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79)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79화(79/150)
“안녕하세요.”
세라엘은 바이퍼와 로이를 향해 슬쩍 눈인사를 해 보였다.
서글서글한 로이는 눈매까지 접으며 미소로 답해 주었으나 바이퍼는 무서우리만큼 미동도 없었다.
눈도 깜빡이지 않아서 석상인 줄 알았다. 세라엘은 속으로 혀를 내두르며 그에게서 눈길을 뗐다. 카에드는 서먹한 이들을 앞에 두고 약간 겸연쩍은 낯을 한 세라엘 앞으로 다가왔다.
“일어났군요.”
“저 얼마나 잤어요?”
“한 시간 정도 됐습니다.”
“얼마 안 지났네….”
중얼거린 세라엘이 제 어깻죽지를 가볍게 주물렀다.
얼마 안 지났다니. 카에드는 잘 시간도 아닌데 너무 오래 곯아떨어진 그녀가 걱정되어 슬슬 깨우려던 참이었다. 지적하는 대신 손을 뻗어 피로가 물든 그녀의 얼굴을 훑었다.
“이제 성으로 돌아가시겠습니까?”
피곤해 보이는 세라엘에게 말할 순 없었으나, 카에드는 어서 침실로 돌아가 못다 한 욕망을 채우고 싶었다.
비좁은 공간에서 나누는 사랑도 색다른 묘미가 있었지만 역시 며칠 밤을 내리 욕심낼 수 있는 침실이 더 나았다.
급급한 그의 마음도 모르고 세라엘은 턱을 도리도리 내저었다.
“아직이요. 가기 전에 잠깐 들르고 싶은 곳이 있어요.”
“알겠습니다.”
그럼에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 카에드는 당연히 동행할 기세로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세라엘은 깜짝 선물을 사러 가는데 그를 데려가고 싶지 않았다.
“저 혼자 다녀오려구요. 개인적으로 사고 싶은 게 있어서요.”
카에드의 얼굴에 곧장 떨떠름한 빛이 어렸다. 그가 입을 열기 전에 세라엘이 선수를 쳤다.
“금방 돌아올게요. 사람도 많을 텐데 위험하지 않을 거예요.”
“사람이 많아서 도리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호위도 없이 당신 혼자 보낼 수는 없어요.”
“외진 골목길에 있는 상점이 아니고 가도 한가운데에 있는 곳이에요.”
“상점 앞까지라도 동행하게 해 주십시오.”
“안 돼요. 아이, 제가 뭘 사려는지도 모르시면서….”
“그럼 세 발자국 떨어져서 따라가겠습니다.”
“그게 무슨 차이가 있죠…?”
티격태격 실랑이를 듣고 있던 로이가 불쑥 끼어들었다.
“신혼 첫 주부터 너무 속박하면 부인께서 싫어하실걸요. 원래 여자들이란 자유롭….”
천천히 고개를 돌린 카에드가 스산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냉큼 입을 다문 로이는 넉살 좋게 씩 웃으며 두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그렇다고 부인을 혼자 보내자는 말은 아닙니다.”
부하의 말이 지당하다고 판단했는지 카에드는 약간 갈등하는 기색이었다.
“내가 당신을 속박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뜻하지 않게 도움을 받은 세라엘이 로이를 향해 힐끔 시선을 던졌다.
“그렇다기보다 쪼끔 과보호하시는 거 같기는 해요.”
“당신의 안위를 보살피고 있는 거라 생각지는 않으십니까?”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제 의사를 고려해 주시지 않고 있잖아요. 역시 과보호하는 느낌이 없잖아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든 그를 떼어 놓고 싶었던 세라엘이 반 장난식으로 말했다.
이대로라면 그녀가 자신을 싫어하게 될 거라는 노파심이라도 생긴 걸까. 카에드는 불안정한 눈빛으로 세라엘을 내려다보았다.
부하를 싸늘하게 일갈할 땐 언제고, 대형견이 제 목줄을 매어 둔 채 떠나 버리는 주인을 보는 듯한 눈을 하고 있었다.
극한을 넘나드는 기복에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세라엘은 카에드에게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섰다.
그러고는 그의 가슴에 손을 올리고 두 부하가 듣지 못하게 조용히 속삭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당신을 싫어하게 될 일은 없을 거예요.”
그녀의 속닥거림을 빠짐없이 들은 세 남자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문득 세라엘은 카에드의 몸을 짚은 손에서 무척이나 빠른 고동이 전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도 심장 박동이 이리 거세질 수 있나 의아할 정도였다.
세라엘이 턱을 까딱이자, 카에드는 그녀의 손을 잡고 제 가슴팍에서 떼어 냈다.
“10분 안에 일을 마칠 수 있겠습니까? 성으로 한시바삐 돌아가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아… 갑자기요?”
“지금 당장 귀가해야 할 만큼 한시가 급한 일입니다.”
“10분은 너무 촉박해요. 20분은 안 될까요?”
카에드는 물끄러미 그녀를 응시하다 고개를 가벼이 끄덕였다.
“그쯤은 기다려 드릴 수 있지만 서두르셔야 합니다.”
“노력해 볼게요.”
“그리고 상점 앞까지는 아니더라도 근처에서 당신을 기다리게 해 주십시오.”
“알았어요. 그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아요.”
그들은 상점이 있는 번화가 부근까지 함께 가기로 의견을 절충했다. 세라엘은 카에드와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뒤로는 그의 측근들을 둔 채 축제 거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길에는 여전히 많은 관광객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둑한 저녁이었지만, 거대 눈꽃이 내리쏟아지는 듯한 공중 조명 덕에 사위가 환했다.
겨울 특유의 포근하고 반짝이는 분위기가 물씬 녹아 있어, 어두웠을 때 다시 와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부터는 저 혼자 갈 거예요.”
두 블록 더 가서 모퉁이를 꺾어 큰길로 들어가면 세라엘의 목적지가 있었다. 더 따라오지 말라는 눈빛을 보내자 카에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엄포를 놓았다.
“20분 내로 돌아오지 않으면 추적을 시작할 겁니다.”
“추적이요…?”
터무니없는 어휘를 쓴 걸 보면 농담이 분명한데, 그의 표정이 퍽 진지해서 어느 쪽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황당해하던 세라엘이 잠자코 수긍했다.
“알겠어요. 그전까지는 별일 없을 테니까 절대 따라오시면 안 돼요.”
“몸조심하십시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소리를 지르고.”
“네네.”
“최대한 서둘러 주십시오.”
“아이… 알았다니까요.”
세라엘은 뒤돌아 상점을 향해 걸었다.
난생처음으로 심부름하러 가는 어린애를 보듯 그녀를 담은 카에드의 눈에 전전긍긍하는 빛이 어려 있었다.
‘이쯤이었던 거 같은데.’
세라엘은 아까 눈여겨봤던 신사복 전문 상점을 찾아 인파를 헤치며 두리번거렸다. 이윽고 상점을 발견한 그녀는 목적지를 향해 총총 걸어갔다. 유리문을 열어젖히자 짤랑, 종이 울림과 동시에 고급스러운 머스크 향이 풍겨 왔다.
세라엘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내부를 둘러보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발을 딛는 신사복 전문 매장이었다.
한쪽 벽에는 갖가지 색감과 디자인의 정복이 전시되어 있었고, 중앙의 유리 진열장에는 반짝이는 액세서리가 가득 늘어져 있었다.
의복보다는 부피가 작은 선물을 하는 편이 낫겠다 싶어 세라엘은 진열장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용도도 알 수 없는 남성용 장신구 중에서 무얼 골라야 할지 몰랐다.
“지금 보고 계시는 상품은 넥타이핀이랍니다, 손님.”
고개를 푹 숙이고 진열장 안을 관찰하는 세라엘 곁으로 직원이 다가왔다.
“아, 이게 무언가 했어요.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손님.”
눈썰미 좋은 직원은 재빨리 세라엘의 행색을 훑었다. 옷차림을 감춘 로브 차림이었으나, 그녀는 비단처럼 흐르는 백금발과 주기적으로 관리받은 듯한 윤기 어린 피부를 갖고 있었다.
그로 하여금 그녀가 부유한 집안 출신이란 걸 단박에 알아본 직원이 접대용 미소를 환히 머금었다.
“손님께선 선물하시려고 오늘 매장을 방문해 주신 걸까요?”
“네.”
“선물 받으시는 분이 손님과 비슷한 연령대이실까요?”
“네에. 저보다 더 많….”
“그러시구나. 부군의 선물을 보고 계시는 건가요?”
“맞….”
“마침 완벽한 장소에 찾아오셨군요! 저희 하비 버드슨 신사복 전문 브랜드는 아주 오래전부터 고위 귀족 가문의 신사분들을 위해 고급스럽고 멋진 상품을 제작해 왔답니다. 영웅 전설처럼 내려져 오는 초대 블카노프 공작님의 커프 링크를 제작한 세공인이 하비 버드슨으로, 바로 저희 브랜드를 탄생시키신 창시자랍니다! 오늘 부인께서 방문해 주신 저희 칼스비크 본점은 수도 힌델의 분점보다 더욱 다양한 상품을 보유하고 있으며, 칼스비크에서만 판매되는 독점 상품도 여러 가지 준비되어 있어 최근 개방된 교역항을 통해 외국에서도 많은 손님이 방문하고 계신답니다. 이쪽으로 오시면 저희 하비 버드슨의 특허 직조 기술로 만들어진 원단부터 차근차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난데없이 말로 얻어맞은 세라엘이 눈을 크게 떴다.
뭘 살지도 못 정했고 넥타이핀조차 구별하지 못하는데 이러다간 직원의 현란한 말재간에 강매를 당할 게 틀림없었다.
‘시간도 없어.’
20분이 지나면 카에드가 추적해 올 것이다. 세라엘은 그 안에 선물을 사야 하는 사명이 있었다.
“친절하고 긴… 설명 감사드려요. 죄송하지만 제가 시간이 별로 없어서요.”
“그러시구나. 선물을 아직 정하지 못하신 것 같은데 제가 추천해 드려도 될까요?”
그랬다간 20시간이 있어도 모자랄 것이다. 세라엘은 사근사근한 표정을 잃지 않고 도리질 쳤다.
“괜찮아요. 아, 커프 링크를 한번 보고 싶은데 어디 있을까요?”
“이쪽 진열장에 놓여 있습니다, 손님.”
직원이 환히 웃으며 세라엘을 반대편 진열장으로 이끌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세라엘은 직원의 설명이 썩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우연히 들른 브랜드 상점의 창시자가 카에드의 선조와 연이 닿아 있을 줄이야. 초대 블카노프의 커프 링크를 제작한 세공사였다니 마음에 쏙 드는 정보였다.
카에드에게 하비 버드슨의 커프 링크를 선물해 준다면 더욱 뜻깊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유리면 너머의 액세서리를 살펴보던 세라엘이 손가락으로 하나를 가리켰다.
“이게 마음에 들어요.”
오묘한 은빛을 띤 둥근 커프 링크였다. 테두리를 두른 음각 장식이 전부인 단조로운 디자인이었는데, 조명에 따라 금색으로 보이기도 해서 그에게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안목이 훌륭하시군요! 손님께서 고르신 상품은 칼스비크 본점에서만 판매되는 독점 상품으로써, 보름달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커프 링크랍니다. 저희 하비 버드슨은 특허 낸 직조 기술로도 유명하지만 금속 세공은 그야말로 브랜드의 근원이나 다름없어, 의복뿐 아니라 어떤 장신구를 선택하셔도 후회 없으실 겁니다.”
“아, 네. 가격은 어떻게 되나요?”
작은 깃펜과 종이를 꺼낸 직원이 그 위에 숫자를 척척 적어 보였다.
“화려한 디자인이 들어간 제품은 아니지만 특수 세공 기술이 적용된 저희 대표 상품으로 875골드 되겠습니다. 중앙에 보석이 박힌 상품보다는 합리적인 가격이랍니다. 혹 보석을 고려하고 계신다면 저는 개인적으로 루비나 사파이어보다 다이아몬드를 추천 드립니다. 손님께서도 아시다시피 다이아몬드의 크기에 따라 가격이 책정되는데, 가장 작은 상품부터 2,490골드로 시작한답니다. 한번 구경해 보시겠습니까?”
“아뇨.”
좀 비싼가. 세라엘은 턱을 만지며 잠깐 고민에 빠졌다. 단출한 디자인치고 커프 링크는 생각보다 금액이 있는 편이었다.
그래도 좋은 것을 마땅히 소유할 자격이 있는 남자니까 하나쯤은 괜찮겠지. 보석이 박힌 링크보다 단순한 쪽이 더 나을 것 같으니 따지고 보면 가격대도 썩 나쁘지 않았다.
이런저런 조건을 비교하는 데 정신이 팔려서였을까. 세라엘은 바깥 유리창 너머로 회색 로브를 뒤집어쓴 정체불명의 남자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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