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68)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68화(68/150)
세라엘의 눈과 입이 동시에 동그랗게 뜨였다.
설마 이 남사스러운 걸 입으라고 수십 개나 가져다 둔 건가?
그럴 리 없다. 세라엘은 다급한 손짓으로 가방 안을 마구 헤집었다.
하나같이 정상이 아닌 란제리뿐이었다. 피부가 훤히 비치는 망사와 그냥 고무줄이라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실크 끈도 있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가려야 할 곳을 도리어 휑하니 뚫어 놓은 천 쪼가리였다.
너무나도 망측한 물건을 내려다보던 세라엘의 사고 회로가 정지했다.
그러고 있길 수 초, 그녀는 낭패감이 어린 얼굴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카에드 앞에서 이걸 입은 모습을 보여 주느니 차라리 홀라당 벗는 게 나을 것이다.
지금쯤 흐뭇하게 웃고 있을 릴리를 떠올리자 잇새로 허무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세라엘은 다시 진주색 가운을 주섬주섬 주워 입었다. 나풀나풀한 가운 차림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다.
“긴장하지 말자….”
술 대신 주스라도 한 잔 마시면 좀 나아지려나. 가운의 허리끈을 조이고 거울 앞에서 호흡을 반복한 후 세라엘은 다시 신방으로 돌아왔다.
그 순간, 테이블 앞에 서 있는 카에드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
답답한 듯 목 언저리의 단추 하나를 풀어 내리던 카에드는 그대로 동작을 멈추고 세라엘을 바라보았다. 적잖이 당황한 세라엘은 그와 눈을 맞추다 등 뒤의 문을 한 번 돌아보았다.
침실과 파우더 룸을 잇는 문이 조금 열려 있지 않았나? 카에드가 들어오는 기척은 전혀 듣지 못했다. 그보다 문 틈새로 벌거벗은 모습이 보였을지도…. 아니, 어차피 다 보여 줄 건데 그건 문제가 아니지.
그녀가 덧없는 상념에 잠겨 있는 동안, 미미하게 움직인 카에드의 눈이 그녀의 얼굴부터 가운 아래 드러난 무릎까지 천천히 훑었다. 얄팍한 가운 너머로 그려지는 곡선이 몹시 유려했다.
길어지는 침묵을 깨뜨린 사람은 세라엘이었다.
“언제 들어오셨어요?”
“조금 전에요.”
그는 목 아래 단추를 하나 더 풀었다. 크게 뜬 눈을 깜박이던 세라엘은 멋쩍은 듯 제 팔등을 몇 번 쓸었다. 그가 유리잔에 물을 따르며 가볍게 물어왔다.
“오래 기다렸습니까?”
“아뇨…. 인기척이 들리지 않아서 들어오신 줄도 몰랐어요.”
“기척을 죽이는 게 버릇이 돼서요. 다음엔 발소리를 내겠습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카에드는 짧게 손짓했다.
“이리 와요.”
잠시 망설이던 그녀가 가까이 다가갔다. 카에드는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잡고 몸을 빙글 돌렸다.
“상처를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뒤통수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코르셋 뼈대에 쓸린 상처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미 몸을 돌려놓고서 허락을 구하는 모습에 세라엘은 긴장해야 할지 웃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자, 미온을 지닌 손이 왼쪽 어깨에 덮인 가운을 밀어 내렸다. 가림막을 잃은 맨살에 서늘한 공기가 스쳤고, 도드라진 어깨뼈가 드러나면서 그의 시선이 닿는 게 느껴졌다.
“아프지는 않습니까?”
“괜찮아요. 통증이 사라져서 몇 시간 만에 완전히 아문 줄 알았어요. 보기에는 어때요?”
“아직 빨갛긴 해도 처음보다는 많이 좋아졌습니다.”
상처 부근에 그의 손끝이 조심스럽게 닿으면서 위아래로 문지르기를 반복했다.
“어떤가요?”
“아프지 않아요. 그냥… 살을 만지는 느낌이에요.”
세라엘은 괜히 팔꿈치를 꺾어 제 등허리를 쓸었다.
“대공님께서 주신 약이 효과가 좋았나 봐요.”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군요.”
나긋한 저음은 조금 전보다 더 가까워져 있었다. 카에드는 손을 앞으로 둘러 세라엘을 껴안았다. 무지근한 두 팔이 상체를 단단히 옭아맸다.
뒤에서 안는 걸 좋아하시나…. 한두 번 해 본 접촉이 아닌데도 세라엘은 몸을 뻣뻣하게 굳혔다.
한밤의 그림자가 내려앉은 침실 내부는 전체적으로 어두웠지만, 촛불이 놓인 테이블과 침대 주변은 따뜻한 주황빛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그 빛을 받은 몸을 그에게 가감 없이 내보인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빠르게 박동 간격을 좁혀 왔다.
카에드는 세라엘의 어깻죽지에 턱을 묻으며 잔잔한 음성으로 물어 왔다.
“오늘 어땠어요?”
귓바퀴에 전해져 오는 숨결이 너무 간지러웠다. 긴장해서 그런가. 세라엘은 오늘따라 제 몸이 더 민감한 것을 알아차렸다.
“잊지 못할 기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는데 괜찮았습니까?”
“정말 즐거웠어요. 예식을 진행할 땐 코르셋 때문에 정신없었지만… 피로연 음식도 맛있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좋았어요. 연회에서 만난 손님들이 모두 유쾌하셨거든요.”
“밀로즈 후작 부인과 마찰이 있었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카에드는 다소 침중해진 목소리로 나타샤를 언급했다.
“그녀가 당신에게 상처를 입혔나요?”
세라엘은 고개를 내저으며 미약한 웃음을 흘렸다.
“전혀요. 상처는 믿었던 사람이나 줄 수 있지, 양어머니랑 아버지와는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는걸요. 오늘 보니까 정말 변한 게 하나도 없더라구요.”
“늘 궁금했습니다만.”
몹시도 다정한 입맞춤이 세라엘의 목덜미에 떨어졌다.
“죽이고 싶었던 적은 없었습니까?”
난데없이 던져진 주어 없는 물음을 이해하기까지 몇 초의 시간이 걸렸다.
그녀가 긍정을 표하면 당장 죽여 주겠다는 어조로 느껴지는 건 지나친 생각일 것이다.
세라엘은 스스로 몸을 돌려 카에드와 눈을 맞추었다. 그는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들었더라면 섬찟했을 질문을 한 사람치곤 담담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정도까진…. 물론 저택에 계속 남아 있었다면 그런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르겠어요.”
타이밍 좋게 등장한 카에드가 아니었다면 어떤 미래가 그려졌을지 상상만으로도 암담했다. 정말 아버지나 계모가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졌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저는 이제 칼스비크에서 살게 되었잖아요. 불행한 과거는 머릿속에서 잊어버리고 앞으로 살아갈 날에만 집중하고 싶어요.”
“이전에도 비슷한 말을 하던데, 지나간 일을 되새기는 걸 싫어하나 봐요.”
그랬었나. 그러고 보니 언제였지. 카에드의 침실에서였던가….
희미하게 피어오른 기억은 세라엘의 양 뺨을 감싼 체온에 의해 흩어졌다. 카에드는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려 자신을 똑바로 직시하게 했다.
너울거리는 불빛을 담은 금색 눈동자가 무척 아름다웠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흉포한 짐승의 안광을 연상하며 두려워했었는데 기이한 일이었다.
“되새겨 봤자 나아질 게 없는 일이라면… 네, 아무래도 그렇죠.”
중얼거리듯 대답한 세라엘은 손을 올려 그의 속눈썹을 스치는 머리칼을 옆으로 넘겨 주었다. 손가락 사이의 여린 살에 쓸리는 흑발이 부드러웠다.
반복된 동작으로 인해 세라엘의 왼쪽 어깨에서 가운이 스르르 흘러내렸다.
그의 시선 또한 드러난 빗장뼈와 가슴께로 떨어졌다. 번쩍 정신이 든 세라엘은 슬그머니 옷자락을 갈무리하며 태연한 척 입을 열었다.
“참 모순된 거 같아요. 사업에만 혈안이 되어 있던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는데, 결국 그 덕분에 우리가 만나게 됐잖아요.”
“그 덕분에?”
세라엘이 말을 끝맺자마자 시선을 들어 올린 그의 얼굴은 묘하게 굳어 있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더라면 알아채지 못했을 만큼 미미한 변화였다.
뭔가 실수했나 싶어 세라엘은 입술을 깨물면서도 꿋꿋하게 말을 이었다.
“후회하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뭘 말입니까?”
“오늘을, 당신과 하는 결혼을 후회하지 않아요.”
누군가 카에드를 사랑하냐고 물으면 여전히 선뜻 답할 수 없지만, 세라엘은 그를 따라 칼스비크에 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녀를 둘러싼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환경에서 그를 만났더라도 같은 선택을 할 수 있겠다는 확신마저 있었다.
눈앞에 있는 그의 가슴이 크게 파도치며 팽팽한 셔츠가 한번 부풀어 올랐다.
카에드는 예고 없이 손을 뻗어 그녀가 입은 가운의 허리끈을 풀어냈다.
“……!”
순식간에 매듭이 풀린 매끄러운 가운 자락은 속절없이 벌어졌다. 앞섶이 완전히 허전해지면서 세라엘은 반사적으로 숨을 들이켰다. 무방비 상태로 얼어붙은 그녀에게 카에드는 몸을 숙여 입을 맞췄다.
얄팍한 옷감이 걷힌 채 맞닿은 몸에서 너무나도 뚜렷한 열기가 전해져 왔다. 갑작스러운 밀착에 세라엘은 머릿속이 하얗게 표백되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랑곳하지 않고 입술을 벌리고 들어온 혀는 단번에 가장 깊숙한 곳부터 헤집었다.
타액이 엉망으로 뒤섞이는 소리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그는 입안을 마음대로 휘저으면서 한 줌 숨결까지 모조리 빼앗아 갔다. 어찌나 강하게 밀어붙이는지 금세 호흡이 가빠진 세라엘이 앓는 소리를 내는데도 그는 계속해서 파고들었다.
그녀는 파도처럼 밀려드는 힘을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을 듯 휘청였다. 동시에 허벅지 뒤로 손이 들어오면서 몸이 위로 확 솟구쳤다.
“악…!”
안착할 곳을 정하지 못하고 허공에 묶여 있던 세라엘의 팔은 자연스레 카에드의 목을 그러안았다.
“잠깐….”
어떻게든 속도를 늦춰 보려는 시도는 그녀를 가뿐히 안아 올린 남자에 의해 모두 잡아 먹혔다. 너른 품에 안겨 이동하는 와중에도 두 사람의 입술은 빈틈없이 얽혀 있었다.
구름처럼 부풀어 오른 침구에 등이 닿으면서 세라엘의 가운은 활짝 젖혀졌다. 고작 입맞춤만으로 버거워하는 그녀를 제 아래에 눕혀 놓고 눈을 맞추던 카에드의 시선이 머지않아 곳곳을 훑었다. 자기도 모르게 이불을 더듬어 끌어오려던 세라엘의 손이 곧장 저지당했다.
“보여 줘요.”
나지막한 목소리가 위에서 떨어졌다.
“부부잖아요, 이제. 전부 다 보고 싶어요.”
다정한 속삭임과는 반대로 카에드는 거추장스러운 침구를 거칠게 밀쳐 냈다. 열기를 지닌 손이 그녀의 무릎까지 세우는 이유를 모를 리가 없었다.
그의 시선을 막을 순 없으니 차라리 제 눈을 가리는 게 낫겠다 싶어 세라엘은 팔등으로 두 눈을 가렸다. 그것마저 카에드가 내리뻗은 다른 손에 의해 붙잡혔다.
뭘 하는 족족 손이 붙들린 세라엘이 애타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아무것도 못 하게 해요.”
“가리는 것 빼곤 다 하십시오. 침대에서 해 보고 싶었던 건 없었습니까?”
놀리려는 의도가 다분한 말을 듣고 세라엘은 그를 원망스레 올려다봤다.
“그럼 대공님도 빨리 벗어요.”
카에드는 낮은 숨을 흘리며 가볍게 웃었다. 그대로 맞댄 시선을 끊지 않고 제 셔츠 단추를 하나하나 풀어 내렸다.
“긴장 풀어요. 누가 보면 잡아먹는 줄 알겠습니다.”
세라엘은 그가 셔츠를 벗어 던지는 모습을 응시하며 도리도리 턱을 저었다.
“긴장이 안 풀려요.”
“숨을 길게 쉬어 보십시오. 몸에 힘 빼고.”
그의 지시대로 가슴을 들썩이며 심호흡을 반복했다. 그럼에도 두근거림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눈앞의 존재 때문인 것 같다.
“맥박이 너무 빠른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뇌까린 카에드는 세라엘의 심장이 있을 부근을 가늠하듯 가슴에 손을 올렸다.
커다랗고 투박한 손은 달음박질치는 박동을 잠시간 음미하다가, 미끄러지듯 조금 더 아래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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