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9)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9화(9/150)
물론 다 허세였지만 나타샤는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다.
‘어느 틈에 그런 사이가 된 거지? 이러면 우리 부부 계획에 또 차질이 생길 텐데.’
그녀는 남몰래 씨익 웃었다.
‘좋은 차질이구나!’
몇 년 전, 후작의 사업에 구멍이 나면서 그들은 큰 빚을 떠안게 되었다.
그러던 중 가문원의 전멸로 인해 작위와 막대한 재산을 세습 받았다는 카에드 블카노프와 우연히 연이 닿았다.
뒷소문이 아주 흉흉한 남자였다. 공작가 멸족 사건은 미스터리로 부쳐졌으나, 항간에는 카에드의 소행이라는 추문이 공공연히 돌고 있었다.
‘찝찝하긴 했어도 우리 부부에게는 딱 좋은 기회였지.’
최근 황제가 대공 작위까지 치하하여 끝모르게 승승장구하는 대단한 남자의 연줄을 잡았으니까.
후작 부부는 껍데기 하나는 끝내주는 세라엘을 팔아넘길 계략을 세웠다.
귀족의 체면이 있으니 건물 매매를 구실로 내세웠다.
그러나 블카노프 대공은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대응했다. 마냥 흥미가 없어 보이지도 않았던 게, 후작이 단념하려 할 때마다 건물인지 세라엘인지 알 수 없는 대상에 모호한 관심을 내비치며 기대감을 주었다.
도무지 감정을 알 수 없는 남자라 부부의 계획에 진전이 없었다.
‘빚 독촉이 심해서 급한 대로 맥슨 백작에게 넘기려 했더니만…. 이게 웬일이야!’
후작과 대공 사이에 본격적으로 오간 혼담이 잘 풀리지 않은 거로 알고 있었는데.
‘엉큼하게 우리 등 뒤에서 일을 벌이고 있었다니. 반지까지 받았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
곱지 않은 시선이 세라엘을 위아래로 훑었다.
‘잠깐. 그러면 남편이 대공에게 요구했던 돈은 어떻게 되는 거지?’
나타샤가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는 동안, 세라엘은 두 손을 맞잡고 꿈꾸듯 허공을 응시했다.
“아, 대공님이 어서 돌아오셨으면 좋겠어요. 결혼할 생각에 마음이 두근두근해서 견딜 수가 없는걸요.”
“…….”
“당장 칼스비크로 떠나고 싶어요. 이 지긋지긋한 저택, 대공님과 결혼해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어라.”
세라엘이 웃음을 꾸며내며 진심을 외쳤다.
갑작스러운 전개에 사용인들은 눈을 끔벅거렸다. 아가씨의 결혼이니 축하해 줘야 하는데, 어째 초점이 좀 엇나간 기분도 들고….
나타샤는 억지 미소를 지어내면서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어찌 진작 이야기해 주지 않았니? 나와 차나 한잔하면서 자초지종 이야기를 나누….”
“이제 제 침실로 가 봐도 되죠?”
세라엘이 대번에 말을 잘랐다.
“기나긴 나들이로 심신이 피곤하답니다. 따뜻한 목욕물에 몸을 담그면서 휴식을 취해야겠어요.”
“…그, 그러지 말고 나와 잠깐 대화를….”
“루시, 목욕 준비 좀 해 줘. 피로 해소에 좋은 라벤더 입욕제와 향유도 잊지 말고.”
그녀는 뻐근한 어깨를 가볍게 주물렀다.
“어머니도 목욕 시중을 좀 받으시지요. 명색이 후작 부인이신데 재투성이가 되신 모습이 보기 안쓰럽군요.”
“뭐, 뭐야?”
“아니지. 침실에 불이 났으니 딸린 욕실도 홀라당 타 버렸으려나.”
연이은 비아냥에 결국 성질을 죽이지 못한 나타샤가 붉으락푸르락 핏대를 세웠다.
그러나 차마 화는 내지 못하고 꽉 움켜쥔 주먹을 부들부들 떨 뿐이었다.
세라엘은 아랑곳하지 않고 집사에게 지시했다.
“대공님의 일행이 머무시는 방 맞은편에 손님방이 하나 더 있지? 그곳에 임시로 부모님의 거처를 마련해 드려.”
“알겠습니다, 아가씨.”
“비록 어머니의 부주의로 불이 났지만 2층 침실이 원상 복귀될 때까진 편히 지내셔야지.”
졸지에 방화죄를 뒤집어쓰게 된 나타샤가 기겁하여 눈을 부릅떴다.
그녀는 양 주먹을 위아래로 휘두르며 꽥 소리쳤다.
“그게 어째서 내 부주의야! 화재는 너 때문에…!”
“아니면 말고요. 어머니 침실에 불이 났길래 어머니가 낸 줄 알았죠. 왜 그렇게 열을 내세요? 의심되게.”
심드렁히 대꾸한 세라엘이 층계를 올랐다.
“내일도 긴 하루가 되겠군요. 그럼 즐거운 저녁 보내시길 바랄게요.”
등 뒤로 나타샤가 분개하여 발을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껏 내게 한 짓에 비하면 소박한 복수지. 대공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세라엘이 전의를 가다듬으며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그저 자신이 세운 계획에 카에드가 순순히 응해 주길 바랄 뿐이었다.
***
한편, 수도 힌델의 한적한 길거리.
어느 석조 건물 앞에 마차 세 대가 말의 투레질 소리와 함께 멈춰 섰다.
곧 문이 열리고 마차가 하찮아 보일 만큼 기골이 장대한 남자들이 하나둘씩 하차했다.
그들이 문턱을 밟을 때마다 차체가 조금씩 기울면서 끼익 위태로운 소리를 냈다. 보는 이로 하여금 부서지지 않을까 염려될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내린 남자가 마차에 흥미롭다는 시선을 던지며 짓궂게 웃어 보였다.
“시프 형, 저거 내일모레면 땔감으로 써야 하는 거 아냐?”
“쉿. 입조심 해라, 악셀. 놀러 온 게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시프라 불린 유달리 근육질의 남자가 선두 마차를 의식하며 악셀에게 경고했다.
가장 앞에 세워진 마차에서는 카에드와 밀로즈 후작이 내리는 중이었다.
“쳇! 잔소리꾼이 따로 없군.”
그들을 의식한 악셀이 투덜거리면서도 더는 비아냥대지 않았다. 두목의 위신이 걸린 일이니 어지간한 말장난은 참으라고 북부에서부터 시프가 경고를 해 왔던 터였다.
“잔소리가 싫었으면 네가 렉터 대신 저택에 남지 그랬냐?”
“너도 조용히 해, 콜. 후작저에 감시인을 남기고 온 건 기밀이다.”
악셀과 비슷한 또래의 남자가 이죽거리자 시프가 다시 주의를 시켰다.
그때 밀로즈 후작이 마차에서 내리다가 중심을 못 잡고 볼썽사납게 휘청거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시프가 후작에게 다가갔다.
“에스코트가 필요하십니까?”
“풉!”
“푸합!”
악셀과 콜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내뿜었다. 그뿐 아니라 시프를 제외한 나머지 발켄족의 남자들도 재미있다는 듯 키득댔다.
카에드의 최측근 7인 중에서 가장 신사적인 사람은 시프였다. 굉장히 점잖은 그는 약해 보이는 자에겐 남녀 할 것 없이 친절을 베풀었다.
그러나 마차 에스코트란 자고로 남성이 여성에게 베푸는 행위다.
그저 좀 비틀거렸다고 엄연한 남자인 후작에게 에스코트를 청하다니 그들은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밀로즈 후작이 낯빛을 붉으락푸르락 물들이자 카에드가 대신 대꾸했다.
“후작께서 스스로 걸으실 수 있으니 되었다. 비켜서라.”
시프는 무표정으로 끄덕이며 후작을 위해 물러났다. 말만 들으면 카에드가 후작을 변호해 준 것 같지만, 지난 며칠간 후작이 동행하며 지켜본 바로는 꼭 그렇지도 않았다.
귀족을 대하는 예의가 전혀 없는 저 치들의 행태를 카에드는 명백히 눈감아 주고 있었다.
‘아니, 저 잘난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간 걸 보면 즐기고 있는 게 분명하다!’
밀로즈 후작은 이를 으글 갈았다.
‘대공은 블카노프의 영식으로 교육받은 남자답게 딱히 예의에 어긋난 적은 없었지. 망할, 그래서 더욱 할 말이 없구먼. 뭐라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지만.’
그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뱉으며 카에드의 수하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보통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면 무의식적으로라도 다들 한 걸음씩 비켜 주는 게 정상 아니던가. 그러나 이 장신의 남자들은 후작을 빤히 내려다보면서도 몸을 물리지 않았다.
은근슬쩍 어깨로 밀어도 그들의 몸은 꿈쩍하지 않았다.
도리어 어마어마한 탄력이 느껴지는 바람에 후작은 흠칫 어깨를 접어야 했다.
졸지에 후작은 우스운 모양새로 남자들 틈을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꼴이 되었다.
그는 남몰래 카에드의 몹시도 잘난 얼굴을 훔쳐봤다.
‘제아무리 블카노프라 해도 역시 양자 출신이군. 예법도 모르는 천출을 수행원으로 끌고 다니다니 터무니없는 일이야.’
뭇 고위 귀족이라면 같은 귀족 출신을 측근으로 두어야 옳았다.
밀로즈 가문의 집사도 서부에서 제법 유명한 모 자작의 영식이었으니까.
그러니 고매한 영웅의 혈통을 몇백 년간 이어 온 블카노프라면 가주를 지척에서 따르는 시종도 못지않게 고상한 신분이어야 했다.
‘선대 블카노프 공작이 다루기는 더 쉬웠겠어. 그쪽은 무슨 생각인지 읽히기라도 했으니. 어쩌다 목숨을 잃어서는, 쯧쯧.’
밀로즈 후작은 눈앞에 세워진 5층짜리 석조 건물을 가리키며 카에드에게 굽신거렸다.
“앞서 말씀드렸던 건물이 바로 이것입니다, 대공님.”
그동안 입이 마르도록 언급했던 건물이었다.
후작은 연신 카에드의 반응을 살피며 설명했다.
“신식으로 지어졌기에 상점이 입점한다면 방문객도 적지 않으리라 예상합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오자 후작의 목소리에 조금 활기가 묻어났다.
“외관뿐 아니라 내부까지 세련된 건축 양식으로 유명한 동쪽 왕국의 방식대로 꾸몄습니다. 우리 로페른 제국에서는 보기 드문 인테리어지요. 거래가는….”
그때 카에드의 부하들이 우당탕쿵탕 계단을 부술 것처럼 올라섰다.
눈이 튀어나올 듯 커진 후작이 냉큼 지적했다.
“거기! 뛰지 마십시오!”
“뛰는 거 아닌데요?”
“시프 형이 근육 돼지라 그래. 너무 무거워서 깨금발로 걸어도 뛰는 것처럼 들리는 거지.”
“푸하하!”
덩치 큰 남자들은 어린애 같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낄낄댔다.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저놈의 야만인들이 날 농락하고 있어!’
밀로즈 후작은 이를 갈았다.
‘돈만 받아 내면 이 수모도 끝이다.’
헛기침으로 평정을 되찾은 후작이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흠흠. 먼젓번 귀띔은 해 드렸습니다만, 5백만 골드…정도면 나쁜 거래는 아니리라 믿고 있습니다.”
“근처 건물의 실거래가보다 월등히 높군요.”
무심히 창밖을 보던 카에드가 후작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주 가도와 멀찍이 떨어져 있어 상가 건물로 적합해 보이진 않습니다.”
“…예에, 인파가 많은 거리는 아니지마는.”
“공사 기간이 극히 짧았던 만큼 내외부 또한 부실할 여지도 있고.”
“부, 부실하다니요! 오해입니다, 대공님.”
“시세보다 높게 받으려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지?”
뜨끔한 밀로즈 후작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럴듯한 설명을 늘어놓긴 했어도 이 건물은 근처 시세보다 5배 이상은 더 비쌌다.
이유는 당연히 세라엘을 함께 팔아넘기기 위해서였다.
‘이미 건축 사업을 빙자해 대화도 몇 번 오갔으니 눈치챘으리라 믿고 있었는데.’
대공이 이리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일은 처음이었다.
‘재산도 워낙 많고 하니 손익 계산을 따지는 부류처럼 보이진 않았건만. 갑자기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거지?’
밀로즈 후작은 땀이 밴 손바닥을 문질렀다.
“혹여 너무 지나친 값이라 생각하신다면….”
“하잘것없는 금액에 대고 저울질할 의도는 없으니 묻는 말에나 대답하십시오.”
그러잖아도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 표정 때문에 늘 눈치를 보게 했던 대공의 얼굴에는 서릿발 같은 차가움이 어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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