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09
52. 오색단(2)
사천성에 위치한 오월문이라는 조그마한 문파 출신의 양한순은, 문주의 수제자로 사문에서 배출된 최대의 인재였다.
무문이라기보단 동네 무관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었던 오월문은, 지천명에 가까운 나이의 문주조차 일류 중급에 불과했다.
양한순은 삼십 대에 스승과 비슷한 경지에 올랐고, 정사연맹에 몸담고 십여 년이 흐른 지금은 일류 상급의 경지로, 군소문파 출신치고는 드물게 인정받을 만한 무명을 쌓을 수 있었다.
백영도객 양한순.
사천에서 나름대로 무위를 떨치며 그럴싸한 별호도 얻었고, 연맹의 무사단 소속이라는 어디서도 대우받는 직장을 가졌다.
작은 문파 출신의 무인치고는 크게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삶이었다.
하지만 양한순은 자신의 처지가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다.
‘이렇게 평생 당가의 뒷바라지나 하며 살아가는 게 내가 꿈꾸던 무인의 삶이란 말인가?’
같은 연맹의 소속이라 하지만 대형문파 출신과 소형문파 출신은, 일일이 다 열거할 수도 없을 정도의 차별대우를 받는다.
특히나 사천의 무림에서 왕족이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는 당가의 씨족은, 양한순에게 커다란 박탈감을 느끼게 만드는 존재였다.
양한순이 온갖 번거롭고 고된 임무를 도맡아 처리하며 간신히 조장의 자리에 오를 동안, 당가의 무인들은 쉽고 편한 환경에서 근무하며 더 높은 봉급과 개인 시간을 보장받는다.
그러면서도 진급 우선순위는 훨씬 더 빨라, 번번이 배경이 좋은 무인에게 기회를 빼앗겨왔다.
‘어쩔 수 없지.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게 있는 것이니…….’
불만은 쌓여가지만, 불평을 입 밖에 내는 것은 제 살을 깎아 먹는 행위였다.
당가의 비위를 거스르고 사천에서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
반발을 전혀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결국 자신만 더 고달파진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될 뿐이었다.
아무리 아니꼬워도 대형문파 출신에게 원한을 사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생각도 최근에 와서는 뭐가 맞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이런 인물이 있을 수도 있는 건가? 무공도 무공이지만 여러모로 상식을 깨는 사람이군.’
양한순은 자신의 어린 상관을 곁눈질하며 혼란스러운 감정을 내비쳤다.
“왜 그리 봅니까?”
“아, 아닙니다. 어째 너무 조용한 마을이군요.”
속마음을 들킬까 급하게 내뱉은 말이지만, 정말로 묘한 분위기가 흐르는 마을이다.
“부단주도 그래요? 확실히 뭔가 느낌이 싸한데.”
토벌행을 이어가며 흑도의 세가 크게 자리 잡은 곳이라는 정보를 얻어 들린 곳인데, 마을의 크기에 비해 사람의 흔적이 이상할 정도로 눈에 띄지 않았다.
“먼저 가서 근방을 좀 둘러보고 있겠습니다.”
“그러세요.”
몇몇 단원들을 데리고 앞서 달려가며, 양한순은 단주인 소종천에 대해 알려진 사실들을 다시금 떠올렸다.
하늘에서 떨어지기라도 했는지 과거의 행적에 대해 그다지 알려진 바가 없는 소년 고수.
새로운 상급자가 어떤 인물인가 알아보기 위해 따로 수소문을 해봤던 양한순은, 그가 최근에 지부에 속한 당가의 무인과 문제를 일으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싸움이라 하기엔 거의 일방적으로 두들겨 팼다고 듣긴 했다만.’
비록 방계에 불과하지만 그렇다 해도 엄연히 당가의 무인.
그곳에 있던 사람이 소종천이 아니라 자신이었다면, 절대로 곱게 넘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듣기로는 그 자리에 당가의 직계혈통도 있었다는 모양이다.
‘소문에는 그들의 면전에 대고 당가의 무공이 별것도 아니라고, 비웃기까지 했다는 것 같던데 말이지.’
그런 짓을 하고도 지부장이 책임을 묻기는커녕, 최소한의 인원이긴 해도 단 하나를 만들어 맡기는 선택을 보였다.
‘역시 무인은 경지를 높이는 것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만드는 거지. 저 나이에 저런 무위라면 누구라도 친분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 당연한 건가.’
거대문파 출신들에게 굽실거리지 않고, 어린 나이에 실력만으로 간부 자리에 오른 상관.
어쩌면 자신이 무림의 새로운 전설이 될 인물과 함께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하며, 양한순은 몸속에 갇혀 있던 뜨거운 무언가가 격하게 솟아오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프슛!
“……엇?”
단지 마음속의 느낌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옆구리가 따끔거리는 감각에 돌아본 양한순은, 언제 베였는지 갈라진 무복 사이로 핏물이 분출되는 것을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당황스러운 기분과는 별개로 침착하게 출혈 부위의 혈도를 점해 지혈조치를 한 양한순은, 목소리를 높여 주변에서 움직이고 있던 단원들을 멈춰 세웠다.
“조심! 뭔가 있다!”
도를 뽑아 들고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핀 양한순이, 긴장한 모습으로 침을 삼켰다.
‘뭐였지?’
분명 얕지 않은 상처를 입었는데, 뭐에 당했는지도 전혀 알 수가 없다.
나름대로 고수 행세를 할 수 있는 양한순의 경지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암기? 하지만 어떠한 소리나 기척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거늘.’
원인을 알 수 없는 부상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양한순은, 이내 주변에서 들려오는 발소리를 감지하고 신음을 흘렸다.
“으음…….”
“부단주님! 포위당한 것 같습니다.”
“알고 있다.”
어째 마을이 조용하다 싶었더니, 모습을 감추고 숨어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수가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만큼 상당히 많았다.
‘흑도의 무리 따위가 아니다.’
불길한 기운을 흘리며 다가오는 이들.
대다수가 무인이라 부르기도 아까운 하류 수준인 흑도의 세력과는, 전혀 다른 기세를 풍기는 자들이었다.
“연맹의 주구들이 이런 외진 곳까지 돌아다닐 줄이야.”
주변을 포위한 자 중 가장 강렬한 존재감을 지닌 이가, 양한순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엉덩이 무거운 놈들이 어쩐 일인지 주변을 어지럽히고 다닌다는 소식은 들었지. 어디서 단서를 얻어 이런 난리를 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너희들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양한순은 식은땀을 흘리며 눈을 굴렸다.
상대에게서 느껴지는 기세가 점점 강해진다.
‘젠장맞을. 나와는 급이 다른 자구나.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단순한 흑도의 무리가 아닌 것은 확실하군.’
일류로 완성에 가까워지고 있는 자신에게 대치만으로 이런 압박감을 줄 정도면, 절정급에 발을 들인 무인이란 뜻이다.
삼류 무공이나 몇 수 익히고 깡패 생활을 하는, 흑도의 무리에 섞여 있을 리가 없는 존재였다.
흑도방파를 모아놓고 상납을 받아가며 수입을 올리는 사파 세력.
그중에서도 꽤 규모가 큰 문파의 수장으로 군림하는 고수임이 틀림없었다.
‘말하는 내용을 들어보니 연맹에 적의를 가진 사파 세력인 모양인데. 상당히 곤란한 상대를 만났군.’
정사연맹에도 적지 않은 수의 사파가 가입되어 있지만, 그들은 적어도 겉으로 크게 드러나는 불법을 저지르며 수익을 챙기진 않는다.
연맹에 가입되지 않은 사파들은 대부분 도의적으로 심하게 문제가 되는 범죄를 저지르며, 그런 악행으로 세를 불리는 자들.
단죄해야 마땅한 존재들임은 틀림없지만, 사천지부에서 가장 작은 규모를 지니고 있는 오색단이 손을 대기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다른 무사단의 활동반경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까지 들어온 탓에, 지원을 요청할 수도 없는 상황.
“귀하는 누구십니까? 필시 명성이 널리 알려진 분이신 것으로 보입니다만.”
양한순은 격식을 갖추며 우두머리로 보이는 무인에게 말을 걸었다.
‘어린 단주의 내공이 심후한 것은 알지만, 전투의 경험은 부족할 것이 분명하니, 위험할 수 있는 싸움은 피할 수 있다면 몸을 사리는 것이 좋겠지.’
절정급 고수 하나와 일류급의 무인이 수십 명.
단주의 친우라는 젊은 무인들의 실력이 대단하니 꼭 밀린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저쪽은 수가 너무 많았다.
여기까지 오며 상대한 자들이 전부 자잘한 흑도 무리뿐이었기에, 양한순은 소종천의 무위를 제대로 견식한 적이 없다.
그렇기에 직면한 사태를 위기로 상정하고, 마찰 없이 물러나기 위해 상대에게 최대한 예의를 차렸다.
그러나 양한순은 곧 자신이 오판을 내렸음을 알게 되었다.
“곧 죽을 놈들 따위에게 알려줄 이름은 없다. 귀찮게 또 터를 옮겨야 하게 생겼군. 처리하라!”
“흐흐, 알겠습니다.”
“간만에 연맹의 무사 놈들 피 맛을 보겠군. 크큭!”
우두머리의 지시와 함께, 끔찍한 귀곡성이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컥!”
“이, 이런!”
마기에 노출된 단원들이 내기의 흔들림에 충격을 받고, 얼굴빛이 핼쑥하게 변한다.
양한순 역시 마기의 침투에 저항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럴 수가! 마인들이었다니!’
동일한 경지라 해도 승산이 없다시피 한 마당에 절정급 마인의 귀령규환공에 당했으니, 쓰러지지 않고 서 있는 것이 고작.
이후 명을 받은 마인 수십여 명이, 거미줄에 걸린 벌레처럼 옴짝달싹 못 하고 있는 단원들의 목숨을 거두기 위해 다가왔다.
‘이제 좀 무인답게 지낼 수 있는 건가 싶었더니, 결국 이렇게 가는 건가.’
외곽 지역을 돌면서부터 익숙하지 않은 야영을 하거나 낙후된 시설을 이용하며 꽤나 피곤하긴 했지만, 그래도 민심을 어지럽히는 흑도들을 단죄하며 제법 보람을 느꼈다.
비록 작은 단이나마 언감생심 바라지도 못했던 부단주 직책을 달기도 했고, 특이하긴 해도 다른 상관들과 다른 털털한 태도로 부하들을 대하는 단주도 조금씩 마음에 들어가던 차다.
다가오는 죽음에 다리가 떨려왔지만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떴다.
‘그래도 어떤 놈이 이 몸을 죽이는지 얼굴은 보고 가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그 순간, 누군가의 등이 양한순의 앞을 막아섰다.
“혹시나 했는데 진짜 꼬리를 잡을 줄이야.”
“단주!”
멀리서 마기를 감지하고 급히 달려온 소종천이었다.
등장한 이가 상관임을 확인한 양한순이 힘겨운 목소리로 외쳤다.
“도망치십시오! 지부에 소식을 알려야 합니다!”
상대가 평범한 무인도 아니고 마인이니, 현재 아군의 전력으로 싸우는 것은 필패다.
움직이기도 어려운 단원들과 달리 절정지경의 소종천은 도주라도 가능할 테니, 혼자라도 살아남아 마인들에 대한 정보를 지부장에게 전달해야 했다.
그렇게 생각한 양한순이 판단은 충분히 합리적이라 할 수 있었다.
소종천이 평범한 무인이 아니었다면.
커허어엉!
사자의 포효 소리가 귀곡성을 집어삼키며, 공간에 퍼져 있는 마기를 몰아냈다.
“흐억!”
“이게 뭐야!”
소종천의 등장에 시체 한 구가 늘었다고 낄낄거리던 마인들이, 입장이 바뀌어 얼굴색이 파리하게 질려갔다.
“놈! 무슨 수를 쓴 것이냐!”
자신이 내보낸 마기가 흩어지는 것을 본 우두머리 마인은, 경악하며 소종천을 향해 외쳤다.
그러나 소종천은 곧장 대답하지 않고 좌중을 쭉 훑어보았다.
‘수가 많네. 마교의 근거지 중 하나인 곳이었나?’
마기를 감지하고 달려오긴 했지만, 상황이 나쁘다면 도망쳐야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 도마를 죽인지도 어언 한 달 가까이 지났으니, 어쩌면 자신의 행적을 파악한 마교에서 함정을 파고 기다리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
‘그래도 다행히 그건 아닌 모양이네. 수가 많아도 일류와 이류 수준만 섞여 있고, 절정급은 고작 하나뿐이라니.’
안심한 소종천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단순히 마교 세력의 거점 중 하나인 곳일 뿐이라면, 연맹의 무사단으로서 상당한 공적을 쌓을 수 있는 좋은 먹잇감이 되어줄 것이다.
“이놈! 귓구멍이 막혔느냐!”
자신의 말을 무시하는 소종천의 태도에, 마인의 우두머리는 분노를 흘리며 두 눈 가득하게 살심을 뿜어냈다.
그런 상대의 모습에 소종천 역시 살기 어린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나도 곧 죽을 놈들에게 대답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이런 건방진 애새끼가…… 놈을 죽여라!”
“옛!”
“이상한 수를 써도 고작 한 놈일뿐이다!”
사자후로 귀령규환공을 깨긴 했지만 5성의 숙련도로는 절정급 마인의 마기를 해소하는 것에 그쳤다.
잔여 기운이 떠돌며 경지가 낮은 마인들의 정신을 압박하긴 했지만, 무공을 쓰기 어렵게 만들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천적 관계를 정확히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자기네들에게 무언가 불쾌한 느낌을 주는 소종천에게 달려들며 격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뽑기로 무림최강 11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