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55)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55화(55/150)
세라엘은 한참 동안 창턱에 앉아 있었다.
차츰 비치기 시작하는 여명을 역광으로 받으며 그녀는 나른하게 고개를 젖혔다. 그대로 유리창에 등을 기대어 순순히 카에드의 입술을 받아들였다.
머릿속이 몽롱해서였을까. 눈앞이 희뿌옇게 흐려지고 잇새로 밭은 호흡이 흘렀다.
평상시와는 달리 그녀가 부끄러워하거나 저항할 기색이 아니란 걸 알아챈 카에드는 더욱 과감하게 굴었다.
입술을 붙이기 전에 손끝으로 쓸어서 세라엘의 반응을 확인했고, 거부감을 표하지 않으면 혀로 할짝였다.
“으응….”
어떻게 갈무리할 새도 없이 젖은 숨에 엉긴 비음이 멋대로 새어 나왔다. 세라엘의 무릎을 쥔 그의 손에 강한 악력이 실렸다. 그녀가 상체를 비틀고 다리를 꿈틀거려도 카에드는 그만둘 생각이 없어 보였다.
세라엘은 정신이 흐릿한 와중에도 세찬 빗소리가 적막을 메워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었다면 신음을 가감 없이 내뱉지 못했을 거고, 질척거리는 소리도 지나치게 노골적이었을 테니까.
비스듬히 시선을 내리자 그의 칠흑 같은 머리칼이 보였다. 세라엘은 떨리는 손으로 그의 매끄러운 흑발을 움켜쥐었다. 카에드는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래도 되는 걸까. 마땅히 정해져 있는 순서를 무시하고 마지막 단계로 훌쩍 건너뛰어 버린 기분이었다.
세라엘이 다시 턱을 올리자 흐리멍덩한 시야에 크림색 천장이 들어왔다. 그녀는 천장에 실로 수놓아지듯 그려진 문양을 오래도록 눈에 담았다.
뱃속에 고인 간질간질한 감각이 부피를 불려 오면서 절로 미간이 좁혀지고 숨이 가빠졌다. 그때쯤 세라엘은 그의 어깻죽지를 밀어냈다.
“…카에드.”
고개를 든 카에드가 그녀와 시선을 맞추었다. 그녀는 멍한 눈으로 그의 반질거리는 입술을 응시했다.
“그만할까요?”
말로는 그렇게 하면서 그는 조금 전까지 제 혀가 닿았던 곳을 불거진 손마디로 살살 문질렀다. 세라엘은 주먹을 말아쥐고 그의 어깨를 살짝 밀쳤다.
“잠깐이면 된다고 하셨잖아요….”
그녀는 침실에 들어오기 전 카에드가 했던 말을 상기시켰다.
나름대로 핀잔하려 꺼낸 말이었는데 막상 입 밖에 내놓고 보니 발음이 엉망이었다. 술에 취했을 때도 이 정도로 혀가 꼬인 적은 없었다.
졸려서 그런 건가. 아니면 접촉의 여파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세라엘답지 않은 교태 어린 목소리였다.
카에드는 그제야 몸을 일으켜 세웠다.
“피곤하십니까?”
“너무 졸려서….”
아예 눈을 감아 버린 세라엘이 비몽사몽 웅얼거렸다.
가뜩이나 잠이 부족한 상태에서 한 줌뿐인 기운까지 빼앗기고 있자니 졸음을 참아 낼 재간이 없었다.
세라엘은 그의 목에 두 팔을 감고 가슴팍에 뺨을 갖다 댔다. 포근한 체취가 물큰 풍기면서 규칙적으로 뛰는 심장 박동이 들려왔다. 이렇게만 있어도 금세 잠에 빠져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카에드는 한 손으로 세라엘의 등을 토닥이면서 다른 손으론 자신이 헤집어 놓은 그녀의 옷자락을 가다듬었다. 이어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진 그녀를 소중히 안아 들고 침대로 다가갔다.
그는 푹신한 침대에 세라엘을 눕힌 뒤 이불까지 덮어 주고 나서 몸을 돌렸다. 세라엘은 그에게 어딜 가냐고 물을 여력도 없어서 눈으로만 움직임을 좇았다.
그는 벽난로 안에 장작을 몇 개 더 던져 넣었다. 시원찮았던 장작불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불타올랐다.
침실을 떠날 생각은 아니었던지, 카에드는 침대맡에 앉아 세라엘을 내려다보았다.
“세라엘.”
부드러운 손길이 그녀의 머리 사이로 스며들었다. 두피에 퍼지는 기분 좋은 느낌과 머리칼이 쓸리는 소리가 시나브로 졸음을 불러왔다.
“당신에게 많은 걸 바라지 않습니다.”
꿈결처럼 희미한 음성이었다. 귓바퀴 뒤로 머리카락이 넘겨지면서 목 언저리에 미미한 소름이 일었다. 세라엘은 살며시 눈을 감았다.
“그러니 나를 불안하게 만들지 말아요. 내가 내 욕심을 앞세우는 일이 없도록….”
그녀의 뺨에 다정히 입술을 내린 카에드가 귓가에 속삭였다. 깊은 잠에 빠져든 그녀는 전해지는 음성을 듣지 못했다.
머리칼을 어루만지는 손길은 세라엘이 눈을 감고도 오래도록 떠나지 않았다.
***
본성과 떨어진 2구역의 조찬실.
하나같이 시커먼 옷차림을 한 수십 명의 남자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늦은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접시에는 조식으로 먹기 부담스러운 육류 요리가 가득했고, 주변엔 송아지만 한 늑대 두어 마리가 걸어 다니고 있었다.
조찬실 내의 사용인들은 이 광경이 익숙한 듯 제 할 일에만 집중했다. 몇몇은 말을 걸어오는 발켄족 남자와 살갑게 인사하기도 했다.
“되는 일이 없냐.”
테이블 위에 발을 올려놓고 하얀 밀빵을 씹어 먹던 악셀이 투덜거렸다.
“오늘만을 기다렸다고. 양고기 케밥이랑 훈제 소시지를 최소 스무 개는 먹고, 석궁으로 인형 맞추는 게임을 하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는데.”
악셀이 불끈 쥔 주먹으로 나무 테이블을 내려쳤다.
“축제에 못 가게 생겼잖아!”
큰소리와 함께 테이블의 귀퉁이가 뽀각 떨어져 나갔다. 근처에 있던 남자들이 악셀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러나 하루 이틀 보이는 성질머리가 아니었기에 모인 시선은 금세 흩어졌다.
테이블을 부서뜨린 것으로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악셀은 손아귀 안에 쥔 밀빵을 종잇장처럼 구겼다.
“이게 다 그 빨간 머리 여자 때문이야!”
“먹을 것 갖고 장난치지 마!”
손을 치켜든 렉터가 핏줄이 곤두선 악셀의 손등을 냅다 후렸다. 악셀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렉터를 노려보았다.
“지금 그 여자를 두둔하는 거야?”
“엄한 음식에 화풀이하지 말라는 거지. …미친놈아.”
렉터가 작게 욕설을 덧붙이며 주변을 살폈다. 혹시라도 다른 사용인이 듣고 루시에게 전달할까 봐 걱정하는 듯했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비 때문에 못 가는 거잖아. 황녀 때문이 아니라.”
“아냐. 내 온몸의 감각이 날뛰면서 말하고 있어. 그 여자가 불행을 몰고 온 거야. 이 소나기를 몰고 온 거라고. 축제에 못 가게 된 것도 그 여자 때문이야!”
악신을 믿는 광신도처럼 악셀이 허공을 노려보며 입가를 파르르 떨었다. 콜은 그를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소시지가 그리도 처먹고 싶으면 요리사한테 해 달라고 하든가…. 미친놈아.”
악셀이 도끼눈을 뜨고 콜을 쏘아보았다.
“야, 이 돌대가리야! 축제에 가 보고도 모르겠냐? 축제 특유의 맛이 있잖아. 거기서만 느낄 수 있는 그 특별한 맛이 있다고!”
“이 하이에나 같은 게 감히 어디서 형한테 돌대가리래. 난 멍청하지 않아.”
조금씩 거칠어지는 공방을 지켜보던 렉터는 새벽에 마주친 로잘린을 떠올렸다.
비아테 황가는 카에드뿐 아니라 발켄족과도 껄끄러운 관계에 있는 가문이었다.
불행 중 다행인지 로잘린은 카에드가 치를 떠는 적안에 은발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황가의 인물이 대공성에 온 꿍꿍이가 무엇인지 렉터는 줄곧 궁금했었다.
그는 측근들의 개인적인 의견을 물을 요량으로 입을 열었다.
“황녀는 본성 귀빈관에서 머무른다더라. 여기 온 이유가 궁금하….”
“귀빈은 무슨 귀빈이야!”
느닷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악셀이 옆에 놓인 나무 의자를 발로 뻥 찼다.
견고한 의자는 와장창 나무 쪼가리가 되어 폭죽처럼 허공에 날렸다. 화들짝 놀란 렉터는 팔꿈치를 들어 제 얼굴을 가렸다.
악셀은 성난 늑대처럼 으르렁거렸다.
“당장 내쳐도 모자랄 판에 어떤 얼뜨기가 거기다 갖다 놓은 거야!”
“누님이라던데.”
콜이 베이컨을 우걱우걱 씹으며 내뱉었다.
“두목은 내쫓으려고 했는데 누님이 들였다더라고.”
호기롭게 일어났던 악셀이 스르르 제자리에 앉았다.
“…뭐, 누군가에겐 귀빈일 수도 있겠지.”
“밥상머리에서 앙탈 부리지 말아라. 남들 보기에 눈살 찌푸려지니까.”
점잖게 식사를 하던 시프가 악셀에게 주의를 주었다.
렉터는 그들의 사견을 묻지 않기로 했다. 대신 시선을 돌려 끄트머리에 앉은 호크를 바라보았다.
“형. 그나저나 단서는 좀 찾았어요?”
조용히 스테이크를 뜯어 먹던 호크의 입가에 한줄기 선혈이 흘러내렸다. 그는 소매로 피를 거칠게 닦아 내고 입을 열었다.
“찾았겠냐. 빗물 때문에 바닥이 진창이라 기분만 잡쳤다.”
“로이 형은 아직 복귀하지 않은 것 같던데요. 그래서 뭐라도 발견한 줄 알았어요.”
“추적은 못 했지만 도시 랜본 근처에서 은갑주를 입은 기사 하나를 목격했다는 증인이 있었다. 두 다리 건너서 얻어들은 정보라 로이가 물어보러 간 거지.”
“형은 왜 같이 안 가고요?”
“로이는 나랑 달리 반반하잖냐.”
호크가 제 얼굴을 가로지르는 기다란 상처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러잖아도 발켄족 남자들 대다수는 근육질의 거구라 위협을 주기 십상인데, 호크는 인상까지 험악하여 평민이 그를 보면 소리 지르며 달아나기 일쑤였다. 이따금 호크를 신문에 나온 지명 수배범으로 오인해서 카에드의 위병에게 신고할 때도 있었다.
며칠 전에는 보좌관 티론과 도시 시찰을 하러 갔다가, 호크와 마주친 여인이 뒷걸음질 치다 엉덩방아를 찧어 뼈가 부러진 사건이 있었다.
호크가 몸소 의사에게 데려다주고 치료비까지 쥐여 주자 오해는 풀린 모양이었으나, 그 사건 이후 밝은 날엔 민간인 앞에 나서지 않기로 결심한 듯했다.
“흐음…. 뭐가 되었든 별일 아니어야 할 텐데.”
중얼거린 렉터가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새벽녘부터 내린 소나기는 조금도 잦아들지 않은 상태였다. 비도 비였지만,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는 불편함 때문에 렉터의 신경도 다소 예민했다.
악셀이 유독 심하게 심술을 부리고 있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그때 발켄족의 부하 하나가 음식이 산처럼 쌓인 접시를 들고 측근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좋은 아침입니다!”
붙임성 좋은 부하는 접시를 내려놓고 앉아 닭 다리를 뜯어 먹기 시작했다.
“본성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다던데요. 들으셨어요?”
콜은 백포도주를 마시다 말고 손등으로 입술을 닦으며 말했다.
“새벽에 등장한 빨간 머리 여자 때문이겠지.”
“어라. 어떻게 아셨습니까?”
“방금까지 얘기 중이었어. 내가 축사 당번이라 그 여자가 방문했을 때 마침 자리에 있기도 했고. 젠장… 그때 늑대한테 물어뜯긴 손가락이 아직도 아파.”
“하루 이틀이면 회복되실 텐데 새삼 뭘 그러세요. 그것보다, 난리가 난 이유가 하나 더 있다고요.”
순식간에 해치운 닭 다리의 뼈를 내려놓으며 부하가 씩 웃었다.
“두목이 늦잠을 잤다던데요. 그것도 새 신부의 침실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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