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5)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5화(5/150)
“싫어요.”
세라엘이 단박에 거절하자 나타샤의 얼굴이 모멸감으로 벌게졌다.
“이 버르장머리 없는 것 같으니라고!”
쿵쿵 다가온 나타샤가 집게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너, 좋은 말로 할 때 지금 당장 일어나서 대공님이 계시는 1층으로 내려가.”
예의라곤 찾아볼 수 없는 추태에 오기가 동한 세라엘이 고개를 내저었다.
“싫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시종이 있는데 손님께 방 안내하는 일을 제가 할 필요는 없어요.”
“정말 몰라서 이러는 거냐? 오늘 오간 대화만으로 깨달은 게 없다니 둔한 무지렁이가 따로 없구나.”
도를 넘은 막말에 세라엘이 헛웃음을 쳤다.
“선 넘지 마세요. 저는 입이 없어서 막말을 못 하나요?”
“기껏 단장시켜 놨더니 남자 하나 못 꾀는 주제에 따박따박 말대답이나 하고 있어. 몇 개월 치 생활비를 털어 네 보석과 드레스를 샀단 말이다.”
나타샤에게는 카에드 특유의 무심한 태도가 세라엘에게 전혀 흥미 없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공들여 준비한 상품이 포장지도 풀리지 않은 채 거절당한 기분이었다.
게다가 안색 하나 바뀌지 않고 말대꾸하는 의붓딸 때문에 미칠 지경이었다.
“보석 따위 전 달라고 한 적 없어요. 어차피 다시 회수해 가실 거잖아요?”
세라엘은 이제껏 아버지와 계모로부터 선물 같은 건 받아 본 적 없었다. 혹여 받게 되더라도 대가성 있는 불쾌한 선물이란 걸 일찌감치 예감하고 있었다.
창피하지도 않은지 나타샤가 냉큼 손을 내밀었다.
“말 나온 김에 내놓아라. 어차피 너에게는 과분한 장신구였어.”
“어머니에게도 과분한 장신구, 가져가세요.”
나타샤가 그랬던 것처럼 세라엘도 패물이 담긴 꾸러미를 손으로 툭 쳐서 바닥에 떨어뜨렸다.
금속이 부딪치는 파열음과 함께 계모의 눈이 이보다는 더 커질 수 없을 만큼 크게 떠졌다.
세라엘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재차 쏘아붙였다.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다고 호통치는 어머니의 작태가 추할 따름이에요.”
“네가 정신이 나갔구나!”
반쯤 이성을 잃은 나타샤가 쉰 목소리로 지껄였다.
“껍데기 하나는 볼 만하다고 생각했더니 역시 아니었나 보다. 이 무능력한 것아, 대공이 너한테 관심을 조금도 보이지 않고 있잖아!”
둔하기 짝이 없는 나타샤는 정찬에서 오간 묘한 기류를 전혀 느끼지 못한 듯했다.
해명할 의무도 없는 세라엘은 속을 긁어 놓는 말에 길길이 반응하기 싫었다.
“내 알 바.”
“…뭐?”
“내 알 바 아니라고요, 아줌마.”
“이… 이게 진짜!”
이성을 잃은 나타샤가 오른손을 높이 쳐들었다.
“안, 안 돼요!”
때마침 몸을 내던진 루시가 가냘프게 외치며 둘 사이에 간신히 끼어들었다.
루시는 작았지만, 밤낮으로 집안일을 한 덕에 온몸의 근육이 잘 발달한 상태였다.
나타샤를 떼어놓을 힘은 충분히 가졌단 뜻이었다.
“주인마님! 정신 차리세요!”
“이것 놔! 내 당장 저것의 버릇을 고쳐 놓을 테니까!”
“아가씨께 손찌검하시면 안 돼요!”
“놓으라니까!”
“아래층까지 다 들리겠어요! 소란이 일면 후작님께서 굉장히 곤란해지실 거예요!”
밀로즈 후작의 말 한마디에 껌뻑 죽고 사는 나타샤였다.
이따금 세라엘은 돈에 눈이 멀어 나타샤와 재혼한 아버지를 원망하곤 했다.
재혼 초기에 나타샤에게 굽신거리던 후작의 모습을 기억한다.
어머니처럼 덕망 높은 전처를 가진 아버지가 어찌 저런 천박한 여자의 돈주머니에 홀랑 넘어가 재혼했는지 늘 의문이었다.
귀족성 운운하며 신분의 고저를 무엇보다도 따지던 후작이 보잘것없는 준남작의 차녀와 연을 맺다니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타샤에게도 아쉬울 게 없는 재혼이었다. 우아한 저택과 십수 명의 사용인을 거느리면서 안주인 행세까지 할 수 있었으니까.
세월이 흐르자 잃을 게 많아진 나타샤가 아버지에게 빌빌거리는 처지가 되었다.
그래서 조금 전 루시의 말이 정곡을 찌른 듯했다.
나타샤는 씩씩대면서도 더는 달려들지 않았다. 헝클어진 칙칙한 색의 머리카락을 정돈하며 세라엘을 노려볼 뿐이었다.
세라엘은 먼지 하나 얹히지 않은 모습으로 계모를 마주 봤다.
“아가씨….”
나타샤를 껴안다시피 하며 둘을 막아선 루시의 표정이 괴로워 보였다. 아끼는 아가씨가 의붓어머니와 죽일 듯 다투는 모습이 몹시 보기 힘든 듯했다.
나타샤는 방문을 척 가리켰다.
“너! 마지막 기회야. 당장 아래층으로 가서 대공님을 게스트 룸으로 모셔.”
세라엘은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고집 때문에 루시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손님께 방 안내해 드리는 일쯤… 별것 아닌 일이다.
터벅터벅 나서는 세라엘의 등 뒤에 나타샤가 기어이 비수를 꽂았다.
“먼 길 행차하셨으니 뭉친 곳 없도록 네가 잘 풀어 드리라고. 알아들었어?”
그런 말 따위 알아듣지 못할 만큼 그녀는 어리숙하지 않았다.
‘뭐? 뭉친 곳을 풀어 드려? 이 인간들이 날 뭐로 취급하는 거야!’
세라엘은 있는 힘을 다해 침실문을 쾅 닫았다. 아래층까지 들렸을 수도 있지만 개의치 않았다. 곧 문이 확 열리고 열 받은 나타샤가 뛰쳐나왔다.
“이 버르장머리 없는 게 감히 어디서 문을 쾅 닫아!”
“바람 때문에 닫힌 거예요.”
뻔한 변명을 읊으며 세라엘이 걸음을 계속했다.
1층 만찬실에서는 블카노프 대공과 밀로즈 후작이 아직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대화라기보다 후작의 일방적인 떠듦에 가까워 보였다.
카에드의 수하들은 먼저 자리를 떴는지 보이지 않았다.
세라엘이 모습을 드러내자 눈치 빠른 후작이 엉큼하게 웃어 보였다.
“대공님. 피로하실 텐데 사담은 내일 계속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게스트 룸에서 편히 지내실 수 있게끔 특별히 신경을 써 놓았답니다.”
후작이 세라엘에게 눈짓했다.
“제 딸아이가 모셔다드릴 겁니다.”
가까이 다가간 세라엘이 목각 인형처럼 입을 뚝딱거렸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빈 포도주 잔을 매만지던 카에드가 금색 눈동자만 바싹 들어 올려 그녀를 보았다.
속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에 세라엘은 기습이라도 당한 것처럼 가슴이 철렁했다.
카에드는 후작에게 짧게 인사를 건넸다.
“훌륭한 만찬이었습니다.”
준비된 요리에 일말의 관심도 보이지 않던 그가 뻔한 거짓을 고하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곧장 세라엘의 몸 위로 위압적인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멀리서도 그가 장신이란 걸 알았고, 곁에 앉아 보았으니 체격이 다부진 것도 알았다.
그러나 직접 맞닥뜨린 남자의 몸은 압도적인 완력이 물씬 느껴질 정도로 크고 탄탄해 보였다.
널찍하게 벌어진 어깨는 두툼했고, 세라엘의 코앞에 있는 가슴팍도 무척이나 다부졌다.
옷감이 터질 듯 팽팽한 모습이 연거푸 그녀의 시야에 걸렸다.
쓸데없는 불가항력을 떨쳐 내려 세라엘은 눈을 질끈 감고 몸까지 휙 돌려서 종종걸음을 쳤다.
하지만 단 한 걸음 만에 그녀를 따라잡은 카에드가 바로 옆에서 발을 맞춰 걸었다.
계단을 오를 때 남자가 꽁무니에서 뒤따라오면 좀 민망할 뻔했는데 차라리 다행인가 싶었다.
‘근데 나란히 걷는 모습이 너무 간질거려서 아닌 것도 같아.’
카에드가 머물 게스트 룸은 하필 세라엘의 침실 바로 옆이었다.
‘가는 길이 이렇게 멀었었나?’
매일 걷는 복도가 이리도 생소할 줄이야.
쉴 새 없이 두근거리는 마음을 내리누르며 그와 함께 방 앞에 도착했다.
“대공께서는 여기서 머무시면 됩니다. …응?”
방문을 열려던 세라엘이 당황하여 손잡이를 덜컥거렸다. 침실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누가 또 잠가 놨어!’
귀한 손님만 머무는 방이라 자주 쓰지 않은 탓이었다.
손잡이가 헐겁고 내부의 쇠붙이에 녹까지 슬어, 조금이라도 잘못 만졌다간 안에서 잠겨 버리기 일쑤였다.
아마도 청소를 맡은 사용인이 실수한 모양이었다.
남자의 단단한 몸에 어깨 끝이 닿을 만큼 비좁은 공간에 서 있자니 세라엘은 마음이 급해졌다.
“실례합니다, 대공님. 이게 또 말썽이네요.”
카에드가 대답 대신 손을 내뻗자 그녀는 덜컥이던 손짓을 멈추었다.
금세라도 닿을 듯 가까워진 큼직한 손이 시야에 들어왔다.
세라엘의 손과 한마디는 훌쩍 넘게 차이 나는 길이에 뼈마디가 툭 불거져 나와 무척 남자다운 손이었다.
그녀가 비켜서자 카에드는 무감한 표정으로 문고리를 잡았다.
투둑. 툭.
별로 힘을 준 것 같지도 않은데 억센 손아귀 힘이 문고리 안의 쇠붙이를 장난감처럼 부서뜨렸다.
간단히 문을 열어젖힌 그는 저벅저벅 방 안으로 들어섰다.
교체하지 않는 이상 다시는 잠그지 못할 문짝을 세라엘은 황망히 쳐다보았다.
“네, 여기가 지내실 방입니다….”
다시 버벅거리면서도 그녀는 예의를 잊지 않았다.
그녀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카에드는 침대 끝에 털썩 앉았다. 답답한 듯 목 근처의 옷감을 당기며 낮은 숨을 내리 쉬기도 했다. 그러자 새까만 셔츠 아래 자리한 빗장뼈가 슬쩍 모습을 드러냈다.
불현듯 남자의 피로를 풀어 주라던 계모의 전언이 떠올랐다.
간신히 가라앉았던 심장 박동이 빠르게 박동하면서 여길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세라엘의 머릿속을 꽉 채웠다.
“방 안에 욕실까지 갖춰져 있어 불편한 점은 없으실 거예요. 목욕도 가능하니까요. 도움이 필요하시면 불러 주세요.”
“…….”
카에드의 것이 아니었다면 무척이나 아름답다고 당장에 소리 내어 감탄했을 금색의 눈동자가 세라엘을 향했다.
그제야 그녀는 자신이 내놓은 말이 무척 이상한 어감으로 들린다는 걸 깨달았다.
“어머, 세상에. 제가 대공님의 목욕을 도와드리겠다는 게 아니라.”
세라엘의 말이 빨라졌다.
“아무쪼록 목욕 도움이 아니더라도 어떤 도움이든 필요하시다면 불러 주세요. …물론 저 말고 하인을.”
세라엘은 꼼질꼼질 뒷걸음질 쳤다.
그런 그녀를 잠자코 지켜보던 카에드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웃어…? 혹시 비웃는 건가?’
하지만 비웃음치고는 미묘하게 느낌이 달랐다.
마치 귀여운 소동물을 볼 때와 결이 비슷하다면 비슷했다. 뭐가 되었든 기이하게도 아까만큼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카에드는 상체를 기울인 채 웃음기 묻은 눈으로 세라엘을 바라보았다. 이어 감미로우면서도 깔끔한 저음으로 입을 열었다.
“지나치게 긴장하셨네요.”
그는 매끄러운 흑발을 쓸어 넘겼다. 드러난 이마가 무척이나 반듯했다.
잘생겼다는 감상과 동시에 저 멋들어진 이마를 은반지로 명중한 실수가 상기되었다.
스르르 힘이 풀리던 세라엘의 어깨에 다시 바짝 각이 세워졌다.
“식사 중에도 긴장하신 듯하여 농담을 좀 했습니다만.”
“…….”
“제가 불편하십니까?”
카에드는 느슨하게 깍지낀 두 손을 입가에 가져다 대며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건 농담이 아니었어. 거슬리면 모조리 죽이겠다는 협박에 가까웠지.’
원작의 그는 농담이란 걸 모르는 남자였다.
그런 카에드가 세라엘의 긴장을 풀어 주려 했다는 것도, 자신을 향한 의견을 넌지시 묻는 것도 모두 의문투성이였다.
“…불편하지 않아요.”
솔직하게 말했다간 목이 뎅강 잘릴 것 같아서 세라엘은 일단 도리질을 쳤다.
“불편하셔도 이해합니다. 생긴 게 사나워서.”
그러자 카에드가 자조하며 눈을 내리깔았다.
뜻밖의 말에 당황한 세라엘이 입을 살짝 벌렸다. 물론 그를 둘러싼 고압적인 기류가 좀 겁나긴 했지만….
‘사납다니요. 그 얼굴이?’
정상적인 여인이라면 혼을 빼놓고 탄복할 테스토스테론의 결정체 같은 외모가?
“둘만 있게 되었으니 더욱 불편하시겠지요. 이만 나가셔도 좋습니다.”
근육으로 균형 잡힌 거구의 남자가 묘하게 쓸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알고 있던 원작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다. 남자를 향한 막연한 두려움 속에서 호기심이 불쑥 피어올랐다.
게다가 이대로 나가 버린다면 그를 불편해한다는 걸 인정하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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