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77)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77화(77/150)
세라엘은 짧게 딸꾹질하며 무엇을 물어볼지 고민했다. 그러다 자신 또한 카에드가 좋아하는 색깔이 궁금하단 것을 깨달았다.
예전에 릴리가 그의 취향과 좋아하는 색을 물었을 때,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얼버무렸던 순간이 떠올랐던 거다.
“무슨 색을 좋아하세요?”
그녀가 불쑥 물었다. 제 것과 다를 것 하나 없는 질문에 카에드가 눈썹을 까딱 올렸다.
“답하기 어려운 것을 묻는 게 규칙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는데, 저도 궁금해져서요. 혹시 검은색인가요?”
카에드는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질문은 하나씩 던지는 거라고도 하지 않았었나. 세라엘은 본인이 언급했던 규칙을 모조리 어기고 있었다.
그는 지적하는 대신 손을 뻗어 연한 홍조가 오른 세라엘의 뺨을 훑었다.
열기가 느껴지는 게 술기운이 조금 오른 것 같았다. 눈꺼풀이 내리감기는 속도도 영 시원찮았다.
침묵이 제법 오래 이어지고 있다는 걸 감지한 세라엘이 의문을 표했다.
“왜 그래요?”
“취기가 있는 겁니까?”
“아뇨. 빨리 대답하세요. 안 하면 벌주 마셔야 해요.”
그녀가 약간 어눌해진 발음으로 재촉했다. 카에드는 손마디에 닿는 그녀의 온기와 보송한 감촉을 잠시간 즐겼다.
주량이 나쁘지 않은 편으로 알고 있는데 벌써 취한 건가. 자신이 합류하기 전에 그녀가 술을 몇 잔 마신 것쯤은 일찌감치 눈치챘다. 기분 좋게 알딸딸하던 상태에서 독주를 마시니 빠른 속도로 취기가 올랐을 것이다.
술병에 못마땅한 시선을 흘깃 던지며 카에드는 곧 솔직하게 답해 주었다.
“좋아하는 색은 딱히 없습니다.”
붉은 입술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러면 게임 진행이 안 되죠. 세상에 좋아하는 색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당신 눈앞에 있는 것 같네요.”
“아이참. 마음에 드는 색이라도 없으신가요?”
“없습니다.”
“그럼 하다못해 예쁘다고 생각하는 색이라거나…. 정말 없어요?”
감흥 없는 표정을 하고 있던 카에드가 문득 세라엘의 눈을 빤히 주시했다.
세라엘이 제 얼굴에 뭐 묻었나 싶을 만큼 자세히 들여다보는 듯한 기색이었다. 가슴속이 콩콩 두근거렸지만 그녀는 맞댄 시선을 끊어 내지 않았다.
말 한마디 없이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만 보던 카에드가 나직하게 말했다.
“푸른색이 예쁘다고 생각합니다.”
“푸른색이요?”
모호한 답에 세라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푸른색은 쉽사리 정의할 수 없는 색이다. 파란 계열의 옅고 짙은 색과 초록색까지 두루 포함하는 빛깔 아닌가?
나지막한 저음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빛을 받으면 밝은 하늘색으로 보이고, 어둠 속에선 바닷물처럼 짙어지는 푸른색이요.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아름다운 색이라고 생각해요.”
눈을 몇 번 깜빡이던 세라엘이 까르르 웃었다. 그에게 좋아하는 색을 물었지, 세라엘의 눈동자에 대한 감상을 물은 게 아니었다.
“뭐예요, 그게….”
덩달아 입꼬리를 끌어 올리던 카에드가 입을 열었다.
“이제 내 차례군요.”
“질문하세요. 전 준비됐어요.”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뜬 세라엘이 턱을 주억거렸다. 동시에 카에드는 그녀에게 더 바짝 붙어 앉았다.
“……?”
질문하랬더니 왜 다가오는 거지. 세라엘은 미소를 희미하게 지우고 상체를 뒤로 기울였다. 멀어지는 그녀를 저지하듯 카에드는 세라엘의 손을 잡고서 깍지를 꼈다.
그에 그치지 않고 손바닥과 손목이 연결되는 부분을 엄지로 느릿느릿 쓸어 만졌다. 겨울 축제를 구경하면서 내리 잡고 있었던 손인데 지금은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세라엘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카에드가 이윽고 입술을 움직였다.
“취했습니까?”
“…그거 질문한 거예요?”
“질문한 겁니다.”
“어… 아니요? 조금 멍하긴 한데 괜찮아요.”
세라엘은 의문스러운 눈으로 카에드를 바라봤다. 규칙을 알려 줬는데도 아까와 같은 질문을 하는 의도를 모르겠다. 어쨌든 카에드는 술을 먹일 기회를 놓쳤고 이제 그녀의 차례였다.
세라엘은 마른침을 한 번 삼켰다. 황녀가 나타나서 들쑤시고 갔던 밤 이후 줄곧 확인하고 싶은 게 하나 있었다. 기나긴 숨까지 내쉬고 나서야 그녀는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혹시 제가 아닌 다른 여자랑 만나 본 적 있어요?”
“없습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떨어진 답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답인데도 궁금증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이렇게 잘난 남자가 일평생 다른 여자랑 엮여 본 적이 전혀 없었을까.
“정말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럼 저를 만나기 전에는 손을 잡아 본 적도 없었나요? 뽀뽀는요?”
“대체 몇 번이나 물어보는 겁니까. 내가 질문할 차례입니다.”
카에드는 질문 공세를 퍼붓는 세라엘을 단칼에 저지했다. 어쩐지 우스운 기분이 들어 세라엘은 참지 못하고 실실 웃었다.
붙든 손에 미약한 악력을 준 카에드가 은근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당신이 더 취하기 전에 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해요?”
웃음기를 띠고 있던 벽안이 대번에 동전만큼 커졌다. 세라엘은 목을 뒤로 살짝 젖히고 방어적으로 어깨를 움츠렸다.
“뭘… 뭘 해요?”
“대답해야지 되물으면 어떡합니까.”
“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생각하냐니…. 무슨 답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벌주를 마시겠다는 겁니까?”
카에드가 술병을 눈짓하자 그녀는 재빨리 턱을 가로저었다.
일단 질문부터 파악하자 싶어, 손바닥에 주먹을 내리꽂으며 짐짓 동작을 꾸몄다.
“혹시 저와 입을 맞추고 싶으신 건가요?”
“안고 싶다는 뜻입니다.”
약간의 희망을 담아 물었더니 가차 없는 답이 돌아왔다. 그것도 모자라 카에드는 세라엘의 손목을 틀어쥐더니 제 몸에 갖다 대고 문질렀다.
옷감 너머로 여실히 전해지는 열기가 무척이나 뜨거웠다. 세라엘이 짧은 비명을 내지르며 손을 잡아 뺐다.
침대를 공유한 효과가 크기는 무슨. 이런 쪽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처럼 얼굴을 물들이며 꼬리에 불난 망아지처럼 폴짝폴짝 뛰고 있었다.
“갑자기 왜…!”
“얼른 대답하십시오.”
카에드는 즐거워 마지않는 어조로 재촉했다. 세라엘은 울상을 지으며 외쳤다.
“누가 볼지도 모르잖아요!”
“저곳에 빈 마차가 있지 않습니까. 당신을 위해 구매했던 고급 마차입니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그런 질문은 진실 게임에서 하는 게 아니라구요!”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하는 게 암묵적인 규칙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건 그렇지만….”
“규칙이 당신 내키는 대로 바뀌는 겁니까?”
“아니에요.”
어쩐지 뜨끔한 세라엘이 기어들어 가는 음성으로 대꾸했다. 카에드는 가벼이 혀를 차며 잇달아 그녀를 몰아세웠다.
“아니긴. 아까부터 세라엘 마음대로 규칙을 바꾸고 있지 않습니까. 이리도 불공정한 게임인 줄 알았다면 시작 안 했을 겁니다.”
귀를 잘 기울이면 그의 목소리에 장난기가 그득 묻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경황이 없어 눈치채지 못한 세라엘은 몹시 당혹스러워하며 시선을 정면으로 돌렸다.
몽롱한 음악 소리가 들려오는 저녁의 강가, 몹시 낭만적인 장소에서 그녀는 남편으로부터 엉큼한 질문 공격을 받으며 마구 휘둘리고 있었다.
모두 자신이 자초했다는 자각이 밀려들자 헛웃음이 나왔다.
“알았어요. 그냥 마실게요.”
자포자기한 세라엘이 재차 술병을 집어 들었다.
흥미로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던 카에드는 그녀가 병을 기울이자마자 바로 빼앗았다.
덕분에 고작 몇 방울만 삼킨 것 같은데도 불쾌한 열감이 목구멍을 메웠다. 어찌나 독한지 목 언저리에 열이 확 오르면서 머릿속이 팽팽 소용돌이쳤다.
“술이 싫어졌어요.”
세라엘은 두 손바닥으로 제 얼굴을 감쌌다. 귓가에 웃음기 가득한 저음이 흩어졌다.
“마시기 싫었으면 대답을 하지 그랬습니까.”
“제가 철면피도 아니고…. 그런 건 대답 못 해요.”
“겨우 그 정도 질문을 어려워하는군요.”
그런 제안에 냉큼 응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걸요. 혼이 빠진 기분이라 세라엘은 말을 내뱉지 못했다.
숨바꼭질하는 세 살배기가 제 시야만 가리면 숨는 거라 착각하는 것처럼 얼굴을 감싸 쥐고 카에드의 눈을 피할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트린 카에드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고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제게 안긴 작은 몸을 발끝까지 잘근잘근 씹어 먹고 싶었다.
“기분 푸십시오. 작정하고 당신에게 먹일 생각이었으면 다른 질문을 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이미 두 번이나 들이켜게 했잖아요.”
“한 번은 당신 멋대로 마신 것 아니었습니까?”
“게임도 그렇고 정말 한마디도 지지 않으시네요.”
그도 처음에는 져 주고 싶었다. 자신을 진탕 취해 버리게 하려는 속셈이 귀여워서 져 주고 싶다가도, 토끼처럼 놀라 눈을 휘둥그레 뜨는 모습이 보고 싶어서 자꾸 골리게 되었다. 세라엘을 만난 뒤로 생긴 지독한 악취미였다.
어차피 이 독하디독한 술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비운대도 그는 취하지 않을 것이다. 카에드가 본의 아니게 편법을 쓰고 있다는 걸 그녀는 알 턱이 없었다.
당신을 덮치지 않기 위해 이성을 붙들어 주고 정력도 줄여 주는 약을 복용 중인데, 술에 취하지 않는 부작용이 있다는 말을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거짓말도 할 수 없으니 만약 그와 관련된 질문이 들어온다면 카에드는 얼마든지 답할 용의가 있었다.
당신을 좋아하는 마음이 지나치게 부풀어 올라서 먹는 약이라 하면 이해해 주겠지.
“카에드.”
별안간 세라엘이 고개를 쳐들었다. 푸른 눈에는 결연한 빛이 어려 있었다.
“제가 물을 순서가 됐어요.”
“이제 게임은 안 할 겁니다. 난 다른 게 하고 싶어졌어요.”
단호히 거절한 그가 세라엘을 팔 밑에 양손을 넣어 일으켰다. 그녀의 두 발이 지면을 딛기도 전에 공중에 붕 뜨이면서 가뜩이나 흔들리던 시야가 소용돌이쳤다.
카에드는 그녀를 어깨에 들쳐메듯 안고서 성큼성큼 걸었다. 서너 걸음 더 떼고 나서야 세라엘은 그의 품에 안겨 이동 중이란 걸 알았다. 당황한 세라엘이 한 박자 늦게 발버둥 치며 주먹을 말아쥐고 카에드의 어깨를 때렸다.
“내려 줘요. 저 걸을 수 있어요.”
“압니다.”
“아는데 왜 안 내려 주는 거예요?”
“안고 싶어서요.”
짧게 단언한 카에드가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허리를 감은 손에서 놓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전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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