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7)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7화(7/150)
“뭘 확인해 보라는 거죠?”
너무도 놀란 나머지 세라엘이 머릿속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 외쳤다. 궁금해서 물어본 게 아닌데 카에드는 착실히 답해 주었다.
“방금 세라엘 양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남녀 간의 속….”
“아뇨! 괜찮습니다, 대공님.”
세라엘은 서둘러 그의 말을 잘랐다.
품위에 단단히 어긋나는 짓이란 걸 알면서도 그래야만 했다.
“걱정되는 부분은 일찌감치 없애 두는 게 좋을 텐데요.”
그는 사소한 고민에 대한 해답을 명쾌히 건네주는 어조로 말하며 턱을 기울였다.
쉴 틈 없이 직진하는 남자 때문에 혼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대공님. 이건 대공님과의 혼인을 전제로 했을 때의 이야기예요.”
세라엘은 단호히 제 가치관을 밝혔다.
“저는 사랑이 없는 결혼을 하고 싶지 않아요.”
진심이었다. 일단 카에드가 어떤 사람인지를 떠나서 그런 식의 혼인은 원치 않았다.
제아무리 정략결혼이 비일비재한 시대라지만, 자유분방한 전생을 경험해 보았던 세라엘은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다.
“결혼은 사랑하는 남자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는 확신이 들 때 하고 싶어요.”
아버지가 멋대로 성사시키려 하는 혼사에 그녀의 의견이 통할지 의문이었으나 아무것도 안 해 보고 고분고분 응할 수는 없었다.
“대공님을 불쾌하게 만들 의도는 없어요. 그렇지만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갑작스레 연을 맺는 건 확실히 무리일 것 같아요.”
“이 혼담에 사랑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잠자코 경청하던 카에드가 짓눌린 듯한 음성으로 반문했다. 예상 밖의 물음에 의아해진 세라엘이 눈을 깜박였다.
그녀의 의향은 조금도 고려되지 않은 채 진행되었던 혼담이다. 상대는 말 한마디 나눠 본 적도 없는 남자.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존재할 리가 없었다.
“대공님과 저는 초면이니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요.”
“…아.”
카에드는 말이 없었다. 마침내 세라엘의 의견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기색이었다.
그녀는 힘을 얻고 제 주장을 펼쳤다.
“저는 말 그대로 사랑 없는 결혼이 싫답니다. 일생을 공유할 반려자가 생판 남이라면 감수할 위험도 크니까요.”
“…….”
“물건 매매하듯 넘겨지는 건 더욱 싫어요. 아까까지만 해도 도망쳐 버릴까 작정했을 정도였어요.”
“도망?”
눈을 내리깐 채 듣고만 있던 카에드의 낯빛이 불현듯 어두워졌다.
세라엘은 흠칫 어깨를 움츠렸다. 바닥에 꽂혀 있던 황금색의 눈동자가 그녀를 향해 바짝 올라오면서 마치 삼백안과 같은 모양을 띠었다.
그는 조용히 숨을 내쉬며 뭔가를 억누르려는 듯 큼지막한 손을 쥐었다 폈다.
“도주까지 계획하셨을 줄이야.”
굵은 핏줄이 그의 손등에 불쑥 존재감을 드러냈다.
“끔찍이도 싫으셨나 보군요. 불가능한 일을 상상할 만큼.”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카에드의 눈동자에는 당장 무슨 일이라도 칠 것처럼 서늘한 광기가 어려 있었다.
‘그게 요점이 아닌데.’
세라엘은 애써 웃어 보였다.
“그야 당연히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와 혼약을 맺을 순 없으니까요.”
“…….”
“당연히 도망칠 수밖에 없는 상, 황….”
흔들림 없이 세라엘에게 박힌 남자의 눈은 서릿발처럼 차게 식어갔다.
‘듣고 있는 걸까…?’
세라엘의 흰 피부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갑자기 그가 원작에서 행한 숱한 살인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감정을 잃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차치해도 너무 잔혹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던 무자비한 살육.
머릿속에 경고등이 켜지자 세라엘은 제 팔을 쓰다듬으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밤이 깊었네요. 시간이 이렇게 되었는지도 몰랐어요.”
그리 말하면서 일부러 창밖을 의식했는데도 카에드의 눈은 못 박은 듯 그녀를 좇았다.
아름다운 금안이지만, 아까부터 자신을 향할 때마다 집요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오늘 일어난 모든 일이 의문투성이라 세라엘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너무 갑작스러운 제안이라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시간이 늦었으니 일단 제 방으로 돌아가 봐야겠어요.”
침착하게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려면 그의 눈앞에서 벗어나는 게 급선무였다.
“편히 주무시길 바랄게요, 대공님.”
인사를 끝으로 세라엘이 뒤돌아 걸음을 재촉했다.
“세라엘 양.”
감미로운 저음이 발목을 붙들었다. 느지막이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를 들으면서 그녀는 다시금 몸을 돌렸다.
기다렸다는 듯 마주치는 눈동자.
“돌려주고 싶어서요.”
별다른 설명 없이 카에드가 뭔가를 내밀었다. 강인해 보이는 손에 어머니의 유품인 은반지가 놓여 있었다.
그의 이마를 맞추고 나서 어디론가 굴러가는 바람에 영락없이 잃어버릴 줄 알았더니, 그가 주워서 챙겼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뜻밖의 호의에 세라엘은 눈매를 접으면서 미소 지었다.
“소중한 물건인데…. 정말 고마워요.”
홀린 듯 그녀를 응시하던 카에드가 시선을 내려뜨렸다.
느린 속도로 속눈썹을 깜박이면서, 상처 하나 없이 새하얀 그녀의 손을 가만 내려다보았다.
“반지를 일부러 내던진 건 아니었어요. 대공님을 자세히 보려다가 실수로 그만… 어?”
그는 큼지막한 손으로 조심스럽게 세라엘의 손끝을 잡았다.
그러고는 쥐고 있던 은반지를 천천히 손가락에 끼워 주었다.
우연이었을까? 반지는 세라엘이 늘 끼우던 왼손 중지에 안착했다.
예고 없이 닿은 체온은 따뜻했다. 어째서인지 다정하고 애틋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접촉에서 전해지는 진한 감정에 놀란 세라엘이 흠칫 손을 당겨 그에게서 벗어났다.
“이만 가 보겠습니다. 편안한 밤 보내시길 바랄게요.”
선을 그으면서 세라엘은 급히 방을 빠져나왔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으로 머릿속이 엉망진창이었다.
***
해바라기.공금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언제 떠나갈지 몰랐지만 카에드는 아직 후작저에 머무는 중이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일행과 자리를 비운 탓에 첫날 이후로는 마주칠 일이 없었다.
반면 나타샤는 날이 갈수록 가시 돋친 눈길로 세라엘을 노려보았다. 보나 마나 그녀를 두고 오간 혼담이 잘 풀리지 않은 듯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궁금한데.’
창밖의 푸르른 녹음을 보며 세라엘이 한숨을 쉬었다.
‘아무 일도 없으니까 불안하단 말이야. 꼭 폭풍 전야 같잖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길이 없어 답답했다.
“아가씨!”
어느새 방 안으로 들어온 루시가 허둥지둥 세라엘을 찾았다.
“잠깐 이리 좀 와 보셔야겠어요.”
“무슨 일이니?”
“어서요. 직접 들어 보셔야 해요.”
루시는 세라엘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두 사람은 뒤뜰로 통하는 작은 쪽문에 다다랐다.
뒤뜰은 잘 다듬어진 관목과 높은 울타리로 감싸져 있는 장소였다. 중앙에 작은 티테이블이 놓여 있어 손님을 초대하기도 좋은 곳이었다.
넓게 트여있으면서도 빈틈없이 폐쇄된 공간이라, 비밀스러운 대화를 나누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누군가의 인영이 보였다.
나타샤가 다과를 한껏 늘어놓고 떠드는 중이었다. 곁에는 그녀의 친우인 모 자작 부인이 앉아 있었다. 끼리끼리 만난다고, 나타샤처럼 경망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다.
“…러니까, 그냥 헐값에라도 내쳐 버리려고.”
“조금 더 기다려 보지 그래?”
“절대 안 통하겠더라고. 하늘 같은 대공님이시라 이쪽에서 굽히고 들어가 줬더니 아주 그냥 대단한 사업가셨어!”
카에드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세라엘이 엿듣고 있는지도 모르고 나타샤는 연거푸 시부렁거렸다.
“상품 가치를 깎아내리려고 하는 건지 뭔지 남편이 혼담 얘기만 하면 정색하고 주제를 피하더라니까?”
“그렇다고 정말 맥슨 백작에게 넘길 계획이야?”
루시가 떨리는 눈망울로 세라엘을 올려다보았다.
“그럴까 싶어. 남편도 결국 그쪽으로 기울었나 봐.”
“아무렴 스물 남짓한 딸을 예순이 넘은 노인네에게 보내려고? 뒷소문 감당할 수 있겠어?”
헹, 코웃음을 친 나타샤가 팔짱을 꼈다.
“급전이 필요한 마당에 그게 중요하니? 내 딸도 아닌데! 남편 사업으로 집안이 쫄딱 망하게 생겼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조건은 대공님 쪽이 더 좋지 않아?”
“글쎄. 적어도 백작 할아범은 저울질할 것 같지는 않더라고. 예전에 무도회에서 만났을 때부터 세라엘을 눈여겨보았었나 봐.”
사업가 사이에서 오고 가는 흔한 대화였다. 거래 물품이 세라엘이었다는 게 문제였지만.
손이 바들바들 떨려야 할 이야기를 듣고도 세라엘의 얼굴에 서늘하게 굳어 갔다.
맥슨 백작이라.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다.
아버지와 재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샤는 어느 귀부인이 개최한 사교 파티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날 세라엘은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집에서 쉬고 싶었다.
그러나 나타샤는 본인이 새 후작 부인으로서 참석하는 파티인데, 의붓딸을 대동하지 못하면 제 위신이 뭐가 되겠냐며 동행을 강요했다.
‘내가 싫다는데도 끝끝내 몰아붙였지. 그땐 나타샤와 데면데면한 사이였으니 나도 결국 파티에 참석하게 되었고.’
그렇게 주스만 마시면서 무도회장에 덩그러니 앉아 있던 참이었다.
오늘내일하게 생긴 대머리 노인이 세라엘 주변을 어슬렁거리더니, 종국엔 치근덕대는 게 아닌가!
몹시 열 받은 세라엘은 참지 못하고 빈정댔다.
“이보세요, 할아버지. 아니, 경. 손녀뻘 여성에게 말 걸 시간에 머리부터 심어 보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겠어요?”
그 일로 사교계에서 세라엘의 평판이 바닥을 치고 말았다.
비슷한 일을 겪은 어린 영애들은 이해해 주는 편이었으나 권위와 체면을 중시하는 영식들, 특히 나이가 좀 있는 미혼들이 노인네에게 감정 이입을 하며 세라엘을 헐뜯었다.
나중에 루시가 말해 주기를, 그 인간은 맥슨 백작인데 호색한으로 이름을 떨치는 지저분한 귀족이라 했다.
‘급전이 필요하니 이젠 그 미친 할아범에게 날 팔아넘기겠다, 이 말이지?’
주먹을 꽉 쥐던 세라엘이 걸음을 돌렸다.
“아가씨…?”
루시를 무시하고 걸었다.
뒤뜰에 있는 나타샤를 향해서가 아니었다.
세라엘은 빠르지 않은 걸음걸이로 위층을 향했다. 이내 나타샤와 아버지가 쓰는 방에 도달했다.
값진 드레스가 수십 벌 들어찬 옷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타샤가 주말 사교 파티에서 입겠다던 진녹색의 실크 드레스도 침대에 놓인 상태였다.
사치스러운 방 안에서 단연 주의를 끈 것은 화장대였다. 그 위에는 하나같이 값비싼 장신구가 늘어져 있었다.
“돈이 급했으면 내가 아니라 이걸 팔면 되잖아.”
장신구를 내려다보던 세라엘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만 처분해도 몇만 골드는 훌쩍 넘는 돈을 받을 수 있을 터였다.
그때, 화장대 바로 옆에 있는 벽난로가 시야에 들어왔다.
장작 위로 샛노란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세라엘은 나타샤의 금붙이를 두 손에 그러쥐고 벽난로 안으로 내던졌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동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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