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03
51. 사천지부(2)
‘저런 조건을 거래라고 제안하는 게 괘씸하긴 한데.’
솔직히 미적거리며 대처하다가 문제가 생겨봐야,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은 연맹의 무인들일 뿐이다.
그렇지만 앞으로 연맹의 힘을 이용하며 마교와 대적할 생각이었던 소종천으로선, 그나마 아군이라 할 수 있는 세력의 힘이 축소되는 것은 원치 않는 바이기도 했다.
‘연맹에 몸담는다면 마인들과 전투가 자주 발생한다는 북동쪽 지역을 찾아가 볼까 했는데, 사천지부라…….’
조건을 달고 끌고 가려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기분과는 별개로 사천지부의 소속이 되는 것이 나쁜 선택은 아니긴 하다.
일단 위험 요소가 있다고 추측되는 청해성과 가깝기도 하고, 사천성 역시 청해만큼은 아니지만, 연맹의 영향이 부족한 곳이 많다.
‘청해로 올라가면서 사천 서남부와 서북부 구간의 치안이 개판인 것은 이미 확인했었고.’
사천의 유일한 대형무가인 당가는 성도인 청두에 자리하고 있으며, 어느 성이나 그렇듯 성도 주변으로는 가장 많은 인구가 몰려 모든 경제활동의 중심지가 된다.
연맹의 지부 역시 청두에서 가까운 중강현에 위치해 있고, 성도 인근에 있는 현들에서의 활동에 집중하는 편.
청두는 지리적으로 사천의 중앙에 가깝게 위치하긴 하지만, 그와 함께 번화한 현들은 대부분 동부에 밀집되어 있다.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고 취약한 서부의 외곽의 마을들은 수시로 흑도방파들이 등장하며 기승을 부린다는 것을, 소종천은 지난번 여행에서 확인했었다.
그리고 청해에서 보았듯이 연맹의 손이 닿지 않고 흑도가 날뛰는 곳에는, 마교의 세력이 스며들어 손을 뻗기가 쉽다.
‘드러난 위험만 위험인 것은 아니긴 하지. 이쪽 동네도 외각 쪽을 쭉 훑어보면 뭔가 하나쯤은 걸릴 것도 같은데.’
고민하던 소종천은 당사준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연맹은 크게는 정파와 사파로 작게는 수많은 집단으로 나뉘는 연합체답게, 내부에서 정치적인 세력 다툼이 자주 벌어진다.
그렇기에 군소문파 출신으로 연맹에 투신하는 무인들은, 오래도록 고심하며 성향에 맞는 문파들이 소속된 지부를 찾아 지원한다.
‘하지만 나는 그딴 건 관심 없으니 아무래도 상관없지. 다른 무인들은 출신 문파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지만, 소림은 사실상 나 혼자 활동하는 일인문파나 다를 바 없기도 하고.’
문파끼리의 정치적인 문제와는 전혀 연관이 없어 원한다면 언제든 다른 지부로 깃발을 갈아탈 수 있기에, 소종천은 일단 사천지부에 머물려 보기로 결정을 내렸다.
“탁월한 선택일세! 젊고 유망한 인재들과 함께 일하게 되어 기쁘군. 정확한 소속과 직급에 대해선 내 자리를 마련한 후 알려줄 테니, 일단은 잠시 지내면서 이쪽의 분위기와 같은 식구들의 얼굴이나 익히고 있도록 하게.”
“그러죠.”
기뻐하는 당사준과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 소종천은 객실을 배정받아 짐을 풀었다.
“그럼 이대로 사천지부에서 활동하는 거야?”
“당분간은 그러려고.”
“의외로군. 본인은 분명 종천 친우가 곽 노사께 찾아갈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오.”
“어…….”
그러고 보니 동료들은 학관을 떠날 때 무작정 자신을 따라왔을 뿐이지, 곽진과 소종천 사이에 있었던 일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한다.
‘숭산에 들어가 삭발하기 싫어서 운남으로 도망쳤다는 말을 굳이 해야 할 필요는 없었으니.’
별로 좋은 이야기도 아니기에, 소종천은 슬쩍 말을 돌렸다.
“원래는 운남의 이미회 본점까지 녹옥불장을 운송할 생각이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그쪽에서 여기까지 파견을 보내달라고 요청해야겠다.”
이미회가 운남에서만 활동하는 상단이긴 하지만, 성 몇 개를 건너야 하는 것도 아니니 문제는 없을 것이다.
이미 심익한이 최대한 협조를 해주라 지시했고 수왕족 사이에서 그가 가진 영향력을 생각하면, 그 정도 요청은 당연히 들어줄 것이라 본다.
“그럼 우리 이제 더 돌아다니지 않는 거야?”
“연맹의 일을 맡기 전까진 그렇겠지?”
소종천의 대답에 한사혜가 기뻐하는 내색을 드러낸다.
노상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생활은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다.
특히나 여성이라면 더욱 그러할 수밖에 없으니 당연한 반응이리라.
“학관이 문을 닫고 종천을 따라나설 때는 인생이 예상했던 것과 크게 달라지는 건가 싶었는데, 그래도 돌고 돌아서 연맹의 소속으로 돌아오게 되었네.”
“사천지부로 입맹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오. 가문 사람들의 귀에 들어가면 꽤나 시끄러워지겠구려.”
“아…… 남궁세가는 아무래도 조금 그렇겠네. 나도 학관에 머물 때만 해도 당연히 운남지부로 들어갈 거라 생각했으니.”
장자군과 남궁건의 대화를 듣던 소종천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 그러고 보니 얘들의 사정은 생각을 안 했네.’
소종천이야 어디로 가나 마찬가지지만, 다른 이들은 각자 출신 문파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이 녀석들하고도 상의를 했어야 했는데. 너무 성급하게 제안을 받아들였나?’
동료를 곤란하게 만드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게 최소한의 배려는 해줘야 하는데, 워낙 다른 의견을 내지 않고 자신을 따르기만 하는 친구들이라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소종천은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뺨을 긁적거리며 입을 열었다.
“어떤 지부에 속하느냐가 너희들한텐 많이 중요하려나?”
“아무래도 출신 문파의 영향력이 크게 미치는 지부에 들어가는 편이, 여러모로 이득을 볼 수 있긴 하지. 방금 사천지부장만 봐도 알 수 있잖아?”
사천에서 가장 위세를 떨치는 세력은 당가이고, 지부장 당사준은 이름만 봐도 알다시피 당가의 사람이다.
“실력이 안 되면서 인맥, 정치만으로 고위 간부직에 앉을 수는 없지만, 사천지부장에 당가 출신이 아닌 사람이 오른 적은 한 번도 없을걸? 다른 성들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아마 본인도 평범하게 학관을 졸업했다면 안휘성 지부로 들어가게 되었을 것이오. 본가의 영향력이 가장 크게 미치는 곳이고, 현 지부장을 맡고 계신 분도 내게는 숙조부 되시는 분인지라.”
“나도 원래대로라면 운남지부에 속했겠지. 운남에서 가장 큰 문파가 우리 점창파이고, 사백께서 지부장으로 계시거든. 똑같은 일을 해도 점창 출신의 무인이 아무래도 더 대우를 받기 쉬우니까.”
“본인의 사정상 가문의 사람들 몇몇과는 영 관계가 좋지 않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안휘성 외의 지부로 가야겠다는 생각까지 하지는 않았었소. 이러니저러니 해도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니, 조금 껄끄러운 사이라도 같은 집안사람들과 함께 하는 편이 좋지 않겠소?”
“어…… 그러냐.”
너무 적나라한 이야기에 소종천은 살짝 당황했다.
‘결국 대형문파들이 끼리끼리 다 해 먹는단 소리야? 혈연, 학연, 지연으로 돌아가는 꼴은 어딜 가나 다 똑같구만? 아주 사람 냄새가 풀풀 나서 좋다고 해야 하나.’
이런 소리를 듣고 나니 사람 사는 세상은 다 거기서 거기구나 싶다.
소종천의 시선이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는 한사혜에게로 향했다.
“너도 원래 가려던 지부가 있었겠네? 적사방도 사파 세력 중에선 꽤 큰 곳이라며?”
“난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곳이 오히려 더 좋아. 적사방주와는 다시 마주치고 싶지도 않고.”
“아, 그래.”
자신의 부친을 타인처럼 칭하는 모습에, 소종천은 머쓱하게 대답하며 고개를 돌렸다.
자세히 캐묻진 않았지만 한사혜의 부녀 관계에 조금 문제가 있다는 것은 대강 알고 있긴 하다.
소종천은 장자군과 남궁건을 보며 다시 말을 꺼냈다.
“내가 너희들 사정을 생각 안 하고 너무 쉽게 결정을 내렸나 보다. 그럼 제안을 물리고 다른 지부로 옮기는 게 좋을까?”
소종천의 말에 두 사람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나는 상관없어. 혼자라면 그랬을 거란 말이지, 어차피 지금은 연맹이니 지부니 따질 것 없이 종천 네 옆자리가 내 소속이야.”
“본인도 마찬가지라오. 이렇게 교우들과 함께 행동하는 것이, 내게는 성장의 큰 밑거름이 되고 있다 여기고 있소. 이제 와서 굳이 가문의 그림자 아래로 들어갈 필요는 없다고 보오.”
“딱히 문제가 없다면 이대로 사천에 남겠지만…… 정말 괜찮은 거지?”
“괜찮아.”
“문제없소.”
다시 한번 확답을 받은 소종천은 사천지부에 속하는 것으로 확실하게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되었으니 이제 이미회로 녹옥불장을 받아갈 인원을 보내달라는 서신을 전하기만 하면, 단기적인 목표는 전부 달성하는 것이 된다.
소종천은 서찰을 작성하기 위해 사람을 불러 문방품을 가져다 달라 요구했다.
이후 붓과 벼루, 당지(唐紙)등을 전해 받은 소종천은, 잠시 난감한 표정으로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생각해 보니 저쪽 세상에선 매일 키보드나 두드렸었지. 연필이나 볼펜을 마지막으로 잡은 것도 언제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필기구로 붓을 써야 한다니…….’
몸의 원주인인 본래의 소종천도 학문과는 연관이 없이 살았던지라, 기억이 남아 있다고는 하지만 붓글씨를 쓰기가 영 어색했다.
소종천은 일행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글을 좀 적어야 하는데, 자기가 서예에 자신이 있다 하는 사람?”
한사혜와 장자군이 화들짝 놀라며 시선을 피한다.
“젓가락질 외에는 손으로 뭘 쥐어본 적이 별로 없어.”
“나도 학문 쪽으로는 영 재주가 없는지라…….”
‘사혜는 그렇다 쳐도 자군이까지?’
착실하게 생겨서는 의외로 무공 외의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았던 모양이다.
그나마 명가의 후손답게 어느 정도 학식을 쌓는 교육을 받은 남궁건이, 곁으로 다가와 대신 붓을 들어주었다.
“서예라고 하기엔 부끄럽지만 그래도 서법에는 그럭저럭 소양이 있는 편이오.”
“그럼 건이 네 도움 좀 받자. 의지할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네.”
“이런 쪽이 아니라 무인으로써 기댈 수 있는 동료이고 싶소만…….”
쓴웃음을 지어 보인 남궁건은 소종천이 불러주는 대로 종이에 글자를 적었다.
소양이 있다는 게 괜히 한 소리는 아니었는지, 종이가 먹물을 머금으며 정갈한 모양의 글씨를 만들어낸다.
이미회에 보낼 서신이 완성된 후.
먹물이 마르길 기다린 소종천은 종이를 접어 들고 바깥으로 나섰다.
“이런 걸 취급하는 곳이…… 표국을 찾아가야 하나?”
“서찰 같은 가벼운 물품은 상행을 다니는 상단에서도 받아 주는 것으로 알고 있소.”
“이미회의 본점은 운남의 성도에 있잖아? 수신인을 찾기 어려운 것도 아니니 굳이 표국에 비싼 비용을 내고 맡길 필요는 없지. 딱히 보안이 철저히 필요한 내용도 아니지 않아?”
“그건 그렇지.”
“여기 중강현도 상당히 번화한 마을이니, 그쪽으로 향하는 상단을 찾기 어렵진 않을걸? 비용이야 조금 들겠지만 표국의 의뢰비보단 저렴하지.”
“그럼 적당한 곳을 찾아봐야겠네. 나가자. 이것만 처리하고 저녁은 오래간만에 맛있는 것 좀 먹어보자고.”
그동안 바쁘게 돌아다니느라 매번 간단한 식사만 해야 했으니, 오늘은 큰 식당에서 반주도 곁들이며 동료들과 기분을 좀 내 볼 셈이었다.
* * *
일행들과 함께 사천지부를 나선 소종천은 그럭저럭 규모가 있어 보이는 상단을 찾아 용건을 마치고, 제법 커다란 식당을 발견해 안으로 들어섰다.
“어?”
그리고 그곳에서 낯익은 얼굴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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