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80)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80화(80/150)
때마침 고민을 끝낸 세라엘은 가장 처음에 짚었던 커프 링크를 가리켰다.
“이걸로 계산해 주시겠어요?”
직원은 예의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응답했다.
“구매 결정까지 빠르게 해 주시는 현명하신 손님이군요! 선물 포장 전문 직원이 창고에서 새 제품을 가져와 신속하고 완벽하게 포장해 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면 계산을 도와드리겠습니다. 혹시 하비 버드슨에 회원 등록이 되어 있으실까요? 그동안 따뜻하고 달콤한 음료도 한 잔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안 되어 있지만 하지 않을래요. 음료도 감사하지만 사양할게요. 시간이 촉박해서 금방 나가 봐야 하거든요.”
“그러시구나. 그럼 포장이 준비되는 동안 저희 신제품인 회중시계를 한번 구경해 보시겠어요? 제국 최고의 시계 장인인 르뷔셀과 합작하여 새롭게 나온 신사용 시계랍니다. 앞서 말씀드린 하비 버드슨의 품격 있는 세공 기술이 적용되어, 미적 감각이 까다로우신 신사분께도 훌륭한 선물이 되리라 자부한답니다.”
…내 말을 듣긴 한 걸까? 눈을 깜박이던 세라엘은 안주머니에서 얼른 신용 증표를 꺼내 들었다.
“계산부터 해 주세요. 혹시 신용 증표로 대금을 치를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손님! 저희 하비 버드슨에 방문하시는 모든 손님께서는 증표로 지불하신답니다.”
“그렇군요. 여기 있어요.”
“증표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직원은 생글생글 웃으며 신용 증표를 받아들였다. 세라엘은 지친 표정으로 남몰래 허공을 한번 훑었다.
직원의 능란한 언변을 계속해서 듣고 있다간 홀라당 혼이 빠질 것 같았다. 상점에서 나가고자 하는 조급한 마음에 더 정신이 없었다. 늦으면 카에드가 쫓아와서 깜짝 선물을 사려고 했던 그녀의 계획을 무산시킬 것이다.
그때, 증표를 내려다본 직원의 얼굴이 서서히 굳으면서 미소를 잃어 갔다. 세라엘이 건넨 네모난 증표의 가운데에는 블카노프 가문의 상징인 늑대 문양이 찬란한 황금으로 새겨져 번쩍이고 있었다.
그것과 세라엘의 얼굴을 번갈아 보던 직원이 전신에 각을 잡고 똑바로 섰다.
“귀부인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갑자기 직원의 표정이 황제를 대하듯 엄숙해졌다.
“제가 알현하게 된 분이 혹 블카노프 대공작 부인 되시는지요?”
빨리 계산해서 나가고 싶은데 말이 또 길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세라엘은 미소를 잃지 않고 응해 주었다.
“네… 맞아요. 안녕하세요.”
직원이 서 있는 자세에서 두 무릎을 살짝 굽혀 보였다.
“너그러운 아량으로 제 무지를 용서해 주세요. 미처 알아뵙지 못하고 인사를 드리지 않은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결례는 없었으니 마음 쓰지 마세요. 포장은 다 끝났나요?”
“마침 다 끝났다고 합니다. 오래 기다리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직원이 급히 손짓하자 포장을 끝낸 사람이 부리나케 달려왔다.
건네받은 상품은 고급스러운 포장재에 고이 싸여 있었다. 세라엘은 검고 매끄러운 종이와 금색 리본으로 묶인 선물 포장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직원은 근엄한 태도를 유지하며 고개 숙여 인사했다.
“대공작 부인을 만나 뵙게 되어 너무나 영광입니다. 오래도록 이어져 온 저희 하비 버드슨과 블카노프 가문에 대한 예의를 표하기 위해, 상품을 무상으로 선물해 드리고 싶은데 괜찮으실는지요?”
뜻밖의 호의에 세라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실 필요는 없어요.”
“그뿐만 아니라 매장 내 어떤 상품이든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시다면 대금을 지급하실 필요 없이 가져가셔도 됩니다. 제게 시간을 주신다면 대공작 부인과 블카노프 대공 전하의 취향에 맞는 최고급 상품을 추려서 최고급 손님만 모시는 룸으로 안내를….”
“정말 괜찮아요. 지금 부군께서 기다리고 계시는데, 급한 일이 있다고 하셔서 저도 얼른 돌아가 봐야 하거든요.”
직원이 화들짝 놀라 입을 턱 가렸다.
“헉. 영주님께서 저희 하비 버드슨 매장 근처에 계시는군요…! 귀부인, 오늘 구매하신 상품만이라도 무상으로 드릴 영광을 부디 저희에게 주시지 않겠습니까?”
직원의 호의를 더 거절하는 것도 예의는 아니었다. 게다가 이 수다쟁이 직원은 세라엘이 뭐라도 받아들일 때까지 계속해서 나불댈 것이다.
공짜가 싫지도 않았던 세라엘은 이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사양하지 않고 받아들일게요. 후의를 베풀어 주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야말로 대공작 부인을 영접하고 작은 선물이나마 전해드릴 기회를 하사받아 감사할 따름입니다.”
거창한 수식어로 응대하던 직원이 박수를 한 번 치자, 상점 내의 모든 직원이 후다닥 뛰쳐나와 세라엘을 문 앞까지 배웅했다.
그녀가 걸음을 서두르지 않았더라면 붉은 카펫까지 가져와 깔아 줄 기세였다. 나란히 서서 길을 만들어 준 직원들이 동시에 허리를 굽혀 깍듯한 예의를 갖추었다.
“대공 전하와 영부인께서 하비 버드슨 칼스비크 본점을 재방문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네에…. 수고하세요.”
세라엘은 돈 대신 영혼이 털린 기분으로 털레털레 상점을 나왔다. 당장 침실로 돌아가 푹 쉬고 싶었다.
기나긴 하루였다. 겨울 축제도 오래도록 남을 즐거운 기억이 될 테고, 카에드와 단둘이 시간을 보낸 것도 두고두고 복기하고 싶은 설렌 추억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기운이 쏙 빠져서 푹신한 침대 위에 몸을 파묻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마차에서 너무 무리했어.’
세라엘은 뻐근한 어깻죽지를 꾹꾹 눌렀다. 사람이 그렇게까지 혈기 왕성할 수가 있나. 그녀가 졸도하듯 쓰러지지 않았다면 마차 안에서 아침 해가 뜨는 걸 보고도 남았을 것이다.
몸이 삐걱거리는 데에는 카에드가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몰아붙인다는 걸 알면서도 응한 제 탓도 없잖아 있다. 우스운 건 그에게 속수무책으로 안기는 것이 싫지 않았다는 거다.
준비한 선물을 어서 보여 주고 싶었다. 그에게 어울리는 좋은 선물을 고른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심지어 거저 얻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번화가에서 기다리고 있을 그를 생각하니 발걸음이 조금 가벼워지기도 했다.
“아가씨.”
그 순간, 등 뒤에서 톤이 조금 높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돌아보기도 전에 차가운 손이 세라엘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뭐야…!”
몸이 휙 돌면서 세라엘은 붙들린 손목을 반사적으로 내려다봤다.
시선을 들어 올리자 눈앞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회색 로브를 뒤집어쓴 남자가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을 덮은 옷자락 아래로 슬그머니 드러난 붉은 입술이 야비한 미소를 머금었다.
“내가 미래를 예견할 줄 아는데… 아가씨는 단명할 운명이군요.”
난데없이 저주를 받은 세라엘은 당황한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있어 남자의 정체를 알 수는 없었으나, 대강 감이 잡히는 점이 있었다.
다짜고짜 저주하는 걸 보면 이 남자는 돌팔이 점쟁이가 틀림없었다. 관광객이 북적이는 축제에 복채를 노리는 어중이떠중이가 돌아다니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세라엘은 미간을 찌푸리고 남자의 눈이 있을 만한 부근을 노려보았다.
“당장 이거 놔요. 무례하게 무슨 짓이에요?”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자 정체불명의 남자는 재미있다는 듯 입매를 비틀었다. 팔목을 틀어쥔 아귀힘이 매우 우악스러웠다.
“놓으란 말 못 들었어요?”
“이거 보기보다 꽤 앙칼지잖아.”
남자는 입술을 달싹이며 덧붙였다.
“제법 반반하기도 하고.”
“……!”
“고분고분하지 못한 미인은 역시 단명하는 법이지.”
작은 목소리였으나 옷자락에 가려지지 않은 유일한 부분이 입이라 세라엘은 모든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힘을 주어 붙잡힌 손을 확 빼냈다.
“그러는 아저씨야말로 단명할 거예요. 길 가는 사람한테 왜 악담을 하는 거죠?”
“…아저씨?”
남자는 웃음기를 싹 지우고 정색했다.
“내가 누군 줄이나 알고 하룻강아지처럼 까부는 건가?”
“코밑까지 로브에 덮여 있는 사람이 누군지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이번엔 그가 불쾌감을 표출하며 입술을 걷어 올렸다. 세라엘은 남자를 더 상대할 생각이 없었다.
“복채가 필요하면 다른 사람을 찾아보세요.”
그녀는 재수 없다는 눈빛으로 남자를 쏘아본 후 걸음을 돌렸다. 별안간 같은 부위에 강한 아귀힘이 느껴지면서 세라엘의 몸이 남자를 향해 휙 비틀렸다.
“악!”
불시에 간격이 좁혀지면서 눈앞에 남자의 뾰족한 턱선과 얇은 입술이 보였다.
일순간 세라엘은 남자에게서 몹시 고급스러운 향기가 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복채를 챙길 요량으로 축제 거리를 누비는 점쟁이에게서 맡을 수 있는 냄새가 아니었다.
의아하던 찰나, 남자의 붉은 입술 사이로 뱀처럼 미끄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겁대가리 없는 여자의 어디가 그놈 마음에 들었을까.”
차가운 체온을 통해 기분 나쁜 악의가 전해져 왔다. 흠칫한 세라엘의 머릿속에 경고등이 켜졌다.
“얼굴이 마음에 들었을 리는 없을 텐데 참 이상하단 말이지. 이 정도 상판은 길거리에 차고 넘쳤거든.”
“이… 이거 안 놔요?”
“바락바락 대드는 걸 보니 남자가 좋아할 성격도 아닌데 굳이 널 선택한 이유가 뭘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뇌까린 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세라엘은 다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길에는 여전히 많은 관광객이 왁자지껄 떠들며 지나가고 있었다.
소리를 지른다면 주의를 끌 수 있을 테고, 먼 거리지만 혹시 카에드가 들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녀는 여차하면 도움을 청할 기세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반항했다.
“당장 이 손 놓지 않으면 호위병을 부르겠어요.”
“네 어디가 그리도 마음에 들었는지 밤낮으로 궁금해했거든…. 아하. 이제 알겠군그래.”
세라엘의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는지 남자는 자기 할 말만 주절거렸다.
그는 한층 강해진 악력으로 세라엘을 가까이 잡아끌었다.
“너 말이야…. 밤일을 어지간히 잘하나 봐? 그놈도 그걸로 꼬신 거지? 맞지?”
세라엘은 경악하여 눈을 치떴다.
인제 보니 점쟁이가 아니라 그냥 미친놈이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초면의 여성에게 중얼중얼 괴상한 말만 늘어놓을 리가 없었다.
한 발짝 뒷걸음질 친 세라엘은 도움을 청하기 위해 숨을 들이쉬었다. 바로 그때, 멀찍이서 여자의 외침이 들려왔다.
“오라버니!”
처음 듣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설핏 미간을 찌푸린 세라엘은 음성이 들려온 곳에 시선을 던졌다.
이쪽으로 달려오는 여자를 알아본 세라엘의 눈이 놀라움으로 커졌다.
“황녀 전하…?”
녹색의 로브 자락을 쥐고 급히 달려온 로잘린은 숨을 몰아쉬며 남자의 옆에 섰다.
숨을 고르느라 몸을 숙인 황녀는 두 무릎에 손을 댄 채 세라엘을 올려다보았다. 매우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마찬가지로 세라엘 또한 적잖이 당황하여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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