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74)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74화(74/150)
화살은 호기롭게 쏘아져 나갔다. 그리고 흥미로운 눈으로 시합을 구경하던 주인장의 이마에 적중하고 말았다.
“으악!”
난데없이 공격을 받은 주인장이 놀라 펄쩍 뛰었다. 덩달아 뛰어오른 세라엘이 당황하여 사과를 건넸다.
“어떡해! 정말 미안해요!”
업소 주인은 벌게진 이마를 매만지며 손사래를 쳤다.
“종종 있는 일이니 괜찮습니다. 짓궂은 열 살 아이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실수지만요.”
“아, 네…. 괜찮으시다니 다행이네요….”
세라엘은 말꼬리를 흐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차라리 질책을 받았더라면 덜 부끄러웠을 것이다.
애꿎은 사람을 들입다 맞춰 놓고 좋은 예감이 들기는 무슨. 너무 부끄러운 나머지 어디에든 숨고 싶었다. 그러나 세라엘은 얼굴을 붉히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연거푸 석궁을 만지작거리는 그녀를 보며 주인장이 호탕하게 껄껄 웃었다.
“아주 당찬 아가씨로군요. 실력은 형편없지만! 하하!”
“말조심하시죠. 누구더러 형편없다는 겁니까?”
악셀이 발끈하여 그녀를 변호했다. 세라엘은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녀의 실력이 엉망진창이라고 말하던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니었다.
“어이쿠… 일행이 무섭네. 아무튼, 또 어딜 맞을지 모르니 전 멀찍이 피해 있어야겠습니다.”
그는 어깨를 떠는 시늉을 하며 세라엘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났다. 세라엘은 몇 초간 이마를 짚으며 창피함을 추슬렀다.
이제 두 번째 판이었다. 능숙하게 화살을 메긴 악셀이 조언을 건넸다.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가셨네요.”
“적이 하는 말은 듣지 않을 거야.”
“들으셔야 할걸요. 석궁은 활이랑 달라서 방아쇠를 누르기만 하면 되는데 왜 쓸데없는 힘을 주시는 거죠?”
“너나 잘하렴.”
“전 잘하고 있으니 누님만 노력하시면 돼요. 맞히고 싶은 표적을 상상하면서 쏴 보는 건 어때요?”
좋은 제안이었다. 세라엘은 인형 위에 악셀의 얼굴을 떠올리며 신중히 겨냥했다.
그러나 세 번째 화살도 볼썽사납게 빗나갔고, 이어진 시합에서도 세라엘은 실패를 맛보았다.
반면 악셀은 솜씨 좋게 목표물을 쓰러뜨렸다. 실실대면서 대충 발사하는 것 같은데 그의 화살은 인형의 미간을 정확하게 노리고 있었다.
세라엘을 상대로 얄짤없이 시합에 임하는 악셀을 못마땅하게 지켜보던 콜이 한마디 건넸다.
“누님, 인형을 저놈의 얼굴이라 생각하고 쏴 보는 건 어때요?”
“응?”
“저 얄미운 놈의 코를 뭉개 버린다고 상상해 보세요.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
그 방법을 썼는데도 실패했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던 세라엘이 순순히 고갯짓했다.
“알았어. 시도는 해 볼게.”
“뭘 그딴 걸 시도하고 있어요! 형, 닥쳐! 진담인 줄 아시잖아.”
악셀이 버럭 짜증을 내는데도 콜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여차하면 그냥 석궁으로 머리를 후려갈기세요. 게임에선 지더라도 분풀이는 할 수 있잖아요.”
콜의 솔깃한 제안에 귀가 쫑긋 섰다. 그러나 지는 것도, 악셀의 머리를 후리기도 싫었던 세라엘은 이성을 되찾고 화살을 집어 들었다.
이게 뭐라고 이리도 떨리는 걸까. 숨을 길게 내리 쉰 그녀가 재차 석궁을 잡고 인형을 조준했다. 그 순간, 귓가에서 몹시도 익숙한 저음이 들려왔다.
“오른팔을 더 낮춰 보십시오.”
높이 쳐든 그녀의 팔꿈치를 누군가 슬쩍 그러쥐며 말했다.
“여긴 힘 빼고.”
이번엔 어깨 위에 약한 악력이 느껴졌다.
바짝 가까워진 남자의 숨결이 목덜미 근처에도 물씬 와닿았다. 불현듯 지난 며칠 동안 카에드가 수없이 선사했던 접촉이 상기되었다.
세라엘은 자세를 가다듬지 못한 상태에서 얼결에 화살을 쏘고 말았다.
놀랍게도 그것은 토끼 인형의 귀를 빗맞힌 뒤 바닥으로 떨어졌다. 엉뚱한 곳만 쏘던 참이라 인형에 스치기라도 한 것이 퍽 뿌듯했다.
세라엘은 밝은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카에드는 그녀가 빗맞힌 인형을 보다가 시선을 내려뜨렸다. 마주한 눈동자에는 대견하다는 빛이 어려 있었다.
“잘했습니다. 헛손질에도 목표물을 스치다니 잠재력이 있군요.”
“카에드.”
세라엘은 미소 지으며 그를 반겼다. 카에드는 인사 대신 그녀의 뺨에 입술을 내리눌렀다. 며칠 밤을 한 시도 떨어지지 않고 같이 있었던 남자인데 밖에서 마주치니 가슴이 새삼 두근거렸다.
“언제 오신 거예요?”
“얼마 안 됐습니다.”
그를 보자 피어오른 반가움도 잠시, 세라엘은 멋쩍은 표정으로 석궁을 만지작거렸다.
“혹시 제가 엉망으로 쏘는 모습도 지켜보셨나요?”
주인장의 이마에 화살을 맞히는 모습만큼은 카에드가 보지 않았길 바랐다. 일전에 그의 이마에도 반지를 명중시킨 전적이 있어, 이런 부류의 실수가 유독 창피하게 느껴졌다.
카에드는 발그스름해진 그녀의 볼을 손가락으로 가벼이 훑었다.
“엉망으로 쏘긴. 내 눈엔 꽤 소질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정말요?”
“진심입니다. 석궁은 본래 사냥 무기니까 솜인형보다 살아 있는 생물을 맞힌 게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네…. 모두 지켜보셨군요.”
세라엘은 제 미간을 문지르며 얼굴을 더 붉게 물들였다. 그러자 웃음기 어린 저음이 그녀를 북돋아 주었다.
“기운 내십시오. 자세만 교정하면 충분히 명중할 수 있습니다.”
“감이 조금 잡혔어요. 한 번 더 해 봐야겠어요.”
자신감을 얻은 세라엘은 주섬주섬 화살을 주웠다. 스스로 채찍보다 당근이 맞는 유형인가 실없는 생각도 하며 시위에 화살을 물렸다.
카에드는 세라엘의 어깻죽지에 손을 올리고 살짝 눌렀다.
“악셀의 말대로 어깨에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 있군요. 긴장 풀고 오른팔은 좀 더 낮춰 봐요.”
세라엘은 그의 말을 듣고 나서야 한껏 치켜든 제 오른팔이 의식되었다. 이런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화살을 쏘아 댔다면 인형을 빗맞힌 것도 요행이었다.
카에드는 석궁의 몸통을 야무지게 쥔 그녀의 작은 손을 보더니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손가락을 만져서 위치를 조금씩 옮겨 주었다.
카에드가 그녀의 자세를 손수 바로잡아 주는 동안에 악셀은 낭패감이 어린 얼굴로 허공을 보고 있었다.
두목의 여자를 놀려 먹은 것도 모자라, 시합에서 그녀를 봐주지 않고 신나게 몰아세웠던 것이 들통났으니 후환이 두려웠다.
일주일 내내 연무장 청소를 시키려나. 아님 잔소리꾼인 시프나 호크의 직속 부하로 임명해서 수발이나 뒤치다꺼리를 시킬 수도 있었다.
제게 내려질 벌을 상상하면서도 악셀은 세라엘과 무척 격의 없이 지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했다.
평생을 지체 높은 귀족 여성으로 살았으니 예법을 갖추지 못한 발켄족의 태도를 두고 불쾌할 만도 한데, 세라엘은 그런 기색을 내비친 적이 없었다.
귀족이란 죄다 얌체 같고 겉치레만 중시하는 무리인 줄 알았더니 그녀를 보면 썩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니 세라엘을 편하게 대할 수 있었던 것도 그녀의 쾌활한 성격 때문이 아닐까, 라며 악셀은 내심 책임을 전가해 보았다.
폭풍이 몰아치는 악셀의 마음도 모르고 세라엘은 카에드의 지시를 따르기 바빴다. 그녀는 어정쩡한 모양새로 석궁을 잡은 뒤 카에드를 올려다봤다.
“이렇게 하면 돼요?”
“팔꿈치는 더 내려도 괜찮습니다. 석궁은 고정 장치가 있어서 제대로 받치기만 하면 그리 흔들리지 않아요. 다른 곳에 힘을 빼고 조준하는 데 집중해 봐요.”
“조금 불편하긴 한데 더 안정감 있는 거 같아요. 지금은 어때요?”
“훨씬 좋아졌군요. 그 상태에서 방아쇠를 눌러 보십시오. 동작이 크면 자세가 흐트러지니 손가락만 움직여서.”
그럴싸한 자세를 잡은 세라엘은 가르침대로 검지에 살짝 힘을 주어 발사 장치를 눌렀다.
희한하게도 그 순간 좋은 예감이 들었다. 주인장의 이마에 쏘기 전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새총처럼 쏘아져 나간 고무 화살은 당나귀 인형의 오른쪽 눈에 적중했다.
세라엘은 방방 뛰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카에드의 반응을 살폈다. 그는 대견하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봤다.
“잘했어요. 세라엘은 뭐든 빨리 배우는군요.”
나긋나긋한 저음이 건네는 칭찬에 그녀는 배시시 미소 지었다.
“좋은 선생님을 둔 덕분이에요.”
“조언 몇 마디를 듣고 좋은 결과를 낸 사람이 소질 있는 겁니다.”
두 남녀를 둘러싼 발켄족 남자들은 연애질이란 게 무엇인지 통감하며 남몰래 탄식했다. 한창 좋을 때 아닌가. 막 결혼식까지 치렀으니 그야말로 신혼이었다.
솟아나는 애정을 견디지 못한 남녀가 불시에 입이라도 맞출 수 있으니 그들은 여차하면 눈을 돌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악셀은 화기애애한 카에드와 세라엘을 마구 놀리고 싶었다. 물론 죽고 싶지도 않았으니 생각으로만 그쳤다.
카에드는 세라엘의 허리에 손을 두르며 악셀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잘하면 당신이 이길 수도 있겠는데요.”
칼끝처럼 날카로운 시선을 받은 악셀이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저놈이 이기긴 글렀구나….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그리 생각했다. 세라엘은 웃음기를 띤 채로 턱을 까딱거렸다.
“근데 어째서 ‘뭐든’이에요? 제가 또 뭔가를 빠르게 배운 적이 있었나요?”
카에드가 천천히 입꼬리를 끌어 올리자 그녀는 본능적으로 도리질 쳤다.
“됐어요. 알려 주지 마세요.”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모르는 게 나을 거 같아요.”
“침대에서….”
기어이 상체를 숙인 그가 세라엘의 귓가에 무언가 속삭였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세라엘의 눈이 놀란 토끼처럼 커졌다. 그녀는 다급히 카에드의 손을 붙들었다.
“조용히 하세요…!”
떠들썩한 축제 거리에 있다지만 그리 남사스러운 말을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이러지.
카에드는 마냥 즐거운 표정으로 몸을 물리면서도 그녀의 손을 움켜잡았다. 그러고는 능청스럽게 말을 이었다.
“알려 주는 대로 흡수하니 가르치는 보람이 있군요. 말로만 지시해도 그대로 따라 하는 걸 보면 신기할 정도입니다.”
그는 맞잡지 않은 손을 뻗어 세라엘의 입가를 쓸어 만졌다.
“다른 것도 잘하는지 시켜 보고 싶은데요.”
석궁으로 인형을 명중했던 걸 두고 하는 말일 텐데도 다른 쪽으로 들리는 건 조금 전의 속삭임 때문이겠지.
세라엘은 카에드를 꼬집어 주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어느 방향으로든 무궁무진하게 해석할 수 있는 말을 저리도 뻔뻔하게 할 수가.
세라엘은 애써 태연함을 가장하며 입을 열었다.
“과찬이시네요. 자세도 잡아 주시고 손으로 어떻게 하는지도 알려 주셨잖아요. 못 배우는 게 더 바보 같은… 제 말은, 그러니까 석궁을 얘기하는 건데….”
아무렇지 않게 서두를 뗀 것이 무색하게도 그녀는 당황하여 말을 더듬었다. 스스로가 뱉은 말에 열심히 말려들고 있었다.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린 카에드가 야릇하게 웃었다.
“다른 의미라도 있었습니까? 떠오르는 게 있긴 합니다만.”
“없어요! 없어….”
두 볼이 열기라도 쬔 것처럼 홧홧했다. 세라엘은 허둥지둥 석궁을 집어 들면서 화제를 돌렸다.
“이제 인형 4개를 연속으로 쓰러트리면 제가 이길 수 있어요.”
“자신감이 넘치시네요, 누님.”
슬그머니 끼어든 악셀이 말을 이었다.
“타고난 게 아닌 이상 궁술은 단기간에 늘지 않거든요.”
“나한테 소질이 조금 있는 거 같기도 해.”
“뭐, 착각은 마음껏…. 크흠! 어쨌든 제 차례네요.”
악셀은 슬쩍 카에드의 눈치를 살폈다. 어느 틈에 웃음기를 싹 거둬 낸 카에드가 재차 예사롭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그 번뜩이는 눈초리 안에 얽힌 명령을 악셀이 읽어 내지 못할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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