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40)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40화(40/150)
“와아….”
“우와…!”
나란히 선 세라엘과 루시는 크게 감탄하며 탄성을 흘렸다.
장장 5개의 층에 걸쳐 건설된 도서관은 대공성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가졌던 경외감과 다른 차원의 놀라움을 불러일으켰다.
5층짜리 난간 너머로 일률 배치된 서가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책이 꽂혀 있었고, 난간을 받친 두꺼운 기둥과 바닥은 연한 회색의 돌로 만들어져 있었다.
내외부 모두 시커먼 석조로 짜인 대공성 안에 이런 장소가 존재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환하고 고상한 분위기였다.
도서관의 천장은 투명한 유리창으로 꾸며져 있었는데, 대각선으로 교차된 빗살 문양의 창살이 아침 햇빛을 잘게 부수어 내부로 들여보냈다.
그 안에 덩그러니 서 있자니 마치 살아 숨 쉬는 역사의 증인이 된 듯하여 소름이 일었다.
세라엘은 푸른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도서관 안을 훑어보았다.
“마님!”
멀리서 빗자루를 쓸고 있던 노인이 세라엘을 보자 서둘러 다가왔다. 예식 전인데도 마님이라 불리자 그녀는 입가에 겸연쩍은 미소를 머금었다.
이내 사서로 추정되는 노인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에요.”
노인은 예기치 않은 방문에 다소 놀란 듯했으나 반가운 기색 또한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좋은 아침입니다, 마님. 도서관엔 어쩐 일이십니까?”
“앞으로 본성에서 살게 되어서 내부를 둘러보는 중이에요. 최상층에 멋진 도서관이 있다는 얘길 듣자마자 고민 없이 올라왔어요.”
“방문해 주셔서 정말 영광입니다. 일찍이 제 소개를 드릴 기회가 없었군요. 알버트라고 합니다. 선대 공작님이 계실 적부터 도서관의 전반적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작중에서 ‘늙은 사서’로 묘사된 게 전부였던 사용인이자, 양자였던 카에드가 도서관을 찾아올 때마다 성심성의껏 안내해 주었던 자가 알버트인 모양이었다.
정중히 자신을 소개한 노인은 턱을 돌려 어딘가를 보고 외쳤다.
“샘! 이리 와서 마님께 인사드려라.”
그의 부름에 구석에서 빗자루질을 하던 소년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1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소년은 처진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어정쩡한 몸짓으로 허리를 굽혔다.
“안녕하십니까. 샘이에요.”
“안녕? 만나서 반가워.”
어리숙한 인사에 세라엘은 귀엽다는 듯 웃으며 대꾸했다.
알버트 역시 뿌듯한 얼굴로 소년의 등을 두드렸다.
“제 손자놈입니다. 몇 년 전 부모를 잃고 마을에 혼자 남게 되어 걱정이었는데, 인자하신 대공님께서 입성을 허락해 주셔서 함께 도서관을 관리하게 되었지요.”
“그랬군요. 정말 상냥하신 분이에요.”
인자함과 상냥함은 카에드와 가장 거리가 먼 수식어였으나 세라엘은 선뜻 맞장구쳤다.
알버트의 주름진 얼굴에 만연한 웃음을 보니, 카에드를 향한 그의 충성심은 의심할 바가 없어 보였다.
“너무나도 멋진 도서관이에요. 이런 곳이 있는 줄 알았더라면 기회가 있을 때 가장 먼저 방문했을 거예요.”
세라엘은 두 손을 맞잡고 순수한 감탄을 내놓았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도서관일 겁니다. 저 또한 하루도 빠짐없이 발을 들이는 곳이지만 매번 경탄하고 있을 정도랍니다.”
냉큼 동의한 알버트는 애정이 듬뿍 어린 시선으로 서가들을 훑었다. 이 장소에 지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세라엘은 또한 도서관 내부를 휘휘 둘러보았다.
“이렇게 넓은 곳을 샘과 둘이서만 관리하시나요?”
“예, 사서는 저와 보조인 이 녀석 둘뿐입니다. 아시겠지만 대공성이 규모에 비하면 사용인이 적은 편이기에….”
알버트가 흘깃 세라엘의 눈치를 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장서 관리나 분류, 정리 등은 손자와 둘이서 하고 있습니다만, 대량의 서적을 옮기거나 전체적인 청소가 필요할 때는 다른 사용인의 도움을 받고 있어 관리에 어려운 점은 없답니다.”
“사서님께서 심혈을 기울여 관리하셨나 봐요. 흠잡을 곳 없이 보전된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에요.”
“그리 말씀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알버트는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그나저나 찾으시는 책이라도 있으신지요?”
“찾고 있는 책은 없지만, 내부를 한번 둘러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제가 간단하게나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드시지요.”
그는 세라엘과 루시를 1층 복도 한가운데로 이끌었다. 루시는 끊임없이 목을 돌리며 감탄사를 흘리기 바빴다.
“복도를 기준으로 왼쪽 서가는 종교와 관련된 서적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제국의 국교는 물론 동방에서 받드는 이교의 교리서까지 찾아보실 수 있지요. 아이러니한 점은 오른편 서가엔 과학 관련 서적들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도서관에서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도서 배열 체계인데 참 재미있지 않습니까?”
“호호호.”
루시의 웃음 코드에 적중했는지 그녀가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참으로 심오한 웃음 코드였다.
세라엘은 루시의 취향에 대해 나중에 렉터에게 넌지시 알려 줘야겠다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따라 웃었다.
적극적인 반응이 마음에 든 듯 알버트는 흡족하게 웃으며 두 여자를 계단으로 안내했다.
“2층에는 모두 예술 관련 서적뿐입니다. 이쪽에는 주로 건축물과 조각품, 공예품 등 조형 예술과 연관이 있는 책이 자리하고 있으며, 저쪽 기둥 너머의 공간에선 공연 예술의 무궁한 역사를 엿볼 수 있지요.”
예술에 관심이 있었던 모양인지 알버트는 사심을 담아 2층에서 더 오랜 설명을 해 주었다. 다음 층으로 향하면서 그는 더욱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오래전 의학 발전의 중요한 초석이 되었던 공중위생 개념이 한 권의 책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 역사적인 서적이 우리 도서관의 3층에 자리하고 있답니다.”
알버트가 두 손을 비비는 제스처를 보였다.
“제법 놀랍지 않습니까? 손을 잘 씻고, 깨끗한 환경에서 깨끗한 물을 마시면 질병을 예방할 수 있을진대 이런 기본적인 관념을 책에서 배우다니요. 지금 우리가 이리도 발전된 시대에 살고 있다니 무척 다행입니다.”
“아하하….”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이 발전된 시대를 경험해 보았던 세라엘이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초월적인 존재가 실재하는 이 시대도 인상적인 특징이 있긴 했지만….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금기시되었던 해부학 문헌 또한 3층에서 다량 찾아보실 수 있답니다. 인체의 전반적인 구조와 원리를 글과 그림으로 잘 설명해 두었다고 하니 관심 있으시다면 한 번쯤 둘러보십시오.”
“굉장히 흥미롭네요. 기회가 되면 확인해 볼게요.”
바로 앞에 줄지어 나열된 서가를 가리키는 알버트의 손을 따라 세라엘은 무심코 눈길을 던졌다. 다시 원위치로 돌아오던 고개가 퍼뜩 그곳으로 향했다.
“어?”
겉으로 봐선 두드러지는 점이 없는 책 한 권이 주의를 확 사로잡았다. 수많은 서적 중 하나일 뿐인데, 어째서 그리 눈에 띄었는지 의문이었다.
아마도 책등에 새겨진 제목 때문이었을까?
“왜 그러십니까?”
다음 층으로 안내하려던 알버트가 세라엘의 반응에 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서둘러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에요. 다음 층은 어떤 주제로 정리되어 있는지 알려 주시겠어요?”
“아, 예. 이쪽 층계로 올라오십시오.”
루시와 알버트를 눈앞에 둔 채 그 책을 빼내어 읽을 순 없었으므로, 세라엘은 차분히 자유의 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어 알버트는 문외한도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쉽고 흥미로운 설명과 함께 층별로 분류된 서적들을 소개해 주었다.
5층 서가에 들어찬 서적과 천장에 자리한 유리 장식까지 뽐내고 나서야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간만에 도서관을 방문한 손님에게 실컷 안내해 준 터라 기분이 매우 좋은 듯했다.
“전반적인 안내는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마음껏 둘러보시고,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저와 샘이 1층에서 대기할 터이니 언제든 불러 주십시오.”
“귀한 시간 내주셔서 고마워요, 알버트.”
“제가 드릴 말씀입니다, 마님. 참으로 곱고 정중하시군요. 마님 같은 분과 결혼을 앞두신 대공님도 무척이나 복 받으신 분입니다.”
알버트는 껄껄 웃으면서 공손히 예를 표한 뒤 층계를 내려갔다. 세라엘은 노인의 뒷모습을 멍하니 응시했다.
“아가씨. 어느 책을 먼저 읽고 싶으신가요?”
루시가 불쑥 질문했다. 아까부터 눈여겨본 서적이 있었으나 소리 내어 말할 수 없는 민망한 제목이었다. 세라엘은 솔직하게 말하지 않기로 했다.
“딱히 읽어 보고 싶은 책이 있는 건 아니지만 3층에 한번 가 볼까 해. 루시, 너는?”
“저는 5층에서 요리책을 왕창 읽을 거예요. 케이크를 맛있게 굽는 법을 배워서 언젠가 아가씨한테 요리해 드리고 싶어요.”
“그래, 그럼 이따 보자.”
세라엘의 인사에 고개를 숙인 루시는 빠른 걸음으로 멀어져 갔다.
더는 타인의 관심을 받지 않게 된 세라엘도 망설이지 않고 3층으로 내려갔다.
‘아무도 없을 때 얼른 확인이나 해 보자.’
그 책이 꽂혀 있었던 서가 앞에 당도한 세라엘이 책등을 하나하나 짚어 가며 탐색을 시작했다.
머지않아 그녀는 눈여겨보았던 책을 찾아냈다.
다시 봐도 너무나 적나라한 제목에 눈이 크게 떠지면서 목구멍에 절로 마른침이 흘러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주변을 둘레둘레 살핀 후, 세라엘은 조심스럽게 책을 꺼내 들었다.
***
harbaragi_syk
같은 시각.
카에드는 최측근인 호크, 보좌관 티론과 본성 전망대 위를 걷고 있었다.
“저 너저분한 건축물은 대체 뭐지?”
돌연 호크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드높은 전망대에서 국경선이 훤히 보여야 하건만, 성 근처 소도시에서 건축물 공사가 진행 중인지 흉한 나무 뼈대가 삐죽 튀어나와 장벽 귀퉁이를 가리고 있었다.
건물이 완성된다면 시야를 막는 범위도 넓어질 기세였다. 귀족 출신인 보좌관이 안경을 미간 쪽으로 스윽 밀어 올리며 호크가 가리킨 방향을 보았다.
보좌관은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소도시 일우드의 시장인 조셉 윌슨이 건설 중인 별장입니다.”
“내가 지금 건물의 소유주를 물어봤나? 저 추저분한 쓰레기가 어째서 경계선의 시야를 가로막고 있냐는 뜻이다.”
호크가 으르렁거리자 움찔한 티론이 다시 말을 이었다.
“이 전망대가 아닌 서쪽과 동쪽 망루에서는 문제없이 시야가 확보됩니다. 실은 이곳 본성의 전망대도 원래 감시나 공격을 위한 장소가 아니었….”
“허물어.”
호크가 침을 뱉듯 일축했다.
“예?”
“물러 터진 소리 하지 말고 허물라고. 감시하는 눈이 하나라도 더 있어도 모자랄 판에 보란 듯이 구멍을 만들면 되겠어?”
티론은 곤란한 표정으로 호크를 쳐다보았다.
“일우드는 작은 도시입니다만 겨울 축제가 열리는 대도시와 가까워 관광객이 많습니다. 덕분에 영지에도 적지 않은 조세를 납부 중인데, 시장이 공사 중인 별장을 통보 없이 허물어 버리면 분명 반발할 겁니다. 그러니 시장을 잘 달래서….”
“일우드의 시장 윌슨이라.”
잠자코 듣고만 있던 카에드가 낮게 깔린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내 양아버지에게 빌붙어 아첨하던 버러지의 핏줄이겠군.”
카에드는 안색 하나 바뀌지 않고 무미건조한 눈으로 보좌관을 응시했다. 그간 보좌관은 괴이한 사내들과 지내면서 제 담력이 어지간히도 강해졌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떠한 감정이나 인간성이 묻어 있지 않은 저 끔찍한 눈동자를 마주할 때마다 덜컥 사지에 내몰린 것처럼 소름이 확 끼치면서 온몸이 후들거렸다.
카에드의 저음은 무료하기 그지없는 어조로 명을 내렸다.
“오늘 내로 저 흉물을 철거하고 보고서와 함께 시장의 머리를 가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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