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91)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91화(91/150)
성의 중정에는 카에드와 시커먼 부하 열 명이 떡하니 서서 세라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 뒤로 무거운 장비를 찬 육중한 흑마 무리가 배경을 웅장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기골이 장대한 남자들이 흑마와 함께 줄지어 도열한 모습은 흡사 중요 인물을 공격하러 가는 원정대를 연상시켰다.
“…….”
오늘 승마를 위해 대공성 밖에 있는 실외 승마장으로 갈 예정이라 했다. 너른 들판과 이어지는 멋진 장소라기에, 세라엘은 녹음 속에서 카에드와 오붓하고 알콩달콩한 시간을 보내길 기대했다.
그러나 이리도 많은 인원이 엄숙한 자세로 늘어선 모습을 보니, 데이트는커녕 세라엘도 검을 차고 대열에 합류해야 할 것 같았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가만 서 있는 그녀 곁으로 카에드가 다가왔다. 인사처럼 자연스레 뺨에 입술을 대는데도 세라엘은 얼떨떨한 기색을 지우지 못했다.
“일찍 일어났군요.”
“네…. 말을 타러 간다기에 흥분되어서요.”
중얼거리듯 답한 세라엘이 멍한 눈으로 원정대를 응시했다. 카에드는 그녀의 턱을 쥐어 시선을 낚아챘다.
“평소엔 깨워도 못 일어나더니. 나한테도 흥분해 주지 그랬습니까.”
눈에 초점이 잡히면서 불퉁한 낯을 한 카에드가 들어왔다. 무얼 의미하는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동안 그가 은근한 손길로 잠든 세라엘을 몇 번 흔들어 깨웠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이름을 연거푸 부르며 여기저기를 쓸어 만지다가,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귓불을 깨문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세라엘은 잠에서 쉽사리 깨어나지 못했다.
그 시간대가 너무 이른 아침이거나 늦은 밤인 탓이었다. 까무룩 자기 바빴던 세라엘은 카에드가 요구하는 것에 화답해 준 적이 거의 없었다.
그녀는 두 뺨을 빨갛게 물들이고 어색한 미소를 흘렸다.
“잘 시간이라 피곤해서 그런 거잖아요. 흥분하는 거 알면서….”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 얼굴을 기대하던 카에드는 그녀의 직설적인 언사에 묘한 표정을 지었다. 반쯤은 놀릴 심산이었는데 순순히 인정할 건 또 뭐란 말인가.
보기 좋게 경사진 그의 목울대가 갈증을 느끼듯 조용히 울렁였다.
“승마는 다음으로 미루고 침실로 돌아갈래요?”
“안 돼요!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세라엘은 황급히 대답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고는 용맹하게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수 쌍의 시선을 인지하고서 서둘러 말을 돌렸다.
“일행도 기다리고 있는걸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동행할 줄은 몰랐지만….”
“호위가 많을수록 안전하니까요. 모두 당신이 어딜 가든 눈을 떼지 않을 겁니다.”
“아…. 신경 써 줘서 고마워요.”
단둘이서만 가고 싶었는데. 속마음을 꿍얼거린 세라엘이 눈을 깜박였다.
그래도 축제에서 동행 없이 혼자 가기를 고집했다가 일어난 사건을 고려하면 불평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드리고 싶은 선물이 있습니다.”
카에드가 말을 끝맺자 악셀이 말의 고삐를 끌고 다가왔다. 고삐의 굴레에 매어져 따라온 것은 비단결같이 부드러운 털을 가진 말이었다.
세라엘의 머리칼처럼 오묘한 은빛을 띤 금색 털은 말의 우아한 몸체가 움직일 때마다 눈부시게 반짝였다. 아침 햇빛까지 내리받자 마치 값비싼 백금을 갈아서 만든 조각상 같았다.
세라엘은 태어나 평생 이렇게 아름다운 짐승을 본 적이 없었다.
“와아….”
순식간에 매료된 그녀가 감탄사를 흘리며 말의 목덜미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손바닥에 닿는 촉감이 값비싼 융단처럼 무척이나 매끄러웠다.
“너무 예쁘다…. 동화책에서나 봤던 동물처럼 생겼는걸요. 안녕?”
인사를 건네자 말은 성의 없는 투레질 소리를 내었다. 그래도 저를 쓰다듬는 손길을 받아들이는 걸 보니 싫지 않은 모양이었다.
“정말 마음에 들어요.”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섬세한 생김새와 달리 강인한 성정을 지닌 품종이에요. 고집이 좀 있는 편이지만 당신을 잘 따를 겁니다.”
카에드는 이 품종마의 그런 특징이 세라엘을 닮은 것 같아 데려온 거라고 덧붙이려다 관두었다.
보드라운 털을 연신 어루만지던 세라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정말 고마워요. 호숫가에서 보았다면 신기루로 착각했을 거 같아요.”
세라엘은 말의 주둥이 가까이 제 뺨을 살짝 갖다 대었다. 이토록 현실성 없는 짐승에게서 생명의 온기가 전해지자 새삼 신기했다.
그녀는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카에드를 뒤돌아보았다.
“승마장까지 제가 직접 타고 가나요?”
“가까운 거리는 아닌지라 기승은 도착해서 하는 편이 좋겠군요.”
“알겠어요. 이름도 지어 주고 싶은데 당장 생각나는 게 없네….”
말꼬리를 흐린 세라엘이 약간 미간을 찌푸렸다. 카에드는 전부터 그녀의 작명 솜씨가 썩 훌륭하지 않다고 생각했으나, 고민에 빠진 표정이 귀여워서 소리 없이 웃었다.
그때, 오가는 대화를 듣고 있던 악셀이 히죽 웃으며 끼어들었다.
“고집이 센 녀석이었는데 누님을 제법 따르네요. 이유를 알 것도 같아요.”
“왜?”
“요놈 갈기가 누님 머리카락이랑 비슷하게 생겼잖아요. 친구라고 생각했나 봐요. 바람에 흩날리면 누구 것인지 모를 수도 있….”
“…….”
악셀은 아차 싶어 입을 뚝 다물었다. 그러고는 눈동자만 도르륵 굴려 카에드의 눈치를 보았다. 말없이 그를 내려다보던 카에드가 곧 눈을 떼고 세라엘을 응시했다.
“이만 갈까요?”
“네에.”
세라엘은 고삐를 쥔 악셀이 말을 끌고 물러나는 모습을 지켜보다, 카에드가 내민 손을 잡고 그의 흑마를 향해 걸어갔다.
세라엘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말을 타고 들판을 달리는 제 모습을 상상하자 가슴이 벅찼다.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지 않을까? 오뚝이처럼 중심도 못 잡고 볼썽사납게 벌벌거렸던 모습은 이제 과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악셀의 말장난 때문인지 구불거리는 제 머리칼과 말의 갈기가 한꺼번에 휘날리는 모습이 그려지자 약간 짜증이 났다. 그래도 승마를 배운다는 흥분에 사로잡혀 발걸음이 마냥 가벼웠다.
***
도착한 곳은 블카노프 가문 소유의 야외 승마장이었다.
들었던 대로 푸르른 초원 한가운데 거대한 간이 차양과 울타리가 설치된 광활한 공간이었다. 울타리 내에서 말을 타다가 익숙해지면 들판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발켄족 남자들은 멀찍이 느티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고, 카에드와 세라엘은 차양 아래 서서 본격적인 승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리브.”
시작은 순조로웠다. 교감을 몇 차례 시도했는데 말의 반응이 탐탁지 않아 즉석에서 이름을 지어 불러 주자, 리브가 세라엘의 몸에 콧잔등을 비비며 호감을 표현했다.
차양이 드리운 그림자 아래 털의 빛깔이 올리브 열매와 비슷하여 그리 붙여준 이름이었다. 다행히 이 새침한 암말도 새 이름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한번 기승해 보시겠습니까?”
말의 목덜미에 뺨을 묻고 떨어질 줄 모르는 그녀를 지켜보던 카에드가 물었다. 고개를 끄덕거리자, 더 가까이 다가온 그가 세라엘의 허리를 쥐고 안장 위에 올려 주었다.
그런데 애먼 곳에 은근슬쩍 손이 닿는 것이 느껴졌다. 세라엘은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카에드를 넌지시 바라보았다.
“방금 일부러 그런 거예요?”
“아닙니다.”
“고의가 아니면 어째서 엉뚱한 곳을 만지는 거예요?”
“어쩌다 손이 거기로 갔나 보죠.”
능청스럽게 대꾸한 그가 세라엘의 손에 말고삐를 쥐여 주었다. 그녀의 발을 직접 등자쇠에 끼워 주기도 했다.
“기좌 자세부터 잡고 나서 평보를 도전해 보는 게 좋겠습니다. 불편한 점 있습니까?”
“아뇨. 불편해 보여요?”
“조금요.”
그는 힘 빼라는 듯 세라엘의 허벅지 위에 손을 올리고 두드렸다.
“다리 벌려 봐요.”
“…이렇게요?”
“너무 조이지 말고.”
“…….”
“힘 더 풀어요. 조일 필요 없잖아요, 지금은.”
세라엘은 그의 지시를 충실히 따르면서도 혼란스러운 표정을 했다.
지금 우리가 승마… 승마를 하는 게 맞나? 왜인지 강한 기시감이 들었다. 잘 생각해 보니 승마장이 아닌 곳에서 오갔던 대화와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다.
이 남자가 말 타는 법을 가르치는 건지, 아니면 그녀를 놀리거나 꼬시려 드는 건지 가늠할 수 없었다.
전자일 가능성이 있으니 괜히 발끈해서도 안 되었다. 그랬다간 웬 음란한 생각이냐며 핀잔을 받을지도 몰랐다.
“더 벌려요. 나중에 근육통으로 아프기 싫으면.”
세라엘은 자세를 잡는 내내 정확한 의도를 알 수 없는 지시 때문에 집중력이 흐려졌다.
은근히 주물럭거리는 손길을 여러 차례 느끼고 나서야, 후자가 맞을 수도 있다는 짐작에 무게를 실었다.
“집중을 못 하네요. 무슨 생각을 하는 겁니까?”
“아, 아니….”
눈빛이 조금이라도 흐려지면 카에드가 귀신같이 알아채고 지적을 해 왔다. 심지어 몇 차례 그의 지시를 놓치면 집중하라는 듯 볼기 부근을 아프지 않게 찰싹거리기도 했다.
“…….”
이건 세라엘 탓이 아니다. 모호한 언행으로 그녀를 현혹하는 카에드의 잘못이다. 세라엘은 그가 썩 좋은 선생님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책임을 전가했다.
묘한 인고의 시간 끝에 그녀는 느린 평보에 도전해 보았다. 예상보다 자세가 안정적이었고, 리브도 고삐를 잡아끄는 대로 움직여 주는 편이라 이동이 수월했다.
처음에는 엉거주춤하여 앞도 제대로 못 보던 세라엘은 머지않아 괜찮은 자세로 말을 몰게 되었다.
그래 봤자 거북이걸음이나 다름없는 속도였지만, 안정적으로 말을 탈 수 있다는 사실이 적잖은 뿌듯함을 불러왔다.
해가 중천에 떴을 때쯤 두 사람은 발켄족 남자들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아 휴식 시간을 가졌다.
세라엘은 다리가 아프지 않냐며, 주물러 주겠다며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뻗는 카에드를 만류하던 참이었다.
“어?”
순간, 승마장의 울타리 너머로 작은 인영 세 개가 움직이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진작 눈치채고 있었던 모양인지 카에드는 별 반응 없었으나, 세라엘은 고개를 기울이며 그쪽을 관찰하듯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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