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75)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75화(75/150)
악셀은 속으로 꿍얼거리며 인형과 살짝 떨어진 공간을 향해 대충 화살을 쏘았다.
저가 노리는 곳은 백발백중이니 결과야 안 봐도 뻔했다.
“아…. 망했네.”
인형을 빗맞힌 악셀은 영혼 없이 중얼거리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세라엘은 웃음을 삼키면서 화살을 장전했다. 줄곧 귀신처럼 인형의 미간만 노리던 그가 실수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아마 카에드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으니 그 앞에서 세라엘을 이겨 먹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눈치를 봐야 하는 악셀이 다소 안타까웠으나 세라엘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석궁을 잡는 손동작에 집중했다.
설령 악셀이 제 실력을 발휘하더라도 불리한 조건을 달아 놓았으니, 그녀가 네 번의 시도 안에 인형을 모두 맞히면 그를 이길 수 있었다.
“손목을 굽히지 말고 받친다는 느낌으로 잡아보십시오.”
세라엘의 차례가 돌아왔을 때, 카에드가 건넨 조언대로 모양새를 갖춰 격발했더니 또다시 인형을 맞힐 수 있었다. 세라엘은 놀라움에 입을 틀어막았다.
“저 정말 재능이 있나 봐요.”
“잘했습니다. 이번엔 저것을 한번 노려보시겠습니까?”
카에드는 선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목표를 가리켰다. 회색 털을 가진 샛노란 눈의 늑대 인형이었다.
수평 높이의 대상만 겨누던 그녀에게는 난도가 껑충 오른 도전이었다. 세라엘은 제 집중력이 더없이 날카로워지는 것을 느끼며 석궁의 각도를 틀고 신중히 발사했다.
제법 매섭게 쏘아진 고무 화살은 놀랍게도 늑대의 미간을 맞혀 냈다.
뿌듯한 얼굴로 카에드를 응시하자, 그는 칭찬하듯 세라엘의 머리칼을 가벼이 헝클어트렸다.
이어지는 시합에서 세라엘은 잇달아 인형을 명중했고 끝내 승리를 거머쥐었다.
“패자는 알코올이 당기는군요.”
석궁을 내려놓은 악셀이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세라엘이 돈내기를 무효로 해 주었는데도 시무룩한 모양이었다. 콜은 힘내라는 듯 그의 어깨를 세게 두드렸다.
“내가 레모네이드를 사 줄 테니 기운 내라.”
“내가 사 줄….”
세라엘이 말을 끝맺기 전에 카에드가 그녀의 손에 깍지를 끼우며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볼일 있으면 각자 알아서들 보도록 하지.”
그는 일행에게 통보하듯 말하며 그녀를 데리고 저벅저벅 걸음을 옮겼다. 얼결에 그를 따라가는 세라엘의 등 뒤에서 로이가 놀랍지도 않다는 듯 뇌까렸다.
“저희는 신경 쓰지 마시고 편안한 시간 보내십시오.”
뒤를 돌아보니 로이와 바이퍼가 두 발짝 떨어진 곳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세라엘은 그제야 그 두 사람도 줄곧 게임을 지켜봤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직 서먹한 그들 앞에서 너무 방정을 떨었던 건 아닌가 싶어 뒤늦게 창피함이 몰려왔다.
“둘째 막둥이의 기분도 풀어 줄 겸 술 한잔하러 갑시다!”
콜이 쩌렁쩌렁 큰소리로 외쳤다. 막둥이 아니라며 발칵 역정을 부리는 악셀의 목소리도 따라붙었다.
반면 입도 벙긋할 새 없이 일행에서 빠져나온 세라엘은 카에드와 단둘이 축제 거리를 걷게 되었다.
우글대는 관광객 틈에서 깊게 눌러 쓴 로브로 정체를 감춘 채, 그와 손을 잡고 나란히 걸음을 맞추고 있자니 이상야릇한 기분이었다. 데이트라도 하는 것 같아서 가슴이 콩닥거리기도 했다.
“축제는 즐거우십니까?”
카에드가 깍지 끼워 잡은 손을 살짝 들어 올리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물었다. 세라엘은 어린이들이 모여앉아 구경 중인 인형극을 보다가 그와 눈을 맞췄다.
“정말 즐거워요. 밀로즈 영지에서도 마을 행사에 몇 번 가 봤지만 이렇게 규모가 큰 축제는 처음이거든요.”
세라엘은 이것 좀 보라는 듯 손을 내뻗어 거리를 가리켰다.
“기념품을 파는 노점이 끝도 없이 늘어져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동쪽 왕국에서 들여왔다던 신기한 장식품도 있더라구요.”
“하지만 빈손이군요. 돈이 부족하지는 않았을 텐데, 사고 싶은 게 없었나요?”
“음…. 딱히 없었어요.”
구경하느라 바빴고 그녀도 물욕이 많은 편은 아닌지라 사고 싶은 건 없었다.
“오슬로는 교역항과 가까워서 진귀한 물건을 파는 상점도 많습니다. 마음에 드는 게 있는지 한번 둘러보십시오.”
그의 말대로, 길 양옆에 자리한 노점상이 아닌 그 너머를 건너보자 크고 작은 상점이 쭉 줄지어 있었다. 장신구나 여성복을 파는 부티크, 골동품 가게와 제과점, 카페 등 종류도 다양했다.
거리를 가득 채운 노점만으로도 볼거리가 많은데, 갖가지 상점이 자리한 대도시의 번화가를 보니 갓 상경한 사람처럼 감탄이 터져 나왔다.
유리창 너머 진열된 신사복을 눈여겨보던 세라엘이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축제를 구경하는 것만으로 충분해요.”
“알겠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말하십시오.”
카에드는 맞잡은 그녀의 손등을 가져가 짧게 입맞춤했다. 원래도 신체 접촉을 좋아하는 그였는데 함께 밤을 보내고 나니 더욱 스스럼없어졌다. 그런데도 세라엘은 예전처럼 당혹스러워하지 않았다. 침대를 공유한 효과가 생각보다 큰 모양이었다.
왁자지껄한 축제 분위기를 즐기며 정처 없이 걷던 도중 세라엘이 말문을 뗐다.
“사실 원하는 게 하나 있어요.”
“무엇입니까?”
“저도 술 마시고 싶어요.”
카에드는 다소 언짢은 기색을 드러내며 눈썹을 치켜세웠다.
“아이들과 합석하길 원하는 겁니까?”
“아뇨. 이렇게 단둘이 걸으면서 마시고 싶은데, 안 될까요?”
그가 오기 전에 이미 몇 잔 마셨지만 예의상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예전에 엉망으로 취한 모습을 한 번 봐서 그런가. 카에드는 세라엘이 술을 마시는 걸 썩 달가워하지 않았다.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과음은 하지 말고.”
의외로 그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세라엘은 바로 옆 노점으로 가서 뜨거운 멀드 와인을 두 잔 샀다.
적포도주에 사과와 오렌지, 계피를 넣고 팔팔 끓인 술을 한 모금 들이켜자 온몸이 노곤하게 풀렸다. 이 순간 가장 좋아하는 음료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이걸 택할 수 있었다.
“평생 이것만 마시라고 해도 가능할 거 같아요. 너무 맛있지 않아요?”
세라엘은 반짝이는 눈으로 카에드의 동조를 구했다. 제 취향과 먼 술이었지만 카에드는 장단을 맞춰 주었다.
“마실 만합니다. 제법 풍미가 좋군요.”
“그렇죠? 병째로 사고 싶… 지만 참아야겠어요.”
미묘한 눈빛을 받은 그녀는 얼른 말머리를 돌렸다.
두 사람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술을 마시면서 가도를 거닐었다. 전신에 금박칠한 행위 예술가도 보고, 노상 서커스를 구경하는 사이에 세라엘의 컵은 금세 바닥을 보였다.
“벌써 다 마신 겁니까?”
“어머. 맛있어서 저도 모르게 그만….”
세라엘은 아직 반절이나 남은 카에드의 술을 쳐다봤다. 반짝이는 눈에 어린 갈망을 읽은 카에드가 제 몫을 그녀에게 양보했다.
“천천히 드십시오.”
“오늘따라 너그러우시네요.”
다정한 그를 향해 세라엘은 밝게 미소 지었다. 그러나 훈훈한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당신이 주사를 부릴까 두렵습니다. 이러다 내 어깨에 들쳐메고 귀가할 수도 있겠어요.”
카에드는 혀를 차며 핀잔을 주었다. 만취 상태로 그에게 안겨 이동한 적이 있던 세라엘이 흠칫하다가 발끈했다.
“주사라니 제가 언제요…! 제 발로 잘 걸어갈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잘 취하지도 않아요.”
“술주정 부리는 모습을 본 입장에선 썩 믿음직스럽진 않군요.”
“술주정이라니요! 저처럼 얌전하게 취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어요. 그러는 당신은….”
말을 잇던 세라엘이 카에드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취한 모습을 본 적이 없네요. 혹시 주사가 있으신가요?”
“없습니다.”
“에이…. 저는 본 적이 없으니까 믿기 어렵네요. 제 앞에서 취해 보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카에드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겁도 없이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는 건가.
“내가 취한 모습을 보고 싶은 겁니까?”
“한번 보고 싶어요. 궁금해요.”
“평생 볼 일 없겠군요.”
“왜요?”
“당신 앞에서 취할 일은 없을 테니까요.”
그가 딱 잘라 일축했다. 다소 정 없이 들리는 말에 세라엘이 눈을 크게 떴으나 그는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카에드는 원체 술이 세서 쉽게 취하는 편도 아니었지만, 정력을 가라앉히는 약을 먹기 시작한 뒤로는 부수적인 작용 때문인지 정신이 흐릿해지는 일마저 없었다.
고로 만취한 제 모습을 보여 주려면 약도 끊고 술도 진탕 마셔야 하는데, 그건 세라엘을 앞에 두고 이성을 붙든 제어 장치가 두 동강이 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런 일은 결단코 일어나선 안 되었다. 이성을 잃고 개처럼 달려드는 자신을 저 작은 몸이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신방에 들어가기 전에도 약을 평소 복용량의 몇 배로 복용하여 극한으로 절제한 수준이었는데, 세라엘은 그것도 버거워하지 않았던가.
“숙녀분! 달콤한 디저트를 한번 시식해 보시겠어요?”
그때 앞치마를 두른 상인이 트레이를 들고 돌아다니다 세라엘 앞에 섰다. 불만스러운 듯 카에드를 올려다보고 있던 세라엘이 눈길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트레이 위에는 여러 개의 종이컵이 놓여 있었는데, 각각의 컵 안에는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붉은 사탕 같은 것이 가득 들어 있었다.
세라엘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것을 관찰하며 상인에게 물었다.
“이게 뭐예요?”
“복숭아와 자두를 갈아 만든 수제 사탕이에요. 새콤달콤해서 아주 맛있어요. 저희 제과점에서 축제가 열린 기념으로 한 컵씩 나눠드리고 있답니다.”
카에드가 단 걸 좋아하지 않았었나? 세라엘은 상인이 건네는 종이컵을 받아들였다.
“감사합니다. 한번 먹어 볼게요.”
“마음에 드신다면 37번지에 있는 제과점을 한번 찾아오셔요. 수도에서 가장 인기 있던 파티시에 마거릿이 운영하는 가게랍니다.”
상인은 친절히 웃어 보이고는 지나가는 관광객에게 잇달아 컵을 나눠 주었다.
“색깔 좀 보세요. 맛있을 거 같지 않아요?”
세라엘은 과일 사탕을 집어 카에드에게 내밀었다. 어쩐지 떨떠름한 낯이었지만 카에드는 그녀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세라엘은 제 입에도 사탕을 하나 밀어 넣었다. 젤리처럼 물렁물렁한 식감이었는데 상인의 말마따나 무척 새콤달콤하고 맛있었다.
그들은 디저트를 나눠 먹으며 음유시인의 공연을 즐겼다. 부드러운 곡조에 맞춰 흐르는 사랑 노래와 사람들이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는 소리가 무척 듣기 좋았다.
“힌델의 유명 파티시에가 칼스비크에 개업을 하다니 신기해요. 저도 그 사람 이름을 몇 번 들어 본 것 같거든요.”
입 안에서 사탕을 굴려 먹던 그녀가 약간 불분명한 발음으로 말했다. 카에드는 그녀의 입술 끝에 묻은 설탕 가루를 털어 주었다.
“내게 사업 허가 신청서를 보내면서 인상 깊은 추신을 달아 놓았더군요.”
“무엇이었나요?”
“개업을 허락해 준다면 직접 개발한 디저트의 조리법을 공유하겠다는 추신이었습니다.”
“어머…. 그거 뇌물 아닌가요?”
“마음에 드는 뇌물이라 받아들였습니다.”
카에드는 별것 아니라는 듯 여상한 어투로 대답했다.
그런데 음식을 만들어 파는 가게에서 조리법은 극비로도 다뤄지는 영업 비밀 아닌가.
노점에서 소시지를 파는 상인도 콜이 재료를 알아맞히자 절대 발설하지 말라며 길길이 날뛰었다. 유명 제과점을 운영하는 사람이 레시피를 자진해서 공유했을 정도면 칼스비크에서의 개업이 어지간히도 간절한 듯했다.
“영업 비밀을 알려 주면서까지 북부에서 사업을 하고 싶었나 봐요. 영리한 파티시에네요.”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당신이 단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런 제안을 한 게 아닌가 싶어서요.”
중얼거린 세라엘이 재차 과일 사탕을 권했다.
단것이라면 질색을 하는 카에드는 그 사악한 물체를 내려다보다, 세라엘에게 복잡미묘한 시선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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