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6)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6화(6/150)
세라엘은 조금 더 용기를 내어 보기로 했다.
사뿐사뿐 다가가 그의 맞은편에 있는 접객용 의자에 조심스레 자리 잡았다.
“대공님의 외모가 사납다니…. 그렇지 않아요.”
그렇게 무릎이 닿을 듯한 간격을 두고 세라엘은 카에드를 바라보았다. 차가운 인상을 주었던 남자의 눈썹은 가까이서 보니 짙으면서도 섬세했다.
야수처럼 날카롭다고 생각했던 눈매에는 몹시 연한 속쌍꺼풀이 져 있어, 눈을 내리뜰 때마다 나른한 느낌을 주었다.
전생의 세라엘이 그토록 행복하길 바라던 비극 속의 남자였다.
길지 않은 침묵을 깨뜨린 사람은 카에드였다.
“나와 혼담이 오갔던 것, 알고 있습니까?”
“…알고 있었어요.”
세라엘이 끄덕이자 그가 정정했다.
“혼담이라 치부하기엔 지나치군요. 후작이 세라엘 양을 대가로 내게 금전을 요구했으니까요.”
“역시나…. 아버지께서 어느 정도의 금액을 기대하시던가요?”
“후작령에서 10년 동안 거둬들이는 세금의 액수와 비슷할 겁니다.”
“10, 10년이요?”
세라엘은 아연실색하여 동그란 이마를 짚었다.
끝까지 기우이길 바랐건만 그 미친 작자가 기어이 일을 벌이고 말았다.
“친딸을 외간 남성에게 팔아넘기려 하다니. 그야말로 제정신이 아닌….”
어찌나 화가 나는지 그 외간 남성 앞에서 생각이 줄줄 흘러나왔다.
“아무리 수전노라 해도 어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나요.”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건 아닙니다.”
귓전에 카에드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이 수도 힌델에 완공시킨 건물을 매입하면 여식과 연을 맺게 해 주겠다는 식으로 말하더군요.”
전혀 위로되지 않았다.
1+1도 아니고 건물 사면 친딸을 주겠다니, 이 무슨 정신 회까닥한 소리란 말인가.
세라엘은 다시금 지끈거려오는 이마를 눌렀다.
“미안합니다.”
착잡한 심경을 내비치는 그녀에게 카에드가 차분히 사과를 건넸다.
‘본인 잘못은 아닌데. 내 처지를 이해라도 해 주는 걸까?’
약간의 위로를 받으며 세라엘은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대공님께서 사과하실 필요는 없….”
“난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 생각해서요.”
세라엘이 자조적으로 웃으며 내놓은 말끝을 그가 기다렸다는 듯 잘라냈다.
머리를 때리는 충격 발언에 번쩍 정신을 차린 세라엘이 카에드와 눈을 맞추었다.
먹이 사슬의 최정상에 군림하는 맹수의 것처럼 이채가 감도는 눈동자는 사뭇 진지했다. 웃음기 한 터럭 없는 표정을 보아 결코 장난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애초에 그는 장난이란 걸 모르는 남자였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니, 어떤 점을 말씀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세라엘은 눈앞이 빙글빙글 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힌델에 세운 아버지의 건물이? 아니면 설마….”
말끝을 흐리자 카에드는 대답 대신 재차 물어 왔다.
“세라엘 양의 생각은 어떤가요?”
“…네?”
“나와 혼인하는 것 말입니다.”
바닷물 빛을 머금은 듯한 세라엘의 벽안이 갈 곳을 잃고 마구 요동쳤다. 눈앞의 남자가, 수틀리면 살인한다는 남자가 제게 청혼을 하고 있었다.
아니, 이걸 청혼이라 부를 수 있을까?
“제 착각이 아니라면, 대공님께선 저와 혼인하고 싶으신 것 같군요.”
“물론입니다.”
“그래서 제 생각을 여쭤보신 건가요?”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예의상이라도 세라엘 양의 의사를 물어봐야지요.”
예의상…이라는 단어가 걸렸으나 세라엘은 겁먹지 않고 잇달아 질문했다.
“죄송하지만 진심이신가요?”
“세라엘 양이 긍정적인 답을 준다면 즉시 혼인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물음표를 찍자마자 곧장 대답이 따라붙었다.
세라엘은 들썩이는 가슴에 손을 올려 자신을 진정시켰다. 왜지? 왜 이렇게 직진하는 거지?
“대공님.”
카에드는 가만히 그녀를 주시했다. 숨을 가다듬은 세라엘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결혼이란, 남녀가 한 지붕 아래 평생을 함께 살아야 하는 인생의 대사라고 전 믿고 있어요.”
“동감합니다.”
“그렇기에 섣불리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충분히 고심하고 내린 결정입니다만.”
“저는 아니에요. 서로를 차근차근 알아 가면서 생기는 애정과 신뢰를 기반으로 가약을 맺는 게 이상적이지 않을까요?”
“예식부터 치른 후에 알아 가면 안 되는 겁니까?”
평이한 음성과 달리 그가 내놓은 말은 무척이나 거침없었다.
덕분에 세라엘은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사실 연애결혼이 극히 드문 현시대를 고려해 보면 그의 말도 영 틀리지는 않았다.
게다가 권력과 재산, 미모까지 겸비한 남자와 이어진다는데 마다할 여자가 어디 있을까?
문제는 그가 카에드라는 점이었다. 세라엘이 아는 그는 결혼 생각은커녕 평생토록 이성에게 연정을 품어 본 적도 없는 남자였다.
더구나 건물 사면 1+1로 딸려오는 여자가 갖고 싶어서 이러는 건 아닐 테고.
이상하리만큼 진득하게 느껴지는 이 남자의 집념은 온전히 그녀만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더욱 할 말을 해야 했다.
“아버지께 막대한 금액을 지급하면서까지 혼례를 치르고 싶어 하시는 연유를 모르겠어요. 저는 사고파는 물건이 아니에요.”
“심정은 이해합니다만 나와 이어지는 편이 당신에게도 이로운 선택일 텐데요.”
입 벌어지게 잘생긴 외모가 아니었다면 무척 재수 없을 뻔한 발언이었다.
세라엘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거래하듯 오간 혼약이잖아요. 역시 대공님과의 결혼은 어려울 것 같네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카에드가 잠잠한 눈빛으로 그리 물어왔다.
‘지금 그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날고기를 앙앙 물어뜯는 늑대 군단을 매섭게 호령하는 우두머리 같은 남자가 이상하게도 풀 죽은 표정이었다.
“네? 그, 그런 건 아니에요.”
세라엘이 황급히 대답했다.
넓게 벌어진 카에드의 어깨가 축 늘어진 모습이 너무나 낯설고 측은해 보였다. 황금빛 눈은 애처로운 빛을 띠며 바닥을 향했다.
“내가 별로라서, 마음에 차지 않아서 거절하는 거군요.”
잇달아 반복된 독언은 무언의 대답을 종용했다.
당혹한 세라엘은 머릿속에만 있던 감상을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끌어냈다.
“아니에요. 대공님 외모는 굉장히 매력적이세요. 제국에서 흔치 않은 흑발도, 빛나는 금색 눈도 너무 예뻐요.”
다급한 칭찬에 카에드의 눈동자가 다시 세라엘을 향했다. 그는 울적한 기색을 풀고 나직이 웃었다.
“나 또한 세라엘 양을 눈에 담으면서 생각했습니다. 당신과 함께 있으려면 스스로를 잘 통제해야겠다고….”
“아, 저, 저는 그런 뜻이 아닌데요?”
“…….”
“저기. 잠시 제 말을 좀 들어주세요.”
또다.
늑대 제왕 같은 남자가 아까 같은 냉소적인 기류는 온데간데없이 걷어치우고 속눈썹을 처연히 내리깔았다.
흡사 오래도록 간직해 온 순정을 고백했다가 거절당한 남자처럼 애처로워 보였다. 순정적이기까지 한 그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진 세라엘이 다시 칭찬을 시작했다.
“오해하지 마세요. 카에드 님은 정말 멋있으세요.”
“…어떤 점이?”
“그야 보기 드문 장신에 몸이 엄청 좋으시잖아요. 여자라면 누구나 카에드 님을 껴안아 보고 싶을 거예요.”
누가 누가 더 예쁘고 잘생겼나 칭찬 대결하는 기분이었다.
지금 세라엘은 몹시 곤혹스러운 상태였다. 감정을 잃고 색채 없는 세상을 바라보던 비극 속의 남자.
사람을 죽이는 일밖엔 할 수 있는 게 없던 남자가 전혀 다른 설정을 줄줄이 달고 나타나 짙은 호감을 표현하고 있다.
심지어 그녀와 당장 결혼까지 하고 싶은 눈치였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원작의 참극을 생각해 보면 이게 잘못되긴 한 건지도 혼란스러웠다.
“세라엘 양은요?”
카에드의 눈빛에 금세 생기가 돌았다.
“세라엘 양도 그런가요?”
“아…. 네, 물론. 저도 그래요.”
하도 경황이 없어 세라엘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였다.
그가 느리게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미소 지었다.
“같은 마음입니다. 세라엘 양을 가까이서 보고 있으니 바스러지게 안아 보고 싶어요. 인내심이 좋은 편인데도 제어하는 게 벅찰 정도입니다.”
“저, 대공님. 잠시만요.”
그녀가 두 손을 들어 카에드를 제지했다.
‘나 여기 있어도 안전한 거 맞지…?’
정신 바짝 차리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야 했다. 그래야 여인의 마음을 자꾸 흐물흐물하게 만드는 이 남자를 멈출 수 있었다.
“대공님은 멋진 분이세요. 하지만 잘 알지 못하는 남성과 부부의 연을 맺는다는 점에서, 여자로서 걱정되는 부분이 많아요.”
그는 조금 전까지 보였던 애처로운 기색은 깡그리 걷어치우고 흥미롭다는 듯 상체를 앞으로 스윽 숙였다.
순식간에 바뀐 분위기에 당황하려던 찰나, 숨결이 물씬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지는 바람에 세라엘은 뒤로 살짝 몸을 젖혔다.
“예를 들면 어떤 점입니까?”
“음….”
그녀는 가정불화의 흔한 원인을 짚어 보았다.
“고부간의 갈등이 역시 흔하지요.”
“내 혈연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카에드가 딱 잘라 반박했다.
“단 한 명도.”
또렷한 발음으로 확인 사살까지 했다.
할 말을 잃은 세라엘이 턱을 괴었다.
‘그러고 보면 틀린 말이 아니잖아? 블카노프 가문에도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뿐이었으니.’
어차피 가문원이 멸족된 사건과 별개로 그는 혈육 따윈 없는 사내였다.
‘앗. 내가 왜 설득당하고 있는 거야.’
저도 모르게 끄덕이던 그녀가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생활 습관이나 성격 차이도 고심해 볼 문제예요.”
“하찮은 문제로군요.”
“그렇지 않아요, 대공님. 상대가 툭하면 거짓말을 하거나, 불결한 위생 습관을 지니고 있거나, 손버릇이 나쁘면 아주 곤란하지요.”
“그러니까 하찮은 문제라는 겁니다. 나와 가약을 맺는다면 그런 조잡한 일은 없을 테니까요.”
그가 더없이 분명한 음성으로 덧붙였다.
“한결같은 정직함과 깔끔함을 약속드리죠.”
반박할 틈이 없는 호언장담에 세라엘이 머리를 굴렸다.
‘불화의 원인이 또 뭐가 있더라.’
아. 어쩌면 가장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는 부분을 빠뜨렸다.
“평생토록 몸을 맞대고 사는 사이니까, 남녀 간의 속궁합도 잘 맞을지 고려해 봐야 하는걸요.”
“…….”
“어, 어머! 내가 방금 뭐랬지. 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당황한 세라엘이 양손을 내저었다.
그런 의미 맞다.
그냥 정신 놓고 말하다 보니 낯뜨거운 주제를 떠벌리고 말았다. 카에드는 속눈썹을 더디게 깜박이며 눈을 내리깔았다.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눈치였다.
짧은 침묵 끝에 그가 피실 웃으면서 납득했다.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네요.”
세라엘은 멋쩍게 끄덕여 보였다.
“그렇지요? 역시 결혼은 어려울….”
“원하신다면 미리 확인해 보셔도 좋습니다.”
카에드가 묘한 자신감이 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기겁한 세라엘이 눈을 크게 떴다.
듣는 이에 따라 얼마든지 해석의 여지가 열려 있는 말을 카에드는 산뜻하게도 내놓고 있었다.
하물며 저 자신감의 기저가 무엇인지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