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88)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88화(88/150)
“…….”
왜, 왜 저런 옷을…. 카에드는 온몸에 털이 곤두서는 기분으로 세라엘을 내리훑었다.
속눈썹을 내리깔고 평온하게 잠든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차림새가 몹시 흐트러져 있었다. 가뜩이나 얄팍하고 짧아 보이는 옷이 말려 올라가 그녀의 허리께에 걸쳐져 있었다.
깊이 파인 목 부근의 옷감 덕분에 빗장뼈 아래 하얀 살결까지 드러난 상태였다. 목구멍에 절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이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그때는 그녀를 절대 건드려선 안 되는 처지였기에 기를 쓰고 본능을 눌러 참아야 했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혹시 이것도 선물인가. 마지막 선물이…. 선물이 맞나?
뻐근한 느낌과 함께 열기가 솟구치면서 그는 한참 동안 넋을 빼고 서 있었다. 몸을 뒤척이던 세라엘이 부스스 눈을 뜨기 전까지는.
“…어?”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세라엘은 눈앞의 존재를 올려다보았다. 어두컴컴한 공간에 우뚝 선 체형이 몹시 익숙했다.
“카에드.”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덜컥 걱정이 된 세라엘이 소파에서 급히 일어났다.
“언제 왔어요? 다친 곳은 없는 거예요?”
몇 초간 정적을 유지하던 카에드가 고개를 내저었다.
“없습니다.”
세라엘은 그를 마주 보고 서서 허둥지둥 면면을 살폈다. 일단 시야에 닿는 곳에는 생채기가 없었다.
“그 사람은, 황태자는 어떻게 되었어요? 혹시 죽인 건 아니죠…?”
“살아서 황성으로 돌아갔습니다. 부하를 시켜 뒤를 밟게 했으니 걱정할 일은 없을 겁니다.”
“살아는 있지만 잘린 곳이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요?”
카에드가 종종 모호하게 말하는 버릇이 있다는 걸 알아서인지 선뜻 안심할 수 없었다. 실제로 황태자의 손목을 뎅겅 자르려고 했으니, 필립이 손 두 짝을 잃은 채 황성으로 되돌아갔을까 봐 두려웠다.
세라엘의 물음에 카에드는 가벼이 웃어 보였다.
“손발 멀쩡히 돌아갔어요.”
그제야 세라엘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예의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 불쾌한 인간이 칼스비크를 벗어나고 있다니 한시름 놓아도 될 것 같았다.
“다행이에요. 너무 기분 나쁜 사람이라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봐 걱정했어요. 정말 별일 없었어요?”
“어릴 적부터 알던 자라 회포를 푼 것뿐입니다. 일찍 오려고 서둘렀는데 오래 기다렸습니까?”
“네…. 먼저 잠들지 않으려고 했는데 미안해요.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에요.”
세라엘은 두 팔을 뻗어 카에드의 등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물큰 밀려드는 포근한 향기에 한결 마음이 놓였다.
쿵쿵대는 가슴에 뺨을 묻고 오래도록 안고 있으니 눈이 절로 감겼다. 온몸으로 와 닿는 그의 모든 게 좋았다.
몸을 쏙 넣을 수 있는 너른 품과 약간 높은 체온, 단단한 가슴과… 단단한….
“…….”
세라엘은 그의 품 안에 묻었던 얼굴을 떼고 동그랗게 뜬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한두 번 겪어 본 열기가 아닌데도 그녀는 어쩔 줄 몰라 시선을 한곳에 두지 못했다.
“…왜, 왜 그런 거예요…?”
“왜 그러냐니.”
카에드는 그녀의 복장을 눈짓하며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다.
“사람을 홀리려고 작정해 놓고 별걸 다 묻는군요.”
뒤늦게 제 차림을 인지한 세라엘이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괜히 가슴께로 손을 가져가 드러난 곳을 감춰 보기도 했다.
잠옷이 조금 노골적이기는 했지만 이렇게도 크게, 아니, 곧바로 반응할 줄은….
릴리가 선물해 준 거라 입어 봤다는 말도 왠지 뻔한 변명처럼 들릴 것 같았다. 이리저리 눈을 굴리던 그녀가 솔직하게 토로했다.
“그렇다기보다, 당신 기분이 저조한 상태로 귀가할 거란 생각이 들어서요. 걱정하면서 기다리는 와중에 입을까 말까 고민했는데… 어떤 거 같아요?”
“예쁘네요. 날 위로해 주려고 입었다니 감격스럽군요.”
세라엘은 반짝이는 금색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하는 것이 낯간지러워 화제를 돌렸다.
“저, 혹시 제가 준비한 선물 봤어요? 저기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거든요.”
“봤습니다. 아주 마음에 들더군요.”
“정말요?”
당혹감으로 떨리던 목소리가 금세 밝아졌다.
“커프 링크는 어땠어요? 단순한 디자인으로 골라 봤는데 나쁘지 않았어요?”
“나쁘긴요. 매일같이 착용하고 싶을 만큼 내 취향이었습니다.”
망설임 없이 떨어진 대답이었다. 세라엘은 선물을 고르는 제 안목이 제법 괜찮은 것 같아 어깨가 으쓱해졌다.
카에드는 입꼬리를 끌어 올리면서 그녀의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초상화도 마음에 듭니다. 액자에 넣어서 집무실 책상 위에 놓을까 생각 중입니다.”
“사실 초상화는 선물로 준비한 건 아니지만….”
“주십시오.”
말을 끝맺자마자 카에드가 그답지 않게 고집스러운 음성으로 요구했다. 세라엘은 푸른 눈을 깜빡거리다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가지셔도 좋아요. 사실 그동안 받기만 한 것 같아서 뭔가 주고 싶었거든요. 마음에 들어 할지 걱정이었는데 다행이에요.”
“당신이 주는 선물은 무엇이든 마음에 들었을 겁니다.”
“에이…. 길가에서 도토리를 주워 선물했어도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도토리가 되었겠지요.”
카에드는 그녀의 두 손을 잡아 제 입술 가까이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입술에 닿는 대로 손가락과 손등에 여러 번 입맞춤했다.
소중한 도토리라니. 저 얼굴에서 이리 실없는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세라엘은 참지 못하고 헤실헤실 웃었다. 손등 위로 흩어지는 간지러운 숨결과 입술의 말랑한 촉감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녀는 느긋이 내리깐 카에드의 속눈썹을 응시하다 입을 열었다.
“오늘부터 부부 침실에서 지내야 한다는 얘길 듣고 깜짝 놀랐어요.”
“어째서 놀란 겁니까? 싫어서?”
“아뇨. 전부터 각오하고 있었지만, 오자마자 들은 말이라 당황스럽기도 했고. 예정보다 일찍 부부 침실에서 지내게 되니까 아무래도 어색한 감이 있는 거 같아서요.”
“나랑 같은 침실을 쓰는 게 꺼림칙한가 봐요.”
그가 마뜩잖은 기색을 드러내자 세라엘이 서둘러 도리질을 쳤다.
“꺼림칙한 게 아니에요. 방을 공유하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다 보여 줘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조금… 그러니까, 옷 갈아입는 모습이나 씻는 모습을 당신한테 태연하게 보여 주기가 어렵다는 거예요.”
물끄러미 쳐다보는 시선에 세라엘은 괜히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카에드는 여전히 그녀의 손을 잡은 채로 무언가를 생각하는 눈치였다. 턱을 모로 기울인 그가 곧 생뚱맞은 소리를 입 밖으로 꺼냈다.
“그러고 보니 아직 같이 씻어 본 적이 없군요.”
눈을 치뜨는 세라엘의 반응에도 그는 여상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 같이 씻으면 되겠네요.”
“싫어요.”
“부끄러워서 그래요?”
“당연하잖아요….”
“익숙해지면 괜찮을 겁니다. 해 보지 않아서 어색하고 어려운 거지.”
“그런 건 별로 익숙해지고 싶지 않아요…!”
“사소한 일을 두고 부끄러워하는 이유를 모르겠군요. 이제 나한테 보여 주지 않은 곳도 없으면서.”
그간의 경험으로 보건대 계속 발끈했다간 더 낯뜨거운 말이 나올 뿐이었다.
세라엘은 대답 대신 카에드와 가만히 시선을 맞추었다. 언제나 의중을 알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눈동자 안에 그녀의 모습이 오롯이 투영되고 있었다.
거울처럼 자신을 비춘 눈을 마주 보고 있으니 마음 깊은 곳에서 오묘한 열기가 번져 나왔다.
“피곤합니까?”
그녀를 짓궂게 몰아세웠던 종전과 달리 그는 부드럽고 다정한 음성으로 물었다.
“네…. 이제 자러 가요.”
중얼거리듯 말한 세라엘의 양 뺨이 발그스름하게 물들어 있었다. 카에드는 그녀의 엉덩이 밑으로 손을 넣어서 번쩍 안아 들었다.
예고 없이 몸이 위로 들리는 일도 그새 익숙해졌다. 세라엘은 얌전히 그의 품에 안겨 침대로 향했다.
체중을 완전히 의지한 채 그의 목덜미 깊이 파고들자, 카에드가 달래듯 그녀의 허리께를 토닥였다.
“오늘 하루가 길긴 했죠.”
“그래도 정말 즐거웠어요. 그 기분 나쁜 독사만 아니었다면 완벽한 하루였을 거예요.”
카에드는 피실 웃음을 흘리면서 세라엘을 침대에 눕혔다. 그녀가 필립을 향해 적대감을 보이는 게 왜 이리도 귀여운지 모르겠다.
단내를 폴폴 풍기는 이 여자가, 타인에게 위협감조차 주지 못하는 가녀린 여자가 누구보다도 든든한 제 편이 되어 주는 것 같아서. 그에 힘입어 어떤 고난이든 이겨 낼 수 있는 의지를 얻었다.
그녀를 지켜 주고 보호해 줘야 할 사람은 자신인데, 그에게 용기와 위로를 쉼 없이 불어 넣어 주는 사람은 세라엘이었다.
침대에 풀썩 누우면서 세라엘의 나풀나풀한 잠옷이 배꼽 근처로 휘날렸다. 카에드의 눈길이 중력에 이끌리듯 드러난 몸 위로 향했다.
“…….”
예기치 않은 노출에 당황한 모양인지 세라엘은 옷자락을 잡아당겨 몸을 가렸다. 의미 없는 손짓을 지켜보는 카에드의 잇새로 실소가 흘러나왔다.
온몸을 꽁꽁 싸매고 눈만 깜박이고 있어도 자극적인 사람이 자신을 작정하고 홀리려 드는데, 어찌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이런 장단이라면 얼마든지 맞춰 줄 수 있었다.
카에드는 곁에 눕지 않고 곧바로 그녀의 몸 위에 올라탔다. 목 부근에 입술을 내리누르자 세라엘이 팔을 둘러 머리칼을 더듬더듬 쓰다듬어 주었다.
반복된 접촉으로 인해 학습된 것처럼 그를 매만지는 손길이 강한 자극을 불러왔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만족할 순 없었다.
“부부라니, 참 생소하고 낯뜨거운 단어예요. 당신은 어떤 거 같아요?”
그녀의 물음에 카에드는 입술을 떼고 세라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떻긴…. 행복해서 죽을 것 같습니다.”
세라엘은 가벼이 웃으면서 어깨를 들썩였다.
“행복해서 죽을 것 같다니 이상한 표현이에요.”
“당장은 그것밖에 표현할 길이 없군요.”
그는 부부라는 단어가 주는 울림이 무척이나 크다고 생각했다. 고작 낱말일 뿐인데, 그녀와 자신을 하나로 묶어 주는 의미를 지닌 것만으로도 황홀한 전율이 전신을 휘감았다.
첫사랑을 앓는 사춘기 소년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높은 온도의 열에 닿은 듯 몸 어딘가가 후끈거렸다. 세라엘이 어색해하고 쑥스러워할 때, 그는 눈부신 황홀경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그래도 결혼식까지 올린 사이인데 감정의 크기가 서로 이렇게나 다를 수가 있나.
심기가 뒤틀린 그는 보복하듯 치아를 세워 세라엘을 깨물었다. 미약한 신음이 뒤따라왔으나 멈추지 않고 입술을 붙였다.
세라엘이 은근슬쩍 밀어내는데도 카에드는 고집스럽게 파고들었다. 위압감을 일으키는 큰 체격이 몸 위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그녀의 가슴속에 벌써부터 버거움이 차올랐다.
세라엘은 졸린 목소리로 제 의사를 밝혔다.
“저, 이제 슬슬 자고 싶….”
“선물 고마워요.”
“…천만에요. 마음에 드신다니 저도 기뻐요.”
“다른 선물도 가지고 싶은데.”
나지막한 목소리가 귓구멍에 파고들었다. 비몽사몽 흐려지던 세라엘의 눈이 반짝 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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