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65)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65화(65/150)
물꼬가 트이자 다른 귀부인들이 하나둘씩 말을 보탰다.
“저도 그게 궁금했어요. 두 분은 첫 만남부터 굉장히 운명적이었을 것 같은데요.”
“결혼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계기가 무엇인지도 궁금해요.”
테이블에 모여 앉은 여러 쌍의 시선이 호기심을 가득 품고 세라엘에게 향했다.
단순한 궁금증에서 던진 물음일 수도 있겠지만, 그들 중에서 이 결혼에 얽힌 추저분한 소문을 들은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로잘린에게도 그랬듯, 세라엘은 카에드와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항간에 나도는 풍문을 바로잡고 싶었다.
그녀는 손끝으로 샴페인 잔의 바닥을 톡톡 두드리며 미소 지었다.
“실망하실 수도 있는데… 정말 저와 대공님이 어떻게 만났는지 궁금하세요?”
호기심에 불을 지피는 발언이었다. 찰나에 눈빛을 교환한 귀부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이 연회장 안에 있는 모두가 궁금해하고 있을 거예요.”
“얼마나 특별한 인연이었는지도 알고 싶어요.”
세라엘은 자석처럼 쏠리는 이목을 느끼며 살짝 뜸을 들였다.
“사실 처음 만났을 때 그리 특별한 점은 없었답니다. 흔히들 떠올릴 수 있는 혼사로 맺어진 관계였거든요.”
귀족 간의 결혼은 부모에 의해 맺어지는 정략혼이 대다수였고, 그건 손가락질받을 만한 일이 아니었다.
“첫눈에 반했다거나 운명적으로 만난 게 아니라는 말씀이세요?”
“네. 혼담이 오갔다는 말을 먼저 듣고 나서 대공님을 만났거든요. 아버지께서 지참금을 주신 후에 대공님과 칼스비크로 오게 되었고요.”
세라엘은 오해의 소지가 없게끔 적절한 사실만 걸러 말했다.
지참금이란 말에 귀부인 두어 명이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소문을 믿고 있던 눈치였다.
그때 기혼인 귀족 여성이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다들 그런 거 아니겠어요? 저도 부친께서 혼처를 정해 주셨다고요. 심지어 결혼식 당일에야 남편 될 인간을 보았답니다. 실망감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이 가시나요?”
귀부인의 농담에 다들 자지러지게 웃었다. 끝까지 호기심을 놓지 못한 젊은 영애가 다시 세라엘을 응시했다.
“그렇다면 대공 전하와 함께 생활하시면서 서서히 정든 거로군요?”
“그런 셈이에요. 시작부터 아주 평범한 결혼이었답니다.”
의심의 여지를 남기지 않기 위해 그리 매듭지으며 세라엘은 샴페인을 마셨다.
몇몇 귀부인들은 그녀의 답이 시시했는지 김빠진 웃음을 흘렸다.
“난 또 무도회에서 운명적으로 만나 춤을 추다가, 바람을 쐬러 나간 발코니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며 사랑에 빠진 줄 알았지 뭐예요.”
“호호호. 상상이 너무 지나치신 거 아니에요?”
“이 정도로 무난하게 진행된 혼사일 줄은 몰랐으니까요.”
오웬 백작 부인이 손사래를 치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첫 만남에 불타오르는 거야말로 아주 쉽죠. 부대끼고 살면서 애정을 느끼는 게 더 어려운 거예요. 같은 지붕 아래 살다 보면, 사랑이 넘치는 부부가 아니라 원수가 되는 법이거든요.”
백작 부인의 농담에 박장대소가 터져 나왔다. 테이블에는 다시 화기애애한 기류가 맴돌았다.
세라엘은 눈을 찡긋해 보이는 백작 부인에게 밝은 미소로 답해 주었다.
귀부인들은 종달새처럼 지저귀며 담소를 나누었다. 이제 슬슬 자리를 떠야겠다고 생각한 세라엘이 몇 모금 남은 샴페인을 비우려 잔을 집어 들었다. 그 순간, 갑자기 커다란 손아귀가 세라엘의 어깨를 감싸 쥐었다.
화들짝 놀란 그녀가 몸을 움츠리자 악력이 더해졌다. 뒤돌아보기도 전에 머리 위에서 가라앉은 저음이 들려왔다.
“평범한 결혼이라니… 이거 서운한데요.”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모를 리가 없었다. 세라엘은 목각 인형처럼 삐걱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카에드가 반듯한 입매에 미소를 머금고서 그녀를 가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분명 웃고 있는데 서늘한 냉기가 느껴지는 미묘한 표정이었다.
“대공님.”
언제부터 와 있었을까? 세라엘은 눈을 깜박이다가 카에드의 손등을 붙들었다.
보는 눈이 많으니 어깨를 잡은 손을 놓아 달라는 뜻이었는데 그는 들어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되려 입이라도 맞출 듯 몸을 바짝 낮추고 속삭였다.
“내가 당신한테 절절매는 것을 아직도 몰라주는군요.”
눈이 동그래진 귀부인 여덟이 지켜보는 가운데 카에드는 기어코 세라엘의 관자놀이에 입술을 내리눌렀다. 냉정하고 금욕적으로 보였던 사내가 코앞에서 애정 행각을 벌이는 모습이 가히 충격적이라 귀부인들은 숨을 들이켰다.
“저택의 창가에서 나와 눈이 마주쳤던 순간을 기억하십니까?”
“아… 그럼요. 기억나지 않을 리가요.”
당황한 와중에도 세라엘은 지난날을 회상했다.
창문에서 카에드를 열심히 관찰하고 있었는데, 그가 대뜸 고개를 쳐드는 바람에 시선이 부딪혔었다. 깜짝 놀라 그의 이마에 반지까지 떨어뜨렸던 순간이 지금도 선명하게 그려졌다.
“난 그때 세라엘 양을 올려다보면서 직감했거든요.”
세라엘은 공연히 마른침을 삼키면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내 여생을 당신의 개가 되어 헌신하겠다는 것을요.”
카에드는 이 상황이 즐거운 듯 세라엘의 귓가에 작은 바람을 흘리며 웃었다.
“세라엘 양은 어땠습니까?”
그녀의 동그란 어깨에 놓인 손가락이 말랑한 살을 가볍게 주물렀다.
“당신도 나와 평생을 함께하리란 걸 예감했나요?”
다소 거친 어휘를 듣고 눈을 동그랗게 뜨던 세라엘이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 만난 사람한테 일생이 걸린 확신을 어떻게 품지. 당시엔 낭만적인 감정을 느낄 상황도 아니었다. 그녀는 결국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사실 저는 그 정도까진 아니었어요.”
“이런.”
카에드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귀부인들을 일별했다.
“아무래도 내가 신부를 짝사랑했던 모양이군요.”
귀부인들은 하나같이 웃음으로 응하면서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위압적인 기백을 풍기는 남자가 이리도 순애보적인 면모를 갖고 있었다니. 그야말로 세라엘에게 푹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넋을 뺀 부인들 사이에서 오웬 백작 부인이 유일하게 입을 열었다.
“과거엔 어땠는지 몰라도, 지금 블카노프 부인께서는 대공 전하를 열렬히 사랑하고 있는 것 같아요. 조금 전에, 전하를 향한 애정이 듬뿍 담긴 말을 하셨거든요.”
카에드의 말을 곱씹어 보고 있던 세라엘은 냉수를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녀는 백작 부인에게 다급한 눈길을 던졌다.
‘말하지 마세요…!’
재치 있는 너스레로 분위기를 유하게 해 주었던 백작 부인은 흐뭇하게 웃으며 세라엘을 배신했다.
“전하의 아이를 무려 다섯이나 낳아 줄 수 있다고 하셨답니다!”
동시에 세라엘의 어깻죽지를 만지작거리던 손길이 뚝 멈추었다. 세라엘은 이를 살짝 물고 억지로 미소 지었다.
“네다섯도 괜찮을 것 같다고 했을 뿐이에요. 아이는 둘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한답니다.”
그다지 훌륭한 변명은 아니었다. 여전히 카에드의 아이를 원하고 있다는 어조로 들릴 게 분명했다.
세라엘은 자리를 박차고 도망가고 싶었다. 그래 봤자 그의 손바닥 안이란 걸 알면서도 이 부끄러운 상황에서 후다닥 벗어나고 싶었다.
그때 웃음기가 물씬 묻어나는 저음이 그녀의 귓바퀴를 간지럽혔다.
“감동인데요. 내 아이까지 가지고 싶어 할 줄은 몰랐군요.”
카에드는 지금 상황이 무척이나 유쾌한 듯했다. 세라엘은 파들파들 떨리는 입꼬리를 재차 끌어 올렸다.
“그게 그러니까, 결혼도 했으니 한번쯤 생각해 볼 만한 주제 아니겠어요?”
“후사는 세라엘 양이 원하는 대로 계획하되 너무 욕심부리지 마십시오.”
카에드는 해명을 듣는 둥 마는 둥 그저 다정한 손길로 세라엘의 머리칼을 쓸어 만졌다.
“여러 차례 임신하면 당신의 작은 몸에 무리가 갈까 두렵습니다.”
“아, 아니….”
“당신을 닮은 아이가 보기 싫다는 뜻은 아니니 서운해하지는 말고.”
그때쯤 세라엘은 확신했다. 평범한 결혼이라 칭한 것을 듣고 이 남자의 심기가 단단히 뒤틀렸구나. 그녀가 당황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부인들 앞에서 일부러 낯뜨거운 말을 골라 하는 것이다.
‘나도 다 생각이 있어서 평범하다고 한 건데!’
모르겠다. 무난히 정략혼으로 만난 부부보다 좋아서 죽고 못 사는 부부로 보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마음껏 착각들 하길. 반쯤 포기한 세라엘이 망연히 생각했다.
역시나 귀부인들은 크게 감복하여 가슴에 손을 올렸다.
대를 잇는 일이 최우선으로 여겨지는 정략혼에서 2세 계획을 전적으로 아내의 뜻에 맡기는 남편은 극히 드물었다. 단순히 부인의 건강이 염려된단 이유로 후계에 욕심내지 않는 고위 귀족 가문의 남자는 들어 본 적도 없었다.
내막을 모르는 귀부인들은 나름대로 이 결혼에 얽힌 전말을 추측해 보았다.
대공은 첫눈에 반한 밀로즈 영애와 결혼하고 싶어 그녀의 부친에게 혼담을 넣은 게 아닐까? 그녀는 사정을 모를 테니 혼담이 먼저 오갔다고 생각한 것이고.
너저분한 돈거래가 있었다는 소문도 카에드가 그만큼 절절맸다는 걸 나타내는 과장된 표현인지도 몰랐다.
귀부인들은 놀라움과 부러움, 흐뭇함이 혼재된 눈으로 세라엘을 응시했다.
“영주님. 잠시 드릴 말씀이….”
때마침 구세주처럼 등장한 집사가 카에드에게 뭐라 속삭였다. 몇 초가 지난 후 세라엘의 어깨에 붙어 있던 팔이 떨어져 나갔다.
“찾는 손님이 있어 이만 가 봐야겠습니다.”
카에드는 기어이 뺨에 한 번 더 키스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따 봐요, 세라엘.”
“네….”
“귀부인들도 즐거운 시간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결혼 다시 한번 축하드려요.”
“초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대공 전하.”
부인들은 뒤돌아 걷는 카에드의 등에다 인사를 던졌다.
세라엘은 멍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여덟 명의 여성에게 둘러싸여 얄궂은 농담을 받을 때도 멀쩡했는데, 그가 잠깐 왔다 간 것만으로 혼이 빠진 기분이었다.
카에드가 자리를 뜨고 나서, 세라엘은 부인들과의 대화를 마무리한 뒤 의자에서 일어났다.
긴장이 풀리자 시장기가 몰려왔다. 뭐라도 먹을 생각으로 그녀는 디저트 테이블로 향했다. 한 발짝 옮길 때마다 축하 인사를 던지는 귀족들에게도 살갑게 응수해 주었다.
길게 이어진 테이블에는 화려한 3단 케이크는 물론 캐비어 카나페, 으깬 감자를 곁들인 랍스터와 멜론 조각을 감싼 프로슈토 햄 등 간단하면서도 맛 좋은 요깃거리가 가득했다.
‘요리사들이 고생깨나 했겠는데.’
접시를 집어 든 세라엘은 무엇부터 담을지 고민했다. 그때 옆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카나페부터 드셔 보시지요. 주방장의 특제 요리라 굉장히 훌륭합니다.”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뿔테 안경을 쓴 냉철해 보이는 남자가 깍듯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30대 후반이나 마흔쯤 되었을 법한 남자였다.
정식으로 통성명을 한 적은 없지만 세라엘은 그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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