 모르는 은밀한 비밀이었다.
세라엘이 알았던 전개가 모조리 뒤바뀐 지금도 크게 달라진 바가 없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저는 그 웅장한 장소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똑똑해지는 기분이 들더라니까요. 그야말로 지식과 정보가 넘치는 곳이잖아요. 처음 도서관에 발을 들였을 땐 시녀님을 따라 대공성에 적을 두게 된 것이 자랑스러워질 정도였어요.”
릴리는 과장된 손짓으로 도서관을 추앙했다.
“그곳에 없는 책이라면 로페른 제국 어디에도 없을 거예요.”
“그 정도라면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방문해 봐야겠네.”
호들갑을 떠는 하녀를 본 세라엘이 눈매를 접으며 미소 지었다.
세라엘도 한때는 독서를 무척 좋아하던 시기가 있었다. 흥미로운 글을 읽고자 하는 의지는 전생에서부터 이어졌고, 매일같이 이야기책을 읽어 주었던 친모의 영향을 받아 그녀는 누워 있을 때도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할 만큼 독서광이었다.
밀로즈 후작이 서재의 책을 몽땅 팔아치우기 전까지의 일이었다. 얼마든지 책에 접근할 수 있었던 환경이 사라지면서 자연스레 독서 또한 멀리하게 되었는데, 앞으로 생활하게 될 장소에 도서관이 있다니 마침 좋은 소식이었다.
“루시는 지금 숙소에 있을 거예요. 아가씨의 채비가 끝나면 곧바로 3층으로 올려 보낼게요.”
“고마워, 릴리.”
“천만에요.”
머리칼 치장을 끝낸 릴리는 선반에서 장신구가 든 상자를 꺼내 들었다.
“액세서리는 어떤 것으로 착용하시겠어요? 아가씨의 눈동자와 잘 어울리는 사파이어 반지를 끼워 드릴까요?”
“장신구는 괜찮아. 너무 치장하는 것보다 움직임에 불편하지 않은 차림으로 나가는 게 좋겠어.”
“알겠어요. 그럼 침실에서 잠깐 기다리고 계세요. 루시를 불러올게요.”
릴리는 그리 말하면서 상냥하게 웃어 보였다.
잡다한 일이 많은 하녀로선 세라엘을 졸졸 따라다니며 관광 중인 루시가 눈꼴실 만도 한데, 다들 흔쾌히 양해해 주고 있어 고마울 따름이었다.
루시도 눈치가 있는지라, 세라엘과 시간을 보내지 않을 때면 제 업무를 착실히 익혀 가며 하녀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릴리가 방을 나서고 얼마 되지 않아 루시가 침실로 찾아왔다. 오늘도 어두컴컴한 북부의 성을 탐험할 예정인 두 사람은 꼭대기에 있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끝없이 펼쳐진 계단을 오를 수는 없었으므로 승강기에 몸을 실었다. 내부가 멋들어지게 음각된 적갈색의 목재로 꾸며진 승강기는 하인이 기어 장치를 한 번만 당겨 주면 최상위층까지 무리 없이 올라갈 수 있었다.
신문물을 접한 루시는 도서관으로 향하는 내내 대공성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윽고 꼭대기 층에 도달하여 도서관 내에 들어선 두 여자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입을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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