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1
7. 항상 입이 문제
[무색 영약 당첨!] [무색 영약 당첨!] [무색 영약 당첨!]“X벌?”
순간 잘못 본 줄 알았다.
눈을 비비고 재차 확인했지만, 다시 봐도 똑같은 알림 세 개가 연달아 떠올라 있었다.
“진짜냐?”
일주일간의 고생이 허무해지는 순간이었다.
그간 접속 보상으로 얻은 재화가 1,900은.
기존의 300은에 더해 총 2,200은으로, 인급 보물 상자 두 번을 개봉했었다.
그 역시 결과는 두 번의 무색 영약으로 0.02의 내공 상승을 가져왔었는데, 이번까지 합치면 5연속 무색 영약 당첨인 셈이다.
“이런 씨…… 정말 이러기야?”
사실 무색 영약이라 해도 평범한 일반인들의 수련보다는 훨씬 빠른 내공 증진의 효과를 가져다주긴 한다.
그렇지만 동색이나 은색 등의 더 나은 가능성이 있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간신히 감정서까진 사겠네. 옘병!’
무색 영약 두 번을 사용하며 감정서 두 개 역시 소모해, 현재 남은 감정서는 1개뿐.
거기에 200은이 남아 있으니 감정서 2개를 더 살 수 있긴 하다.
그러면 딱 방금 뽑은 무색 영약 3개를 감정할 수가 있다.
“딱 맞아 떨어져서 퍽이나 다행이다.”
소종천은 투덜거리며 상점창을 열어 감정서를 구매했다.
[감정 대상을 선택하십시오.]“다 똑같은 무색인데 선택은 개뿔이.”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 못해서 그런지 고정된 대사의 알림조차 괜히 거슬린다.
[감정 성공.] [30년 백수오 획득.] [어마어마한 더덕 획득.] [짓무른 영초 획득.]결과가 불만족스럽긴 했지만 그렇다고 사용하지 않을 순 없는 영약들.
같은 등급이라 해도 뭔가 다른 점이 있을 수 있기에, 소지품창에 들어온 영약들의 정보를 확인했다.
[30년 백수오] [흔하지 않지만 흔한 백수오다.]하수오와 다를 것 없는 설명.
뿌리 색의 차이가 있을 뿐 생김새도 비슷비슷하다.
‘뭐 이건 며칠 전에도 뽑았던 거니.’
하수오와 마찬가지로 0.01의 내공을 올려주는 영약.
더 볼 것도 없이 바로 사용했다.
[내공 0.01 상승.]이어서 다음.
[어마어마한 더덕] [몇 년을 살아왔는지 정확히 감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굵직하고 영험해 보이지만, 그래 봐야 더덕이다.]“설명 참.”
전부 섭취하려면 배가 꽉 찰 것 같은 크기의 더덕.
직접 먹을 필요가 없이 소지품창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어마어마하다곤 하지만…… 설명의 마지막 줄을 봐서는 그다지 기대가 되지 않네.’
[내공 0.01 상승.]역시나 더덕도 다른 무색 영약들과 똑같은 수치의 내공을 올려주고 사라졌다.
‘무색 등급의 영약은 전부 0.01만 올려주는 건가.’
입맛을 다시며 마지막으로 남은 영약을 보았다.
어떤 동물이 씹어 먹다 뱉은 것으로 추정된다.
“에라이. 더럽게 진짜.”
이제는 누가 씹다 뱉은 물건까지 나왔다.
기분을 잡치게 만드는 설명이었지만, 이 역시도 직접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다.
욕설을 중얼거리며 영약을 사용했다.
[근골 0.01 상승.]“이것도 0.01…… 어라?”
똑같은 효능이라 생각하며 넘기려고 했는데 무언가 달랐다.
내공이 아닌 근골.
‘근골 수치가 올랐어?’
영약은 전부 내공이 오르는 것이라 지레짐작하고 있었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후천적으로 쌓아야 하는 내공과 달리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라 예상했던 다른 재능들.
‘고정적인 수치라 생각했는데 이건 조금 신기하네. 하긴,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능이란 것도 단련하기에 따라 진보하거나 퇴보할 수 있을 테니.’
근골이 올랐으니 무언가 육체적으로 변화가 있을 것 같았는데, 수치가 너무 작아서 그런지 딱히 바뀐 느낌은 들지 않는다.
‘흐음…… 내공이 아닌 다른 재능들도 성장시킬 수 있다는 게 좋은 건지 어떤지 잘 모르겠네.’
내공이 증가하면 단전에서 미약하게나마 기운의 변화를 느끼긴 하는데, 근골은 뭐가 달라진 건지 아직은 전혀 체감할 수가 없다.
그래도 어쨌거나 재능이 증가한 것이니 나쁠 건 없으리라.
‘하다못해 동색 등급쯤 되면 뭔가 달라진 걸 느꼈을 것 같은데. 아오! 다시 생각해도 아쉽네.’
머리를 벅벅 긁으며 툴툴거린 소종천은 숙소로 향했다.
오늘의 볼일은 다 마쳤으니 심법 수련이나 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방 안으로 들어서자 구석에서 눈을 감고 앉아 있는 한사혜의 모습이 보였다.
‘쟤도 운공 중인가? 다른 녀석들은 아직 안 온 모양이네.’
운공 중에는 외부의 작은 충격에도 쉽게 내상을 입을 수가 있기에, 건드리는 것은 물론 가급적 소리를 내는 것조차 삼가야 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소종천이 방에 들어선 것을 저쪽도 감지하긴 했겠지만, 운기행공이란 것은 잠에 빠진 사람처럼 취약해지는 상태이기에 괜히 말을 거는 것도 위협으로 느껴질 수 있다.
게다가 한사혜는 평소에도 딱히 대화를 하던 상대가 아니기에, 소종천은 그녀를 없는 사람처럼 여기고 조용히 자신의 자리로 들어가 평소와 같이 반야신공을 수련하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막 눈을 감고 머리 아픈 구결들을 떠올리며 운공을 시작하려던 순간.
“그거 진전은 있어?”
‘엥?’
한사혜가 말을 걸어왔다.
눈을 뜨니 어느새 앉은 자세를 바꾼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무표정한 얼굴이 보인다.
소종천이 방에 들어선 뒤 곧바로 운공을 마무리한 모양이었다.
“어…… 나한테 말한 거야?”
생각지도 못한 사태에 당황해서 바보 같은 질문을 내뱉었다.
“그럼 여기 너 말고 또 누가 있다는 거야?”
“그, 그렇지. 음.”
자신은 물론 방 안의 누구와도 대화를 하지 않던 그녀가 무슨 바람이 불어 말을 건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혼란스러워하는 소종천에게 한사혜는 다시 입을 열었다.
“반야신공이라고 했던가? 심법을 다시 수련하는 건 할 만하니?”
“아…… 좀 어렵네. 아직은 성취가 없어서 막막해.”
“그렇겠지. 어려서부터 쌓아온 공부를 전부 내팽개치고 새로 시작하는 건, 어지간한 병신이 아니고서야 못 할 짓이니까.”
‘아니, 이년이?’
의아하긴 했어도 좋게 웃으며 대답했는데 욕이 되어 답이 돌아온다.
“그래도 대단하네. 자신이 원하는 걸 선택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니. 여기 있는 모두가 다른 사람이 정해준 무공을 평생 익히며 살아가고 있을 텐데.”
“……?”
남의 일에 신경 끄라고 쏘아주려다 말고 멈칫했다.
욕을 하자는 건지 칭찬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야 이곳에 모인 생도들은 무가의 자식이던 어느 문파의 제자이던 개인의 인격이 완성되기 전의 시기부터, 부모 혹은 사부의 지도하에 무공을 전수받기 시작하긴 했을 것이다.
소종천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다섯 살 때부터 청명토납공과 추영권의 수련을 시작했지 않았던가.
‘말투가 뭔가 의미심장하네. 본인이 익힌 무공에 불만이 있는 건가?’
자신도 만약 과거를 바꿔 다른 무공을 배울 수 있는 선택지를 만들 수 있다면, 주저 없이 더 좋은 무공으로 갈아탔을 것이다.
다섯 살이 아닌 열다섯 살의 지금에 와서 그걸 시도했다는 점에서, 주변인들에게 괴상한 별종 취급을 당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아니면 사문에 문제라도 있나? 분명 사파 계열의 방파랬지? 편견일지 모르지만 어린 여자애가 자라기 좋은 환경은 아니었을 것 같기도 한데.’
상대의 의도를 알 수 없어 머뭇거리던 소종천은 그냥 직설적으로 대놓고 물어보았다.
“왜, 너도 심법을 바꾸고 싶기라도 한 거야?”
“글쎄.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긴 어렵지만, 지금의 무공이 원해서 배운 것들은 아니긴 하지.”
“흠.”
소종천은 이전에 감정했던 한사혜의 정보를 떠올렸다.
언제든 목록을 불러올 수 있는 소종천의 정보창에는, 자신의 것만 아니라 감정을 통해 확인한 다른 사람들의 정보 역시도 기록되어 있다.
감정했던 시점 이후의 변화에 대해선 알 수 없지만, 며칠 전의 일이니 크게 달라진 것은 없을 터.
‘한사혜의 무공이, 보자…… 혈사심법과 혈사조 그리고 사영보였네. 등급으로 치면 어떤 색일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가 익힌 무공들보다는 뛰어날 것 같은데.’
한사혜의 내공 수치가 2.02.
열다섯 살에 20년가량의 내공을 보유하고 있는 것만 봐도 혈사심법이라는 심공이 하류의 무공은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혈사심법이면 괜찮은 무공 아냐?”
“……뭐?”
무심코 뱉은 말.
그런데 한사혜의 반응이 격정적이었다.
“어떻게 네가 내 심법에 대해서 알고 있지? 외부에 말하고 다닌 기억이 없는데?”
벌떡 일어난 한사혜가 매서운 눈초리로 소종천을 쏘아보았다.
분위기가 냉랭해지자 소종천은 실책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이런 망할. 아무 생각 없이 아는 척 해버렸네. 뭐라고 둘러대지?’
무수히 많은 고수의 떼죽음을 당한 천마의 난 이후로 발족한 정사 연합.
그 후 몇십 년 동안 교류가 이어져 오며 서로에 대한 정보들이 제법 풀리긴 했지만, 상대의 무공내력에 대해 함부로 언급하는 것은 여전히 금기에 가까운 행동이다.
특히 눈에 보일 수밖에 없는 외공이 아닌 심법 같은 근본적인 내공의 공부는, 같은 문파 내에서도 직계의 사승 관계가 아니고서야 종류와 성취에 대해 함부로 떠들어대지 않는다.
소종천이 꺼낼 말을 찾지 못하고 눈을 굴리고 있자니, 다행스럽게도 문제는 저절로 해결이 되었다.
“……하긴, 알아볼 수도 있겠지. 이 손만 봐도 대충 짐작할 수 있었을 테니.”
한사혜가 중얼거리며 손을 슬쩍 들어 올리자, 소맷자락이 흘러내리며 하얀 피부가 드러난다.
하지만 드러난 손의 형태는 그녀의 외모에 어울릴 법한 섬섬옥수는 아니었다.
여기저기 굳은살이 박이고 흉터가 가득한 손.
게다가 불긋불긋한 반점 같은 것이 군데군데 보이는 것이, 좋게 말해도 고운 모습이라 하기는 어려웠다.
적사방의 무공 중 하나인 혈사조를 익히며 생기게 되는 흔적들이었다.
“적사방의 무공에 대해 견문이 있다면 내가 혈사조를 수련했다는 걸 눈치챘을 테니, 혈사심법을 익혔을 거라 짐작한 건가? 짝을 이루는 무공이니 그리 여겨도 이상한 일은 아니긴 해.”
“아, 그, 그렇지! 내가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예전에 그런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거 뭐냐 어쩌다 보니 무심코 때려 맞추게 되었네!”
“뭐라는 거야. 정신 사나우니 입 다물어.”
“어, 그래.”
한사혜가 자리에 앉으며 팔을 내리자 소맷자락이 손을 덮어 가린다.
딱히 관심이 없어 몰랐었는데, 이제 보니 과할 정도로 무복의 소매가 긴 것이, 자신의 손을 향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게 아닌가 싶다.
‘무인이 무공을 익히다 보면 생기는 현상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한창 예민할 나이니까 신경이 쓰일 법도 하겠네.’
“눈 치워. 뽑히고 싶은 게 아니면.”
소종천의 시선이 소맷자락을 향하고 있는 것을 눈치챈 한사혜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뱉는다.
살기마저 느껴지는 말투에 소종천은 당황하며 입을 열었다.
“아! 미안.”
거기서 멈췄어야 하는데, 방정맞은 주둥이가 한 번 더 움직이고 말았다.
“손, 예쁘다고 생각하는데.”
“……뭐?”
무인이 무공을 수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로 인해 생기는 흉터나 현상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제대로 연공에 매진했다는 증거나 다름없으니 자신감을 가져야 맞다.
……라는 식으로 말해줄까 생각하다가 괜한 짓 같아서 참으려던 차였다.
그런데 반사적으로 사과를 하다가 같이 내뱉어진 말이, 앞뒤 다 잘라먹고 짧게 나오며 이상하게 되어버렸다.
‘아니, 이 병신 같은 주둥이가!?’
방 안의 공기가 급격하게 다시 차가워졌다.
한사혜의 무공 수위는 분명 소종천보다 한 수 위일 터.
입을 잘못 놀렸다가 정말 눈알이 뽑힐지도 모르는 분위기에, 소종천은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뽑기로 무림최강 1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