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17
53. 중원제일독문(6)
“이 친구, 농을 참 스스럼없이 치는군. 으하하핫! 하긴 결혼이 어디 보통 일인가?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들어서 당황했겠지.”
소종천의 발언으로 분위기가 이상해졌기에, 당사준은 대화에 끼어들어 어떻게든 상황을 무마시키고자 했다.
그런 그의 노력에 떨떠름한 얼굴로 소종천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당군호가, 천천히 표정을 풀고 입을 열었다.
“……그렇군. 내가 너무 생각할 시간도 주지 않고 급하게 밀어붙인 모양일세.”
잠시 말을 멈춘 당군호는 이내 소종천에게서 살짝 시선을 돌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연회가 끝난 뒤에 다시 자리를 갖도록 하지. 심사숙고하여 결정을 내려주게나.”
말을 그렇게 했지만 당군호는 다시 소종천과 얼굴을 마주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졌다.
‘어이가 없군. 당사준이 극찬하며 진행시키려고 한 혼담이기에 어떤 인물인가 했더니.’
소종천과 엮인 몇 가지 사건들은, 당연히 당군호도 이야기를 접해 알고 있다.
가문의 인물 몇 사람과 불편한 관계를 맺은 소종천.
그걸 잘 알면서도 당사준의 요청을 듣고 소종천에게 혼인이라는 선택지를 내민 것은, 가주인 당군호의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선처를 베풀었다고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그럼에도 상대에게 돌아오는 대답이란 것이, 선을 넘어도 한참을 넘었다.
농담이라 치고 넘어가기에도, 소종천의 반응은 굉장히 무례한 것이었다.
‘쯔쯧. 아무리 귀한 젊은 고수를 영입할 수 있는 기회라지만, 썩 정이 안 가는 놈이군.’
빤질빤질한 인상도 그렇고 언행과 태도가 영 불쾌하다.
그래도 당군호는 당장 일을 더 키우지는 않고 조용히 넘어가기로 했다.
“예, 뭐…… 갑작스러웠긴 했네요. 이 이야기는 천천히 생각해 보겠습니다.”
소종천 역시 딴에는 입조심을 한다고 막나가는 발언을 멈추었다.
‘무슨 첫눈에 홀라당 반할 정도로 매력적인 여성이 있던 것도 아니고, 명문세가라는 배경 하나만 보고 혼담을 받을 마음이 없긴 한데.’
무려 일곱이나 품에 안겨준다는 줄 알고 잠깐 혹하긴 했지만,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하는 평범한 혼인이라면 딱히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다만, 굳이 그런 말을 꺼내어 가라앉은 분위기를 더 떨어뜨리지는 않았다.
“가주님. 그럼 연회 때 뵙겠습니다. 가세, 소 단주.”
“그래. 나가보시게.”
혹시나 상황이 더 악화될까 싶어 조마조마하던 당사준은, 재빨리 인사를 마치고는 소종천을 잡아끌며 자리를 벗어났다.
“자네 정말…… 이러긴가?”
“네? 뭐가요?”
질색한 표정의 당사준을 보며 소종천은 무엇이 문제냐는 듯이 태연하게 반응했다.
길게 말해봤자 자신만 바보가 되는 것 같아, 당사준은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를 마쳤다.
“후우, 되었네. 연회 당일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으니, 푹 쉬도록 하게나.”
“어, 같이 돌아가지 않으십니까?”
“나 역시 본가에 왔으니 해야 할 일들이 있다네. 혹시 숙소까지의 길이 기억나지 않는가?”
“그건 아닌데, 조금 전에 야장 분들을 소개시켜 준다 하셨잖습니까?”
그렇긴 했지만, 그거야 곧 한 식구가 되겠거니 생각하며 했던 말이다.
가주 앞에서 일을 그리 망쳐놓고 저런 말을 하니, 당사준은 소종천이 굉장히 얄밉게 느껴졌다.
“……잠깐 여기서 기다리게. 내 사람을 곧 붙여줄 테니.”
적어도 지금 당장은 더 따라다니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기에, 당사준은 소종천을 남겨두고 빠른 걸음으로 멀어져 갔다.
‘다시 생각해도 황당하군. 취향껏 골라보라고 나이가 맞는 아이들을 붙여줬더니.’
설마 그 아이들을 전부 데리고 복혼을 하겠다는 소리를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째 눈치를 보아하니 누구 하나를 고를 생각은 없어 보이는데. 그래도 아직 시간은 남아 있으니…… 뒷일은 여아들에게 맡기는 수밖에.’
일이 꽤나 틀어진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다 없던 일로 해야 할 정도는 아니다.
연회가 시작되기 전에 누구 한 사람이 소종천을 잘 꾀어서 거사(?)를 치른다면, 예정대로 혼인 관계를 통해 그에게 목줄을 채워둘 수 있으리라.
‘설마 그런 뒤에도 헛소리나 늘어놓으며 혼담을 거부하려 한다면…….’
그때는 그도 손을 떼고 당해철의 편을 들어주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 * *
“다시 뵈어요. 공자님.”
“아.”
소종천이 자신을 안내해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자니, 혼담의 대상이었던 일곱 여성 중 한 사람이 다가왔다.
“천화장의 모습을 구경하고 싶으시다 들었어요.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하늘의 불이 있는 곳이라는 이름의 천화장은, 당가의 병기를 만드는 야장들의 생활터전이다.
“고맙습니다, 그…… 소영 소저라고 하셨던가?”
“아이, 참! 그새 잊으시다니. 다시 인사드릴게요. 당수현이라 합니다, 소종천 공자님.”
“아아, 미안해요. 이제 제대로 기억했습니다.”
모여 있던 여인 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으로 교태를 부리던 이였는데, 왕이 된 듯한 기분을 즐기느라 정작 이름들은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얼굴이 꽤 귀여운 상이긴 한데, 내 심장에 팍 꽂히는 외모는 아니긴 하네. 나는 역시 막 그…… 터질 것 같은 몸매가 취향인 것 같단 말이지.’
하루 동안의 관계에 불과했지만 뜨겁게 불태웠던 홍려아와 비교하면, 중원의 여인들은 대부분 어린애나 다름없는 밋밋한 몸매라는 느낌이다.
그쪽은 워낙 반칙이니 제외하고 딱 목 위로만 따진다 해도, 당가의 여성 중에는 매일 같이 자신을 따라다니는 한사혜만큼 예쁘장한 미모를 가진 사람이 없었다.
‘솔직히 그렇게 나 좋다고 따라다니는 사혜한테도 마음이 가지 않는 건 아닌데. 역시 나이가 나이다 보니 손을 대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라.’
열여섯이면 이쪽 세상에서는 성혼을 치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나이지만, 아무래도 원래 세계의 영향인지 받아들이기가 영 쉽지 않다.
물론 그런 걸 따지는 놈이 삼처사첩에는 마음이 동했었냐고 따지면, 그건 또 할 말이 없긴 하지만 말이다.
“저기, 공자님?”
잡생각이 길어지며 소종천이 멀뚱히 서 있자, 당수현이 의아해하며 소매를 잡아당겼다.
“아! 잠시 딴 생각 좀 하느라. 갑시다.”
어쨌거나 소종천의 기준에 꽉 차게 들어오진 않는다 해도, 당수현 역시 충분히 미색이 곱다고 말할 수 있는 외모다.
그런 여인이 열렬하게 구애의 눈길을 보내며 몸을 기대어오는데, 혼인할 생각은 없다고 딱 잘라 못 박으며 떨쳐낼 생각은 들지 않았다.
‘흐흐, 당가에 머무르는 동안은 적당히 이런 순간들을 즐기는 거지 뭐.’
살갑게 달라붙어 재잘대는 당수현의 안내를 받으며, 소종천은 천화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땅! 까앙!
당수현을 따라 걷고 있자니 멀리서부터 금속을 때리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뭔가 듣기 좋네.’
사방에서 울리는 망치질 소리가 뒤섞이며 묘하게 흥겨운 운율을 만들어 낸다.
누군가에겐 단순히 시끄러운 소음일지도 모르지만, 소종천은 이곳에서 들리는 소리가 제법 마음에 들었다.
“공자님!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이지만, 이곳의 장인분들은 작업을 방해받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세요. 구경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기물들에 함부로 손을 대시는 것은 자제해주셔요.”
“그러죠.”
소종천은 안으로 들어가 주변을 구경하며 천천히 걸었다.
몇 사람의 야장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커다란 건물이 길게 늘어서 있는 걸 보니, 이곳 천화장이란 장소는 규모가 상당한 공간인 것은 확실해 보였다.
검붉은 색으로 그을린 피부를 한 야장들은 그들의 공간을 침범한 두 사람에게 힐끔 짧은 시선을 주고는, 다시 말없이 묵묵하게 자신의 일에 몰두했다.
“수현 소저. 팔 좀 놔주세요.”
“엣?”
후끈한 열기가 가득한 공간에서 땀을 흘리면서 작업하는 이들을 보고 있자니, 잡념이 사라지는 것 같다.
소종천은 찰싹 달라붙어 있던 당수현을 떨어뜨리고, 야장들의 움직임과 그들이 만들어 낸 작업의 결과물들을 구경하는 데 열중했다.
‘신기하네. 현대의 제철산업과 비교하면 분명 원시적인 수준이라 할 수 있는 정련 기술일 텐데. 뭔가 묘하게 마음을 울리는 힘이 있단 말이야.’
담금질하는 소리가 상당히 시끄러워 정신이 산만해져야 할 것 같은데, 어째 반대로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이다.
“하으으, 공자님? 덥지 않으세요?”
“괜찮아요.”
“으윽, 저는 잠시 나가 있을게요. 열기를 오래 쬐고 있으니 현기증이 나서…….”
뜨거운 공기에 절여져 땀이 흐르기 시작하니, 화장이 다 망가지고 냄새가 날까 싶어 버틸 수가 없었다.
소종천이 활활 타오르는 용광로 근처에서 꽤 오래 머무르고 있었기에, 그의 눈에 들고자 곁을 지키던 당수현은 결국 견디지 못하고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소종천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태연하게 주변을 구경했다.
용린천잠보의에 열기를 차단하는 기능이 있기도 하고 본인 자체가 초인의 반열에 오른 무인이기에, 이 정도의 열기로는 딱히 몸이 반응하지도 않는다.
‘역시 당가라서 그런지 죄다 암기들만 만들고 있네. 그래도 보는 재미는 있다만.’
완성된 제작품들을 식히기 위해 진열해두는 것을 구경하던 소종천은, 정체를 아는 물건을 발견하고 무심코 입을 열었다.
“아, 이거. 그 노인네랑 싸울 때 본 거네.”
대못 같은 생김새의 암기.
변화와 눈속임을 포기하고 관통력을 극대화한 암기로, 직선적인 움직임에도 쉽게 받아낼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힘을 담아냈던 암기였다.
“호오? 추혼산화정을 상대해 봤다는 말인가?”
진열품들을 구경하고 있자니 드디어 처음으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막 완성작을 만들어놓고 숨을 돌리던 야장이, 소종천의 말에 관심을 보인 것.
“네. 위력이 상당해서 다른 암기들보다 기억에 남았었죠.”
“허헛. 절정지경의 무인이 쏘아내는 추혼산화정을 본다면 또 느낌이 색다를 걸세. 호신강기를 뚫는 것을 목적으로 개발되었던 암기이니, 파괴력이 남다른 놈이지.”
소종천을 또래의 평범한 무인일 것이라 여긴 야장은, 그가 상대했다는 무인이 끽해야 일류에 겨우 발을 들인 수준이었을 거라 짐작했다.
‘진정한 위력의 추혼산화정을 몸으로 받아냈다면, 이미 저 소년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겠지.’
물론 소종천이 상대한 암기술은 당가의 최고수 중 하나인 당해철의 손에서 펼쳐졌던 것이니, 그런 그의 생각은 잘못되었다.
그래도 소종천은 굳이 그것을 지적하지 않고, 대신 다른 쪽으로의 관심을 드러냈다.
“호신강기요? 그게 강기를 뚫을 정도의 위력이 나옵니까?”
‘내가 보기엔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던데?’
점창파의 최고수인 황석호를 상대하며 호신강기를 직접 경험해본 적 있던 소종천은, 야장의 말에 미심쩍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크흠! 어디까지나 처음 개발목적이 그랬다는 말이네. 아쉽게도 호신강기를 파훼하기엔 위력이 조금 부족하다는 모양이더군. 천외천이라 할 수 있는 초절정고수를 상대할 수단을 갖추는 게 어디 쉽겠는가?”
“뭐 그건 그렇죠. 이걸로는 막 경지에 올라 강기를 다루는 데 미숙한 초절정 무인의 호신강기라 해도 뚫긴 어렵겠네요.”
이제 갓 강기를 다루기 시작한 소종천이 본인의 경험에 빗대어 한 설명이었다.
현재의 소종천은 권강을 발현할 수는 있지만, 몸을 뒤덮는 호신강기까지는 아직 쉬이 다루지 못하는 수준이다.
“끄응, 그렇게까지 자세하게 말하니 듣기 조금 그렇군. 그래도 계속 연구와 개량을 거듭하고 있으니, 자네가 말하는 미숙한 수준의 호신강기는 머지않아 뚫을 수 있을 걸세. 관통력을 여기서 조금만 더 끌어올릴 수 있다면 될 텐데…….”
“흐음. 관통력 말이죠. 파고드는 힘을 더 늘리려면…….”
대화를 나누다 보니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있었다.
현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그것.
‘못 형태에서 더 발전된 거라면, 나사못이 있잖아?’
물론 드라이버로 박아 넣는 나사와 투척용으로 만드는 암기가 같을 수는 없지만, 개량을 위한 실마리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거 나사못처럼 만들면 안 되는 겁니까?”
소종천의 말에 야장은 눈을 끔벅거리며 그를 쳐다보았다.
뽑기로 무림최강 118화