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78)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78화(78/150)
언제는 저항이 의미가 있었던가.
몇 번 꿈틀거리던 세라엘은 될 대로 되라 싶어 몸을 축 늘어트렸다. 포근하게 안아 주는 단단한 몸이 싫지도 않아서 그의 어깨에 얌전히 뺨을 기댔다.
고분고분해진 그녀를 칭찬하듯 등허리를 감싼 손이 토닥토닥 움직였다. 엉뚱한 곳으로 내려간 것 같기도 했는데 세라엘은 그를 저지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생각이 났는지 갑자기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불공정한 게임은 아니었어요. 규칙도 저 혼자만 알고 있으려다가 알려 준 거예요.”
카에드는 웃음을 참으며 꼼지락거리는 몸을 고쳐 안았다.
“이런. 내가 친절한 마음도 몰라보고 당신을 괴롭혔군요.”
“왜 그랬어요? 왜 내 마음을 몰라줘요.”
“미안합니다. 당신 서운함이 풀릴 때까지 사과하게 해 주십시오.”
카에드는 언덕 위 자갈이 깔린 길을 걸었다. 삐죽했던 마음은 그의 보폭에 맞춰 돌이 사각사각 밟히는 소리를 듣자 금세 풀어졌다.
세라엘은 보랏빛으로 물들어 가는 하늘을 올려다보다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자 무척 익숙한 향기가 났다. 묵직한데 독하지 않은, 겨울의 시린 기운이 연상되는 독특한 향이었다.
‘…냄새 좋아.’
커다랗고, 거칠고, 부드러운 곳 하나 없는 남자 몸에서 왜 이리 좋은 향기가 나는지 모르겠다.
그와 오래도록 안고 있었을 때 세라엘의 머리칼에도 온통 그의 체취가 배어서, 새삼스러운 마음에 몇 번이고 그 냄새를 맡아 보았는지 모른다.
귓가에 멀리서 음유시인이 부르는 곡조가 전해져 왔다. 들뜬 아이들이 외치는 소리, 종이 딸랑거리는 소리까지 모두 꿈결처럼 와닿았다. 번화가와 떨어진 거리에서도 축제의 기류가 맴도는 것이 퍽 흥겨웠다.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으며 더 음미하려던 찰나 모든 소리가 급격히 희미해졌다. 동시에 적요해진 공기를 느낀 세라엘이 눈을 떴다.
어느 틈에 자신이 타고 왔던 마차 안으로 몸이 밀어 넣어지고 있었다. 탁, 문이 닫히면서 밀폐된 공간에 들어왔다는 자각이 들기도 전에 카에드가 조급히 입술을 포갰다.
세라엘은 술기운이 약간 오른 상태라 그가 갑작스레 입을 맞춰도 그리 놀라지 않았다. 순순히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입술을 벌리자 카에드는 기다렸다는 듯 깊숙이 파고들었다.
사방이 막힌 장소에서 타액이 뒤섞이며 엇갈리는 숨소리가 유독 노골적이었다.
“잠깐….”
돌연 그녀가 카에드의 가슴을 밀어냈다. 그러고는 그의 어깨너머로 불안한 눈길을 던졌다. 흐트러진 옷자락까지 만지작거리는 거로 보아 유리로 된 차창이 신경 쓰이는 듯했다.
“누가 보면 어떡해요.”
“아무도 안 볼 겁니다.”
대수롭지 않게 말한 그가 다시 입술을 맞대었다. 미는 힘이 지나쳤는지, 가녀린 몸이 뒤로 밀리며 휘청이자 그가 두 팔로 허리를 받쳐 주었다.
열린 입술을 비집고 들어온 카에드는 갈급한 목마름을 채우는 사람처럼 그녀를 탐했다. 손짓에도 열을 올리는데, 그녀로부터 돌아오는 반응이 영 시원찮았다.
그는 곧바로 입을 떼고 세라엘을 보았다. 푸른 눈이 자꾸만 차창을 흘끔거리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카에드는 집중 못 하는 그녀의 턱을 그러쥐고 짧은 입맞춤을 내렸다.
“특수 처리된 유리라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아요.”
“아….”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는다면 커튼을 치겠습니다.”
“괜찮아요.”
세라엘의 얼굴에 약간의 안도감이 찾아들었다. 그녀는 제 손바닥에서부터 미끄러지는 큼지막한 손을 꼭 맞잡았다.
“계속해도 좋아요.”
결연한 음성과는 달리 그녀는 재차 창문을 향해 눈길을 꽂았다. 안에서는 바깥이 훤히 보이는지라 자꾸 시선을 빼앗기는 모양이었다.
카에드는 손을 뻗어 차창의 커튼을 내렸다. 그녀의 주의가 조금이라도 분산되어 자신이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는 게 싫었다. 물기에 젖은 푸른 눈을 오롯이 독차지하는 것보다 욕심나는 일이 또 있을까.
곧 차창을 통해 투과된 조명 빛이 완벽하게 차단되었다. 어둠이 무겁게 내려앉은 폐쇄된 공간, 곤두세워진 세라엘의 청각에는 제 자그마한 숨소리도 크게 다가왔다. 더없이 예민한 감각을 가진 그는 차내의 어떠한 소리도, 움직임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안심이 됩니까?”
숨결이 얽힌 저음이 귓가에 쏟아졌다. 세라엘은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는 카에드의 눈동자를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하게 됐어요. 이제 마음대로 하세요.”
“내 마음대로?”
“아니….”
아차 싶어 정정하기도 전에 카에드는 그녀의 지시를 충실히 따랐다. 좌석 위에 곧장 세라엘을 밀어 등으로 눕히고는 제 몸을 겹쳤다. 아직 온기를 머금지 않은 가죽 시트가 차가웠는지 그녀가 흠칫 경직했다.
“차가워요.”
“곧 괜찮아질 테니까 참으십시오.”
세라엘은 눈썹 위로 흘러내린 검은 머리칼 아래 그의 눈동자에서 끓어오르는 열망을 엿보았다.
조급한 손짓이 그녀의 가슴 앞부분을 여민 가죽끈을 잡아당겼다. 세라엘은 상체를 감싼 옷감이 헐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입술을 깨물었다.
“하아….”
잇새로 숨죽인 신음이 잘게 쪼개지면서 흘러나왔다. 노출된 피부 위로 찬 공기가 내려앉으며 어깨가 절로 움츠러들었다. 그녀는 가쁜 숨을 내리 쉬는 와중에도 여기서 옷을 다 벗으면 춥겠다는 싱거운 걱정을 했다.
그가 얼굴을 묻으면서 세라엘의 눈앞이 점점 희뿌옇게 차올랐다. 마차에서 새어 나간 소리가 주의를 끌겠다는 생각에 그녀는 손으로 제 입을 막았다.
흐트러지긴 했지만 여전히 옷을 입은 상태에서 카에드가 그녀의 무릎 밑으로 손을 넣었다. 그제야 세라엘은 조금 전의 걱정이 쓸데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곧 빈틈없이 밀착된 몸에서 몹시 버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시작부터 이어지는 거친 몸짓을 처음 받아들이는 것도 아닌데 힘에 겨웠다.
“아, 아파요…!”
다급히 외치자 카에드가 움직임을 멈췄으나 몸을 물리지는 않았다. 고통을 줄여 주려는 듯 부드러운 손짓이 더해졌다. 세라엘은 그의 손을 와락 부여잡았다.
“그게 아니라 뭔가 허리를 찌르고 있어요.”
카에드는 그녀의 상체를 안아 일으키고 좌석 아래를 살폈다. 겹친 몸이 약간 기울어지더니 그가 무언가를 주워들었다.
그의 손엔 세라엘의 드레스에서 떨어진 게 틀림없는 보석 장식이 들려 있었다. 딱딱한 데다 삐죽 각진 모양이라 옆구리를 찔렀을 때 아프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카에드는 참을성 없이 보석을 던져 버리고는 동작을 재개했다.
“아!”
몇 초 되지 않아 세라엘이 짤막한 소리를 내뱉었다. 움직임에서 불거진 신음이 아니란 걸 알아챈 카에드가 미간을 좁혔다.
“또 왜 그러십니까?”
“등에 머리카락이….”
치렁치렁한 긴 머리칼이 등허리에 깔린 상태에서 몸이 흔들리자 일순 두피에 날카로운 통증이 일었던 거다. 고급 마차라 해도 침대에 비하면 턱없이 좁은 공간이었다. 자꾸만 흐름이 끊겨 거슬렸던 그가 다른 제안을 했다.
“올라올래요?”
세라엘은 잠시간 침묵을 지켰다. 신방에서 몇 번 시도해 본 적 있었으나 힘에 부쳐서 성공은 못 했다.
“힘들어요, 그건….”
“지금은 안 힘들고?”
“지금도….”
세라엘은 그가 물을 때마다 본의 아니게 찡찡대는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올라갈게요. 일으켜 줘요.”
결국 일어나기를 자처했다. 카에드는 그녀의 허리 양쪽을 잡아 가뿐히 들어 올렸다. 세라엘은 마주 앉은 남자의 뺨을 붙잡아 입술을 겹쳤다. 단단한 팔이 그녀의 등허리를 꽁꽁 옭아매자 거듭 버거움과 쾌감 사이의 무언가가 찾아들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의 위에 올라앉고 나서도 그녀가 주도적으로 움직일 일은 없었다.
쉼 없이 입을 맞추고 체온을 공유하는 동안, 마차 바깥에서는 겨울 축제를 기념하는 폭죽이 터지고 있었다.
깜빡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세라엘은 코끝이 조금 차가워진 것을 느끼며 부스스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마차 안에는 그녀 혼자뿐이었다.
기절이라도 한 것처럼 의식이 싹둑 잘린 느낌이었다. 그의 목덜미에 이마를 묻고서 빳빳한 셔츠 위로 제 눈물이 떨어지는 모습을 본 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세라엘은 느릿느릿 눈을 비비며 상체를 일으켰다. 몸 위에 덮여 있던 카에드의 겉옷이 허벅지로 툭 떨어졌다.
“아야….”
등허리와 허벅지, 볼기 부근에 욱신거리는 근육통이 몰려왔다. 쉴 틈도 없이 이어진 움직임의 여파 때문이다. 머리가 조금 어지럽고 갈증이 이는 건 취기 탓이리라.
좌석 맞은편의 접이식 테이블 위에 샛노란 과일 주스가 든 컵이 놓여 있었다. 이것도 그가 살뜰히 챙겨 놓은 거겠지. 세라엘은 달큼한 음료를 마시며 건조한 목구멍을 적셨다. 멍했던 머릿속이 훨씬 맑아졌다.
초야를 보낸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일을 치른 걸까. 소리 없이 헛웃음을 터트린 그녀는 제 차림새를 내려다보았다.
삐거덕대는 신체와 달리 옷매무새는 추스를 필요 없이 말끔한 상태였다. 가슴을 훤히 드러냈던 옷감의 여밈이 단정하게 매어져 있었고, 엉망으로 구겨져 허리까지 말려 올라갔던 드레스 자락도 말끔했다.
끈적거리거나 찝찝한 부분이 없는 거로 보아 그가 뒤처리까지 해 준 모양이었다. 딱히 손댈 곳을 찾지 못한 세라엘이 차창 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카에드는 마차 앞에 기대서서 로이, 바이퍼와 대화 중이었다. 소년들은 아직 축제를 즐기고 있는 듯 보이지 않았다.
공연히 옷차림을 한 번 더 확인하고 밖으로 나가려던 그녀의 눈에 뭔가 들어왔다. 밝은 계열의 시트가 아니었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검은색 단추였다. 카에드의 셔츠 소매에서 뜯어져 나온 것이었다.
‘내가 잡아 뜯었던가….’
허리께를 움켜쥐고 멋대로 움직이려는 그의 손을 저지하려다 손톱에 뭐가 걸렸던 것 같기도 하고. 옷감이 찢어지는 소리는 확실히 들었다.
머쓱한 눈으로 단추를 보던 세라엘은 아까 눈여겨본 상점을 떠올렸다. 정장과 넥타이, 커프 링크 등을 판매하는 신사복 전문 상점이었다.
시선이 괜히 그곳에 오래 머물렀던 게 아니었다. 세라엘은 카에드에게 무언가 선물해 주고 싶었다. 마침 대도시에 나온 참이고 그의 셔츠를 망가뜨리기도 했으니 선물하기 좋은 기회였다.
그가 준 돈으로 사는 거라 썩 체면이 서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기뻐해 주지 않을까. 그동안 그에게서 받기만 했으니 이번 기회에 작게나마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결심한 세라엘은 헝클어진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마차 밖으로 나왔다.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고 있던 남자들이 말을 멈추고 일제히 시선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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