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64)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64화(64/150)
세라엘은 가슴에 깊이 파고드는 카에드를 안지 못하고 두 손을 어색하게 쳐들었다.
이 남자는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는 걸까. 웨딩드레스를 입은 그녀를 봤을 때부터 표정이 심상치 않더니만, 카에드는 오늘따라 유달리 거침없는 언사를 사용했다.
“지나친 농담을 하시네요. 누가 들으면 크게 오해할 수도 있겠는걸요.”
“농담이 아니라고 하면 또 도망갈 겁니까?”
카에드는 세라엘을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완력을 조절하지 못했는지 세라엘의 몸이 오뚝이처럼 흔들렸다.
이따금 그는 제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는 경향이 있었다. 지금처럼 받아 주고만 있다간 시간은 하염없이 흐를 거고, 어쩌면….
세라엘은 그의 어깨를 슬쩍 밀었다. 빳빳한 정복 아래 느껴지는 몸이 몹시 단단했다.
“카에드 님.”
불러도 말이 없길래 조금 다급한 어조로 그를 재촉했다.
“피로연에 참석하려면 어서 내려가 봐야 하잖아요. 신랑 신부가 오래도록 자리에 없으면 다들 의아해할 거예요.”
돌이켜 보니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그에게 안겨 어디론가 향하는 것을 많은 사람이 목격했다. 예복을 차려입은 두 남녀가 빠르게 자리를 옮기는 모습은 얼마든지 상상의 꽃을 피울 수 있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안 그래도 로잘린에게서 두 사람이 침대를 공유한다는 오해를 받았던 터라, 세라엘은 남들이 낯뜨거운 오해를 하지 않길 바랐다.
그러고 보니 오늘 로잘린을 보지 못했다. 결혼식에 올 것처럼 보였는데 결국 오지 않았나?
예식 중엔 하도 경황이 없어 황녀는 물론 다른 하객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반면 밀로즈 후작이나 나타샤가 불참할 리는 없으니 그들은 연회장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세라엘은 잡념을 밀어 놓고 품에 안긴 남자의 어깨를 흔들었다.
“이럴 때가 아니에요. 200명이 넘는 하객들이 연회장에서 기다리고 있다구요.”
의미 없는 반항이 이어졌다. 힘으로 밀어내는 건 안 되겠다 싶어 세라엘은 새까만 머리통에 닿을 듯 말 듯 슬며시 손을 올렸다. 깃털처럼 내려앉는 접촉도 좋은지 그가 만족스러운 숨을 흘렸다.
“대공님은 그대로 나가셔도 되지만 저는 드레스를 갈아입고 화장도 고쳐야 해요. …어째서 더 세게 안는 거예요? 이따가 마음껏 안으셔도 되니까 좀 놓아 주세요.”
카에드는 이 작은 몸에 얼굴을 파묻고 오래도록 향긋한 온기를 즐기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다 그는 문득 기시감을 느꼈다. 세라엘과 처음으로 제 침실에서 밤을 보냈던 날에도 비슷한 대화가 오가지 않았던가.
실외에서 그가 자신을 껴안는 모습을 누가 볼까 두려웠던 세라엘이 침실에서나 마음껏 안으라며 만류했었다.
그때처럼 그녀가 조급함에 뱉은 말은 듣는 이를 들쑤시고 간신히 내리누른 음욕에 불을 붙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카에드는 오늘 세라엘을 가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뒤늦게 고개를 든 그의 눈동자 안에는 연신 문을 힐끗거리는 세라엘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방금 한 말은 번복하면 안 됩니다.”
“숨 막혀서 죽을 뻔한 사람을 이렇게 세게 안으면 어떡해요.”
“도망치지도 말아요.”
“아이… 알았으니까 빨리요.”
세라엘은 아리송한 말만 내놓는 그의 어깨를 흔들었다. 몇 번 더 재촉하고 나서야 상체에 엉겨 붙은 남자가 떨어져 나갔다.
카에드가 성큼 벤치에서 일어나면서 맞닿은 시선의 높이가 크게 벌어졌다. 세라엘의 얼굴 위로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지며 이마에 말랑한 감촉이 짧게 붙었다 떨어졌다. 일련의 동작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준비하는 동안 침실 밖에서 기다릴까요?”
살가운 물음에 세라엘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와 같은 공간에 있지 않더라도, 여전히 사정을 모르는 내빈들은 나타나지 않는 신랑 신부를 두고 애먼 상상을 할 것이다.
“주인공이 한 명이라도 내려가지 않으면 피로연은 시작되지 않을 거예요. 대공님은 하객분들과 대화를 나누고 계시는 게 좋겠어요.”
“그럼 먼저 내려가 있겠습니다. 하인을 통해 약을 전달할 테니 잊지 말고 바르십시오.”
“알았어요. 피로연에서 봐요.”
세라엘은 나풀거리는 등의 옷감을 만지작거리며, 침실을 나서는 그에게 인사했다.
투명한 보석이 흩어진 바닥을 황망히 내려다보던 그녀는 설렁줄을 당겨 사용인을 호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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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성의 대연회장에서는 피로연이 한창이었다.
통유리창 아래에 자리 잡은 합주단이 우아한 곡을 연주하고, 중앙의 길쭉한 테이블에는 손님들을 위한 핑거 푸드가 호화찬란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귀족들은 시종이 권하는 음료를 마시며 흠잡을 곳 없는 파티를 만끽했다. 여러 대화가 오가고 있었지만, 결혼식이니만큼 신랑 신부가 주 화제로 올랐다.
“재력을 가진 불세출의 미남이 남편이라니…. 밀로즈 영애도 복 받았죠?”
창가 옆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은 귀부인 중 하나가 카에드를 힐끔거렸다.
“사이가 참 좋아 보이더라고요. 대정원에 떡하니 자리 잡은 유리 건물을 보고 어찌나 놀랐는지. 누가 신부를 위해 그런 식장을 건설해 주겠나요? 나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술고래 남편을 얻었을까요.”
“어머! 오웬 백작님께서 들으시면 섭섭하시겠어요. 부군도 만만찮은 애처가로 소문났잖아요.”
“사랑은 멋진 남자와 해야 더 빛나는 법 아니겠어요?”
“하지만 마냥 멋있다고 감탄하기에는 찜찜한 부분이 있지 않나요?”
잠자코 듣고만 있던 다른 귀부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블카노프 공작가 멸족 사건 말이에요. 그게 벌써 몇 년 전이죠? 5년 가까이 되지 않았나요?”
“쉬잇!”
깜짝 놀란 오웬 백작 부인이 집게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댔다. 그녀는 연회장 기둥에 기대어 술을 마시는 발켄족 남자들을 눈짓했다.
“오래전부터 북부인 앞에서는 입을 조심해야 한다는 속설이 있어요. 모르셨나요?”
“터무니없는 속설이군요.”
서두를 제대로 떼지 못한 부인이 투덜대자, 백작 부인은 부채로 입을 가리면서 소곤거렸다.
“나름대로 일리 있는 속설이에요. 북부인은 대체로 장신이다 보니 주변에서 속닥거림이 오가면 금세 알아챈대요.”
“인간 망루예요, 뭐예요.”
“그나저나 대공과 얽힌 소문을 모르는 사람도 있나요? 멸족 사건의 배후일 수도 있다는 괴소문은 물론 잔인무도한 냉혈한이라는 것까지 공공연히 알려져 있죠.”
주변을 둘레둘레 살핀 백작 부인이 속삭임을 계속했다.
“하지만 다들 목격하셨잖아요. 냉혈한은 무슨, 제국에 대단한 애처가가 하나 생길 것 같은 분위기던걸요.”
“그러게 말이에요. 대체 어딜 봐서 피도 눈물도 없는 남자라는 거죠?”
“역시 세간에 떠도는 근거 없는 소문은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 믿으면 안 되는 법이죠.”
때마침 연회장 내로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세라엘이 들어서고 있었다.
연한 잿빛이 감도는 흰 드레스는 예복처럼 빗장뼈와 동그란 어깨를 드러낸 디자인이었다. 그녀의 밝은 금발은 구불구불했던 컬을 약간 덜어 내고 자연스럽게 늘어뜨려, 명랑하면서 생기 있는 느낌이 돋보이게 했다.
귀부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시선을 떼지 못했다.
“새신부가 사랑스럽기도 해라.”
“다른 부인들이 채가기 전에 우리가 먼저 데려오는 게 좋지 않을까요?”
“제가 가서 데려올게요.”
개중 가장 넉살 좋고 살가운 오웬 백작 부인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연회장에 막 들어선 세라엘은 인사를 건네며 팔을 잡아끄는 부인을 따라 귀족 여인들이 모인 테이블로 향했다.
백작 부인이 그녀를 가운데에 앉히자 기다렸다는 듯 인사가 쏟아졌다.
“만나서 정말 반가워요. 조금 전까지 밀로즈 영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답니다.”
“어머. 이젠 블카노프 대공작 부인이라고 불러드려야 할까요?”
유쾌한 부인들이 까르르 웃자 세라엘은 미소를 머금으며 의례적인 인사를 건넸다.
“칼스비크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분께서 축하해 주신 덕분에 대공성에도 활기가 넘치고 있어요.”
“천만에요. 예의 바르기도 하지.”
곧 폭죽처럼 사방에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블카노프 부인께서 어찌나 아름다우시던지 모두가 감탄했어요.”
“저는 뒷자리에 앉은 덕에 배경과 어우러진 신랑 신부를 감상할 수 있었는데요. 온실 천장으로부터 떨어지는 보랏빛 꽃 무리 아래 환상적인 결혼식이었다고요.”
“휴가차 방문했던 남부 왕국의 풍경이 생각나더라니까요.”
“예복은 주문 제작한 웨딩드레스였나 봐요. 힌델의 어떤 의상점에서도 본 적 없는 드레스였거든요. 그렇죠?”
공처럼 이리저리 튀는 대화에 잠시 얼이 나가 있던 세라엘은 상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맞아요. 원단은 시녀장이 직접 골라 주었답니다. 안목이 워낙 좋은 덕분에 예쁜 드레스가 완성될 수 있었어요.”
“세상에나. 너무나 아름다운 드레스였어요. 제가 부인이었다면 거울에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온종일 비춰 봤을 거예요.”
“아하하….”
그 찬란한 드레스가 지금 넝마쪽이 되어서 침실에 뒹굴고 있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옷을 갈아입혀 주기 위해 들어온 릴리와 루시의 안색이 파리하게 질렸다가, 새빨갛게 변했다가 난리도 아니었다.
보석이 뜯어진다며 만지지도 못하게 했던 릴리는 의외로 그 꼴을 보고도 별말 없이 치장에 집중해 주었다.
그때 다른 귀부인이 만면에 짓궂은 미소를 띠고 세라엘을 응시했다.
“혹시 실례가 아니라면, 아이는 몇 명 정도 가질 예정이신지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시종이 가져다준 샴페인을 홀짝이던 세라엘은 딸꾹질이라도 할 듯 몸을 들썩였다.
처음 들어 보는 질문도 아닌데 그녀는 말문을 잃고 넋을 뺐다. 그러자 오웬 백작 부인이 서둘러 귀부인을 만류했다.
“갓 결혼한 어린 여성에게 얄궂은 질문을 하면 어떡하나요? 사생활이라고요.”
“너무 궁금해서 그만…. 미안해요, 부인. 블카노프 대공 전하와 사이가 좋아 보여서 주책을 떤 것이니 용서해 주세요.”
“괜찮아요. 용서할 것도 없는걸요.”
“오, 괜찮으시다면 2세 계획은 어떻게 될는지 알려 주실 수 있나요?”
한차례 웃음이 쏟아졌다. 귀부인 모두 나쁜 의도는 없어 보였지만, 결혼식이니만큼 짓궂은 농담을 던지고 싶은 모양이었다.
괜한 전의가 생긴 세라엘은 태연한 척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 궁금하시면 알려드릴게요. 아이는 둘 정도가 적당하지 않나 싶어요. 욕심대로라면 네다섯까지도 나쁘지 않은데 제가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요.”
“어머머! 세상에나!”
“새신부가 당찬 계획을 하고 있었군요!”
“대공 전하를 정말 사랑하시나 봐요!”
귀부인들은 어린아이처럼 꺄아 소리를 질렀다. 2세 계획을 호기롭게 늘어놓은 것과 달리 세라엘은 남몰래 땀을 삐질 흘렸다. 대공성에 사는 누구도 자신이 뱉은 말을 듣지 않길 바랐다.
그녀에게 던져지는 질문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런데 대공 전하와는 어쩌다 만나게 되신 건가요?”
세라엘의 또래처럼 보이는 젊은 영애가 기대에 부푼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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