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05
51. 사천지부(4)
“소형제들. 잠깐 시간 괜찮은가?”
누군가의 목소리에 식사 중이던 일행들의 시선이 옆으로 돌아갔다.
‘이 사람은 아까 당진 그 녀석이랑 같은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인데.’
서른을 조금 넘었을까 싶은 외모의 사내.
예민한 기감 덕분에 이미 상대가 다가올 때부터 인식은 하고 있었다.
무슨 용건인가 싶어 의아해한 소종천이 말을 받았다.
“어쩐 일이신지?”
“흠. 내 소개부터 해야겠군. 나는 정사연맹 사천지부의 은호단 소속에 있는 당규현이라 하네. 자네들의 동기인 당진의 종숙이기도 하지.”
“아, 그러시군요. 그래서요?”
“……?”
별 감흥 없는 태도로 되묻는 소종천의 모습에 당규현은 살짝 당혹스러워졌다.
‘진이의 태도도 그렇고, 확실히 보통 놈들이 아닌 모양이군.’
연맹의 무사로 발탁되기 위해 들어가는 잠룡학관에 몸담았던 생도들.
저 나잇대의 무인이라면 열에 아홉 정도는 연맹의 무사에게 동경을 품고 있기 마련이다.
평범한 군소문파의 어린 무인들처럼 흥분하며 간이라도 빼줄 듯이 굴진 않더라도, 오히려 더욱 격식을 차리며 자신을 어려워해야 정상이었다.
어떻게 보면 같은 소속의 상급자라 볼 수 있고, 실제로 어느 지부에 배치되느냐에 따라 직장 상사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한데 이런 무덤덤한 반응이라니?
‘특히나 이놈은 아주 싸가지가 없어 보이는군.’
멀뚱멀뚱한 얼굴로 이쪽을 쳐다보는 소종천을 보며, 당규현의 표정에 약간의 노기가 서렸다.
다른 이들이 말을 꺼내지 않는 것을 보니 무리의 대표 격인 모양인데, 자신의 신분을 알렸음에도 어쩌라는 거냐는 듯이 가만히 있는 모습이 상당히 언짢았다.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는 모습까지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어디 출신의 누구라고 이름을 밝혀야 정상이 아닌가.
‘이 아저씨는 왜 말을 하다가 말아? 눈빛이 어째 기분 나쁜데.’
소종천은 또 소종천 나름대로 불쾌해지고 있었다.
이미 당진과 같은 일행임을 알고 있으니, 굳이 따로 통성명을 하지 않고 용건을 말하길 기다리던 차다.
물론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서로 다 알 법한 내용이라 해도, 굳이 생략하지 않고 자기 입으로 다시 말해야 하는 것이 예의인 경우가 있다.
다만 소종천은 예의 바른 성격과는 거리가 있기도 하거니와, 이미 평범한 또래 무인들과는 위치 자체가 다르다.
강자를 숭상하는 무림의 세계에서 나이와 출신보다 우선하여 대우받는 것이 본신의 실력.
그리고 소종천의 무위는 중원의 무인 중에서 최상위권에 들어섰다 할 수 있는 수준이다.
정사연맹의 맹주가 직접 행차했다면 모를까, 일개 무사단의 무인이라는 말에 어려워하며 굽실거릴 이유가 전혀 없었다.
“왜 말씀이 없으세요?”
뭔가 할 말이 있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서는 이름만 밝힌 채 자신을 쏘아보는 모습에, 소종천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상대의 말을 재촉했다.
원하는 반응이 나오지 않아 기분이 나빠진 당규현은 약간 가라앉은 음성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종질의 학우들이라 하여 이야기를 나눠볼까 했네만, 소형제들은 혹시 연맹의 무사 직에 뜻이 없는가?”
“음. 없지야 않죠. 그렇지 않아도 저희는 사천지부에 소속되기로 이미 그쪽 지부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온 참입니다만.”
“뭣이?”
자신의 최고 상관인 지부장을 들먹이는 말에 당규현은 조금 당황했다.
지부장인 당사준은 사천지부의 총책임자이며 당가에서도 굉장히 높은 위치에 있는 인물.
같은 가문의 사람인 당규현도 쉽게 말을 붙이기 어려운 존재다.
‘그분께서 직접 면담을 진행했다고? 당가의 직계가 아니면 신입 대원은 얼굴도 보기 어려워야 정상인데?’
자신을 놀리는 건가 싶어 화를 내려던 당규현은 이내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잠시 멈칫했다.
“자네들 네 사람 전부 사천지부를 통해 입맹했다는 말인가?”
“맞아요.”
“흐음.”
어찌 된 일인지 알겠다는 듯이 당규현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어지간한 놈들이라면 진이의 기가 죽을 리가 없겠지. 다들 제법 한가락 하는 문파의 출신들이겠군.’
뛰어난 기재로 인정받은 당진도 아직 연맹의 무사가 되기에는 실력에 조금 부족함이 있다.
가문의 뒷배가 아니었다면 입맹이 어려웠을 테니, 눈앞의 녀석들 역시 당진과 비슷하게 출신 문파의 입김이 들어갔을 터.
그런 녀석들이 왜 자신의 세력과 밀접한 지부가 아닌 사천에 와서 입맹을 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일단 앞에 말은 이해가 갔다.
당가의 직계와 비슷한 위치라 할 수 있는 대형문파 출신의 제자들이 넷이나 동시에 입맹을 신청했다면, 지부장이 관심을 보이고 면담을 진행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잘 되었군. 입맹을 했으니 출신이야 어쨌든 이제 내 밑의 놈들이란 말 아닌가?’
당규현은 속으로 쾌재를 터뜨리며 표정을 싹 바꿨다.
“이제 보니 그냥 외부인이 아니라 같은 식구였군. 그런데 어찌 상관인 나를 보고도 제대로 인사조차 하지 않는 건가? 내 분명 소속을 정확히 밝혔을 터인데!”
은호단은 사천지부의 주력이라 할 수 있는 무사단이다.
특수한 임무를 맡는 단이 몇 개 더 있긴 하지만, 그쪽은 소수 정예로 이루어져 있기에 인원이 훨씬 적은 편.
갓 들어온 신입, 그것도 십 대의 신출내기 무인이 그런 곳에 소속될 리는 없으니, 당연히 이들 역시 은호단에 배속될 것이 분명했다.
‘아주 혼쭐을 내줄 수 있게 되었군.’
내심으로 미소를 지은 당규현은 소종천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목청을 높였다.
은호단에는 단주 휘하 열 개의 대가 있고, 대주의 아래 다시 십여 개의 조가 결성되어 있다.
자신이 간부급이라 할 수 있는 대주는 아니었지만 하나의 조를 맡고 있는 조장이니, 직속 상관은 아닐지라도 일단 상급자라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규현의 착각.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그러시나. 거참…… 그리고 같은 식구라는 건 그렇다 쳐도, 우리가 그쪽 부하로 들어갈 일은 없으니까 괜한 소리 말고 용건이나 말하세요.”
소종천이 심드렁한 얼굴로 대답했다.
지부장이 자리를 만들어준다는 말만 했지 아직 정확한 소속이 결정되진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사천지부의 소속체계를 아직 잘 모르는 소종천이라 해도, 자신이 고작 일류 중간급의 무인 아래로 들어가는 상황이 없을 것이란 것은 확신할 수 있다.
‘내 실력을 보여주었으니 제정신이라면 그런 일은 없겠지.’
소림의 절기들을 선보인 것은 아니지만, 권기를 방출하며 절정의 경지라는 것은 확실히 알려주었다.
그런데도 설마 일개 평단원으로 들어가는 일이 벌어진다면, 지부장의 귀싸대기를 후려치고 탈퇴해도 무죄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소종천의 반응에, 당규현은 어이가 없어 입을 쩍 벌렸다.
‘아주 앞뒤 분간도 못 하는 철부지 놈들이었군!’
당진의 태도가 묘했던 것이 이제 이해가 갔다.
정신머리가 이상한 녀석이니 평범하게 대하다가 된통 당한 적 있는 것이 분명하다.
‘똥은 더러워서라도 피하는 게 맞긴 하지.’
원래의 출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몰라도, 입맹을 하고 나서까지 문파의 위세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진 못한다.
아무리 위아래로 정치질이 판을 치고 출신에 따라 차별이 있다지만, 기본적으로 무력 단체의 우대 기준은 무공 실력에 달려 있을 수밖에 없다.
출신 문파의 영향력이 큰 지부로 갔다면 대접은 조금 더 좋아졌을지 몰라도, 그게 부족한 실력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이런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이! 임무를 맡기 전에 정신교육부터 단단히 받아야 하겠구나!”
당규현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손을 움직였다.
자고로 미친개에게는 매가 약이라 했다.
같은 지부 소속이니 부담감도 없었다.
조장급이자 한참 선배인 자신에게 저리 버릇없는 태도를 보였으니, 하극상의 죄를 물어 훈계를 내려도 아무 탈이 없을 것이다.
그의 입장에서는 설마 소종천이 자신을 아득히 능가하는 강자일 것이라곤 차마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당가의 무공 중 하나인 삼양수가 펼쳐졌다.
상대를 살상하지 않고 제압하는 금나수(擒拿手)법의 일종인 삼양수는 당가의 자랑인 무공.
당가의 무공이 독과 암기에 특화되어 있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무공이 보잘것없는 것은 아니다.
용독술과 암기술의 두 분야 모두 은밀함과 신속함이 생명인 만큼, 그것을 다루기 위한 손의 움직임이 비범하지 않을 리 없었다.
삼양수와 삼양지, 비서장과 적련신장 등.
당가에는 수준 높은 수법과 지법, 장법이 고루 갖춰져 있고, 독과 암기를 다루기 전에 먼저 그런 무공들을 배운다.
소모품에 해당하는 독과 암기가 떨어지면 맨손으로 적을 상대해야 하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무문보다는 살수 집단에 어울리는 분야를 주력으로 다루면서 정파에 속한 명문무가로 이름을 올릴 수 있는 것은, 그런 무인다운 무공을 가르침에도 충실하기 때문.
“에이.”
맥을 잡기 위해 다가오는 손을 보며 소종천은 짜증 난다는 듯이 입을 삐죽거렸다.
뛰어난 수법이라 하지만 어디까지나 일류의 수준.
소종천에겐 전혀 위협이 될 수 없었다.
귀찮은 얼굴이 되어 가볍게 팔을 움직여 당규현의 손을 쳐낸다.
“이놈이!?”
막힐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던 당규현이 당황하며 재차 무공을 펼쳐냈다.
맥을 잡아내기 위해 갈고리 모양을 하며 움직이던 손대신, 빳빳하게 세운 손바닥이 소종천의 가슴을 노리고 들이닥쳤다.
맨손으로 사용하는 당가의 절기 중 하나인 비서장이다.
부아앙!
내공을 제법 끌어 썼는지 소매가 세차게 펄럭거리며 시끄러운 소리가 울린다.
하나 그것 역시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씁!”
입소리를 내며 앉은 자세로 팔만 움직인 소종천의 주먹이 당규현의 장심과 부딪혔다.
제압이 목적으로 보이던 수법은 그냥 적당히 쳐냈지만, 지금의 장법은 충분히 살상력을 지닌 불순한 의도로 사용된 무공.
소종천은 더 참지 않고 일류급이 감당하기 어려운 내공을 운용했다.
“커헉!”
거대한 내력과 충돌한 당규현이 기혈을 파고드는 기운을 뿌리치기 위해 급하게 뒤로 몸을 날렸다.
우당탕탕!
십여 걸음 이상 물러난 당규현이 볼썽사납게 구르며 탁자와 의자들을 쓰러뜨린다.
제대로 권법을 펼친 것도 아니었지만, 소종천과 당규현의 사이에는 그만큼 커다란 격차가 있었다.
“이, 이잇!”
잠시 뒤, 얼굴이 시뻘겋게 물든 당규현이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커다랗게 떠진 그의 눈은 황당함과 굴욕감으로 물들어 있었다.
‘으윽, 이런 개망신이!’
믿기는 어려웠지만, 방금 보인 한수로 소종천이 자신을 능가하는 고수라는 것을 깨달았다.
‘거지 같은 상황에 빠졌구나. 빌어먹을…….’
당진의 앞에서 그의 동기였던 이에게 맞고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규모가 크고 유명한 식당인지라, 내부의 손님 중에는 같은 지부의 무인들이 드문드문 섞여 있었다.
‘한참 어린놈에게 처맞고 다닌다는 소문이 퍼지게 생겼구나.’
누군가 자신을 궁지에 몰기 위해 파놓은 함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다른 장소였다면 어떻게든 조용히 상황을 무마했을 텐데, 이미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이대로 물러나면 앞으로 사천 땅에서는 고개도 들지 못한다. 진급은커녕 조장 자리마저 위태로울 수도…….’
상대가 절정에서도 상위에 속한 무인임을 알았다면 다른 마음을 품을 것도 없이 찌그러졌을 것이다.
하지만 당규현은 소종천의 정확한 수준을 몰랐다.
그리고 사람은 곤경에 처하게 되면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은은한 살기가 서리는 눈빛과 함께, 당규현의 양손이 각각 허리 뒤와 정강이 쪽으로 향했다.
당가가 지금의 자리에 서도록 만들어준 힘.
목숨이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함부로 꺼내 드는 것조차 조심해야 하기에 숨겨두는, 당가의 독과 암기를 사용할 셈이었다.
뽑기로 무림최강 10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