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89)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89화(89/150)
그가 무얼 바라는지 모를 리 없었다.
또 밤새 붙들고 놓아 주지 않겠지. 하룻밤 정도가 아니라 몇 날 며칠이 걸릴지 몰랐다.
세라엘은 그의 딱딱한 몸을 살짝 밀어 보았다. 온 힘을 다해도 꿈쩍하지 않을 남자가 밀려날 리는 없었다.
“더 준비한 선물은 없는걸요.”
“여기 있잖아요.”
“어디….”
카에드가 그녀의 배 언저리로 손을 뻗자 묘한 불길함이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우악스러운 손아귀에 잡힌 매끄러운 잠옷이 쫘악 소리를 내며 찢겨 나갔다.
어떻게 말릴 새도 없이 삽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세라엘은 아연실색하여 종잇장처럼 갈기갈기 찢어지는 잠옷을 응시했다.
“이, 이게 뭐 하는….”
카에드의 얼굴에는 만족감이 그득 어려 있었다.
“역시 이 선물이 가장 마음에 들어요.”
“욕심쟁이…!”
다급히 외친 말이 고작 그거였다. 카에드는 무척이나 즐거운 듯 낮게 웃으면서, 소용없는 발버둥을 치는 세라엘을 끌어안았다.
“내가 욕심부리는 게 싫었으면 안이 다 보이는 차림을 하지 말았어야죠.”
말문을 잃은 세라엘은 카에드가 넝마쪽이 된 잠옷을 침대 옆으로 털어 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가 제 목깃 근처로 손을 가져가 잠긴 단추를 끄르는 모습도, 입을 조금 벌린 채 올려다보고만 있었다. 세라엘의 표정이 재미있었는지 카에드는 대놓고 실소를 흘렸다.
“왜 놀라고 그래요. 위로해 주려고 입었던 거 아니었습니까?”
예고 없이 남의 옷을 대차게 찢어발긴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니었다. 세라엘은 허망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제 잠옷을 찢는 거로 위로가 되셨다면야….”
“미안하지만 아직 안 됐습니다.”
“아.”
“내가 만족할 때까지 위로해 줘요.”
그리 말하면서 세라엘을 툭 건드리는 손끝이 몹시 짓궂었다. 아무래도 그는 어찌할 바를 몰라 뺨을 붉히는 그녀의 반응을 즐기는 것 같았다. 묘한 분통이 치밀어 세라엘은 입을 꾹 다물었다.
카에드는 답을 들려주지 않는 그녀를 향해 눈썹을 들어 올렸다. 사실 반응 정도야 얼마든지 끌어내면 그만이었지만….
“어렵겠어요?”
아마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을 알아서인지 미리 묻는 듯했다.
세라엘은 대답 대신 조각처럼 선명한 그의 몸을 감상했다. 보기 좋게 갈라진 근육 아래로 시선을 내리자 그의 복부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는 손을 뻗어 그의 팔뚝 위로 도드라진 핏줄을 쓸었다.
“그렇다고 하면 안 할 거예요?”
예기치 않은 되물음이었던 듯, 카에드는 침대맡을 짚던 손을 떼고 상체를 일으켰다.
“…하지 말라면 안 해야죠.”
수긍하는 목소리에선 아쉬움이 뚝뚝 묻어나고 있었다.
세라엘은 일부러 뜸을 들였다. 카에드는 명령을 충실히 기다리는 개처럼 참을성 있게, 그러나 언제든 움직일 수 있는 기세로 그녀의 허락을 기다렸다.
그 모습을 보고 푸스스 웃은 세라엘이 크게 들썩이는 그의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
“해도 괜찮아요.”
“중간에 멈추고 싶지 않습니다. 싫으면 지금이라도 밀어내요.”
“멈추지 않아도 돼요. 저는… 다 좋아요.”
카에드는 작은 목소리가 주는 울림에 매료되어 말없이 그녀를 내려다봤다.
새하얀 시트 위에 흐트러진 금색 머리칼, 온전히 그를 응시하는 푸른 눈동자와 부드러운 몸이 그의 것이었다. 손쓸 도리가 없을 정도로 그를 뒤흔들어 놓는 모습에 홀린 듯 넋을 빼다가 입술을 겹쳤다.
타액을 머금은 입술은 곧 그녀의 목덜미와 일자로 자리 잡은 빗장뼈, 동그란 곡선을 따라 천천히 미끄러졌다. 세라엘은 눈앞이 뱅글뱅글 소용돌이치는 기분을 음미했다.
점차 한계점에 다다르면서 혼이 나갈 듯하여, 눈을 질끈 감은 그녀의 몸이 별안간 확 뒤집혔다. 미처 깨닫기도 전에 먼젓번 경험해 보았던 감각이 뭉근히 찾아들었다.
시간이 아무리 흐른대도 익숙해지지 않을 감각에 그녀의 시야가 희부옇게 흐려지면서 숨이 턱 막혀왔다.
카에드는 울먹거리는 소리를 못 들은 척하며 시트를 움켜쥔 세라엘의 손 위에 제 손을 올렸다. 톡 튀어나온 어깨뼈에 입술을 누르면서 혀로 살살 문지르는 것으로 사과를 대신했다.
이 작고 여린 몸이,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온전히 받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버릴 모래성을 다루듯 조심스러운 마음도, 불길처럼 이는 가학성도, 내밀한 곳에 감춰 두었던 저급한 욕망까지 모조리 쏟아붓고 싶었다.
그가 얼마나 탐욕스러운 사람인지 눈앞의 여자는 모를 것이다. 사실 평생 몰랐으면 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지독한 탐심이 그의 이성을 빼앗고 온몸의 피를 들끓게 만들었다. 그곳에서 불거진 갈망을 그녀가 한 줌이라도 알게 된다면 놀라 도망치고 말겠지.
손짓 한 번에 나부끼듯 다시 뒤집힌 그녀와 시선을 맞추었다. 힘겨웠던지 푸른 눈동자에 투명한 물기가 어려 있었다.
“…….”
여기서 더 몰아치면 닳을까 두려워 손을 떼고 싶었다. 동시에 굶주린 짐승처럼 저 아래 밑바닥이 보일 때까지 샅샅이 핥아 먹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소리 내어 전할 수 없는 이 모순적인 마음은 잠깐이나마 자리 잡을 곳을 찾아냈다. 그가 원하는 만큼 머무를 순 없겠지만 그곳에서 거세게 꿈틀거리길 원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맛보았던 쾌감이 황홀하게 치밀어올랐다.
카에드는 이 시간이 영원히 방해받지 않기를 원했다. 이 순간을 위해 차곡차곡 쌓아 올린 평온함 위에서 내키는 대로 뒹굴고 싶었다. 어깨에 짊어진 의무와 책임감을 모두 내려놓은 채, 단둘만 존재하는 공간에서 오래도록 머무르고 싶었다.
이리도 치기 어린 상상을 할 때면 여지없이 불안감이 치솟았다. 내게 과분한 행복이 아닐까. 언젠가는 산산조각이 날지도 모를 시간이 아닌가 싶어서.
정처 없이 헤매는 제 불안을 그녀가 잠재워 주길 바랐다. 이게 다 그의 비좁은 마음속으로 들어와 그를 잠식하려는 세라엘 탓이니까, 그녀가 몸소 달래 주어야만 했다.
카에드는 위로를 구하듯 깊숙이 파고들며 작은 몸을 바스러지게 감싸 안았다.
***
해바라기.공금
제도 힌델로 향하던 호화로운 마차가 갓길에 멈춰 섰다.
마차 밖으로 뛰어나온 로잘린이 근처 나무로 달려가 왈칵 위액을 토해 냈다. 필립이 팔짱을 낀 채 그 모습을 지켜보다 아니꼬운 듯 내뱉었다.
“지저분하게. 그것 하나 못 버텨서 골골거리기는.”
급속도로 운행된 마차를 견디지 못한 로잘린은 연신 토악질을 했다. 황녀를 지켜보던 기사 하나가 가죽으로 된 물통을 들고 다가가자, 필립이 혀를 차며 그를 제지했다.
“놔둬. 너희들이 투정을 다 받아 주니까 저리 유약하게 큰 거 아냐.”
“저는 황녀 전하를 비호하는 호위 기사로써….”
“말대답하지 마!”
대번에 성을 낸 필립이 눈을 살벌하게 부라렸다. 말문을 찾지 못한 기사가 실례했다는 듯 한 발짝 물러났다. 칼스비크에서부터 단단히 수틀려 있던 필립은 지난 며칠간 유독 쉽게 발끈하고 노기를 참지 못했다.
“하나같이 위아래를 모르는 얼뜨기들밖에 없어.”
눈길을 돌린 필립은 애꿎은 로잘린을 노려보며 이를 으득 갈았다. 출신이 변변치 않은 황녀를 카에드에 어렵지 않게 투영할 수 있었다.
“제 더러운 태생대로 살았더라면 감히 내 심기를 거스르는 일도 없었겠지. 천민 자식이 어딜….”
해쓱한 낯을 한 로잘린이 몸소 기사에게 다가와 물통을 받아들었다. 볼썽사납게 속을 게워 냈던 종전과 달리 차분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야.”
로잘린을 흘기던 필립이 불쑥 그녀를 불렀다. 품위 없는 오라비의 태도가 익숙한 듯 로잘린은 말없이 고개를 들었다.
“주점에서 나오기 전에 대공과 잠깐 말을 나누더군. 무엇이었지?”
로잘린은 대수롭지 않은 듯 턱을 주억거렸다.
“조만간 황실에서 가면무도회와 사냥제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전했어요. 어차피 칼스비크에도 초대장이 갈 터이니, 미리 알려 주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해서요.”
“놈이 뭐라고 하더냐?”
“별다른 말은 없었어요. 폐하께서 병중에 계시는데 그리도 큰 규모의 행사를 진행하는 거냐고 되물었을 뿐이에요.”
“더러운 늑대 같은 놈.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사실을 들켰으니 놈은 필시 헛소문을 퍼뜨릴 것이다. 쓸데없는 풍문을 듣고 귀족들이 네게 의문을 표할 수도 있으니 적절히 대비해 두어라. 행사는 변동 없이 진행할 테니까.”
“사실이었군요.”
의미심장한 말에 쌍심지를 켠 필립은 로잘린을 향해 홱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개의치 않고 잇달아 입술을 떼었다.
“정말 폐하의 병환이 독한 환각초를 사용해야 할 만큼 위중한가요?”
“잘 들어.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아. 비아테의 이름을 위태롭게 만들고 먹칠하려는 모든 이야기는 헛소문이야. 머릿속에 집어넣고 똑똑히 기억해. 그게 우리의 명맥을 보전하는 일이니까.”
“…….”
“너도 알다시피 이번 행사는 로페른 황실이 건재함을 온 제국에 알리기 위해 성대하게 거행될 예정이지. 헛소문이 떠돈다고 해서 각별한 의의가 있는 행사를 연기하거나 취소할 수는 없어.”
필립은 붉은 눈을 치켜뜨며 칼스비크가 위치한 북방을 바라보았다.
“사실 그놈을 초대할 생각은 없었거든.”
“블카노프 대공을요?”
“그래. 황실이 주최하는 대대적인 행사이니 내로라하는 모든 귀족이 모일진대, 칼스비크의 영주가 초대받지 못한다면 얼마나 개망신이겠어? 놈이 몇 번이고 내 방문 요청을 거절했으니 나도 똑같이 갚아 주려 했지.”
“저더러 대공의 결혼식에 가지 말라고 하셨던 이유도….”
“놈의 대소사에 황실이 불참함으로써 불명예를 맛보게 하기 위해서였지.”
필립의 선홍색 눈동자가 짙은 악의로 타올랐다.
“이젠 생각이 바뀌었어. 고작 이 정도 골탕으로는 내가 당한 수모를 갚아줄 순 없겠더라고.”
칼자루를 쥔 황태자의 손등 위로 푸른 핏줄이 돋아났다. 그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로잘린을 똑바로 응시했다.
“칼스비크에도 서간을 보낼 것이다. 친히 두 장이나 보낼 거야.”
“두 장이라는 말씀은….”
“하나는 다른 귀족들에게 보내는 것과 같은 평범한 초대장이지. 하지만 다른 한 장은 네 이름으로 그놈의 여자한테 보낼 예정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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