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83)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83화(83/150)
“다친 데는 없습니까?”
세라엘은 황급히 도리질 쳤다.
“없어요. 저는 괜찮아요.”
진의를 가늠하듯 그녀의 면면을 살피던 카에드가 바이퍼를 응시했다.
“내 아내와 곧장 성으로 복귀해. 도착하기 전까지 네가 목숨 걸고 확실히 지켜.”
“알겠습니다.”
말 한마디 섞어 보지 않은 여자에게 목숨을 걸라는 명령에도 바이퍼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가벼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질 것이니 수상한 자가 접근하면 지체 없이 목을 그어. 안전하다는 확신이 들기 전까지 한시도 눈을 떼지 마라.”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나만 먼저 보내려고 하는구나. 오가는 대화를 듣고서 조바심이 난 세라엘이 카에드의 손을 와락 붙들었다.
“가지 말…!”
그러나 막상 손을 잡고 시선을 맞대자 말을 잇기가 어려웠다.
성으로 당장 돌아가야 할 정도로 급박한 일이 있다면서 저 재수 없는 독사와 굳이 대면해야 하는 건가.
불안하니까 그냥 성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하고 싶은데, 치기 어린 투정처럼 들릴까 봐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들의 정체를 알아차리곤 웅성대는 구경꾼 앞에서 적절치 못한 말을 해선 안 되었다. 마음을 읽은 것처럼 카에드는 세라엘의 어깨를 쥐고 있던 손에 부드럽게 힘을 주었다.
“금방 귀가할 테니 먼저 성으로 돌아가 있어요.”
“…몸조심해야 해요.”
망연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던 세라엘이 짤막하게 한마디 건넸다. 카에드는 그녀의 후드 자락을 잡아 머리에 푹 덮어씌워 주었다.
“걱정하지 말아요. 조심할 것도 없습니다.”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게요.”
“오래 기다릴 일은 없을 겁니다.”
당부하듯 재차 바이퍼에게 시선을 던진 카에드는 부하들을 이끌고 필립이 향한 곳으로 걸음을 돌렸다.
반면 세라엘은 선뜻 움직이지 못한 채 그의 뒷모습에 초조한 눈길만 보냈다. 할 수 있는 게 없어 발을 동동 굴리는 세라엘 앞으로, 지루해 보이기까지 하는 무감한 표정의 바이퍼가 다가섰다.
“가시죠. 마차로 모시겠습니다.”
그녀에게 손끝도 대지 않았는데 반대 방향으로 밀어붙이는 기운이 느껴졌다.
세라엘은 멀어지는 카에드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그가 인파에 둘러싸여 가려질 때쯤 결국 발걸음을 옮겼다.
대공성으로 돌아오는 마차 안의 공기가 천근만근 무거웠다.
세라엘의 머릿속에서는 걱정과 자책에서 불거진 온갖 사념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내가 괜히 선물을 산다고 해서…!’
번화가로 돌아가지만 않았어도 그 인성 파탄 난 독사를 만날 일이 없었을 텐데. 하다못해 로브로 정체만 잘 가리고 있었어도 황족 남매의 눈에 띌 일이 없었을 터였다.
바보 같으니. 20분 내로 선물을 사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오후 내내 잘만 쓰고 다니던 후드를 뒤집어쓰는 것까지 깜빡했다.
제 머리를 꽁꽁 때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스스로를 힐난하던 세라엘은 곧 고개를 내저었다.
‘아냐. 카에드한테 선물을 주려던 마음은 잘못되지 않았어.’
조금 전에 벌어진 사태는 모두 황태자가 자초했다. 멀쩡히 갈 길 가는 세라엘을 붙들고 도를 넘은 장난을 친 것도 모자라, 질 낮은 희롱까지 던진 그 망할 독사 때문에 일이 커진 것이다.
카에드가 그렇게까지 화가 난 모습은 처음 보았다.
한 치의 일그러짐도 없는 번듯한 얼굴에서 살의가 가감 없이 느껴지는데 두렵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끝까지 만류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가차 없이 필립의 손목을 잘라 냈을 것이다.
카에드의 지위를 고려하더라도, 황족에게 위해를 가할 뻔했으니 뒷일이 어찌 될지 모를 위험천만한 상황 아니었던가. 사태의 심각성을 복기하니 눈앞이 아찔했다.
카에드가 로브를 뒤집어쓴 황태자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으로 단락이 지어졌다지만, 오늘 일로 독기를 품은 필립이 보복이라도 할까 두려웠다.
아니, 그전에 카에드가 필립을 꼴까닥 죽여 버리면 어떡하지. 필립의 해코지보다 이쪽이 더 염려스러운 거 아닌가?
꼬리를 무는 사념 끝에는 스스로를 향한 책망이 있었다.
‘호위를 데려가라고 했을 때 말을 들을 걸 그랬나 봐. 괜히 혼자 가겠다고 고집했어.’
척 봐도 비열하고 간사한 필립이 세라엘 옆에 동행하는 호위를 보았더라면 다가오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결국 제 불찰에서 비롯된 사태라는 생각이 거머리처럼 뇌리에 들러붙었다.
머리를 싸매던 세라엘은 마차 안에 나란히 앉은 바이퍼의 존재를 눈치챘다. 마차가 덜컹거릴 때도 바이퍼는 흡사 돌로 만든 형상처럼 미동도 없었다.
넉살 좋은 사람이었다면 괜찮을 거라며, 별일 아닐 거라며 안심시켜 주었을 텐데 그는 세상 무심한 낯으로 정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바이퍼는 카에드가 가장 신뢰하는 최측근이자, 원작에선 그와 함께 최전선 부대를 이끈 사령관이었다.
말수가 극히 적은 사람이란 건 굳이 활자를 돌이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난리 통에 구겨진 선물 상자를 만지작거리던 세라엘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어….”
바이퍼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살아 있는 석상을 바라보던 세라엘이 머뭇머뭇 말을 이었다.
“카에드 님은 괜찮으실까요?”
“괜찮으실 겁니다.”
듣고는 있었던 모양인지 간결한 답이 돌아왔다. 붙임성 없는 남자에게서 나올 법한 무뚝뚝한 말투였다.
하지만 이런 심드렁한 반응도 카에드가 무사할 거라는 확신과 그를 향한 신뢰가 없다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와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서 그에게 변고가 생기리라 예상했으면 이렇게 느긋할 리는 없겠지.
긍정적 회로를 돌린 세라엘은 그를 힐끔 곁눈질하다가 선물 상자 위로 눈길을 내렸다.
구겨진 한쪽 모퉁이 끝의 검은 포장지가 찢어져 있었고, 상자를 두른 금색 리본은 나풀나풀 풀어 헤쳐져 있었다.
카에드한테 주기 전에 포장이나 손보자는 심정으로 그녀는 리본 끈을 잡아 뺐다. 곁에서 부산스럽게 나는 소리에 바이퍼가 슬쩍 시선을 던졌다.
“이걸 사려고 번화가에 나갔던 거예요.”
눈길을 무언의 물음으로 착각한 세라엘이 상자를 한번 들어 보였다.
“카에드 님께 받은 게 많아서 작은 선물이라도 드리고 싶었거든요. 그동안 막연하게만 생각하다가 신사복 상점을 발견하고 구체적으로 가닥이 잡힌 거예요.”
“…….”
“이게 아니었다면 불미스러운 일은 없었겠지만, 그래도 선물을 산 건 후회하지 않아요. 카에드 님이 기뻐해 주실 것 같아서요.”
동승인으로부터 답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무슨 말이든 하고 싶었다. 뇌리에 둥둥 부유하는 상념을 잡히는 대로 내뱉다 보면 답답한 속이 조금이나마 나을 것 같았다.
“사실 그분 취향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으로 골랐으니 마음에 들어 하셨으면 좋겠는데….”
바이퍼는 종알대는 그녀를 말없이 보다가 뒤늦게 선물 상자로 시선을 내렸다. 잠시간 침묵을 지키던 그가 놀랍게도 질문을 던졌다.
“선물이 뭡니까.”
세라엘이 상자를 열어 안에 든 것을 꺼냈다. 그녀는 손바닥 위에 반짝이는 커프 링크를 얹어 내밀었다.
“커프 링크예요. 벌어지는 소맷부리를 고정하거나 장식으로 착용하는 단추인데, 마음에 들어 하실까요?”
바이퍼는 반짝이는 금속체에 무성의한 눈길을 주고는 대강 응수했다.
“그러시겠죠.”
“남자가 착용하는 장신구를 잘 몰라서 무얼 살지 고민했어요. 아까 넥타이핀을 보고 금으로 된 이쑤시개인 줄 알았지 뭐예요.”
세라엘은 다시 상자 속에 커프 링크를 넣고 포장지를 감쌌다.
“뜻깊은 선물이라 어서 전해 드리고 싶은데 언제쯤 돌아오실까요. 축제도 다녀오고 정말 즐거운 하루였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 자꾸 자책하고 싶고, 카에드 님도 걱정되고…. 생각이 여러 갈래로 쪼개져서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바이퍼는 예의상 보인 반응에 조잘거림을 몇 배로 돌려주는 그녀를 흘깃 보다 정면으로 눈을 돌렸다.
누가 떠드는 소리를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그는 귀갓길 내내 미행이 붙었는지 확인하면서, 두목의 여자가 쉴 틈 없이 쫑알대는 것을 들어야만 했다.
***
성문을 지난 마차는 언덕을 오르며 본성으로 향했다.
곧 구르던 바퀴가 멈추고, 먼저 하차한 바이퍼가 팔을 뻗어 세라엘을 마차에서 내리게 해 주었다.
세라엘은 선물 상자를 품 안에 끌어안으며 바이퍼를 올려다보았다. 카에드의 명령이었다지만 제 안전을 위해 동행해 준 그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었다.
“바래다주어서 고마워요. 이제 전 이만….”
“침실까지 모시겠습니다.”
바이퍼가 눈짓으로 본성의 정문을 가리켰다. 아마 세라엘이 제 침실 안으로 온전히 들어갈 때까지 지켜보겠다는 심산인 듯했다.
카에드의 측근 중 세 명의 소년은 오래도록 알고 지낸 것처럼 친근하게 다가왔으나, 나머지 성인들은 상대하기가 영 어려웠다.
그중에서도 단연 까다로운 사람은 눈앞의 남자가 아닐까.
세라엘은 사교성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그를 멍하니 보다 잠자코 본성으로 향했다.
바이퍼가 정문을 열어젖히자, 마침 1층 홀을 지나가던 릴리가 세라엘을 발견하고서 밝은 표정을 지었다.
“다녀오셨어요?”
종종걸음으로 다가온 릴리는 세라엘의 로브를 벗겨 받아 들었다.
“겨울 축제는 즐거우셨나요? 춥지는 않으셨고요?”
“…응, 성에서는 별일 없었니?”
“주방장이 연어구이에 레몬즙을 뿌리는 걸 깜빡한 것만 제외하면 아무 일도 없었답니다.”
“그랬구나.”
릴리가 곁에 선 바이퍼를 슬쩍 보더니, 누군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함께 갔던 일행이 보이지 않네요. 아가씨 혼자 돌아오신 거예요? 영주님도 아직 귀가하지 않으셨거든요.”
“일이 있어서 그렇게 됐어. 아마 카에드 님도 곧 있으면 돌아오실 거야.”
고개를 끄덕이는 릴리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마침 잘되었네요. 외출하시는 동안 두 분을 위해 저희가 준비한 게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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