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61)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61화(61/150)
“세상에서 가장 어여쁜 신부예요….”
옷장 앞에 선 루시가 울먹거리며 중얼거렸다.
저 소리가 스무 번을 넘어갈 때부터 세라엘은 반응하지 않았다. 몸치장이 오래 걸려 지친 상태였고, 감동에 젖어 칭찬하는 사람은 루시만이 아니었다.
릴리와 베일리 부인은 물론 어디선가 하녀들이 줄줄이 몰려와서 종달새처럼 감탄사를 던졌다. 평생 들을 찬사를 오늘 아침에 다 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세라엘도 처음엔 고맙다고 일일이 응해 주다가, 슬슬 목청이 아프기 시작하자 대꾸하지 않았다.
마침내 단장이 끝나고 세라엘은 제 모습을 거울에 비쳐 보았다.
은은한 생기가 도는 화장은 과하지 않고 자연스러웠으나, 순백의 웨딩드레스는 영롱한 광채를 머금고 있었다.
어깨와 팔을 드러낸 상체에 빛을 난반사하는 작은 보석이 조밀하게 박혀 있어, 몸을 살짝만 비틀어도 찬란하게 반짝였다. 빈틈없이 달라붙는 디자인이라 우아한 굴곡까지 드러났다.
얇은 튤 원단이 여러 겹 덧씌워진 치맛자락은 자연스럽게 늘어져 가벼운 움직임에도 하늘하늘 나부꼈다.
머리칼에는 열을 가한 둥근 막대로 풍성한 컬을 넣어 늘어뜨리고, 절반만 느슨하게 묶은 후 고정핀과 끈이 보이지 않게끔 여러 번 꼬아서 마무리했다.
정갈하면서도 기품 있는 머리 모양이 새하얀 드레스와 너무나 잘 어울렸다. 세라엘이 보기에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새신부의 모습이었다.
“좀 불편한데.”
그러나 잇새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루시가 느슨하게 해 주었는데도 갈비뼈를 힘껏 죄는 코르셋 때문에 호흡이 편치 않고 갑갑했다.
등허리를 매만지자 손톱에 보석이 걸렸는지 실밥 터지는 소리가 났다. 완성된 걸작을 바라보듯 흡족하게 웃던 릴리가 기겁하여 달려들었다.
“안 돼요! 지금 이대로 딱 좋은데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아무래도 그 보정 속옷 때문인 거 같아. 드레스를 벗어서 확인해 봐야겠어.”
“부디 참아 주세요. 식장에서 영주님과 하객들이 기다리고 계신다고요!”
“그게 문제가 아니야. 허리가 조여서 숨쉬기도 힘든데 와이어가 날개뼈를 자꾸 찌르고 있어.”
“원래 예쁜 건 다 불편한 법이에요.”
릴리는 당연하다는 듯 받아쳤다. 그러고는 세라엘의 머리 위에 장미 향이 나는 레이스 면사포를 씌웠다.
“피로연에서 활동하기 편한 이브닝드레스로 갈아입으실 거예요. 그때까지만 견뎌 주세요.”
세라엘의 낯빛이 희게 질렸다.
“피로연까지 세 시간은 남지 않았니…?”
“식이 끝나고 하객분들과 대화하시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실 거예요.”
세라엘은 슬픈 눈으로 하녀를 흘겨보았다.
“릴리…. 언젠가 네 홍차에 몰래 소금을 넣을 거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를 온 제국에 보여 줄 수 있다면 소금도 달게 먹을래요.”
릴리는 옷감의 실밥이 나온 곳이나 머리칼에 엉킨 곳은 없는지 살뜰히 챙겨 주었다.
이렇게 애정이 넘치는 언행만 골라 하니 불평할 수도 없었다.
세라엘은 끙 소리를 내며 화장대에서 일어났다. 이제 식장이 있는 대정원으로 갈 차례였다.
여자의 로망이라는 결혼식을 치르는 날인데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상체를 조이는 코르셋이 원인이었다. 중요한 날에 몸 어딘가가 불편한 것만큼 거슬리는 일이 있을까.
성이 워낙 넓어 대정원까지 가려면 마차를 타야 했다. 차내에서 세라엘은 연신 어깨를 꿈틀거렸다. 몸을 옥죄는 딱딱한 코르셋 때문에 앉아 있는 것보다 차라리 서 있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가 멈췄고, 밖에 있던 누군가가 문을 열어 주었다.
“감사합….”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네려던 세라엘이 마차 앞에 선 남자와 눈을 맞추었다.
유리온실 앞에서 만나 함께 웨딩 로드를 걸을 예정이었던 카에드가 약간 굳은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세라엘 또한 급작스레 마주한 그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결 좋은 흑발을 뒤로 넘겨 그의 반듯한 이마와 짙은 눈썹이 드러나 있었다. 건장한 체격에 각이 잡힌 정복까지 더해지니 그러잖아도 출중한 용모가 도드라져 보였다.
험악한 도적단의 수장이라기보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고위 귀족 가문의 자제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잖아.’
피식 웃은 세라엘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마차에서 내릴 수 있게 에스코트를 해 달라는 뜻이었는데 카에드는 그녀의 손끝만 잡고서 미동이 없었다.
그는 연결된 시선을 끊지 않은 채 느린 속도로 세라엘의 손등에 입술을 붙였다.
“기다리다 지쳐서 나와 봤더니….”
카에드는 뒷말을 잇는 대신 거추장스러운 면사포를 걷었다. 툭 불거진 손마디가 세라엘의 뺨을 살살 쓸었다. 닳기라도 할까 봐 무척이나 조심스러운 손짓이었다.
“내가 평생 가져 본 것 중에 가장 사랑스럽군요.”
그는 황홀해 마지않는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표정이라 세라엘은 소리 내서 웃음을 터뜨렸다.
“제 드레스가 마음에 드시나 봐요.”
세라엘을 뜯어보듯 빤히도 바라보던 그가 희미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뭘 입어도 마음에 들었을 겁니다. 특별한 날이라 감회가 남다르군요.”
카에드의 눈에 초점이 조금 풀려 있었다. 정신을 빼놓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대로 놔뒀다간 세라엘을 한도 끝도 없이 바라만 보고 있을 것 같았다.
“안 내려 주시면 다시 성으로 돌아갈 거예요.”
세라엘이 장난스레 말하자 그는 그제야 손을 잡아끌었다. 곧장 단단한 품에 안긴 그녀가 받은 것은 입맞춤이었다.
잠시 얼이 빠져 있던 세라엘이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그가 선사하는 앙증맞은 마찰음에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아직 서약을 듣지도 않았는데 이러시면 어떡해요.”
“지나치게 사랑스러운 당신을 탓하십시오.”
같은 부위에 재차 입맞춤이 더해졌다. 세라엘은 주먹을 말아쥐고 그의 가슴을 살짝 밀었다.
“대공님…!”
“한두 번 해 본 것도 아닌데 하면 안 됩니까?”
“인제 보니 조금 뻔뻔한 면이 있으시네요. 어서 가요.”
카에드는 가벼운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며 뒤늦게 팔을 내밀었다.
팔짱을 낀 두 사람은 대정원 입구에서부터 나란히 붙어서서 식장으로 향했다. 녹음이 우거진 정원에 들어서는 그들은 뒷모습마저도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반면 세라엘은 한 걸음씩 옮길수록 숨쉬기가 버거웠다. 일어서면 괜찮을 줄 알았더니 몸이 점점 불편해지고 있었다.
세라엘은 카에드와 닿지 않은 팔을 꺾어 괜히 등 부분의 옷자락을 당겨 보았다. 릴리가 보면 보석이 떨어진다고 기함할 행위였다. 그래도 나아진 점은 없었다.
그녀의 작은 동작과 흐트러진 숨을 알아챈 카에드가 시선을 내려 같은 곳을 응시했다. 세라엘은 제 등허리를 만지던 손을 얼른 뗐다.
“문제라도 있습니까?”
카에드는 그녀의 등을 내려다보면서 물었다.
속옷이 불편해요. 라고 말할 순 없으니 세라엘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문제없어요.”
그는 눈매를 좁히면서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이윽고 처음으로 유리온실을 눈에 담은 세라엘이 긴 숨을 들이켰다. 경황없는 와중에도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는 유리면을 보자 무척 아름답다는 감상이 피어올랐다.
“어머나….”
감탄한 세라엘이 턱을 치켜들고 온실의 웅장한 크기를 가늠해 보았다.
“제가 칼스비크에 왔을 때부터 공사 중이란 얘긴 들었어도 이 정도로 거대할 줄은 몰랐어요.”
“하객만 200명이 넘을 예정이었으니 공사 규모를 크게 잡았습니다.”
세라엘은 약간 떨떠름한 눈으로 카에드를 올려다봤다.
“예식장으로 한 번 쓰고 말기에는 너무 아까운걸요. 식이 끝나면 어떻게 사용하실지 생각해 보셨어요?”
돈을 펑펑 쓰는 남편에게 잔소리라도 하는 듯한 말투였다. 카에드는 그게 이상하리만큼 마음에 쏙 들었다.
“딱히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만 연회장이나 화원으로 쓸 수 있을 겁니다. 나중에 세라엘 양이 원하는 대로 꾸며 보십시오.”
“아야!”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세라엘이 바늘에 찔린 것처럼 흠칫하며 짧게 소리를 질렀다.
미간을 좁힌 카에드가 의문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관찰했다. 세라엘은 불편함을 지우지 못한 얼굴로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음… 그렇다면 화원… 화원이 좋겠네요. 안에서 책도 읽고 차도 마시면 너무 좋겠다.”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마차에서 내려 걸을 때부터 그녀의 상태가 이상했다.
뭔가에 정신이 팔린 듯 멍한 표정을 하다가도 갑자기 인상을 썼고, 어딘가 거슬리는 곳이 있는 것처럼 간헐적으로 어깨를 움츠렸다.
하지만 괜찮냐는 물음에도 세라엘은 힘차게 도리질 쳤다.
카에드는 그럼 술을 마신 거냐고 물어보려다 입을 다물었다. 술 냄새도 나지 않았을뿐더러 만취한 세라엘은 이렇게 멍하지 않았다.
“우와. 이제 식장으로 들어갈 시간이에요.”
하인 두 명이 문을 열어젖히려 하자 세라엘은 영혼 없이 말했다.
카에드가 그토록 고대해 왔던 순간이다. 결혼식에 많은 하객을 초대한 이유는 세라엘과 자신이 연을 맺었다는 사실을 온 제국에 공고히 알리기 위해서였다.
오늘 모인 하객 중엔 타국에 세력을 떨치는 이들도 적지 않으니, 그녀와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다는 소문을 널리 퍼뜨릴 수 있을 것이다. 카에드가 반복된 삶을 살며 이뤘던 업적 중에서 이보다 더 위대한 결실은 없었다.
하지만 나사가 하나 빠진 것처럼 행동하는 세라엘 때문에 마냥 만족스러워할 수도 없었다.
“세라엘. 불편한 곳이 있으면 지금이라도….”
카에드가 입을 열었을 때 이미 유리문은 열리고 있었다. 동시에 입장을 환영하듯 현악기의 포근한 선율이 울려 퍼졌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자리에서 일어난 하객들이 감탄사를 흘리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
얼떨결에 두 사람은 행진을 시작하게 되었다.
찬란한 보랏빛 꽃 무리 아래 웨딩 로드를 걷는 두 남녀는 황홀하리만큼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중간중간 서로와 눈을 맞추며 아슬아슬한 시선을 교환하는 모습은 너저분한 돈거래로 성사된 결혼이라는 소문을 의심케 할 정도로 친밀해 보였다.
전국에서 몰려온 귀족들이 신랑과 신부를 우러러보며 쉴 틈 없이 탄성을 내질렀다.
정작 카에드와 세라엘의 마음은 각기 다른 이유로 복잡한 상태였다.
***
예식을 집전하는 주교가 혼인 서약문을 읊는 동안 세라엘은 차분히 서 있기 위해 갖은 애를 써야 했다.
아득히 높은 천장에서부터 늘어진 보라색 꽃들도, 나뭇가지에서 영감을 받은 금빛 샹들리에도 아름답다는 건 알겠는데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가쁜 호흡이야 말할 것도 없고, 코르셋의 와이어가 삐져나왔는지 몸을 움직일 때마다 날개뼈를 더욱 아프게 찔러 댔다.
대체 어떤 정신으로 반지를 교환했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옷이 문제였군요.”
줄곧 그녀의 얼굴과 꼼지락거리는 상체를 훑던 카에드가 조용히 속삭였다.
“옷이 불편하신 겁니까?”
“옷…이 아니라….”
드레스는 죄가 없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할 수도 없고 이걸 어떡하나 싶어 세라엘이 쓴웃음을 지었다.
유독 길었던 서약문 낭독이 끝나자 주교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로써 신의 이름으로 두 사람의 성혼이 성사되었음을 선포합니다.”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오고 내빈들이 오색찬란한 꽃가루를 뿌려 주었다.
‘드디어 끝이야.’
식이 막바지에 다다르자 마음이 더 급해졌다. 세라엘은 어서 성으로 돌아가 옷을 벗어 던지고 싶었다. 다시 마차를 타고 본성으로 돌아가서, 기나긴 층계를 올라 침실까지 가는 길이 까마득했다.
그런데 다 끝난 줄 알았던 결혼식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세라엘은 하객들이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무언갈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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