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70)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70화(70/150)
세라엘이 당황한 눈으로 쳐다보는데도 카에드는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뻗어 그녀의 무릎 주변과 허벅지를 주물렀다.
장시간 사용했던 뻐근한 근육을 부드럽게 풀어 주는 손길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아픈 곳은 없습니까?”
“근육통이 조금… 근데 제 가운은 어딨어요?”
이불에 반쯤 가려졌다지만 맨정신에 몸을 내보일 수 있을 만큼 그녀는 천연덕스럽지 못했다. 카에드는 세라엘을 흘끗 응시한 후 다시 시선을 내려뜨려 허벅지를 꾹꾹 눌러 주었다.
“더러워져서 버렸습니다.”
“그게 왜 더러워졌지…?”
“기억 안 나요?”
“아….”
벗겨진 실크 가운이 시트 어딘가에 깔려 있을 때의 상황을 떠올리니 감이 잡혔다. 겸연쩍은 표정으로 목덜미를 매만지던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럼 다른 옷이라도 입고 싶….”
세라엘은 마뜩잖은 눈빛을 마주하고서 입을 다물었다.
그럼 계속 이대로 있으란 걸까? 아니, 이제 그에게 보여 주지 않은 곳이 없는데 숨기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그리고 지난밤 동안 깨달았지만, 이 집요한 남자가 하지 말란 짓을 하면 어떤 식으로든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었다.
그 대가가 극한까지 치달은 쾌감이란 게 아이러니한 사실이었다.
체념한 세라엘은 말없이 등허리와 어깨까지 문지르는 손길을 받아들였다. 서서히 노곤한 느낌이 밀려들며 눈이 꾸벅 감기는데, 카에드가 손을 놓고 사이드 테이블에서 트레이를 집어 들었다.
그 위에는 세라엘이 좋아하는 과일 여러 종류와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음식이 한입에 먹기 좋은 크기로 잘려서 담겨 있었다. 시장기가 있었으니 먹을 만도 한데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카에드는 청포도 한 알을 세라엘의 입술 근처로 들이밀었다.
“먹어요.”
지난 며칠간 침실에서 지내며 겪어 본 바로, 그가 주는 음식을 먹고 나면 기력이 배로 빠지는 일이 생겼다.
언제였을까. 아마 기절하듯 잠들었다가, 몸을 닦아 주는 축축한 수건의 촉감에 깨어났을 때였다.
카에드는 세라엘이 눈을 뜨자마자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 조각을 들이밀며 당장 입에 넣기를 종용했다.
그러다 입술 사이로 흐른 과즙 한 방울을 보더니 느닷없이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했고, 몇 시간 후엔 입가에 묻은 생크림에 격렬하게 반응했다.
다음 식사에서는 겨우 자신을 다잡았는지, 세라엘이 트레이 한 상을 해치우고 나서도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그마저도 10분이 안 되어서 다시 그녀를 끌어안고는 오랜 시간 동안 아낌없이 제 욕망을 쏟아부었다.
그렇게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계속해서 시달렸던 것 같다.
세라엘은 카에드의 인내심이 예상보다 형편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다가도 그간 어떻게 참았는지를 고려해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했고.
음식을 막 먹고 나서 하면 속이 무척이나 울렁거린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전신이 뒤흔들리기도 했고, 그가 손바닥 뒤집듯 그녀를 몇 번이고 엎어 놓았으니 어찌 보면 불가피한 결과였다.
다행히 카에드가 손수 먹여 준 약물 덕분에 금방 나아지긴 했지만, 병 주고 약 주는 거나 다름없어 마냥 기쁘진 않았다.
연녹색의 오동통한 포도알을 내려다보던 세라엘이 고개를 내저었다.
“안 먹을래요.”
그는 세라엘의 거절을 가볍게 무시하고 재차 입술에 갖다 댔다.
“좋아하잖아요. 어서 먹어요.”
또다시 고집스레 피한 그녀는 불퉁한 눈으로 허공을 흘겼다.
“안 먹을 거예요.”
“먹는 게 좋을 겁니다. 나흘 연속으로 같이 있어 보니까 알겠는데, 당신은 시도 때도 없이 잠을 자더군요. 멀쩡히 말하다가도 조는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 깨어 있을 때 최대한 먹어 둬요.”
새삼스러운 설교에 세라엘은 어이가 없어 그를 째려보았다.
잠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저를 쉴 틈 없이 껴안고 너무할 정도로 몰아붙인 사람이 누군데 저런 말을 하는 걸까. 양심이 있는 걸까? 카에드에 비하면 하찮은 체력을 가진 그녀로선 기회가 생길 때마다 까무룩 잠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뭘 먹기만 하면 절 내버려 두지 않으시잖… 근데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불평하던 세라엘은 순간 자신이 제대로 들은 단어가 맞는지 귀를 의심했다.
“나흘이나 지났다고 하셨나요?”
“결혼식이 끝나고 밤을 세 번 보냈으니 오늘이 나흘째 되는 날입니다.”
“벌써 그렇게 됐단 말이에요…?”
세라엘은 동그란 이마를 짚었다. 아무리 날짜 감각이 없었다지만 그리도 긴 시간이 흘렀단 말인가.
카에드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그녀의 입에 과일을 쏙 집어넣었다. 허망하게 벌어진 입술 사이로 들어온 것을 세라엘은 얼결에 받아먹었다.
그녀의 기력을 채우기 위해 어떻게든 음식을 먹이려는 남자를 보니 이러다간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격한 운동을 하고 난 다음 날처럼 몸 곳곳이 뻐근한데, 지금처럼 그와 쉼 없이 시간을 보내다가는 고질적인 근육통이 생길 듯한 착각이 일었다.
그가 잇달아 포도알을 들이밀자 세라엘은 다시 뚱한 표정으로 도리질 쳤다.
눈앞에 과즙이 통통하게 차오른 과일을 두고도 먹지 않는 그녀를 보자 카에드는 반듯한 눈썹 한쪽을 들어 올렸다.
“왜 고집을 부리는 겁니까?”
“정말 몰라서 물으시는 거예요…?”
“날 걱정시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아이처럼 굴지 말고 조금이라도 먹어요. 가뜩이나 마른 몸이 그새 더 야위었습니다.”
카에드는 그녀의 어깻죽지를 주무르며 걱정스레 말했다.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 몰라 세라엘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말도 안 돼요. 고작 며칠 사이에 살이 눈에 띄게 빠졌을 것 같지는 않아요.”
“내 두 눈으로 나흘 동안 벗은 몸을 지켜봤는데 모르겠습니까.”
“이제 안 보여 줄래요.”
“지금도 다 보이는데 무슨 소릴 하시는지.”
“아… 아이.”
“얼른 먹어요. 먹지 않으면 이 침실에서 내보내지 않을 겁니다.”
꿍얼거린 세라엘은 이불로 주섬주섬 몸을 가리다가 결국 청포도를 받아먹었다.
이어 둥글게 썬 복숭아와 멜론, 산딸기 등이 차례로 들어왔다. 그녀는 아기 새가 된 기분으로 얌전히 입을 벌렸다.
새콤달콤한 과일로 입맛을 돋우고 나니, 베이컨이 올라간 팬케이크 한 조각이 입술 앞에 준비되었다. 거부감이 들어 고개를 돌리자 카에드는 짙은 눈썹을 찌푸렸다.
“원래 이렇게 고집불통이었습니까?”
두 번 연속 고집쟁이라 지적을 받은 세라엘이 덩달아 미간을 좁혔다.
“지금 고기는 별로 먹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다른 거 먹을게요.”
“무슨 뜻입니까?”
“속이 조금 메슥거려서요. 이왕이면 상큼하고 가벼운 게 좋겠는데… 저기 레몬 케이크 주세요. 크림이 뿌려지지 않은 거로요.”
음식을 요구했는데도 카에드는 미미하게 흔들리는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단순히 쳐다보는 게 아니라 그녀의 면면을 뜯어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시선이었다.
곧 느릿하게 떨어진 눈길은 그녀의 아랫배 근처를 배회했다.
세라엘은 그답지 않게 당황한 남자를 마주 보다가, 그가 어떤 착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채곤 황당한 얼굴을 했다.
“정말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그게 가능하겠어요?”
“…애초에 오해의 여지가 있는 말을 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걸 떠나서 상식적으로 입덧을 사흘 만에 할 리가 없잖아요.”
카에드는 대답 대신 기다란 손가락으로 제 입가를 쓸었다. 곧 요청대로 네모나게 잘린 레몬 케이크를 먹여 주었다. 잘못 본 게 아니라면 그의 귓불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부끄러움 한 점 없이 그녀를 몰아붙였던 남자가 귀 끝을 발그스름하게 물들이는 모습은 정말 오랜 시간이 흘러도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이제 슬슬 나가 봐야 하지 않을까요?”
세라엘은 와플을 먹다 말고 은근슬쩍 물었다. 음식을 하나씩 씹어 삼킬 때마다 잘했다는 듯 뺨에 입맞춤을 내리던 카에드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나가고 싶으십니까?”
“대공님이 자리를 너무 오래 비우시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그녀의 속내를 읽으려는 것처럼 빤히도 응시하던 그는 다시 트레이로 눈길을 떨구며 산뜻하게 대답했다.
“아직 괜찮습니다.”
세라엘은 이전에 그의 일정을 전해 들은 것만으로도 업무량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었다.
맡은 직책이 있을 텐데 언제 복귀하려는 건가 궁금해하던 찰나에 생각을 읽은 듯 카에드가 입을 열었다.
“결재가 급한 건은 예식 전에 미리 처리해 두었고 이후 일정도 차질 없도록 조율했습니다. 그 외 부수적인 업무는 보좌관에게 일임해 놓았으니 괜찮을 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긴 한데….”
돌이켜 보면 카에드는 결혼식 전부터 유독 분주하여, 같은 본성 안에서 생활하는데도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식이 끝나면 그녀와 오래도록 함께 있기 위해서 미리 시간을 비워 둔 듯했다.
“대도시 오슬로에서 개최했던 축제도 며칠 연장하기로 했습니다.”
뜻밖의 말에 세라엘은 귀를 쫑긋 세웠다.
“겨울 축제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가벼이 고개를 끄덕인 카에드는 트레이에 놓인 마지막 과일 조각을 세라엘의 잇새로 밀어 넣었다.
“연일 비가 와서 다들 아쉬웠던 모양이니 폐막을 늦추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당신도 줄곧 가고 싶어 했잖아요.”
“당장 가고 싶어요. 언제 갈 수 있는 거예요? 오늘은 괜찮은가요?”
“폐막까지 일주일 정도 여유가 있습니다.”
주제에서 슬쩍 비껴간 답을 내놓은 카에드는 갑자기 두 팔을 뻗어 세라엘을 끌어안고 가슴께에 볼을 묻었다.
그의 머리칼에선 세라엘이 가진 향긋한 체취가 강하게 풍기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랑 하루만 더 같이 있어요.”
“아….”
카에드는 그를 온전히 받아들이기엔 턱없이 작은 품에 얼굴을 비비적거렸다. 매끄러운 흑발이 그녀의 살갗에 간지럽게 쓸리며 달콤한 향기를 풍겼다.
“살면서 지금처럼 행복했던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불가능한 걸 알면서도 시간이 이대로 멈춰 버렸으면 좋겠어요.”
세라엘은 커다란 덩치의 남자가 제게 매달리는 모습을 묘한 기분으로 내려다보았다. 그는 고개를 살짝 들면서 입술에 닿는 대로 자잘한 키스를 퍼부었다.
“힘들게 하지 않을 테니 하룻밤만 같이 있으면 안 되겠습니까?”
팔을 둘러 껴안고 있는 사람은 카에드인데 어째서 그가 안기는 느낌이 드는지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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