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45)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45화(45/150)
저녁 식사를 하러 갈 준비가 끝나고도 그녀는 방을 나서지 않고 침대 벤치에 털썩 앉았다.
“하아….”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기나긴 탄식을 흘렸다.
행복해야 할 새 신부의 한숨에 루시와 릴리는 깜짝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세요?”
“걱정거리라도 있으신가요?”
세라엘은 도리도리 고갯짓하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결혼식이 얼마 안 남아서 그런지 생각이 많아지나 봐. 별것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스스로를 달래듯 늘어놓는 중얼거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의아해진 릴리는 턱을 갸웃거렸다.
‘두 분의 결속이 더 강해지는 절차일 뿐인데 뭐가 걱정이신 거지? 혹시 첫날밤 때문인가?’
릴리는 엄지와 검지로 제 턱을 받치면서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초야라고 해서 다를 게 있을까? 평소 하던 대로 하시면 될 텐데.’
몇 초 지나지 않아 하녀는 해답을 찾았다.
‘아하! 특별한 밤이니까 뭘 입을지 고민하시는 거구나.’
릴리는 손바닥 위에 주먹을 꽂으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런 남사스러운 문제라면 말하고 싶지 않을 만도 했다.
첫날밤에 관해서라면 릴리가 누구보다도 철저하고 살뜰하게 챙겨 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의욕 넘치는 하녀는 세라엘을 위해 가장 특이하면서도 눈에 튀는 준비물을 장만할 자신이 있었다.
세라엘인지 카에드를 위해서인지는 잘은 모르겠다만….
‘도시 일우드에 란제리와 향수를 파는 상점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고 들었어. 외출 허가증을 받으면 당장 다녀와야겠어.’
릴리는 비장한 표정으로 주먹을 쥐었다.
‘아가씨께서 내가 마련한 준비물을 보신다면, 아마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걸 걱정하셨다며 안도하실 거야.’
신혼부부만의 오붓한 밤을 위한 신방에 들어선 세라엘이 준비물을 보고 미소 지을 상상을 하자, 릴리는 야심에 활활 불타올랐다.
그뿐일까. 진한 장미수를 탄 목욕물에 오래도록 세라엘의 몸을 담그고, 레몬 스크럽과 향유로 살결을 보드랍게 하여 만지지 않고는 못 배기도록 가꾸어 줄 수 있었다.
릴리가 눈을 빛내는 동안 루시는 세라엘 곁에 자리를 잡았다.
“인생의 대사를 앞두고 마음이 싱숭생숭하신 거구나. 기운 내세요. 결혼식 전에 다 같이 겨울 축제도 가기로 했잖아요. 대공님도 함께 가신다니 정말 재미있을 거예요.”
말은 그렇게 해 놓고 루시는 카에드가 겨울 축제에 동행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굉장히 충격받았다. 악셀이 취미로 발레를 춘다는 말을 듣는다고 해도 그만큼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루시의 토닥임에 세라엘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작은 웃음으로 답했다.
“네 말이 옳아. 즐거운 일이 먼저 다가오고 있는데,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두고 한숨이나 쉬는 건 바보짓이야.”
딱히 기운 내야 할 정도로 지친 상태는 아닌 데다, 이렇게 앉아만 있어 봐야 나아지는 일도 없었다.
그때 릴리가 냉큼 끼어들었다.
“아가씨. 혹시 대공님은 어떤 색상을 좋아하시나요?”
“글쎄… 검은색? 잘 모르겠는데.”
검은 옷밖에 안 입으시거든. 세라엘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아하. 그럼 무슨 향을 좋아하시는지는 아시나요?”
“그것도 잘은 모르겠어.”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 세라엘은 새삼 충격을 받았다. 결혼할 남자를 이렇게까지 모를 수가 있나?
그때 하나쯤 확신할 수 있는 점이 떠올랐다. 이것도 루시가 칼스비크에 왔던 밤의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장미 향유를 바르고 대공님 침실에 찾아갔을 때 냄새가 좋다고는 하셨… 그냥 해 본 말이야. 잊어 줘….”
말끝을 흐린 세라엘은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보았다. 괜히 스스로를 변호해 보려다 쓸데없는 고백만 하고 말았다.
시원찮은 대답에도 릴리는 매우 만족한 표정이었다.
“이제 식사하러 내려가 볼게. 요리가 식겠다고 주방장이 슬퍼하겠어.”
싱글거리는 하녀들을 뒤로한 채 세라엘은 벤치에서 일어났다.
***
해바라기.공금
언제나처럼 그녀는 훌륭한 저녁 식사를 했다.
테이블 위에는 그녀의 취향대로 맛 좋은 음식이 나왔고, 향미가 풍부한 체리 와인을 곁들이자 더욱 만족스러웠다.
카에드는 음식을 먹지 않아도 종종 1층으로 내려와 세라엘 옆에 의자를 빼 앉아 지켜보곤 했는데, 오늘은 매우 바빴던 모양인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식사가 끝났을 때쯤엔 자욱하게 깔렸던 먹구름이 사라지고 저녁노을이 밀려왔다.
통유리창으로 투영된 해 질 녘의 노을이 성내에 붉은 그림자를 쏟아 냈다. 이보다 더 평화로울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하루가 상쾌하게 마무리되고 있었다.
3층 침실로 올라온 세라엘은 둥근 탁자 앞에 앉아 알버트가 선물한 책을 읽었다.
한참을 집중하던 와중, 방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방 안에서 손바느질을 하던 루시가 대신 문을 열었다.
문밖에 서 있는 남자는 다름 아닌 악셀이었다.
“누님, 시간 있으세요?”
귀족 영애의 침실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걸 배웠는지 악셀은 고개만 빼꼼 들이민 채로 복도에 서서 물었다.
“한가한데, 무슨 일이니?”
“두목이 누님을 찾으시던데요. 지금 1층 회랑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세라엘은 멈칫하여 악셀을 올려다봤다.
“…대공님께서? 지금 내려오라고 하셨어?”
“네. 바깥 공기가 차가우니 따뜻하게 입고 나오시래요.”
“전해 줘서 고마워. 금방 내려가 볼게.”
“서두르지는 마시고요. 안녕, 렉터 여자 친구.”
할 말을 전한 악셀이 루시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휘적휘적 복도를 걸었다.
옷을 따뜻하게 입으라는 걸 보면 어디 나가실 계획이려나. 세라엘은 책을 덮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전 이제 이름을 잃었어요. 이 성안의 모두가 저를 렉터 여자 친구라고 부르기 시작했어요.”
루시가 먼 산을 보며 망연히 중얼거렸다.
“왜 나를 이름으로 불러 주지 않는 걸까요. 모든 사람이 콜처럼 느껴질 정도예요.”
세라엘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다정한 손짓으로 루시를 토닥였다.
“악셀이 앞장서서 장난을 치니까 다들 휩쓸리는 모양이야. 내가 두 번 다시 그렇게 부르지 못하도록 혼쭐을 내 줄게.”
“아가씨는 참 친절하세요. 렉터도 똑같은 말을 하더라고요.”
“우리 둘 다 너를 좋아하니까.”
“…꺅.”
그때 릴리가 뚱한 표정으로 침실 안으로 들어왔다. 오는 길에 악셀을 마주친 모양이었다.
“어라? 어디 나가시는 거예요?”
릴리가 열린 옷장 앞에 선 세라엘에게 물었다.
“잠깐 대공님을 만나고 올게. 1층에서 기다리고 계신다니 지금 가 봐야 할 것 같아.”
릴리는 선뜻 옷을 고르지 못하는 세라엘을 위해 푸른색의 부드러운 가죽 외투를 꺼내 주었다.
원피스처럼 발목 아래까지 길게 늘어지는 외투는 몸의 굴곡에 맞춰 약간 달라붙는 재질이었다.
“언제쯤 돌아오실 예정이신가요? 이따 다과를 준비하려고 했는데 아가씨 오실 시간에 맞춰 차를 끓여 놓을게요.”
“음…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는걸.”
기약하지 않은 만남이라 그리 대답하였는데 릴리는 루시와 묘한 눈빛을 교환했다.
“내 몫의 다과는 따로 준비하지 말고 너희끼리 먹어도 좋아.”
“어휴, 저희는 일찌감치 숙소에 돌아가 있을게요. 괘념치 마시고 영주님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는 데에만 집중하셔요.”
“딱히 그럴 필요는 없어…. 그럼 다녀올게.”
세라엘은 잠깐 거울 앞에 서서 머리칼을 대강 정돈했다.
하녀들이 흐뭇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걸 눈치채고 나서야 그녀는 급히 걸음을 옮겼다.
‘무슨 일로 부르시는 걸까. 여태 갑작스럽게 불러내신 적은 없었는데.’
계단을 하나하나 내려갈수록 데이트를 앞둔 사람처럼 두근거리면서 괜스레 조급했다.
1층 홀이 내다보이는 너른 층계참에 발을 내딛자, 낯익은 외형의 남자가 곧장 시야에 잡혔다.
세라엘보다 머리 하나 이상은 큰 장신에 건장한 체구를 두른 검은 옷. 카에드는 계단 기둥 뒤에 기대서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찍이 세라엘의 기척을 알아채고 있었던 듯 그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부딪치자마자 그의 서늘한 안색이 어렴풋이 환해지는 듯했다. 웃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런 인상을 받다니 희한한 일이었다.
그대로 카에드와 시선을 이은 채로 계단을 내려오던 세라엘은 그가 손에 닿을 듯 가까워지자 먼저 입을 열었다.
“언제부터 기다리셨….”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그녀는 볼썽사납게 제 발에 걸려 고꾸라졌다. 너무나 순식간이라 비명이 나오지도 않았다.
카에드는 날 듯이 넘어지는 세라엘을 몸으로 받쳐 안았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녀는 너른 가슴팍에 얼굴을 깊이 파묻었다.
“…아야.”
창피함을 감추기 위해 세라엘은 아이처럼 앓는 소리를 냈다. 카에드는 본의 아니게 제 품에 안긴 그녀를 껴안고 뒤통수를 살살 문질렀다.
나오기 전 정돈했던 가는 머리칼이 투박한 손에 의해 흩뜨려졌다.
“어지간히도 내가 그리웠나 보군요. 도서관에서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러실까.”
카에드는 가벼운 실소와 함께 짓궂은 물음을 했다.
“보자마자 안길 정도였습니까?”
“이렇게 안기고 싶지 않았는걸요.”
그의 등에 부딪힌 후 쌍코피를 쏟았던 과거를 돌이킨 세라엘은 반사적으로 코 밑에 손을 갖다 댔다. 다행히 코피가 흐르지는 않았다.
카에드는 장난스럽게 턱을 모로 꺾고 세라엘의 얼굴을 관찰했다. 그 역시 같은 기억을 되짚은 게 분명했다.
부끄러워진 세라엘이 먼저 선수를 쳤다.
“다행히 피는 안 나네요. 대공님은 등보다 가슴이 더 부드러우신가 봐요.”
“아닌데. 이번엔 한쪽에서만 흐르고 있습니다.”
“네?”
깜짝 놀라 되물은 세라엘이 다시 코언저리를 만졌다. 그러나 액체가 묻어져 나오는 기색은 없었다.
세라엘은 바보처럼 허둥지둥하다가 뒤늦게 그가 장난을 쳤다는 걸 깨달았다.
“너무해요. 조만간 두고 보세요. 제가 복수의 칼날을….”
말하는 도중에 그가 고개를 숙여 세라엘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누구든 볼 수 있는 장소에서 거리낌 없이 건네는 접촉에 흠칫했으나 세라엘은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이었다.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을 거예요.”
“귀엽네요. 어떤 복수를 하실지 기다려지는데요.”
하찮은 협박을 들은 카에드가 푸스스 웃었다. 그는 살짝 뜸을 들이면서 세라엘의 머리칼을 매만졌다.
“다름이 아니고 세라엘 양에게 꼭 보여 주고 싶은 게 있는데.”
말끝을 살짝 늘인 목소리가 어쩐지 의미심장하여 주의를 끌었다. 온기를 지닌 손이 세라엘의 뺨을 감싸 쥐었다. 그 특유의 향기가 물씬 밀려들었다.
“내게 시간을 잠깐 내어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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