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66)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66화(66/150)
남자는 공손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풍미가 훌륭하여 인기 있는 메뉴입니다. 재고가 점점 떨어지고 있으니 부인께서도 어서 드셔 보십시오.”
“추천 감사합니다. 저도 마침 캐비어가 끌리던 참이었어요.”
“작게나마 도움이 되어 기쁘군요. 부인께서 대공성에 오신 지도 석 달이 훌쩍 넘었는데 제대로 된 인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저는….”
“티론 보좌관님이신가요?”
세라엘은 접시 위에 음식을 올리며 엷게 웃어 보였다. 잠시 뜸을 들인 보좌관은 미소를 지으며 묵례했다.
“대공성의 안주인께서 저를 알아주시니 영광일 따름입니다.”
“카에드 님을 지척에서 보필해 주시는 분을 모를 리가 없죠.”
티론은 평범한 인간인데도 카에드만큼이나 밤잠 없이 일하는 남자였다. 작중에선 전쟁에 나간 영주 대리로 오래도록 칼스비크를 관리했던 능력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카에드와 껄끄럽진 않았지만 우호적인 관계도 아니었다. 그랬던 그가 카에드를 보좌하게 된 건 역시 유능함 때문이었을까.
그건 둘째 치고 미스터리로 부쳐진 공작가 멸문 사건에서 선대 공작의 측근들은 깡그리 죽임당했다던데, 신체적인 능력도 훌륭해 보이지 않는 이 남자는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깊이 파고들고 싶지 않았던 세라엘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건너 듣기로 칼스비크의 여러 도시에서 항구와 교역로를 개척 중이라고 들었어요.”
“맞습니다. 영주님께서는 언제나 북부의 번영을 위해 힘쓰고 계시지요.”
“보좌관님의 노고에도 감사드려요. 밤잠 주무시지 않고 업무를 보는 카에드 님을 보좌하시느라 수고가 많으시겠어요.”
어느 틈에 카나페 두 개를 해치운 세라엘이 꿀에 절인 무화과를 오물대며 말했다.
“그렇게나 규모가 큰 계획을 동시에 추진한다면 업무량도 엄청날 텐데, 모두 소화하고 계신다니 정말 대단하세요.”
티론은 칭찬에 약간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선대 공작 대부터 카에드에 이르기까지 20년이 넘도록 눈 밑을 검게 물들이며 일해 왔건만,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던 칭찬을 자그마한 새 안주인에게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처음으로 대화를 나눠 본 그녀는 굉장히 상냥하고 곰살맞은 사람이었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제가 마땅히 이행해야 하는 직책을 높이 평가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천만에요. 기본도 해 주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걸요. 대공성에 보좌관님처럼 유능한 분이 계셔서 다행이에요.”
세라엘은 밝은 미소로 답하며 접시에 음식을 덜었다. 그녀를 잠자코 내려다보던 티론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그것 아십니까? 세간에는 영주님께서 작위와 함께 막대한 재산까지 상속받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이 아니랍니다.”
“무슨 말씀이신가요?”
“선대 영주님께서 북부를 관리하실 적엔 블카노프 가문의 금고가 넉넉한 편은 아니었습니다. 공작가의 재정 상황은 제가 잘 알고 있었지요.”
“그랬군요.”
“부인께서도 아시다시피 칼스비크는 황폐지가 많아 소작농이 적으니까요. 황실에서 보낸 지원금이 아니었다면 영지를 관리할 비용을 충당할 수 없었을 테니 정말 곤란했을 겁니다.”
“황실 지원금이요…?”
“예. 물론 현재는 지원받고 있지 않습니다만.”
세라엘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동안 티론은 왁자지껄한 연회장 어딘가로 시선을 던졌다. 성대한 예식과 피로연을 진행했는데도 지금의 금고엔 티끌만 한 타격이 없었다.
“카에드 님께서 가주 자리에 앉으신 후로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척박한 북부의 토지에서 많은 소작료를 거둘 수 없으니 교역로를 개척하여 상업적인 발전을 노리셨지요. 원정 중에 미지의 영역에서 광산까지 발견하셨는데도 안주하지 않으셨습니다. 지금도 누구보다 근면하게 직무를 보시지만, 당시 북부의 안정화를 위해 힘쓰셨을 때는… 음, 그야말로 밤낮을 가리지 않으셨습니다.”
적절히 문장을 끝맺은 티론은 과거를 회상했다.
지난 5년은 티론의 인생에서 가장 버거운 시기였다. 잠도 안 자고 업무만 보는 상관과 발을 맞추느라 너무 힘들어서 창밖으로 돌진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어깨를 짓누르는 직무의 무게도 힘들었거니와, 암살자 같은 부하를 거느린 괴물 상관을 모시자니 두려운 하루하루였다. 공적인 업무를 떠나 사람 머리를 가져오라는 명령을 몇 번 받았을 때는 거의 울고 싶었다.
칼스비크의 번영이라는 결과물과 성취감 덕분에 간신히 버틸 만했을 뿐이다.
세라엘은 뜻밖의 정보를 듣고 잠시간 눈을 깜빡였다.
“제가 알기로도 칼스비크는 춥고 황폐한 곳이라 그리 부유한 영지가 아니었어요. 북부가 이렇게 발전하기까지 대공님과 보좌관님의 노고가 얼마나 컸을지 상상도 되지 않는걸요.”
제 노력을 알아주고 말이 통하는 사람이 생긴 티론은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북부의 기반이 안정적으로 다져진 후에 안주인께서 오시게 되어 기쁠 따름입니다.”
“호호.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 최선을 다해 영주님을 보좌하여….”
“크흐흠!”
별안간 경박한 헛기침 소리가 티론의 말을 끊었다.
화기애애한 대화가 중단되자 세라엘과 티론은 동시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오랜만이구나. 잘 지냈니?”
반가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인사가 이어졌다.
화려한 장신구를 온몸에 착용한 눈앞의 여자는 세라엘과 셀 수 없이 충돌했던 의붓어머니, 나타샤였다.
“이게 누구신가요. 어머니 아니신가요.”
세라엘은 영혼 없이 뇌까렸다. 꼴도 보기 싫은 얼굴이었지만 예상치 못했던 조우는 아니었다.
결혼식 초대장을 작성할 때, 카에드는 세라엘이 원하면 밀로즈 후작과 나타샤를 초대 명단에서 제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예식에 부모가 참석하지 않는다면 어떤 뒷말이 나올지 몰라 그녀는 두 사람을 칼스비크까지 부르기로 결정했다.
대신 결혼식이 지나고 나면 두 번 다시 그들을 볼 생각은 없었다. 나타샤는 곱게 차려입은 세라엘을 아니꼬운 눈으로 훑다가 입을 열었다.
“너에게 긴히 할 말이 있다. 잠깐 시간을 내어 줄 수는 없겠니?”
“없어요. 여기 신사분과 대화 중이라서요.”
세라엘이 망설임 없이 등을 돌리자 나타샤가 허둥지둥 손을 뻗었다.
“자… 잠깐! 오랜만에 만난 어미를 그렇게밖에 대하지 못하겠어?”
거슬리는 단어에 세라엘의 발목이 붙들렸다. 어머니다운 면모를 보여 준 적도 없는 인간이 할 말은 아니었다.
밀로즈 후작도 답 없는 인간이지만, 맥슨 백작에게 세라엘을 넘기자는 제안을 한 사람이 나타샤라는 걸 오래전에 엿들어 알고 있었다.
“우리 사이가 늘 좋지만은 않았었지. 하지만 내가 어른이니 먼저 화해의 손길을 뻗고 싶구나. 용기를 낸 성의를 봐서라도 이대로 무시하지 않길 바란다.”
“정신 나간 계집애랑 화해해서 뭐 하시려고요.”
세라엘은 나타샤가 자신을 그리 칭했던 것을 기억하고 되짚어 주었다.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진 계모는 콧김을 뿜으며 감정을 내리눌렀다.
“5분 만이라도 안 되겠니? 부탁을 들어 보기도 전에 등을 돌리는 건 너무 매정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아하. 긴히 하실 말씀이라길래 뭔가 했더니 부탁이었군요.”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부탁이 맞다.”
“둔한 무지렁이한테 무슨 부탁을 하실 건가요.”
세라엘은 심드렁한 얼굴로 나타샤에게서 받았던 모욕을 재차 상기시켰다.
얼결에 가족 싸움을 구경하게 된 티론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안주인에게 인사하러 왔다가 이게 웬 난리란 말인가. 그러나 묘한 적의가 풍기는 분위기라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자리를 지켜야 할 것 같았다.
일말의 양심은 있었던 모양인지 나타샤는 벌게진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일, 일단 들어 주기라도 하면 바랄 게 없겠구나. 저기 네 아버지 보이지?”
계모는 연회장 어딘가를 가리켰다. 시선의 끝엔 밀로즈 후작이 불쾌한 낯으로 연회장을 휘적휘적 누비고 있었다. 이곳저곳 두리번거리는 걸 보니 대화를 나눌 사람을 찾고 있는 듯했다.
세라엘의 입술 사이로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친딸의 결혼식까지 와 놓고서 인사도 하러 오지 않고, 뭐라도 한 건 해 보려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꼴이라니.
화도 안 난다. 친부라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한심할 수가 있을까.
“네 아버지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것 같니?”
다시 나타샤와 눈을 맞춘 세라엘은 황당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제가 알 게 뭐예요. 그럼 이만.”
세라엘이 또 등을 돌리자, 다급해진 나타샤가 냅다 그녀의 옷자락을 잡고 빽 소리를 질렀다.
“지, 집안이 쫄딱 망하게 생겼다고!”
작지 않은 목소리라 근방에 서 있던 귀족들이 이쪽을 힐끔 쳐다봤다. 나타샤는 뒤늦게 헙, 입을 틀어막았다.
세라엘은 담담한 눈으로 제 앞에 선 티론을 보다가 몸을 돌려 계모를 응시했다.
그녀가 들어 줄 의향이 있다고 판단한 나타샤는 속삭이며 한탄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파산이다. 네 아버지 건물 사업이 회생 불가능할 정도로 망해 버렸어. 사채를 있는 대로 끌었는데도 이자만 늘어나고 빚은 갚지도 못하고 있어. 돈을 빌려주려는 지인도 없으니 돌려막기도 못해. 어떤 상황인지 알겠니? 저거 봐라. 네 아버지가 사방에 돈을 빌리려고 갖은 애를….”
“결혼이라는 기쁜 대사를 막 치르신 안주인께 드릴 말씀으로 적절치 않은 것 같습니다.”
듣다 못한 티론이 서둘러 나타샤를 저지했다.
세라엘은 의붓어미가 무엇 때문에 빌빌거리는지 알만했다. 나날이 금고를 불려 가는 재력가와 결혼한 여식에게 어떻게든 빌붙어 보려는 의도야 뻔했으니까.
애초에 그 목적으로 시킨 결혼이었겠지만, 뜻대로 되기는커녕 카에드에게서 여태 동전 한 닢 얻지 못했으니 조바심이 났겠지.
나타샤는 티론을 투명 인간 취급하며 곧장 본론으로 넘어갔다.
“부모가 패가망신할 수도 있는 상황을 무시하지 말아 다오. 우리도 염치가 있는 사람이다. 빚이 청산되기만 한다면 더는 바랄 것도 없겠어. 부탁이니 네가 대공님께 말이라도 한번….”
“염치 있는 인간은 이런 부탁을 하지 않는답니다.”
감정에 호소하는 꼴이 보기 싫어 세라엘은 말허리를 잘랐다. 울컥 성이 난 나타샤가 기어코 송곳니를 드러냈다.
“넌 어쩜 변한 게 하나도 없구나.”
“감사합니다. 어머니도 참 한결같으세요.”
나타샤의 이마에 핏줄이 돋으며 언성이 더 높아졌다.
“우리가 맺어 준 남자 아니냐? 우리가 아니었으면 아무것도 없는 네가 대공님과 인연이 닿기라도 했을 것 같니? 그 감사함에 조금이라도 보답할 생각이 안 들어?”
“뭐야. 인신공격이라니 가면을 벌써 벗으신 거예요?”
세라엘은 헛웃음을 치며 말을 계속했다.
“거짓말이나 하지 마세요. 빚만 청산해 주면 바랄 것도 없긴 무슨. 그걸 시작으로 대공님께 빈대처럼 빌붙을 모습이 눈에 훤하네요.”
조금 전까지 천사 같았던 여자의 거친 언사에 티론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타샤도 마찬가지였다.
“너… 너…!”
분기탱천하여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는 나타샤를 보며 세라엘은 레모네이드를 한 모금 마셨다.
“파산이라는 것도 제 알 바는 아니지만 신빙성 있게 들리지도 않네요. 지금 착용하고 계신 장신구라도 내다 팔아 보시는 게 어떨까요? 제 남편에게 주었던 지참금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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