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72)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72화(72/150)
72화 콜은 남다른 후각을 자랑해 놓고도 별것 아니라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그런 냄새가 나는데요. 킁킁… 말린 로즈마리와 타임도 잘게 갈아서 넣으셨군요. 극소량이라 이건 못 알아챌 뻔했네.” “이, 이놈아! 조용히 안 하냐!” 상인은 파리하게 질린 안색으로 주변을 둘레둘레 살폈다. 누가 들을까 봐 매우 걱정하는 표정이었다. “곰같이 생긴 녀석이 개 코가 따로 없구나! 허브는 한 꼬집밖에 안 넣었는데 어떻게 알았냐! 우리 가게 영업 비밀이란 말이다!” “소시지 20개 더 추가요.” “이… 이 태평한 녀석아! 내 조부님께서 개발한 요리법을 호시탐탐 노리는 경쟁자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어디 가서 말 안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거기 양파도 좀 구워 주세요.” “절대로 말하지 말아라!” 상인은 팔딱이는 가슴을 움켜쥐면서도 작은 종이 접시에 소시지를 부지런히 담아 주었다. 그릴 위에서 지글지글 구워지던 수십 개의 소시지가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소년들의 어마어마한 식욕을 떠올린 세라엘은 안주머니에서 금화 몇 닢을 꺼내 악셀에게 건넸다. 우걱우걱 소시지를 씹고 있던 악셀은 동전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뭔데요?” “이걸로 계산하고 너희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사 먹어.” 악셀은 정색하며 냉큼 고개를 저었다. “누님한테 어떻게 얻어먹어요. 그럴 생각이었으면 이 정도로 안 처먹었을 거예요.” “아… 카에드 님이 주신 신용 증표로 인출한 돈이거든.” 그의 돈으로 생색내고 싶지 않아 솔직하게 말했더니, 악셀은 눈을 끔뻑거리다가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와, 신용 증표요? 우리가 하루만 빌려 달라고 했을 땐 하이에나 보듯이 노려봤으면서 두목도 너무하시네.” “누님은 너처럼 흥청망청 낭비할 리 없으니까 준 거겠지.” 손바닥보다 큰 소시지를 한입에 먹어 치운 콜이 말했다. 세라엘은 무엇이든 사고 싶은 게 있으면 망설이지 말라던 카에드의 말을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물론 금액이 얼마가 되었든 간에, 그가 벌어들인 돈을 불필요한 곳에 낭비할 생각도 없었다. “그래서 안 받을 거야? 너희가 배부르게 먹으면 카에드 님도 뿌듯해하실 텐데.” “당연히 받아야죠. 이 돈이면 축제의 모든 음식을 원 없이 사 먹을 수 있어요.” 악셀이 금화를 홀라당 가져가며 씩 웃었다. 그때 루시가 들뜬 목소리로 세라엘을 부르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아가씨, 저기 한 번 가 보는 게 어떨까요?” “어디?” 루시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엔 화가가 즉석에서 그림을 그려 주는 부스가 있었다. 세라엘은 별 관심 없었지만, 별처럼 반짝이는 루시의 눈을 보고 길게 생각하지 않았다. 두 여자는 그곳으로 총총 걸음을 옮겼다. 렉터가 먹던 소시지를 내려놓고 쫄래쫄래 따라왔다. 화구용 흑연을 다듬고 있던 화가는 루시와 세라엘을 보더니 기쁜 얼굴로 맞이했다. “어이쿠, 어여쁜 손님들이 오셨군요! 어떤 분을 모델로 그려 드릴까요?” 화가에게 동전을 건넨 세라엘은 루시를 냉큼 의자에 앉혔다. “이쪽으로 부탁드려요.” “저, 저요?” 자기가 모델이 될 줄은 몰랐던 듯 루시가 당황하여 말을 더듬었다. 다행히 싫지 않았던 모양인지 곧 기대에 찬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맡겨 주시지요! 자, 턱을 살짝 왼쪽으로 틀어 보시겠습니까? 네네, 그렇게요. 좋습니다!” 자세를 고쳐 앉은 화가는 이젤에 두꺼운 종이를 올려놓고 능숙한 손짓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길 가는 행인의 시선까지 받게 된 루시는 금세 긴장한 기색을 보였다. 그녀와 종이를 번갈아 보던 화가가 넉살 좋게 웃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손님! 평생토록 보관할 수 있는 멋진 그림을 성심성의껏 그려 드리겠습니다.” “초상화는 처음이라 어색해요….” 일행은 허수아비처럼 빳빳이 앉아 있는 루시를 위해 한마디 보탰다. “무표정한 얼굴의 초상화를 원하는 게 아니면 살짝 웃어 보는 게 어때?” “긴장하지 말고 평소처럼 웃어 봐.” 조언을 듣고 루시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으려 노력했다. 그 모습을 보고 렉터와 세라엘은 동시에 입을 틀어막았다. 루시가 성난 강아지처럼 윗입술만 걷어 올린 채 치아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때 열심히 손을 놀리던 화가가 불쑥 끼어들었다. “괜찮습니다. 이건 풍자화거든요. 어떤 표정을 지으셔도 제가 솜씨 좋게 그려 드릴 수 있답니다.” “어… 풍자화요?” 말꼬리를 흐린 세라엘이 웃음기를 거두고 걱정스러운 눈으로 루시를 응시했다. 첫 초상화가 우스꽝스러운 풍자화라면 조금 놀라지 않을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잔뜩 긴장한 루시는 화가가 한 말을 전혀 듣지 못했다. 화가는 10분도 되지 않아 결과물을 뚝딱 만들어 냈다. 그림을 먼저 확인한 렉터와 세라엘은 불안한 시선을 교환했다. 홀가분히 의자에서 일어난 루시가 달려와 초상화를 받아 들었다. 기대감이 잔뜩 어렸던 눈이 마구 요동치며 그림을 내려다보았다. “…이게 뭐죠?” 루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종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초상화를 부탁했는데 어째서 썩은 호박이 그려진 거죠?” “아냐, 아냐! 이건 풍자화야.” 당황한 렉터가 다급히 설명했다. 충격받은 루시의 귀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제가 정말 이렇게 생겼나요…? 가끔씩 거울을 볼 땐 이렇지 않았는데…?” “풍자화라니까. 얼굴에 있는 특징을 일부러 과장해서 익살스럽게 그린 거야.” “이… 이것이 나의 초상화….” 종이를 쥔 루시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렉터는 마른침을 한번 삼켰다. “루시, 넌 이렇게 생기지 않았어. 이것보다 훨씬 더 귀엽고, 예, 예쁘고… 사, 사, 사랑스럽… 흠흠. 너를 조금도 닮지 않은 그림에 신경 쓰지 말란 뜻이야.” “코에 혹이 한 바가지 달린 모습이 내 초상화….” “저기, 내 말 듣고 있는 거지?” 렉터가 진땀을 흘려가며 그녀를 달래는 모습이 귀여워서 세라엘은 일부러 끼어들지 않았다. 화구를 정리하던 화가가 밝은 표정으로 세라엘에게 말을 걸었다. “손님도 그려 드릴까요? 이목구비가 오목조목 아름다우셔서 좋은 작품이 나올 듯합니다.” “괜찮아요.” 세라엘은 딱 잘라 거절했다. 좋은 모델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화가는 포기하지 않고 재차 제안했다. “저는 일반적인 인물화도 굉장히 잘 그린답니다. 이래 봬도 로페른 아카데미의 미술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고요. 상대적으로 빠르게 그려 낼 수 있는 그림의 벌이가 더 쏠쏠하여 축제에선 풍자화를 그리고 있지만, 원하신다면 정교한 초상화를 아주 멋지게 완성해 드리지요.” 화가는 눈을 찡긋하며 검지와 엄지 끝을 맞댔다. “요정처럼 어여쁜 손님을 그리게 해 주신다면 절반 값만 받도록 할게요. 어떠신가요?” 솔깃한 제안을 듣고 잠시 고민하던 세라엘이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할게요.” “맡겨만 주시지요!” 신이 난 화가는 헐레벌떡 자리에 앉아 화구를 준비했다. 루시에게는 정말 미안한 얘기지만, 화가는 아까와 비교도 안 되게 진중한 표정으로 세라엘을 흘깃거리며 세밀한 손짓으로 흑연을 움직였다. 이윽고 초상화를 완성한 화가는 이마에 흘러내린 땀 한줄기를 닦으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걸작이 탄생했네요. 손님의 인상이 워낙 좋으셔서 저도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어요.” 세라엘은 화가가 건넨 종이를 받아 들었다. 그때까지도 제 초상화를 붙들고 충격에 빠져 있던 루시가 후다닥 달려왔다. “우와아…! 아가씨가 살아 움직이는 거 같아요!” 루시는 입을 벌리고 감탄하며 그림과 세라엘을 번갈아 보았다. 세라엘 또한 작업물이 마음에 들었다. 흑백의 그림이었지만, 섬세하게 표현된 이목구비와 한 올 한 올 그려진 머리칼이 저가 보기에도 무척 아름다웠다. 세라엘은 본래값보다 좀 더 얹은 금액을 화가에게 건넸다. “멋지게 그려 줘서 고마워요. 정말 마음에 들어요.” “천만에요! 팁까지 주시다니 제가 감사할 따름입니다. 또 그림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지 방문해 주세요. 동전도 잊지 마시고요!” 화가는 모자를 벗어 보이며 익살스러운 인사로 답했다. 반면 두 개의 대조적인 그림을 비교하던 루시는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옆에선 렉터가 쩔쩔매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세라엘은 금화 몇 닢을 주섬주섬 꺼내서 루시에게 내밀었다. 뜻밖의 용돈에 루시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머! 이게 웬 돈이에요! 주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하고 싶었던 게 있으면 마음껏 즐기고 와. 맛있는 것도 먹고, 풍자화가 아닌 예쁜 초상화를 다시 요청해도 좋고. 유랑 극단의 공연도 보고 싶어 했잖아.” “저는 정말 괜찮아요. 아가씨만 따라다녀도 더 바랄 게 없는데….” “그럼 루시 네가 하고 싶은 걸 마음껏 못하잖아. 축제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어.” 세라엘은 한사코 거절하는 루시의 주머니에 금화를 넣어 주었다. 썩은 호박 따위는 금세 잊은 루시가 감격스러운 눈으로 세라엘을 응시했다. “아가씨….” 세라엘은 미소 지으며 루시와 한 번 눈을 맞춘 뒤 렉터를 바라보았다. “렉터, 네가 동행해 주는 건 어떨까? 루시를 홀로 보내기엔 걱정이 되거든. 함께 가 주면 정말 좋을 것 같아.” 렉터는 제 뒤통수를 긁적이며 슬쩍 루시의 눈치를 봤다. “어… 저는 영광이죠. 루시만 괜찮다면 얼마든지요.” “저도 좋아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루시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자, 렉터의 얼굴이 햇살처럼 환해졌다. “정말? 그렇게 느낀다니 다행이야. 네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걱정했거든.” “부담은 무슨. 혼자 돌아다니는 것보다 친구랑 축제를 즐기는 게 더 신나는 일이잖아.” “아… 친구… 그렇지….” 렉터의 머리 위에서 다시 비가 내렸다. 세라엘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 그를 보며 웃음을 삼켰다. “그럼 잘 다녀와. 나는 이만 콜이랑 악셀한테 돌아가 볼게. 두 사람이 말썽을 피우는 건 아닌지 확인해 봐야겠어.” “정말 고마워요, 아가씨. 동전은 절대로 낭비하지 않을게요.” “이따 봬요, 세라엘 님….” 렉터는 그토록 원하던 루시와의 시간이었지만 썩 행복해 보이지 않는 눈치였다. 그래도 가까워질 기회가 생겼으니 마음을 다잡고 씩씩하게 앞장서며 루시를 이끌었다. 세라엘은 두 사람의 뒷모습에 흐뭇한 시선을 던지다가 걸음을 돌렸다. 그때까지도 소시지를 먹고 있던 소년들은 군중 틈에 껴서 무언가를 지켜보고 있었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