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04
51. 사천지부(3)
“너는…….”
“나 기억하지? 이름이 분명 당진이었던가?”
학관에서 생활하던 당시, 황룡단의 일번대주를 맡았던 생도.
소종천의 얼굴을 알아본 당진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소종천…….”
“어, 맞아. 잘 지냈냐? 이렇게 또 만나네.”
당진을 발견한 소종천은 그에게로 다가가며 안부를 물었다.
학관에서는 썩 좋은 사이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아는 얼굴을 만나고 나니 손톱의 때만큼이나마 반가움이 일긴 한다.
“아, 너도 당가 출신이지? 원래부터 사천에서 쭉 살아왔었겠구나.”
가볍게 말을 건네는 소종천의 기감이 자연스럽게 당진의 전신을 훑었다.
‘흠. 여전히 이류 수준에 머물러 있네.’
소종천은 말할 것도 없고, 장자군이나 한사혜와 비교해도 상당한 격차다.
학관을 떠난 후 일 년 가까이 시간이 지나며 나름대로 발전하긴 했겠지만, 절정을 지나 초절정을 노리고 있는 소종천이 보기엔 제자리걸음 수준이었다.
‘하긴 이게 당연한 건가? 순수하게 재능과 노력만으로 성장하는 남궁건과 견주면 모를까, 심득을 부여한 다른 애들이랑 비교하는 건 너무 가혹하겠지.’
미친 듯한 재능으로 무공을 갈고닦아 일류급의 무위를 보이는 남궁건도, 내력만으로 따지면 아직 일류에 도달하진 못했다.
당진 정도면 중원 어디에서도 인정받을 만한 기재이긴 하지만, 열여섯 살에 아직 이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너무 격차가 심하니까 괜히 미안해지네. 뭐 세상살이가 원래 이리 불공평한 것을 어쩌겠냐?’
어색하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소종천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래도 넓은 땅덩어리에서 이렇게 만나니 인연이 있긴 한가 보다. 야. 혹시 사천지부에서 지내냐?”
“큿! 다시 볼 일은 없길 바랐는데, 멀쩡히 살아 있군.”
“……뭐? 무슨 인사가 그따위야?”
꼭 죽기라도 하길 바란 듯한 말투에, 소종천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당진의 입장에서 소종천은 굉장히 불편한 존재였다.
처음 황룡단의 일번대주직에 발탁되면서, 당진은 자신이 동기 중에서 가장 뛰어난 무인이라는 생각에 자부심을 가지고 지냈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마인과 싸우는 소종천의 모습을 보며 와장창 무너지고 말았다.
‘거짓말! 어떻게 저런 무위를 보일 수 있지?’
처음부터 두각을 드러냈던 것도 아니고, 전혀 관심을 주지 않았던 하위 성적의 생도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생도는커녕, 교관과 비교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눈부신 실력을 보이게 된 존재.
그것이 당진이 기억하는 소종천이었다.
당진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그야말로 비현실적인 일이었다.
보통의 사람들은 그런 비현실적인 상황을 맞이할 경우, 몇 가지 제한된 반응을 보이게 된다.
멋대로 동경을 품게 되거나, 질투로 인해 격렬한 증오심을 가지거나.
혹은 아예 현실을 부정하며, 머릿속에서 기억 자체를 들어내기도 한다.
당진 역시 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는 악산에서 벌어졌던 마인과의 전투 이후, 짧은 학관 생활 동안 소종천을 계속 시기했었다.
‘내가 뭔가에 홀려 잘못 봤던 게 아닐까? 그래, 그렇겠지. 크게 착각한 것이 분명해.’
그리고 학관이 문을 닫은 뒤로는 스스로의 기억을 왜곡하며, 소종천이란 존재를 자신의 과거 속에서 지워버렸다.
사천의 본가로 돌아오고 시간이 지나며, 그에게 소종천은 상상 속의 허깨비나 마찬가지인 것으로 변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다시 얼굴을 마주하고 있으니, 마음이 흔들리며 억눌러왔던 혼란스러운 감정이 다시 피어올랐다.
안색이 나빠진 당진은 입을 꾹 다물고 소종천을 무시하듯 고개를 홱 돌렸다.
“허…… 그래. 뭐, 딱히 친한 사이도 아니었지. 거참, 이제 아는 척 안 하마.”
그런 모습을 보며 한차례 투덜거린 소종천은, 일부러 당진에게서 멀리 떨어진 탁자로 이동해 자리를 잡았다.
“이상한 놈이네. 그래도 반년이나마 한솥밥을 먹었던 사이인데, 인사조차 안 하려고 드냐.”
“좀 과한 반응이긴 한데, 그럴 수도 있겠거니 싶네. 종천, 넌 학관에 있을 때 항상 남들하고 벽을 쌓고 지냈잖아?”
“내가? 딱히 그런 적 없는데?”
“먼저 나서서 인사하거나 친근하게 구는 성격도 아니었고, 항상 사람들을 피해 혼자 무공 수련만 하지 않았었나? 솔직히 같은 방이 아니었으면 나나 사혜하고도 대화 한마디 안 하고 지냈을 것 같은데?”
“그, 그랬던가?”
장자군의 지적에 과거를 되돌아본 소종천은, 반론할 말이 없어서 입맛을 다셨다.
지금도 계속 강해지길 열망하고 있긴 하지만, 그 시절엔 특히 더 필사적이었다.
뽑기를 돌릴 재화를 버는 것이 쉽지 않아 항상 조급했고, 남들보다 한참 약한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수련으로 보내곤 했었다.
‘여유가 없긴 했었지. 바뀐 세상에 적응하기도 어려워 감정의 기복이 꽤 오락가락하기도 했고.’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지금도 원래 세상과의 괴리감 때문인지, 이성적으로 행동하지 못할 때가 간혹 있다.
나름 침착성을 유지하려고 애썼던 것 같긴 한데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랬었나 싶은 행동들도 있으니.
학관 생도들의 입장에선 확실히 가까이하기 어려운 인물로 보이긴 했을 터다.
“그래도 내가 다른 녀석들을 전부 무시하고 다닌 건 아닌데. 여기 건이만 해도 가끔 보일 때마다 아는 척하면서 친해지려고 노력했다고.”
“확실히 그랬던 것 같군. 덕분에 이렇게 함께 하게 되었으니, 종천이 교우 관계에 서투르다고만은 할 수 없지 않겠소?”
“그렇다기보다는 그냥 남궁건 네가 유일한 예외의 사례일 뿐 아닐까?”
“하긴 그럴지도 모르겠군. 그래도 아무렴 어떻겠소? 믿을 수 있는 지기가 한 명만 있어도 성공한 삶이라 하더구려. 여러 사람과 두루 친분을 유지한다고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 생각하오.”
“배고파. 그만 떠들고 주문부터 해.”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고 있자니, 대화에 끼지 않고 있던 한사혜가 툭 한마디를 내뱉었다.
막, 말을 내뱉고 있던 남궁건이 머쓱해 하며 입을 다물었다.
심득을 양도한 뒤로 행동거지가 제법 변한 것 같긴 하지만, 소종천을 대할 때 외에는 여전히 어울리기 힘든 독특한 성격을 보이는 한사혜다.
“하하, 우리 홍일점이 배가 많이 고픈 모양이네. 그럼 일단 뭐 좀 시켜볼까?”
장자군이 쾌활하게 웃으며 가라앉으려는 분위기를 붙잡았다.
“크흠! 사천에 온 김에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을 먹어보고 싶은데, 누가 추천 좀 해주겠소? 본인은 북경요리에만 익숙하지 다른 지역의 요리에는 식견이 없다오.”
헛기침으로 무안함을 달래며 주문의 선택권을 넘기는 남궁건의 말에, 소종천은 잠시 요리에 대한 지식을 찾아 기억을 뒤적여 보았다.
‘딱히 떠오르는 게 없네. 원래의 몸 주인이 사천 출신인 것도 아니고, 그다지 잘 먹고 잘살던 집안도 아니었으니 모르는 게 당연한가?’
사천이란 단어에서 연상되는 것이라고는 ‘매운 요리가 유명하다던가?’ 하는 생각 정도뿐.
원래의 세상에서도 중국요리에 관심을 가졌던 적이 없으니, 떠오르는 거라곤 사천짜장이나 사천짬뽕 같은 이름이 고작이다.
소종천은 음식에 대해 떠올리길 포기하고 다른 사람에게로 주문을 떠넘겼다.
“……나도 잘 모르겠는데. 자군이 너는?”
“이런. 그럼 어쩔 수 없이 내가 적당히 주문해야겠네. 사천 토박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먼 지역도 아니라 이쪽 요리는 몇 번 접해보긴 했거든.”
멀뚱멀뚱하게 앉아 있는 일행들을 대신해, 장자군은 점소이를 불러 음식을 주문했다.
“매채구육과 궁보계정, 그리고 마파두부 하나씩에…… 아, 마의상수도 추가할게요.”
“술은 올리지 말깝쇼? 기본 음료로 화차가 나오긴 합니다만.”
“음. 너무 독한 건 마시기 좀 그렇고…… 그래, 향설주로 두 병만 더해주세요.”
“예입! 조금만 기다려줍쇼.”
음식을 주문하는 장자군을 지켜보던 소종천은, 귀를 후비며 괜히 나대지 않길 잘했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음식 이름도 참 더럽게 어렵네. 대체 저게 뭔 요리야?’
그나마 마파두부 하나는 알아들었다.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시켰으니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살짝 들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큰 음식점이고 장사가 잘되는 곳이라 미리 밑 준비가 다 갖춰져 있는지,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아 탁자 위로 음식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알싸한 향기가 코끝을 간질인다.
“오! 외형들이 꽤나 화려한 것 같소.”
“이쪽 사람들은 매운 음식을 많이 먹는 편이야.”
“음. 눈으로만 봐도 자극적인 게 느껴지네.”
매운 향이 풍기지만 먹음직스러운 자태의 요리들이 차려지는 것을 보며, 일행들은 하나둘씩 젓가락을 쥐었다.
사천의 음식은 주로 향신료를 많이 사용하는 요리가 발달되어 있다.
우거지 위에 돼지고기를 얹고 간장양념을 하여 찐 매채구육.
닭고기와 땅콩, 고추를 기본으로 기름에 살짝 튀기고, 여러 가지 채소들과 조미료를 넣어 볶은 궁보계정.
소고기를 잘게 가루 내어 당면과 섞어 식초로 간을 하는 마의상수.
거기에 조소를 사용해 빚어내어 달고 향이 진한 향설주를 반주로 조금씩 곁들이니, 오랜만에 식도락을 느낄 수 있는 식사 시간이었다.
“후아, 맵긴 한데 맛있네.”
“속이 조금 뜨겁긴 하구려. 보이는 것처럼 자극적인 맛이오.”
백주 종류에 비하면 한참 도수가 낮은 향설주 두 병을 네 사람이 나눠 마시고 나니, 취할 일 없이 적당히 알맞게 흥이 오르기도 했다.
‘나쁘지 않네.’
일행들과 웃고 잡담하며 회포를 푸는 소종천의 머릿속에, 조금 전 만난 당진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다른 어떤 이의 개입이 아니었다면, 분명 아무 관계 없이 잊히는 인연으로 끝났을 것이었다.
* * *
“진아, 학관에서 알게 된 친구들이냐?”
“……예.”
“표정을 보아하니 썩 좋은 관계가 아니었던 모양이구나.”
당진은 자신의 종숙인 당규현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눈을 피했다.
‘항상 자신감 넘치던 아이가 갑자기 이리 기가 죽다니?’
당규현은 당진을 바라보며 의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삼십 대 중반의 나이로 일류 중간의 경지에 머물고 있는 당규현은, 사천지부의 무사단에 소속된 무인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최근 기준에 조금 미달되지만, 가문의 입김으로 무사단에 들어오게 된 당진을 자신의 조에 받아들였고, 오늘 간단한 임무를 끝내고 돌아온 김에 함께 저녁 식사를 나누던 참이었다.
‘사천 땅에서 당가의 직계가 남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숙이다니. 학관에서 체면이 상할 일이라도 있었던 건가? 쯧…….’
공적으로는 소속된 단체의 상관이고 사적으로도 윗줄의 항렬이지만, 당규현은 가문의 직계인 당진과 달리 방계의 혈족이다.
그리고 당진은 비록 소가주의 경쟁에서는 밀려났지만, 뛰어난 무재를 지녀 가문에서 제법 신경 써주고 있는 유망한 인재.
당규현은 앞으로 십 년 정도만 지나도, 자신보다 당진의 가문 내 발언권이 더 높아질 것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학관 출신이라면 저 아이들도 연맹의 무사를 목표로 수행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겠지. 아무래도 내가 나서서 종질의 기를 좀 살려줘야 하겠군.’
시간이 지나면 높은 자리에 오를 것이 분명한 친인척이니, 점수를 따둬서 나쁠 것이 없다.
당규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소종천 일행이 있는 탁자로 향했다.
뽑기로 무림최강 10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