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62)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62화(62/150)
결혼식을 마무리 짓는 결정적인 의식이 하나 남아 있었다.
세라엘은 저도 모르게 제 입술을 핥았다. 온 신경이 입술로 몰린 듯한 느낌이었다.
그녀를 빤히 응시하던 카에드의 눈이 홀린 듯 아래로 내려왔다.
‘보지 마…!’
괜한 부끄러움이 소리 없이 아우성쳤다. 세라엘이 턱을 양옆으로 살짝 비틀어도 그의 시선은 끈질기게 따라왔다.
그녀는 카에드와 가벼운 접촉을 할 때조차 구경꾼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얼굴을 붉히곤 했다. 그런데 두 눈 시퍼렇게 뜬 200명 앞에서 입을 맞춰야 한다니.
모두 숨을 죽인 채 신랑 신부가 키스하기만을 기대하고 있었다. 심지어 객석 맨 앞줄에는 카에드의 측근들이 떡하니 앉아 단상을 올려다보고 있었고, 청소년 삼인방이 유독 들뜬 표정이었다.
몇 번이고 상상해 본 순간인데도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목 언저리에 살짝 열이 올라왔다.
카에드는 그녀의 기류가 약간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 한곳에 두지 못하고 요동치는 시선과 물감처럼 번지는 홍조는 익히 봐 왔던 것이었다.
오래도록 눈에 새기고 싶은 모습이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럴 순 없었다. 이유는 모르겠다만 그녀의 몸 어딘가 불편해 보였으니 여유 부릴 때가 아니었다.
“세라엘.”
나지막한 음성이 넋을 빼놓고 있던 세라엘의 주의를 끌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의 얼굴이 서서히 가까워지면서 청량한 내음이 밀려왔다.
이어 익숙한 촉감이 입술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그것은 어떠한 소리도 내지 않고 엷은 온기만을 전했다.
“금방 끝나니까 조금만 참아요.”
입술을 살짝 떼고 나서 그가 가만히 속삭였다.
하객들의 눈엔 사랑에 빠진 소년이 수줍게 건넨 입맞춤으로 비친 모양이었다. 객석에서 귀가 째질 것처럼 요란한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다.
고장이라도 난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세라엘의 심장이 콩콩 뛰었다. 점차 호흡이 빨라지면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피아노의 선율이 경쾌하게 바뀌었다. 예식이 끝났으니 이제 마지막 행진을 할 차례였다.
‘어떡하지. 너무 어지러운데.’
머리가 핑 돌면서 이대로 쓰러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르셋 착용 중에 호흡 곤란으로 기절하는 여성도 적지 않다던데, 그게 세라엘이 되지 않으리란 법은 없었다.
“내 손을 잡으십시오.”
박수 소리를 뚫고 나지막한 음성이 귓전에 울렸다. 세라엘은 그의 손바닥 위에 손을 올린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귀족들은 웨딩 로드에 장미꽃을 던지며 그들의 결합을 축복했다.
희미한 미소를 지어 주던 세라엘은 막판엔 그럴 여유도 없어 앞만 바라봤다.
행진이 끝나자, 등 뒤에서 피로연을 위해 본성으로 이동해 달라는 하인의 안내와 함께 하객들이 우르르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세라엘은 그들 앞에서 볼썽사납게 쓰러지는 일이 없도록 카에드의 손을 꼭 붙들었다.
“대공님.”
부름에 그는 기다렸다는 듯 몸을 낮추고 세라엘과 눈을 맞추었다.
“혹시 저를 본성까지 바로 데려다주실 수 있나요?”
맞닿은 어깨에서 전해지는 떨림에 카에드는 길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켜보는 눈이 많다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세라엘을 번쩍 들어서 들쳐 메다시피 안았다.
그가 입은 게 예복이 아니었다면 신부를 홀랑 납치하는 도적으로 보일 만큼 아찔하고 잽싼 동작이었다.
다행히 말쑥한 정장 차림이었고, 귀족들도 예비부부에게서 갓 연애를 시작한 듯한 풋풋함을 엿보았으니 흠칫 놀라는 정도의 반응으로 그쳤다.
반면 지켜보던 여인들에게선 짓궂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식이 끝나자마자 사랑스러운 신부와 함께 있고 싶어 신랑이 급했나 보다…. 그런 감상도 따라붙었다.
쑥스러워할 여력이 없어 세라엘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얌전히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눈앞이 하얘지고 머릿속이 해롱해롱 소용돌이쳤다.
성으로 돌아와 마차에서 내릴 때도 그는 세라엘을 안아 들었다. 어느 틈에 면사포가 사라진 상태였으나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체격의 차이가 있다지만 사람 하나를 안고 빠르게 이동하면서도 카에드는 표정 한번 바뀌지 않았다. 마침내 본성 안으로 들어선 그는 세라엘의 얼굴색을 확인하면서 넌지시 물어 왔다.
“이대로 침실로 갈까요?”
“네… 제 침실로… 하녀도 불러야….”
그에게 벗겨 달라고 할 순 없으니 세라엘은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사용인을 불러 달라 청했다.
입술을 달싹이는 수준이라 알아듣지 못한 카에드는 곧장 계단에 올라섰다.
1층 홀에서 하객을 들일 준비를 하고 있던 사용인들은 돌아온 두 사람을 보고 인사하려다 화들짝 놀랐다.
그들은 세라엘을 안은 채 누구보다도 다급하게 침실로 향하는 카에드의 뒷모습을 경악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어찌나 빠르던지 카에드와 세라엘은 나란히 서 있던 사용인들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 듯했다.
‘얼마나 급하셨으면 피로연 직전에도 하시려고요…?’
루시와 릴리는 동시에 입을 떡 벌렸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사람은 베테랑 시녀인 베일리 부인이었다. 그녀는 엄한 목소리로 사용인들에게 신신당부했다.
“아가씨 침실 앞에 누구도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해라. 마주치는 모든 사용인에게 그리 전해 주렴. 다들 피로연 준비로 여기저기 흩어있을 테니까.”
“네, 시녀장님.”
베일리 부인은 난감한 눈으로 계단을 올려다보았다. 그들이 언제쯤 내려올지 가늠해 보는 눈치였다.
“모든 손님이 연회장에 도착하려면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그때까지 영주님과 아가씨가 나타나지 않으면 악단 공연을 앞당겨서라도 시간을 끌어. 알겠지?”
“명심하겠습니다.”
이제 예식의 또 다른 꽃인 피로연을 즐기기 위해 하객들이 하나둘 도착하고 있었다. 사용인들은 조금 전 목격한 충격을 떨치고 서둘러 손님맞이를 준비했다.
***
한달음에 3층으로 올라온 카에드는 세라엘의 침실 문을 박차듯 열어젖혔다.
그는 침대 끄트머리에 놓인 벤치에 세라엘을 조심히 내려놓았다. 그대로 무릎을 꿇고 서둘러 그녀의 안색을 살폈다.
세라엘은 물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처럼 낯빛이 희게 질려선 숨쉬기를 몹시 버거워하고 있었다.
마차를 타고 돌아올 때만 해도 이러지 않았다. 불안정한 호흡 때문에 산소가 부족해지면서 악화한 듯했다.
“의사를 불러야겠습니다.”
제 손을 떠난 일이라 판단한 카에드가 곧장 몸을 일으켰다. 세라엘은 냅다 그의 옷자락을 붙들었다.
“…기만 하면 돼요….”
그녀는 색색거리면서 간신히 한마디 내놓았다. 엉망으로 흐트러진 음성을 알아듣지 못한 카에드가 다급히 세라엘의 무릎에 손을 얹었다.
“내가 어떻게 해 주면 되겠어요?”
세라엘은 끙끙거리면서 팔을 꺾어 제 등허리를 만졌다. 그 모습을 본 카에드는 역시 옷이 문제였다는 걸 알아차렸다.
“드레스가 불편했군요.”
“그게 아니….”
말을 잇기도 전에 등 부분의 옷감이 부욱 찢기는 소리가 났다.
카에드는 반쯤 죽어 가는 신부를 살리기 위해 웨딩드레스 상의를 사정없이 찢어발겼다. 수십 개의 보석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맑은 소리를 냈고 고운 실크 원단은 조각조각 나풀거렸다.
세라엘은 아연실색하여 제 이마를 짚었다. 문제는 코르셋이었으니 상태가 나아질 리도 없었다.
“얼굴 좀 봐요. 이제 괜찮습니까?”
“숨… 숨이 안 쉬어져요.”
“대체 뭐가 문제인 겁니까?”
그녀가 여전히 창백한 낯을 하고 있으니 카에드는 제 얼굴을 문지르며 초조함을 드러냈다.
결혼식 날 장례식을 치를 수도 있겠다는 웃지 못할 생각에 세라엘은 겨우 입을 열었다.
“제 속옷을 벗겨 주세요.”
다시 고개를 돌려 세라엘의 등허리를 확인하려던 카에드가 우뚝 손을 멈췄다. 등 뒤로 그가 석상처럼 굳어가는 게 느껴졌다.
몇 초의 공백이 지나고 나서 그는 흔들리는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자신이 뭘 들은 건지 도저히 못 믿겠다는 표정이었다.
“지금… 지금 말입니까?”
카에드답지 않게 동요하는 말투였다.
“그런 뜻이 아니에요…!”
세라엘은 부리나케 손을 내저으며 해명했다.
“그게 그러니까 코르셋이라고… 보정 속옷이… 그냥 등 뒤에 끈 좀 당겨서 풀어 주세요…!”
가냘픈 목소리로 외치자 카에드는 다시 등으로 시선을 옮겼다.
너덜너덜하게 찢긴 드레스 아래로 드러난 것은 맨살이 아니라 부츠를 평평하게 펼쳐 놓은 듯한 괴상한 의류였다.
“안에다 뭘 껴입은 겁니까?”
카에드는 손가락으로 교차된 끈을 내리훑다가 꼬리뼈 바로 위쪽에서 멈췄다. 그러고는 나비 모양으로 묶인 매듭을 확 잡아당겼다.
과격한 손놀림에 코르셋 아랫부분이 벌어지면서 세라엘은 반사적으로 헉, 숨을 들이마셨다. 그녀는 미간을 좁히고 홱 고개를 돌렸다.
“대공님!”
“좀 나아졌습니까?”
“조금만 살살해 주시면 안 됐었나요?”
“짜증 내는 걸 보니 괜찮은 모양이군요.”
혀를 찬 그가 앞을 보라는 듯 세라엘의 머리를 살짝 밀었다. 곧 한결 부드러워진 손짓이 끈을 느슨히 풀어 주었다.
압박되어 있던 상체가 헐거워지면서 피가 도는지 온몸에 따뜻한 느낌이 퍼져 나갔다.
세라엘은 가슴을 크게 들썩이며 깊고 느린 호흡을 반복했다. 그제야 숨통이 트이면서 살 것 같았다.
“벗기기도 어려운 거적때기는 이제 입지 마십시오.”
평소와 다른 거친 언사를 쓰는 걸 보니 그도 어지간히 마음 졸였던 모양이다. 세라엘은 얕은 실소를 터트렸다.
“저도 입고 싶지는 않았는걸요….”
“당신이 잘못되는 줄 알았습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그가 끈으로 꼭꼭 동여맨 코르셋을 완전히 풀어냈다.
마침내 흉부를 옥죄는 답답함이 사라지고 등 전체가 휑해졌다. 세라엘은 제 가슴에 손을 댄 채 어깨를 들썩였다.
“많이 아팠겠는데.”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카에드가 손을 뻗었다. 세라엘의 왼쪽 어깨뼈에 서늘한 체온이 닿았다.
삐죽 튀어나온 와이어가 찌르던 곳이었다. 연한 살이 새빨갛게 짓물러진 걸 보아 무척 따가웠을 것 같았다. 아까 바늘에 찔린 듯한 반응을 보였던 이유도 이것 때문이리라.
“…….”
문득 세라엘은 그에게 등을 훤히 내보이는 것도 모자라 어루만져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같은 생각을 했는지, 조심스레 어깨뼈를 훑던 그의 손가락도 멈칫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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