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95)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95화(95/150)
카에드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머지않아 반듯했던 얼굴에 서서히 균열이 가면서, 그의 잇새로 저음이 느릿하게 흘러나왔다.
“당신 침실이 곧 내 침실인데 무슨 뜻인지 모르겠군요.”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닐 터였다. 세라엘은 고집스럽게 입술을 말아 물었다.
“3층 침실을 말하는 거예요. 원래 제 방이었던.”
“침대만 덜렁 있는 그 방 말이군요.”
어딘가 조소가 묻어나는 목소리로 그가 읊조리듯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기존 침실은 더이상 구색을 갖춘 공간이 아니었다. 가구 대부분이 부부 침실로 옮겨진 탓에 휑한 상태였다.
괜한 오기가 샘솟은 세라엘은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였다.
“맞아요. 오늘 밤은 그 방에서 잘 거예요.”
“지금 각방을 쓰자는 겁니까?”
저 밑바닥에 깔린 목소리는 그의 심기를 고스란히 나타내고 있었다. 서늘하게 굳은 표정은 신혼인데 진심이냐고 덧붙이는 듯했다.
서릿발처럼 차가운 반응에 세라엘은 흠칫하여 어깨를 움츠렸다. 잘못은 내가 한 게 아닌데 왜 바르르 떠는 거야. 세라엘은 눈썹에 힘을 주고 말했다.
“그래요…!”
긴장한 나머지 높아진 언성에는 날까지 서고 말았다. 아차 싶었으나 세라엘은 주눅 들지 않고 쐐기를 박았다.
“우리 각방 써요.”
“이유를 말해 줄 수 있겠어요?”
카에드는 느린 속도로 눈을 한 번 감았다 떴다. 세라엘은 그가 조용히 뿜어내는 위압적인 기운에 눌리지 않으려 애쓰며 입을 뗐다.
“이 기분으로는 같은 침대에 못 누울 거 같으니까요.”
“나한테 화가 났군요.”
“화가 난 게 아니에요. 그렇다기보다….”
세라엘은 말끝을 흐리고는 입을 꼭 다물었다. 단순히 화가 났다고 정의하기에는 복잡한 감정이었다. 엉킨 실타래처럼 처음과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어 서두를 떼기도 어려웠다.
고개를 살짝 모로 꺾은 카에드가 그녀를 달래듯 답을 재촉했다.
“말해 봐요.”
“머릿속이 복잡해서요.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갈피가 안 잡혀요.”
“생각나는 대로 말해도 괜찮습니다.”
달음박질치듯 가슴이 펄떡이고 목에 열이 오르는 그녀와 반대로 그는 어린애를 어르듯 침착해지고 있었다. 그 태도의 차이에 묘하게 기분이 상했다.
“아뇨.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요. 그냥 오늘은 3층 침실에서 자고 싶어요. 혼자서.”
세라엘은 끝말에 힘을 주어 재차 강조했다.
취침 시간까지 한참이나 남았다. 카에드가 평소보다 일찍 침실로 돌아온다면 정신 말짱하게 깨어 있는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다. 동 시간대에 함께 침대에 누우면 또 이렇고 저런 접촉을 원하겠지.
물론 싫다고 하면 그녀를 배려해서 물러서겠지만, 지금은 거기까지 가는 과정을 떠올리는 일조차 달갑지 않았다.
“일하러 가셔야 하잖아요. 더는 방해하고 싶지 않아요.”
“…….”
“전 이만 올라가 볼게요.”
세라엘은 몸을 휙 돌려 종종걸음을 쳤다. 뒤통수에서 곧장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나 싶더니, 성큼성큼 발소리와 함께 거대한 그림자가 세라엘을 덮쳤다.
“……!”
단 세 걸음 만에 따라잡은 카에드가 그녀 앞에 우뚝 멈춰 섰다. 마주한 것만으로도 불쑥 와닿는 완력의 차이에 놀라 세라엘은 짧은 숨을 들이켰다.
“얘기 끝나지도 않았는데 마음대로 가 버리면 어떡합니까.”
힐난조로 따지는 듯한 어조였다. 울컥한 세라엘이 짐짓 반항적인 눈빛을 했다.
“당신도 항상 하고 싶은 대로 하잖아요. 나도 그럴 거예요.”
“하지 마십시오.”
“뭐라구요…!”
세라엘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주먹을 꼭 쥐었다.
별안간 층계 쪽에서 헉, 하고 입을 틀어막는 소리가 났다. 언제부터 와 있었는지 세 명의 청소년과 로이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들었어?”
콜이 힘찬 목소리로 속닥거렸다.
“두목이랑 누님이 결혼식 치른 지 한 달도 안 돼서 부부 싸움한다.”
“형, 조용히 해.”
“각방까지 쓰겠다는데.”
“목소리 좀 낮춰, 미친 인간아.”
“누가 잘못했을까? 왠지 두목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네 명줄을 자르지 그러냐.”
악셀과 렉터가 한심하다는 눈으로 콜을 흘겼다. 흥미로운 표정을 짓던 로이는 두 남녀에게 눈을 떼지 않은 채로 손을 뻗어 소년들을 만류했다.
“쉿, 안 들리잖아. 집중해야지.”
재미난 연극이라도 구경하는 듯한 말투에 기가 찼다. 세라엘은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이마를 감싸 쥐었다. 요목조목 따지려 했던 마음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어서 방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뒤늦게 제 실언을 인지한 카에드는 약간 초조한 어투로 말을 뱉었다.
“내 말은… 내게 사과할 기회도 주지 않고 등을 돌리지 말아 달라는 뜻입니다.”
“갈래요. 비켜 주세요.”
세라엘은 매정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눈썹을 치켜세우던 세라엘은 고집스러운 몸짓으로 그를 휙 피해 오른쪽으로 빠졌다. 그러나 간단히 팔을 내뻗은 카에드가 움직임을 저지했다.
“……!”
근육이 두툼히 자리 잡은 단단한 팔에 가슴이 뭉개지듯 맞닿았다. 당혹하여 그를 올려다보았는데 여전히 서늘한 낯이었다.
입을 앙다물고 왼쪽으로 몸을 비틀자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거대한 돌벽이 움직이면서 세라엘을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았다.
심장이 두방망이질 치듯 힘차게 뛰기 시작했다. 세라엘은 사나운 눈초리로 카에드를 노려보았다.
“정말 이럴 거예요?”
“당신 마음이 풀리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대로 보내요.”
“보내 주셔야 할걸요. 자꾸 이러시면….”
“…….”
“미워할 거예요.”
딱딱하게 굳어 있던 그의 얼굴이 충격으로 일그러졌다. 세라엘은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고 말을 이었다.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뿐이에요. 보내 줘요.”
그녀의 몸 전체를 붙들고 있던 팔에서 완력이 서서히 빠져나갔다. 그녀를 내려다보는 눈동자에 애처로운 기색이 묻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자유가 된 세라엘은 애써 그의 시선을 피해 복도를 걸었다. 층계참에 줄줄이 선 남자 네 명을 지나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카에드는 그녀를 등진 채 여전히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축 늘어진 너른 어깨가 몹시 쓸쓸해 보였다.
그것도 잠시였다. 곧바로 등을 돌린 카에드가 이쪽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
달려오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성급함이 묻어나는 걸음으로 쫓아오는데 이상하게 덜컥 겁이 났다. 무서우리만큼 심기가 뒤틀린 그의 표정 때문인지도 몰랐다.
세라엘은 아연실색하여 치맛자락을 쥐고 후다닥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뒤따라오는 걸음 소리도 빨라지고 있었다. 마치 거대 늑대에게 쫓기는 사슴이 된 기분이었다.
“세라엘!”
세라엘은 난간을 꼭 쥐고 빠른 속도로 층계에 올라섰다. 그러나 그녀가 종종거리며 계단 세 개를 오를 때 저 남자는 보폭 한 번으로 같은 높이를 오르고 있었다. 이대로면 금세 따라잡힐 것이다.
“두목이 누님을 추적한다!”
아래에서 콜이 얄밉게 외치는 소리가 났으나 세라엘은 도망치기 바빴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저 차분히 대화하면 될 일인데 호흡이 가쁜 와중에 거기까지 헤아릴 여력이 없었다. 때아닌 추격전이 황당하면서도 한번 내달리기 시작한 걸음은 멈출 줄을 몰랐다.
“잠깐 멈춰 봐요.”
“따라오지 말아요! 아…!”
급하게 달리다 발을 헛디딘 세라엘이 계단 끝에 무릎을 쿵 찍었다. 그 모습을 본 카에드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나지막이 욕설을 지껄였다. 세라엘은 저도 모르게 앓는 소리를 냈다.
“아야….”
“멈추라고 했잖아요!”
그가 처음으로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으르렁거리는 듯한 울림이 되레 박차를 가했다. 고통에 눈물이 핑 돌았으나 그녀는 계속해서 발을 놀렸다.
3층 복도에 오른 세라엘은 재빨리 침실을 향해 달려갔다. 문을 열어젖히고 확 닫음과 동시에 좁아지는 틈으로 카에드의 얼굴이 비쳤다.
간발의 차이로 문을 닫은 그녀는 서둘러 문고리를 걸어 잠갔다. 그러고는 벅찬 숨을 고르며 문에서 물러났다.
“세라엘.”
나무 문짝 하나를 두고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 좀 열어 봐요.”
“싫어요.”
“지금 장난치는 겁니까?”
세라엘은 발끈하여 두 볼을 더 빨갛게 붉혔다.
“장난이라니요! 저는 심각하다구요.”
“열어요, 그럼. 얼마나 심각한지 나도 알아야 할 거 아닙니까.”
세라엘은 낭패감으로 이마를 싸맸다. 문 앞에 서서 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못했다. 홧김에 저지른 일이 비탈을 구르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지 않은가.
당혹감에 휩싸인 그녀는 불안정한 호흡을 반복하며 문짝만 바라보았다. 그 기색을 기민하게 알아챈 카에드가 한결 부드러워진 어조로 그녀를 달랬다.
“내 잘못인 건 알고 있어요. 제대로 사과하고 싶으니까 문 열어 줘요.”
제 이마를 짚은 세라엘은 실타래처럼 얽힌 마음속을 정리하려 애썼다.
그가 초대장을 보여 주지 않고 감춘 일도, 의사를 묻지 않고 본인 혼자 결정을 내린 일도 서운했다. 다른 부인들로부터 뒤늦게 소식을 전달받은 탓에 무언가 뒤처진 기분을 느낀 것도 싫었다.
하지만 이제껏 세라엘의 모든 편의를 봐 주고 그녀의 안녕을 위해 무엇이든 해 주었던 남자한테 허심탄회하게 불만을 늘어놓을 수 있을까?
되레 섭섭함을 느끼는 자신이 몰염치한 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대체 어느 감정에 장단을 맞춰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
“열어 주지 않을 겁니까?”
경황없는 와중에도 괜한 고집이 피어올랐다. 세라엘은 그에게 보이지 않을 걸 알면서도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어려울 거 같아요. 저는 지금 저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요.”
“그럼 어쩔 수 없군요.”
산뜻하게 포기해 버리는 어조였다. 세라엘은 원망 어린 눈으로 문 너머의 그를 노려보았다.
시선은 곧 문손잡이로 떨어졌다. 바깥에서 틀어잡았는지 철제 문고리가 철컥이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금속이 날카롭게 부딪치는 소리가 나면서 문이 활짝 열렸다.
세라엘은 무지막지한 손아귀에 장난감처럼 부서진 문손잡이와 카에드를 황망히 번갈아 보았다.
한 번 돌려서 당겼을 뿐인데 찌부러진 문고리가 통째로 뽑혀 있었다. 예전에 보았음에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카에드는 잡아 뜯은 손잡이를 복도에 가볍게 내던지고는 그녀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_h.syk_공금_일러스트는 일부러 넣은거라 다시 업로드Im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