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73)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73화(73/150)
눈길이 향한 곳엔 길쭉한 나무 기둥이 우뚝 서 있었는데, 일정 높이마다 눈금과 함께 숫자가 쓰여 있었다.
손차양을 만들어 기둥 끝에 달린 종을 올려다보던 세라엘이 악셀에게 다가갔다.
“뭐 하고 있었어?”
“망치 게임을 구경하고 있었어요.”
“망치 게임?”
악셀은 나무 기둥 아래에 고정된 고무판을 가리켰다.
“망치로 저 판을 내리치면 아래에 있는 무쇠 추가 위로 올라가거든요. 그게 높이 올라갈수록 좋은 점수를 받는 거예요.”
고무판과 기둥 사이에는 작은 시소처럼 생긴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다. 세라엘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렛대 원리를 이용한 게임이구나.”
“그렇죠. 꼭대기의 종을 울리면 챔피언 배지도 준대요.”
“추가 무거워 보이는데 끝까지 올리려면 정말 세게 쳐야겠네.”
“맞아요. 근육 바보들이 하기 딱 좋은 게임이죠.”
때마침 열광적인 환호가 터져 나왔다. 게임에 도전했던 어떤 남자가 신기록을 달성한 듯했다.
“만점을 노렸는데 913점이라니 아쉽군그래.”
추운 날씨에도 민소매를 입은 근육질의 남자가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콜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를 주시했다.
그때 게임을 주최하는 사람이 뛰쳐나와 손뼉을 치며 관중을 둘러보았다.
“자, 종은 아직 울리지 않았습니다! 다음 도전자 없습니까?”
주최자의 외침에 콜은 먹던 소시지를 내려놓고 저벅저벅 앞으로 나갔다.
“형, 나대지 마!”
악셀이 그의 뒤통수에 대고 냅다 소리쳤다. 콜은 들리지 않는 듯 인파를 헤치며 걸어갔다.
쯧 혀를 찬 악셀은 소시지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저럴 줄 알았어. 저 형이 생긴 거랑 다르게 승부욕이 있어요.”
“그래? 난 콜이 힘겨루기를 좋아할 것 같다고 생각했어.”
“그럼 제대로 보신 거네요.”
나무 기둥 앞에 선 콜이 오른손을 들며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도전하겠습니다.”
신기록을 세운 남자 못지않게 기골이 장대한 그를 보자 주최자가 감탄을 던졌다.
“척 보기에도 용감한 도전자가 등장했군요! 913점의 기록을 깰 자신이 있나요?”
“거뜬히 깨겠는데요.”
콜의 망설임 없는 답에 최고 기록을 세웠던 남자가 눈썹을 꿈틀했다.
우람한 체격을 가졌지만 소년티를 완전히 벗지 못한 콜의 얼굴을 보고서 남자는 귀엽다는 듯 피식 웃었다.
“꼬마야. 신기록을 달성하면 내가 은화 한 닢을 주지. 하지만 내 점수를 넘지 못한다면 네가 나한테 은화를 주는 건 어떠냐?”
“싫은데요.”
돈에 관심 없었던 콜은 그의 제안을 간단히 무시했다. 머쓱해진 남자가 눈을 깜박이다 팔짱을 꼈다.
“건방진 녀석이구먼. 어디 한번 지켜볼까.”
“지켜보세요. 기록도 깨고 저 종까지 울려 보겠습니다.”
콜이 기둥 끝에 대롱대롱 달린 종을 척 가리켰다.
모처럼의 구경거리에 신이 난 관중들이 목청 높여 환호를 질렀다. 소시지를 파는 상인까지 달려 나와 기대감에 찬 눈으로 게임을 관망했다.
“기록을 깨긴 무슨. 엉뚱한 걸 깨부수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중얼거리듯 빈정댄 악셀은 금세 흥미를 잃고 소시지를 먹는 데 집중했다.
“잘해 봐.”
세라엘은 망치를 집어 드는 콜을 향해 두 주먹을 쥐고 가벼이 흔들어 보였다. 그의 우직한 얼굴에 씩 미소가 지어졌다.
“기록을 세우면 기념으로 누님께 칵테일을 한 잔 사 드릴게요. 어차피 두목이 준 용돈이지만.”
“어머, 정말?”
세라엘이 감동하여 되묻자, 시큰둥하던 악셀이 갑자기 열기를 띠고 콜을 응원했다.
“형! 잘해 봐!”
“불여우 같은 놈. 너한텐 레모네이드를 사 줄게.”
콜은 무거운 망치를 가뿐히 들고 공중에 몇 번 휘둘렀다. 그의 쇼맨십에 흥분한 구경꾼들이 요란스러운 갈채를 보냈다.
자세를 바로잡은 콜은 숨을 한 번 들이마시더니 망치를 잡은 손을 높이 쳐들었다. 모두 숨을 죽인 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허공을 가른 망치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고무판을 내리침과 동시에, 반동을 받은 무쇠 추는 꼭대기를 향해 붕 치솟았다. 추의 움직임을 따라 여러 쌍의 시선도 함께 올라갔다.
좋은 결과를 감지한 콜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예상대로 추가 정점에 다다르면서 곧 맑은 종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졌다.
관중으로부터 환성이 터져 나오려던 순간, 무언가 와지끈하고 부러지는 소리가 따라붙었다.
“응?”
콜은 미소를 거두고 어리둥절한 낯으로 갸웃거렸다. 누구보다도 빠르게 움직인 악셀은 세라엘을 데리고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다.
기다란 나무 기둥의 아래에서부터 금이 가더니, 재차 범상치 않은 소리가 나면서 기둥은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구경꾼들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나무를 피해 달아났다. 신기록을 가졌던 남자는 아연실색하여 콜을 응시하다 자리를 떴다.
두 갈래로 쿵 떨어진 기둥을 멀뚱히 내려다보던 콜이 멋쩍은 얼굴로 볼을 긁적였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뜬 악셀과 세라엘을 향해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그래도 칵테일은 사 드릴게요.”
결국 세라엘은 가진 금화의 절반을 주최자에게 넘겨줘야만 했다.
고의로 때려 부순 게 아니었지만, 기물 파손으로 인한 피해를 확실히 보상해야 뒷말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세라엘은 사고 친 자식의 부모가 된 듯한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녀가 보상금을 지급하는 동안, 챔피언 배지를 얻지 못한 콜이 뚱한 표정으로 등 뒤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에게 종종 외출 금지령이 내렸다던 이유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필요 이상으로 이목을 끌며 의도치 않게 소동을 몰고 다니는 듯했다.
시시껄렁한 남자들이 악셀의 어깨를 치고 갔을 땐 싸움이 날까 봐 덜컥 겁이 났다.
다행히 세라엘을 의식해서인지 악셀도 참고 넘어가는 듯했지만, 인파 속에 숨어 돌멩이를 집어 들더니 기어이 그들의 뒤통수에 던져 노기를 해소했다.
그런 아슬아슬한 점만 제외하면 축제는 정말 흥겨웠다.
세라엘은 양고기 케밥과 치즈가 들어간 옥수수빵을 사 먹고, 흥겨운 연극을 구경하다 음료를 홀짝이며 가도를 걸었다.
“근데 렉터랑 걔 여자 친구는 어디 갔죠? 어느 순간부터 안 보이네요.”
뒤늦게 그들의 부재를 인지한 악셀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가긴 어딜 갔겠어. 데이트 중이겠지.”
콜이 맥주를 한입에 털어 넣으며 빈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러나 빗맞히는 바람에 뒤통수를 긁적이다 컵을 도로 주워 넣었다.
세라엘은 눈을 가늘게 뜨고 악셀을 타박했다.
“루시를 렉터 여자 친구라고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어.”
“왜요?”
“두 사람이 곤란해하잖아. 친해지려다가도 그런 낯뜨거운 소릴 들으면 나 같아도 도망갈 거야.”
“쳇. 알았어요. 누님이 은근 잔소리가 많으시네….”
툴툴대던 악셀이 문득 허공을 향해 한숨이 섞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시간 참 빠르다. 막둥이가 언제 다 커서 축제 데이트까지 하고 있냐. 안 그래, 형?”
“렉터랑 한 살 차이밖에 안 나는 주제에 늙은이처럼 거들먹거리기는.”
“그래도 막내는 막내니까. 렉터가 목검으로 장난치다 시프 형 머리를 때려서 호되게 혼났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기억나?”
“왜 남 얘기하듯 말하는 거지? 너랑 장난치다가 그런 거잖아.”
세라엘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어린 두 막내가 점잖은 시프의 머리통을 목검으로 후리는 상상을 하니 너무나 우스꽝스러웠다.
이렇게나 유쾌한 소년들이 원작대로라면 참혹한 전쟁에 휘말려 일찍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 지금 세계에서는 탈 없이 잘 지내고 있는 걸 보니 흐뭇하면서도 씁쓸했다.
그때 악셀이 무언가를 발견하곤 고갯짓했다.
“누님. 저거 한번 해 보실래요?”
그곳엔 그가 줄곧 하고 싶어 했던 인형 맞히기 게임 부스가 있었다.
“해 보자. 재미있겠다.”
그들은 부스를 향해 걸어갔다. 세라엘은 촉이 고무로 된 작은 화살을 집어 석궁에 더듬더듬 끼워 넣었다.
그녀의 손짓을 잠자코 지켜보던 악셀이 턱을 갸웃 기울였다.
“어? 화살 반대로 끼웠어요. 그 상태로 쏘면 앞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누님 얼굴을 맞힐걸요.”
“꺅!”
시범 삼아 인형을 조준해 보던 세라엘이 제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악셀은 어린아이처럼 낄낄대며 즐거워했다.
“푸하하! 장난이에요.”
“왜 그래? 깜짝 놀랐잖아…!”
세라엘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자, 콜은 아니꼽다는 듯 악셀을 향해 미간을 구겼다.
“네가 명줄을 재촉하는구나. 장난 칠 사람이 없어서 누님한테 장난을 치냐.”
“아차, 나도 모르게 그만…. 두목한테 이르면 안 돼요, 누님.”
“너 하는 거 봐서.”
그녀는 새침하게 쏘아붙이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영 시원찮은 모양새를 관찰하던 악셀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누님.”
“또 왜.”
“그냥 하면 재미없으니까 내기하실래요?”
“어떤 내기?”
“인형 10개를 먼저 맞힌 사람한테 가진 돈 전부를 주는 거예요. 어때요?”
세라엘은 떨떠름한 눈으로 악셀을 흘겨봤다.
“석궁을 처음 만져 보는 사람한테 승부로 돈내기를 제안하다니 양심이 없구나.”
“제게 불리한 조건을 달면 되잖아요. 동시 사격해서 한 판당 저는 한 번, 누님은 두 번 쏘는 거예요. 이 조건이면 나쁘지 않죠?”
“내가 실수 없이 맞히면 다섯 판 만에 이길 수 있는 거네?”
“그렇죠.”
“좋아. 그럼 한번 해 볼게.”
썩 자신 있는 건 아니었으나 해 볼 만한 것 같아서 그녀는 악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다 콜이 석궁에 손도 대지 않은 채 팔짱만 끼고 있는 것을 보았다.
“콜, 너는 안 할 거야?”
“승산 없는 게임은 하고 싶지 않아요. 전 근거리 전문이라서요.”
이런 하찮은 게임을 두고도 승산을 재고 있었구나. 세라엘은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석궁으로 인형을 겨냥했다.
심판을 맡은 콜의 지시에 따라, 두 사람은 준비 자세를 취한 뒤 화살을 발사했다.
“!”
단번에 인형을 명중한 악셀과 달리 세라엘의 화살은 엉뚱한 곳을 때리곤 익살스럽게 튕겨 나갔다.
“푸합!”
그 모습을 본 악셀이 참지 못하고 조소를 터트렸다. 세라엘이 눈매를 좁히고 째려보자, 그는 저도 모르게 던지려던 야유를 헛기침으로 참아냈다.
“크흠. 초심자니까 실력이 엉망진창일 수밖에 없죠. 상심하지 마세요.”
격려인지 비난인지 알 수 없는 말이 세라엘의 자그마한 승부욕을 불태웠다.
“상심 안 했어. 한 번 더 쏠 거야.”
첫 번째 판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세라엘에겐 한 번의 기회가 남아 있었다. 그녀는 시위에 고무 화살을 메긴 뒤 있는 힘껏 방아쇠를 눌렀다.
동시에 인형을 맞힐 수 있겠다는 좋은 예감이 들었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